사표론

1 개요

이회창을 뽑으면 이회창이 되지만, 이인제를 뽑으면 김대중이 됩니다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측의 홍보 문구

死票論.

선거철마다 반복적으로 나오게 되는 주장으로, 한 마디로 말하자면 군소정당에 표를 주면 그 표는 죽은 표다라는 뜻이다. 차악론과도 일맥 상통하는 주장.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나마 최악보다 나은 차악 후보에게 표를 줘라라고 주장한다.

2 상세

사표론은 대부분 여야를 막론하고 주장되며, 유사한 정치성향 사이에 있는 정당들 중 세력이 큰 정당이 주장하게 된다. 즉 어차피 세가 미미한 정당에 표를 주어봐야 당선 가능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있는 우리마저 표가 분산되어 낙선할 가능성이 있으니 될 만한 우리에게 표를 몰아달라는 얘기다.

이는 소선거구제결선투표제가 없는 선거제도 하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유권자들에게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처럼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으며, 그로 인하여 상기 선거제도 하에서는 항상 군소정당이 사표론에 의한 유권자의 사표방지 심리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본다. 야권연대를 하는 이유중 하나도 이것.

대표적으로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에게 써먹었다. 이회창은 외환위기와 두 아들의 병역비리로 지지율이 폭락, 야당의 김대중과 경선에 불복해 여당을 탈당한 이인제에게 크게 밀려난 상황[1] 에서 위에 나와있듯이 노골적으로 사표론을 밀어서 지지율을 회복했다. 그러고도 졌지만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측에서도 이회창에 비해선 덜하지만 역시 사표론을 주장한 결과, 진보정당인 국민승리 21 권영길 후보의 득표력이 저하되었다. 이는 2002년 대선에서도 그대로 재연되어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측이 사표론을 적극 주장하였고 그 결과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득표력이 다시 한번 크게 타격을 받았다.[2]

그래서 군소정당에서는 사표론을 증오할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는 소선거구제 및 결선투표제가 없는 상황에서 사표에 의해 당락이 바뀌는 경우가 엄존하는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이렇게 당선된 후보는 그를 지지한 국민의 숫자보다 지지하지 않은 숫자의 국민 수가 더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치 판단의 문제라기보다는 하나의 선거 전략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민주노동당에 대하여 사표론을 주장했는데, 정작 민주노동당의 후신인 통합진보당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진보신당에 대하여 사표론을 주장했다. 당할 때는 비판하지만 유효할 때는 사용하는 전략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표론이 정당을 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모두 출마했는데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고 이에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이 사표론을 언급하며 노회찬 후보를 비난했다. 여기까지는 군소정당인 진보신당이 사표론으로 비난을 받는 입장이나, 불과 2년 전의 총선에서는 바로 그 노회찬이 사표론을 주장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서울 노원병에서 한나라당 홍정욱에게 2000여표차로 패배했는데, 통합민주당 김성환 후보가 가져간 표만 13000여표였던 것. 이 때 단일화를 거부한 것은 김성환 후보와 통합민주당이었기에, 서울시장 선거에서 노회찬에게 사표론을 제기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주장이 많았다. 게다가 그 김성환 후보는 2년 뒤 지방선거에서 노원구청장에 출마해 당선된 뒤 평가가 좋아서 재선까지 했으니.....

중대선거구제 및 결선투표제가 있는 경우 상대적으로 사표론의 위력은 줄어든다. 대한민국에서는 1인 1표제이던 시절의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특히 사표론이 극심하였으나, 이것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고 1인 2표제로 전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시행되면서 그 이전보다는 약화된 경향이 있다.[3] 그러나 대통령 선거 및 지역구 선거에서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결국 군소정당이 계속 후보자를 내고 결선투표제가 없는 한 계속될 주장이다...
  1. 김대중과 이인제가 접전을 펼칠 동안 이회창의 지지율은 10%대였다.
  2. 다만 이 때는 권영길 후보가 100만표를 얻는 것이 유력했다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 파동이 하필이면 투표를 하루 앞두고 터져서 진보 성향 유권자들까지 노무현 지지로 급격히 돌아섰다는 분석도 있었다. 참고로 당시 노무현과 이회창의 득표율차는 2.3%P였으며 만일 정몽준 해프닝이 없었다면 권영길의 득표율이 다소 높고 노무현과 이회창간의 득표율차가 그야말로 초박빙으로 흘렀을 것이다.
  3.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의 경우 지역구의원은 야권단일후보, 정당투표는 자신들에게 투표해달라고 홍보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