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문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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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전경

대상문!! 화이팅! ㅡ이자흠 전 교장선생님의 퇴임 연설 中
상문고등학교
Sangmoon High School
尙文高等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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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1973년
유형일반계 고등학교
성별남학교
운영형태사립
학교법인상문학원
교장김창동
교감최인환, 김석한
교훈지혜,성실
상징교목 : 소나무
교화 : 황철쭉
학생 수1,558명
(2015. 4. 1.기준)
교직원 수104명
(2015. 4. 1.기준)
관할교육청서울특별시교육청
소재지서울특별시 서초구 명달로 45 (방배동)
홈페이지

학교알리미

1 개요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사립 고등학교.

이름의 뜻은 '상씨+학문 '의 합성이다. 한자로는 尙文 大尙文. '상씨 가문에서 세운 학교'이라는 뜻에서 '상문'이라고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1] 밑에서 보듯 문중 땅에 지은 학교이니 굳이 틀리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상씨 '가문'만을 의미하는 尙門이 아니라 '학문'에 더 큰 의미를 두는 尙文으로 표기한다. 원래 학교 부지가 명종 때 재상으로 이름 높은 상진(尙震)에게 명종이 하사한 땅이라고 한다. 그 뒤로 대대로 문중 땅이었는데, 해방 이후 그 자리에 도로가 나게 되면서 상씨 문중이 토지를 잃게 되었다. 그래서 토지를 지키고자 문중 땅에 학교를 지었는데, 그게 지금의 상문고등학교다. 교문에서 운동장으로 올라가는 길(교문이 학교 건물보다 낮다) 옆에 무덤이 몇 기 있는데 담력 시험 같은 건 안 하는 듯. 실제로 학교 부지 내에 상씨 가문 선조를 기리는 비석이 있으며,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 역사

2.1 학교 연혁

  • 1969년 6월 26일 : 학교법인 상문학원 설립인가
  • 1969년 6월 29일 : 초대 상헌[2] 이사장 취임
  • 1972년 6월 22일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서초동[3]에 상문고등학교 설립 예비인가(학년당 8학급)
  • 1972년 12월 6일 : 교사 기공식 거행
  • 1972년 12월 23일 : 상문고등학교 설립인가
  • 1973년 3월 1일 : 초대 상춘식 교장 취임
  • 1974년 12월 2일 : 신입생 3학급 증설인가(학년당 12학급, 총36학급)
  • 1975년 3월 2일 : 구관(지혜관) 4층 교사 완공식 거행
  • 1975년 11월 15일 : 신관(성실관) 4층 기공식 거행
  • 1975년 12월 2일 : 신입생 3학급 증설인가(학년당 15학급, 총45학급)
  • 1976년 2월 21일 : 제1회 졸업식
  • 1976년 9월 20일 : 신관(성실관) 준공식 거행
  • 1980년 1월 9일 : 이우자[4] 이사장 취임
  • 1983년 3월 5일 : 신입생 5학급 증설인가(학년당 20학급, 총60학급)
  • 1983년 4월 6일 : 본관(행정관) 신축 및 신관(성실관) 증축 기공식 거행
  • 1985년 5월 31일 : 홍승목 이사장 취임
  • 1985년 9월 7일 : 윤태규 교장직무대행 임명
  • 1986년 4월 21일 : 이우자 이사장 재취임
  • 1986년 5월 9일 : 제2대 상춘식 교장 재취임
  • 1992년 10월 30일 : 학교법인 동인학원으로 법인 명칭 변경
  • 1994년 3월 14일 : 상문고 교사 7인 재단비리와 관련한 최초 양심선언
  • 1994년 3월 15일 : 상문고 교사 28인 재단비리와 관련한 2차 양심선언
  • 1994년 3월 16일 : 김영삼 대통령 상문고 재단비리 관련 검찰전면수사 지시
  • 1994년 4월 16일 : 서울시교육청 1차 관선이사 파견 및 김동진 이사장 취임
  • 1994년 4월 22일 : 제3대 편광범 교장 취임
  • 1999년 12월 31일 : 서울시교육청 이우자 외 6명 민선이사 선임 승인
  • 2000년 1월 13일 : 이우자 이사장 재취임
  • 2000년 2월 10일 : 서울시교육청 이우자 외 6명 민선이사진 승인철회
  • 2000년 3월 16일 : 서울시교육청 5차 관선이사 파견 및 박경양 이사장 취임
  • 2000년 6월 29일 : 서울행정법원에서 교육청의 현 민선이사진 승인철회 취소 및 가처분 판결
  • 2001년 2월 18일 : 장방언 교장[5] 임명 및 신입생 재배정 사태
  • 2001년 3월 22일 :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교육청의 항소심에서 이우자 이사장 승인철회 판결
  • 2001년 3월 29일 : 서울시교육청 5차 관선이사 자격 회복
  • 2002년 11월 26일 : 대법원 이우자 이사장 승인철회 확정판결
  • 2008년 9월 17일 : 학생식당(우면관) 준공식
  • 2010년 5월 7일 : 인조잔디 운동장 준공식
  • 2011년 11월 2일 : 강당(송현관) 준공
  • 2012년 5월 25일 : 서울시교육청 관선이사 체제 종료 및 상채규[6] 이사장 취임
  • 2012년 7월 11일 : 학교법인 상문학원으로 명칭 환원
  • 2015년 3월 1일 : 제12대 김창동 교장 취임

3 교훈 및 상징

3.1 교육목표 및 교훈

3.2 학교 상징

3.3 교가

3.4 교복

교복의 경우 1970년대에는 이 학교를 배경으로 한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등장하는 것과 같은 형태의 교복이었으나, 1980년대 부터 교복 자율화가 진행되고서 꽤 오랫동안 교복을 채택하지 않았다. 특히 1990년대 초반에는 같은 8학군 고등학교인 서울고, 서초고, 반포고 등 지에서 교복 채택을 마친 상태였기에 무슨 옷을 입든 소용 없을중대가리에 사복 입고 다니는 8학군 고등학교로 몇 년 동안은 튀기도 했다.[7]

현재 채택된 교복은 비리가 터진 1995년도 1학기 부터 적용된 것으로[8] 졸업을 앞둔 3학년을 제외하고 교복을 채택했는데, 동복의 경우 가쿠란 스타일의 재킷이 특징으로아직도 가쿠란을 쓰는곳이 있다니... 재킷 색상도 과거 새까만 색상이 아닌 어두운 회색계열을 적용하고 앙드레 김 느낌이 물씬 풍기는[9] 세련된 스타일의 학교 로고까지 버프를 받아[10] 실제로 보면 디자인이 준수한 편이다.[11] 다만 색상이 스님들이 입는 가사와 유사한 색상이다 보니, 1990년대 중후반에는 중대가리에 이 동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상문고가 불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인 줄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참고로 가쿠란 스타일이다 보니 넥타이를 매지 않는데, 실제로도 교복 구성품에 넥타이도, 교복도 없으므로 춘추복 착용 기간에는 넥타이 없이 와이셔츠만 입거나 와이셔츠에 바로 재킷만 걸치면 되기에 편하기도 하다. 하복의 경우 베이지색 계통으로 밝은 색상의 반팔 셔츠와 짙은 색상의 바지로, 전체적인 색상도 누리끼리한데다 동복과는 달리 교표로 尙文이라는 한자를 전면에 부착하는 바람에 동복과 마찬가지로 불교 느낌이 나긴 했지만 옆 학교의 죄수복과 비교하면 그래도 나은편(...) 현재 하복 상의는 깨끗한 하얀색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교복이 채택된 그때가 1994년도. 그렇다, 더 킹 오브 파이터즈 '94로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던 때인 것이다. 하여 덕후들은 '우리 교복 교복이다' 혹은 캠퍼스 블루스가 당시 인기이던 시절이라 '타이손 교복이다'라며 낄낄거리며 좋아했다. 굳이 덕후가 아니더라도 전 국민을 강타한 농구붐의 공신 중 하나, 슬램덩크 또한 가쿠란을 입는 학생들이었으니 그 거부감이 덜했다. 아니 오히려 덕후나 창작물을 떠나 '차이나 카라'라고 하며 멋진 교복이라고 좋아했다.[12] 하지만 드레스 셔츠 또한 교복의 구성 중 하나이고 이를 바지 안에 집어넣어 입는 것이 엄격했기 때문에 이 셔츠를 빼 입다가 학주한테 걸리면 빠따질로 이어졌다. 창작물 캐릭터처럼 교복 상의 안에 티셔츠만 입는다면? 이건 더 빠따질...

하지만 2000년대 부터 동복 착용기간에 하의와 동복 재킷만 잘 챙겨 입으면 될 정도로 복장 단속이 상당히 관대해지기 시작했다.[13] 상의로 드레스 셔츠를 입지 않고 색깔이 있는 사복으로 입어도 문제삼지 않았기에 교복 구성품인 조끼에 드레스 셔츠 조합보다 사복으로 남방이나 스웨터를 착용하는 경우가 꽤 많았고, 드레스 셔츠를 바깥으로 빼 입는 것도 상관 없었다. 현재 드레스 셔츠는 바지 밖으로 빼 입어도 된다. 아니 아무도 바지 안에 넣어 입지 않으며, 패딩이나 점퍼 등을 입을 때는 교복을 재킷까지 착용하고 그 위에 입는 것이 규칙이다. 하복 역시 2000년대 초반부터 복장규제가 크지 않은 편으로 디자인이 크게 튀지 않는 선에서 복장 규제가 완화되기도 했는데, 더운날에는 하복 상의에 체육복 하복 반바지 조합이나, 하얀 티셔츠 상의에 하복바지로 학교를 누비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정리하자면 2016년 현재 동복 상의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것과 매우 비슷한 검은 가쿠란 스타일의 자켓과 그 속에 입는 드레스 셔츠이며, 하의로는 회색 바지를 착용한다. 필요하면 진회색 가디건을 드레스 셔츠 위에 입을 수 있다. 하복으로는 하얀색우유색 반팔 상의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는다.

2014학년도에 생활복이 새로 생겼는데, 남색 반팔에 회색 반바지이다.

4 학교 특징

한 학년 학생수가 500~600명으로[14] 웬만한 다른 학교들 전체 학생수를 능가한다. 서초구 지역 특성상 남자고등학교가 별로 없는데다가[15], 근처의 남고는 경쟁률 넘사벽의 서울고 뿐이어서근데 서울대 진학률은 비슷하다, 대부분 추첨에 떨어진 학생들이 오는데도 학생수가 시설에 비하면 헬게이트다.

각 선생님들은 나무 막대기가 주어진다(교생 포함). 덤으로 남자 선생님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사립학교답게 선생님들의 평생직장이다. 연배 차이나 꽤 나는 선후배끼리 만나도 같은 선생님 애기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상당히 재미있다. 악명높은 선생님이 꽤 많은데 신입생때 멋모르고 개기면 3년이 꼬인다.자세히 설명하자면 상문고의 선생님들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2010년 이후부터는 새로운 선생님들을 들여오는 분위기지만 실상을 놓고보면 그안에서 20년 가까이 교권을 쥐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다.덕분에 교무실내의 서열과 그에의한 암묵적인 불문율도 확실히 존재한다. 학부모 파워가 엄청나게 강력한 학교기도 하다. 위치 좋은 강남의 한복판에 있기에 학부모들은 준재벌급의 집안들이 많다.

등교하는 길이 상당히 언덕이다! 특히 정문쪽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은 급격한 경사로를 매일매일 경험한다. 지혜관(구관) 교실 학생들은 정문 통과 후 언덕만 오르면 바로 앞에 건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성실관(신관) 교실 학생들이 언덕을 다 오르면 2차 등반길이 기다리고 있는데(...), 운동장 주변부 진입로와 직접 연결되는 성실관 입구 계단이 상당히 높고 경사가 심한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등하교 하기 편하고 행정관(본관)과 연결성도 좋은 지혜관의 경우 3학년 교실 공간으로 우선적으로 배정하고, 그 밖에 학교 특별활동 공간으로도 많이 활용하는 편이며, 성실관의 경우 1,2학년 교실 공간으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보면 되겠다.

4.1 평판

학교 분위기는 강남8학군 답게 좋은 편. 1학년 까지는 문제를 일으킬 만한 학생이 몇 있으나 2학년이 되면 다들 전학 및 권고 자퇴를 받고 사라지거나 스텔스모드에 들어간다. 학교 차원에서 관리하는듯. 주로 서초중과 서운중, 방배중, 반포중, 경원중, 신반포중, 영동중[16] 멀게는 서일중, 원촌중, 신동중, 언북중, 도곡중, 대치중, 휘문중 에서도 배정이 된다 서초구니까~강남구도 꽤 많은데(...) 근처에 있는 경문고등학교가 자사고가 된 뒤로는 같은 서초구에 위치한 이수중 학생들의 입학율이 급격히 증가한 상황.

명문대 진학률은 학교가 자리잡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부터 특목고가 활성화 되지 않았던 1980년대까지 전국구 명문고로 유명했다. 이 당시 SKY 진학한 인원수가 매년 기본 100명 이상 이었다고 하며[17], 이때 졸업생들의 아웃풋 덕분에 특히 법조계 주요 공직자들의 출신 고등학교 순위에서도 한동안 상위권에 랭크될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당시는 상춘식이 중심이 되는 비리재단하에 운영되던 시절로, 입시사관학교라는 허울 좋은 모양새를 갖추고 교사와 학생들을 옥죄어 명문대학교에 많이 입학시키면 자신과 관련된 모든 부정이 덮어진다는 사고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초 비리재단 복귀 사태 당시 일부 학부모 및 교사들 중에 비리재단 복귀를 옹호하는 의견들도 있었는데, 비리가 있어도 진학률이 좋으니 괜찮은거 아니냐는 논리로 나름의 정당성을 주장했으나, 애초에 특목고가 거의 없었던 시절과 특목고가 자리잡고 확대되던 현재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비교라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입시 만능주의에 찌든 안타까운 모습이기도 하다.

상춘식이 구속되고 난 후인 1990년대 중후반까지도 서울대만 30~40명은 족히 진학하던 수준으로 일반고등학교 중에서는 꽤나 이름을 날렸으나,[18] 고교 평준화와 특목고의 성장으로 그 수치가 점차 줄어드는 듯 하다가 2000년대 초반 비리재단의 복귀시도로 인한 학내분규 사태로 홍역을 치루고 난 후[19][20] 200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 서울대 진학률이 한 자리 숫자대로 급격히 떨어지며 망했어요 수준으로 갈 뻔 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학교측의 개선의 노력이 있었는지 2010년대 들어서 서울대 진학률은 일반고 중에서는 전국 상위권 수준으로 회복했다. 사실은 간다는 애들은 전부 써주고 있어서 다른 상위권 학교들에 비해서 지원자 수에 비해서는 합격률이 낮은 편... 그래도 많이 가면 좋은 거 아닌가

4.2 교내 특성화 프로그램

상문고등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교내 특성화 프로그램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과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프로그램으로 과학 아카데미, 로봇 아카데미, 발명 아카데미가 있으며, 문과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프로그램으로 인문 아카데미, 영어 디베이트가 있다.[21] 물론 필수가 아니며, 경쟁률이 꽤나 치열하다. 모든 특성화 프로그램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영상 관련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을 위한 영상 아카데미도 있다.

4.2.1 인문 아카데미

인문 아카데미는 문과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는 특성화 프로그램으로[22], 주로 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한다. 매년 주제를 하나 선정하고, 그 해의 주제와 맞는 지역에 답사를 가고(국내 탐방이라고 한다) 유명 대학의 교수님들을 초청해서 강의를 듣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보통 매우 졸리다 그리고 그 활동마다 전부 보고서를 쓴다. 겨울에는 해외탐방도 가는데, 2015년까지는 인문 아카데미 학생이 아니어도 신청하면 따라갈 수 있었으나, 2016년부터는 인문 아카데미 소속 학생만 갈 수 있다고 한다.

4.2.2 과학 아카데미

과학 아카데미는 이과 학생들이 주로 지원하는 특성화 프로그램으로, 여러 과학 실험들을 하고 연구 논문도 쓰며, 인문 아카데미처럼 유명 대학의 교수님들을 초청해 강의를 듣는다. 2015학년도부터 1학년은 그냥 과학아카데미로 30명 선발, 2학년은 물리지학/화학/생명과학 으로 총 3개의 아카데미 각 12명씩 운영한다. 2학년은 심화실험아카데미로 소논문대회, 주제발표 대회등으로 굉장히 요구사항이 증가했다. 여름 방학에는 제주도, 겨울 방학에는 해외 탐방까지 간다고. 물론 공짜는 아니다. 그리고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거다. 일단 가서 밤마다 보고서 쓴다. 그래놓고 안쓰고 놀잖아

4.2.3 그 외 특성화 프로그램

2015년에 발명 아카데미, 영상 아카데미가 신설되었다. 발명 아카데미를 개설한 선생님에 의하면, 과학 아카데미를 하기에는 성적이 좀 부족한[23] 학생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로봇 아카데미는 로봇 관련 특성화 프로그램인데, 2015년부터는 3D 프린터며 레이저 커터기까지 들여와서 직접 로봇을 설계하고 있다. 국제로봇대회에 나가서 대상을 받은 영향일지도... 단점이라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어서, 로봇 관련 진로를 희망하고 있는 학생이 아니라면 지원을 안 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광운대 로봇학과에 진학한다고 한다. 영어 디베이트는 영국식 의회토론반인데, 이것 역시 상문고등학교만의 유니크한 활동이다. 영어 디베이트의 적극적인 홍보 활동에 낚여서 많은 신입생들이 영어 디베이트를 신청한다, 물론 그 중 상당수는 2학년때 접는다. 그러나 영어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다면 하는게 좋을 수도 있다, 그 자체로 생활 기록부에 넣을 내용이 생기기 때문에... 또 의외로 영어 디베이트를 즐기는 학생들도 있기에 영어에 관심이 있다면 생활 기록부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하는게 좋다. 2015년부터 영어 디베이트반은 영국에 간다고 한다. 7박 8일로 물론 유료이며, 비용이 다른 아카데미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5 학교 시설

5.1 급식 및 매점 시설

  • 급식 정책이 시행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1999년 1학기 초중반 까지 신관(성실관) 동쪽 반지하층에 분식코너가 있어서 라면, 떢볶이, 제육덮밥, 순두부찌개 등을 사먹을 수 있었다. 이용시간은 쉬는시간과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후 저녁 이전까지 가능했기에, 이곳에서 가까운 학급의 학생들은 오전 쉬는시간 타이밍을 이용해 허기를 채우기도 했고 점심을 여기서 떼우는 학생들도 많았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던 곳이었다. 가격은 1999년 기준으로 라면, 떢볶이가 1000원, 제육덮밥, 순두부찌개가 2000원이었다. 식사용 메뉴인 제육덮밥과 순두부찌개의 경우 반찬은 김치 딸랑 하나였고 양도 그렇게 많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나오는 속도도 빠르고 가성비도 좋았던 편. 라면의 경우 우리가 집에서 끓여먹는 방식과는 달리 사리면 삶은거에 진라면 스프로 준비해 놓은 국물에 계란 적당히 풀어 담궈주는 형태라 맛이 좀 다르기도 했다.
  • 1999년 1학기 중후반 부터 급식이 시작되었으며, 오늘날과 같이 식당이 별도로 구비되지 않았던 대신 과거 분식코너가 급식 조리실로 개조되었고, 조리원들이 반찬을 식판에다 미리 배식하여 보온카트에 넣어놓고 각 학급에 배부해 놓으면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각자의 식판을 꺼내 국만 퍼서 교실에서 먹는 형식이었다. 상문고 비리재단 반대시위가 다시 터졌던 2000~01년에는 급식의 질이 급작스레 향상된 적이 있었다하지만 오징어 양식장인 세화고는 더 맛이 없다.고 하는데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이때가 질이 좋다고 부러워 하는 수준이면 대체 밥을 먹을 수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미리 반찬을 놓기 때문에 양에 있어서도 부족한데다 정량배식으로 미리 다 세팅 해 놓고 추가 배식도 어려웠고, 배식을 바로 받고 먹는 형태가 아니라 점심시간에 맞추어 미리 배식 준비해 놓은 식판을 30분~1시간 묵혀놓았다가 먹는 방식이다 보니 반찬이 말라 비틀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학교 게시판의 유례없는 활성화와 더불어 급식에 대한 성토가 게시판에 폭발적으로 올라왔고, 그러한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급식이 개선되어 지급되었다. 특히 급식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중앙 화물 엘레베이터 앞 추가 급식 장소에서 돈까스를 10~15장씩 쌓아서 받아가거나그래놓고 남긴다, 육개장이 나오는 날은 국을 담는 통의 2/3이 건더기로 가득 차 있는 일도 벌어지곤 했었다.이런 날은 국을 떠주는 학생은 팔이 떨어져 나간다. 다만, 당시의 학생들은 이러한 급식 질의 향상이, 학교사태 당시 두 파벌로 나뉘어 학생들의 환심을 사려는 교사들이 급식 배급처에 요구하여 이뤄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주고받곤 했었다. 실제 당시 급식뿐만 아니라 머리 길이가 짧기로 악명 높은 상문고에서 15cm 이상 허용되는가 하면, 교복 상의 내에 자유로운 복장이 허용되었고, 심지어는 반지나 목걸이까지도 허용되었었기에, 학생들 사이에서 그런 추측이 오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사태 해소 후 2년만에 말끔히 원상복귀
  • 이후 2008년에 지혜관 뒷편에 학생식당인 우면관이 준공되어 비교적 깔끔한 환경에서 점심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건물이 지어지는 동안 소음과 먼지로 고3들은... 창문도 열기 힘드니 여름엔 개고생을 했었다.사립인데 에어컨 좀 틀어주지급식실을 다 짓고 끝났나 싶었는데 강당공사.기술과목은 실습을 제대로 했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맛없는건 마찬가지 인듯. 2015년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영양사 해고 등 강경책을 사용했으나 크게 다를바 없이 맛없다. 덕분에 매점은 성행한다. 급식과 반대로 매점에서 파는 간식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서 학생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빵, 아이스크림, 과자 종류가 많은데 빵, 과자 종류는 시중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치아바타
  • 매점은 과거 구관(지혜관) 뒷편 주차장 한켠에 콘테이너 박스를 설치하여 카운터 창구를 통해 주문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는데, 급식 시스템으로 전환되고 분식코너가 없어지면서 이곳에서 전자렌지로 데운 햄버거 등으로 오전 쉬는시간에 허기를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편의점을 유치하여 2012년 까지 운영되었는데 이때 도둑질이 매우 성행하여 그 다음 해부터는 매점 아주머니가 카운터를 지키고 그 뒤에 진열대가 있으며 학생들이 주문하는 것을 가져다 주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매점에 들렀다가 수업 시간에 늦는 경우가 허다하고, 휴식 시간마다 매점은 사람들로 꽉 차있다. 영원히 고통받는 지혜관 4층 학생들 3,4교시에는 안 데우고 먹을 수 있는 거를 사는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 참고로 매점은 아침등교시간~2교시 쉬는시간까지가 최적이다. 매점죽돌이들은 이를 참고하는게 좋을듯. 그리고 우면관 증축공사로 매점이 급식실 위층으로 이동하게된다. 성실관 학생들은 개꿀ㅇㅈ?

5.2 야간 자율학습실

야간 자율학습실로 청운재가 있다. FC청운재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시험전날까지 축구하러 나가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애초에 이 지역이 강제로 야간 자율학습을 시키는 지역이 아니어서[24] 신청한 학생에 한하여 야간 자율학습을 실행한다. 최근 청운재 실내 디자인을 리모델링하였는데, 각 책상마다 LED 조명이 생기고, 의자가 전부 바뀌는 등 시설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오오 LED 오오 새 의자
단 요즘은 신청한 시간을 따져서 신청한 시간이 긴 학생을 기준으로 뽑는다. 그래서 고3이 야간자율학습을 하고싶어도 못하는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신 출석률이 저조한 학생은 출석 정지학생으로 바꾸고 다음분기 신청 불가학생으로 낙인이 찍힌다.

6 학교 생활

6.1 주요 행사

추가하시려면 "행사명 : 개최시기"로 추가해주시고 부가적인 설명을 적어주세요.

6.2 동아리

동아리는, 수학 영재들의 상당수가 들어있는 필수 코스인 시그마가 유명하다. 수학이 매우 매우 매우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학교 답게 거의 서울대 준비반 수준의 동아리를 운영 중이다. 시그마 정원이 15명인데, 그중 12명이 SKY에 간다고 한다.[25] 다른 동아리가 신청만 하면 바로 가입이 되는 반면에 (물론 면접도 보고 테스트를 보는 동아리도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냥 가입된다.) 시그마는 따로 시험과 면접 과정을 거친 학생만을 선발한다. 이 시험도 안습이라서 방과 후인 오후 3시에 시작했는데 다 풀고 나와서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였다 카더라... 중도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맘 편하게 시험을 보러가도 상관없다. 간식도 준다.

2016년부터 동아리 개수를 줄이는 개혁(?)을 진행한다. 진로와 관련없는 동아리들은 모두 폐부한다는 방침.(상문고의 유서깊은 동아리인 농구부(NGB) Nude Gay Bar이 아니라 Nong Goo Boo 의 약자이다. 를 포함한 여러동아리가 무자비하게 폐부되었다.) 덕분에 동아리 개수가 절반 가까이 줄은 듯 하다.그리고 살아남은 동아리들은 확 늘어난 인원수로 인해 헬게이트를 맞이했다.

6.3 두발 규정

현재는 두발은 파마나 염색, 투블럭, 지나치게 긴 머리(포니테일이라던지) 등등을 빼면 딱히 규제하지 않는다(입학식 때 말해준다). 상문고 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학생들은 두발 규정은 걱정하지 말자. 그러나 과거에는 중대가리로 악명 높던 학교였다. 진짜 삭발은 아니고 앞과 윗 머리 3cm의 두발 규정이 엄격했는데, 교문 앞에서 학주가 배드민턴 채로 머리를 눌러 삐져나오는 머리는 죄다 잘랐다는 전설이 있다.[26] 때문에 당시 이발소가 2개였는데, 하나는 문방구 건물 지하, 하나는 오락실 건물 1층. 이중 오락실 건물 1층 이발소는 신관 뒤 패널 가건물로 2,000원짜리 교내 이발소 운영을 했는데, 3,000원 하던 이발비보다 1,000원이나 저렴했지만 거의 시장 독과점을 형성했기 때문에 손해는 아니었던 듯. 다만 이 이발소는 2년 정도만 운영되고 폐쇄. 이런 이미지가 한동안 박혀있어서 당시 두발 규정으로 치를 떨던 졸업생들은 두발 자유화가 된 줄도 모르고 머리 긴 상문 고교생을 보고 후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니 왜 저 사람은 상문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지?' 라고 생각했다고.

교복과 관련된 복장 규정에 대해서는 교복 문단 참조.

7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7.1 버스 노선

7.1.1 상문고등학교.수표교교회

정문 앞의 명달로 상에 위치한 정류장으로 정문으로 바로 접근 가능함

7.1.2 삼환아파트

명달로 상의 정류장으로 정문 기준으로 부터 우면산 쪽으로 올라간 지점에 위치해 있으나 학생식당 뒷쪽 남문으로 접근 가능하여, 정문이나 후문으로 접근시 등반이 필요한 성실관 학급 학생들에게 유리함.

7.1.3 서울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 인근 효령로 상에 위치, 도보로 5분 이내에 정문 접근 가능함. 간선도로인 효령로에 위치하고 연결 노선도 풍부한 만큼 전통적으로 상문고 학생들의 등하교길에서 이용비중이 가장 높은 정류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류장 이름값 때문인지 등하교길에 서울고 학생들과의 인파싸움으로 다소 에너지 소모도 있고, 서울고 사거리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것 때문에 정문까지의 실제 도보시간은 늘어날 수도 있다. 이게 싫은 나머지 파출소 앞 명달로 상에서 무단횡단을 하다 경찰 아저씨들한테 적발되기도 한다(...)

7.1.4 서울고 사거리

서울고 사거리 북쪽 건너편 명달로 상에 위치, 도보로 5분 이내에 정문으로 접근 가능함.

7.1.5 신동아아파트앞

학교 인근 방배 신동아아파트 단지 앞 효령로 상에 위치, 정문까지 내려 갈 필요 없이 지혜관쪽 후문으로 접근 가능하기에 효령로에서 동쪽 방향으로의 버스 노선으로 등하교시에 서울고등학교 및 상문고등학교 정류장 대비 동선이 짧아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후문에서 정류장까지 가는 길목이 신동아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공사로 인해 좀 위험한 편이다.

7.2 철도

8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9 사건·사고

10 기타

  • 리그베다위키보다 더 이전인 엔하위키 시절에는 고등학교 항목이 작성되었다가 저명성 문제 때문에 토론 후 모두 삭제되고 작성이 금지된 적이 있었다. 이때 주류 언론에 보도된 학교는 작성이 가능하다는 예외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항목이었다. 그후 위 비리사건만 다루자는 토론에 의해 다른 것은 모두 삭제되고 비리사건에 관련된 문서만 남아 있다가 나무위키로 넘어오면서 고등학교 이하 학교 항목 작성금지가 해금되면서 다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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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머드팩 체험 오른쪽 얘는 정신줄을 놓은 것 같다

  •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이 학교 특정학년 전교생들이 강원도 양구군 소재 육군 제21보병사단으로 병영캠프라고 쓰고 군대체험에 끌려가는 전통으로 악명이 높았다. 1995년 당시 상문고 교장과 21사단 사단장이 형제 지간이어서 해당 전통이 시작된 것. 자세한 내용은 이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병영캠프를 담당하는 육군 제21보병사단 항목 참조. 다만, 특정 년도의 2학년들은 북한에 다녀오기도 했다. 정확히는 금강산으로 수련회를 간 것. 과거에는 2학년 전교생이 다녀왔으나, 2001년 비리재단 복귀 사태 당시 재학생 및 신입생들의 대량 전학 및 입학거부 사태로 인원수급에 문제가 있었는지 2000년대 부터 1학년 전교생이 다녀오는 것으로 변경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2013년 10월에 자매결연 군부대 강제 위문금과, 표창장 남발 문제로 인해 뉴스에 고발 성격으로 보도되어 결국 2014학년도 부터 공식 폐지되었고 새로운 교육방향에 맞추어 진로탐색 등의 교육프로그램으로 개편되면서 이런 악명도 추억으로 사라질 듯.그리고 2016년 기준 1학년 학생들은 수련회로 선비체험을 간다. 씹선비가 되어서 돌아오는건가
  • 초대 교장인 상춘식이 졸업생들의 비리사실 폭로 및 시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동문회 운영 자체를 억압했기 때문에[32] 졸업생들의 아웃풋과 인맥 파워에 걸맞지 않게 학교와 연계된 공식 동문회 조직이 현재까지도 무척이나 약하다.[33] 특히 2001년 신입생들의 대량 전학신청으로 당시 1학년의 입학생 수가 80%씩이나 급감하여, 2001년 입학생을 기점으로 전후로 입학한 동문들간의 연결고리가 희박하다고도 한다.[34]
  • 이웃하는 서울고등학교와는 과거의 명문-평준화 크리를 맞은 미묘한 라이벌 관계로서 서로 '우리 학교가 더 잘나간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돌고 있는 소문에 의하면 두 학교는 단지 횡단보도 2개만을 사이에 둘 정도로 가까워서, 두 학교 학생일진들이 횡단보도 양측에 서있게 되는 상황에서 파란등만 켜지면 우발적으로 싸움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 때문에 두 학교 사이에 파출소[35]가 생겼다는 것. 믿거나 말거나
  • 하지만 최근에는 평준화로 인해 거주지 우선으로 학교가 배정되는 경우가 많은지라, 학생들 개개인을 놓고 본다면 상문고 학생들과 서울고 학생들은 같은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나온 친구관계이기 때문에 개인끼리는 실제로 매우 친하거나 별로 라이벌 의식도(사실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36].
  • 하시현의 만화 코믹에서도 이 학교가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인근 서문여고와 합병(!!!)해버렸다는 설정이 덧붙었다. 물론 현실의 상문고는 서문여고와 합병하지 않았다...했다면???.............. 사실 합병까지는 아니었지만, 실제로 상문고는 인근의 특정 여자고등학교와 전통적으로 깊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학교의 지리적 환경을 잘 아는 이라면 상문고에서 가까운 여고인 동덕여자고등학교나 서문여자고등학교를 떠올리겠지만, 의외로 상문고에서 꽤 떨어져 있는 도곡동 뱅뱅사거리 인근에 위치한 은광여자고등학교다. 강남 지역 개발이 이루어지기 이전인 1970년대 초에 이들 두 학교는 서울 강남 벌판에 얼마 없었던 고등학교들이었고, 특히 1973년 11월 은광고가 여고로 전환되기까지 하면서 해당 지역의 남학생 다수가 상문고로 진학하게 되었다. 또한 당시 시내버스 노선 78번 버스가 상문고와 은광여고를 경유했는데, 당시에는 강남지역이 개발이 안된 벌판이었기에 기본적으로 학교들이 얼마 없었고 당연히 지역을 다니는 노선버스 또한 드문데다, 결정적으로 두 학교를 거치는 버스의 노선 영향 때문에 두 학교의 학생들은 공교롭게 버스에서 함께 통학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게다가 두 학교 다 남녀공학이 아닌 남학교와 여학교라는 특수성이 학창시절의 유대감 형성에 기폭제가 되어 지금까지 그 전통이 남아있는 듯 하다.[37][38] 요즘은 강남지역이 부도심급으로 엄청난 인프라를 가지고 있기에 인근 학교들도 많고, 고등학교 배정 또한 거주지 위주로 하거나 지망배정 등으로 바뀐 최근에는 두 학교의 재학생들간의 유대감이나 교류는 예전보다 못하긴 하지만, 동문회는 지금까지도 그 전통을 이어서 각 학교 이름의 머릿글자를 딴 '상은회'라는 이름으로 두 학교의 동문들이 통합하여 동문회를 조직/운영하는 경우가 많고,[39] 이 '상은회'에서는 서로 상대 학교의 선후배도 직속 선후배로서 인정해 줄 정도로 유대감이 꽤 깊다고 한다. 그런데 언론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은광여자고등학교도 한 때 학내 비리로 인해 이사장이 수 차례나 바뀌었다. 상문고등학교처럼 이사진의 완전 교체와 학교 정상화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난것이 천만 다행일 따름.
  •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까지 야구부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한화이글스 감독을 역임한 김인식이 감독이었고, 선수 시절 MBC 청룡,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뛰었고 은퇴 후 여러 프로 팀의 투수코치를 지냈던 김봉근(현 KT 위즈 투수코치), 한국프로야구 영구결번 1호인 김영신 등 2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 2015년 3월 1일 제12대 김창동(金昌東)교장[40] 이 취임한 뒤로 에어컨을 아주 잘 틀어준다! 히터도 잘 틀어준다!

10.1 영화 모티브로 등장

  • 말죽거리 잔혹사 - 유하 감독 본인이 직접 모교인 상문고시절을 다뤘다고 언급. 정문고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 두사부일체 - 상춘고라는 이름으로 거의 동일한 사학비리를 다룸. 이사장 이름도 상춘만
참고로 두사부일체의 주연 정준호는 비슷한 사학비리를 다룬 영화 공공의 적2에서는 비리재단 명선재단의 이사장으로 나온다. 사학비리 전문배우
  •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쌍문고등학교와는 관계없다. 거기는 쌍문동, 상문고등학교는 방배동이다. 심지어 상문고는 강남, 쌍문고는 강북에 위치해 있다. 헷갈리지 말자. 혹여나 교복을 보고 상문고등학교인가 흠칫흠칫 하기도 하는데, 전술한 것과 같이 상문고는 1980년대 초반 교복 자율화 정책에 의거하여 교복을 폐지하고 난 후 중대가리 두발규정으로 아무 소용도 없었던자율복 정책을 오랫동안 고수하다가 비리사태가 터지고 상춘식이 구속되고 난 뒤인1995년이 되어서야 현재의 교복이 도입되었기에 주인공들이 1980년대 후반기에 고교시절을 보내는 드라마 시대배경을 감안하면 교복 자체도 전혀 관계없음을 알 수 있다.
  1. 재단에서 벌어진 사건이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게다가 사립.
  2. 상춘식 교장의 아버지. 하지만 이 사람은 학교를 실질적으로 설립하고 운영하는 주체인 상씨 문중을 대표하는 차원(설립당시 항렬이 가장 높았기 때문)에서 이사장으로 선임된 것이지, 개인의 사재출연으로 재단을 세워 이사장이 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상춘식은 자신의 아버지가 학교를 직접 설립한 것처럼 조작하여 아들인 자신 쪽으로 재단의 소유 및 운영권을 가지게 끔 만들었으며 1979년 상헌 전 이사장이 사망 후 상춘식이 학교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3. 1973년 영등포구에서 강남구로 분구, 1988년 서초구로 분구, 1990년대 초 방배동으로 편입.
  4. 상춘식 교장의 부인. 2010년 8월 17일에 사망하였다.
  5. 상춘식 교장시절 교감으로 있었던 인물. 1994년 교사들의 양심선언으로 촉발된 검찰 조사에서 성적 조작 혐의가 드러나 징역살이까지 했었다.
  6. 대구가톨릭대학교 화훼원예학과 명예교수, 상씨 문중으로 학교재단 운영 및 소유권이 정상 회복되고 난 후에 최초로 선임된 이사장으로, 4년 임기 동안 학교 내실을 다지는데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등 교육자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7. 참고로 당시 8학군 일반 고등학교들 중에 교복 자율화에 있어 상문고와 같은 사정이던 학교가 하나 더 있었는데, 다름아닌 휘문고등학교로 2000년대 초반까지 교복자율화 정책을 유지했다.
  8. 이전 항목에는 1994년도 2학기부터로 되어 있었으나, 채택 절차가 1994년도 2학기에 진행된 것이다.
  9. 사실 이것 때문에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교복이라는 루머도 있었다. 물론 루머는 루머일 뿐 앙드레 김이 디자인하지 않았다.
  10. 위에 나오는 공식 학교 로고와는 판이하게 다른 형태로, 상문의 영문 알파벳 약자인 SM을 형상화하였다.
  11. 거기에 어두운 갈색 색상의 재킷 단추는 상문의 한자인 '尙文'을 금색 문자로 각인하여 디자인 했다.
  12. 여러가지 모델중에 학생들이 투표로 직접 선택하였다.
  13.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 시점이, 상문고 비리재단 복귀 시도와 맞물려 교사들이 소위 상미교와 상대위로 나뉘어 대립을 벌이던 시기이다. 이 시기 짧기로 악명 높던 두발에 대한 규정이 크게 완화되어 15cm이상까지 허용되는가 하면, 교복 내에 착용하는 상의는 자율복장이 허용되었고, 심지어 귀걸이나 팔찌 등의 장신구를 착용하고 등교해도 별다른 제재나 언급을 하지 않기도 했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로 나뉘어 대립하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환심을 사서 자신들을 지지하도록 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거나 학생들이 싫어하는 규정을 완화시키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14. 과거에는 학년당 20학급, 학생수 1000명 이상이었다. 현재는 많이 줄어든 것.
  15. 반포고, 서초고, 양재고, 언남고 등 서초구는 어느 지역보다 남녀공학이 많은 편이다.
  16. 2013년 부로 우면동으로 이전하면서 배정이 어려워졌다.
  17. 학년당 학생수가 적지 않았던 것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진학률을 보인 것 또한 사실이다.
  18. 당시 입시전문기관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대원외고, 서울과학고 등 탑클래스 특목고의 경우 100명 이상씩 보냈고, 상문고는 같은 8학군 일반고였던 휘문고, 서울고 등과 비슷한 수준의 아웃풋을 내며 최우수 그룹에 들기도 했다.
  19. 이 당시 학교사태를 가장 오랫동안 경험했던 2002년 졸업생들의 경우 주변의 심각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에 20명 가까이 진학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0. 2001년 입학생들의 경우 가히 최악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당시 입학생들의 80%가 학교사태로 인해 전학을 가버렸기 때문으로, 기본적으로 재학 인원도 상당히 적었던데다 당시 모 교사의 언급에 의하면 전학 안가고 남은 학생들 중에 최상위권 학생들이 별로 없었다는 후문이다.
  21. 인문 아카데미는 인캠, 과학 아카데미는 과캠으로 부른다. 정작 로봇 아카데미는 로캠이라고 안부른다.
  22. 이과 학생들도 지원하는 영어 디베이트와 달리, 이쪽은 거의 전부 문과이다.
  23. 과학 아카데미는 주로 1~2등급
  24. 하지만 적어도 90년대초까지는 야간자율학습이 반강제로 이루어졌었다. 왜 반강제냐면 자율로 신청한 학생이 일정 수준에 미달했다 싶으면 담임교사가 나머지 인원을 강제로 야간자율학습 참여인원으로 지정했기 때문.
  25. 다만 모두가 최상위권 학생인 것은 아니다.
  26. 때문에 비리 같은건 잘 모르던 학생들은 중학교 3학년 때 상문 배정이라는 발표가 나오면 나라 잃은 듯 학교혹은 서울고나 휘문고 배정받은 친구에 분노를 표출하거나 망연자실 앞날을 걱정하곤 했다.
  27. 1학년 재학 중에 한인고(現 경기자동차과학고등학교)로 전학.
  28. 특히, 상문고를 모티브로 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29. 1학년 재학 중에 미국유학으로 자퇴함. 배우 이종혁과 입학시기가 같아 상문고 동문인 것처럼 언론에서 소개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학창시절에는 누군지도 몰랐다고(...)
  30. 말죽거리 잔혹사의 선도부.
  31. 1학년 재학 중에 안양예술고등학교로 전학.
  32. 게다가 학교 자체가 흑역사 급의 분위기다 보니 이 학교 출신 사람들이 학교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언급하는 거 자체부터 꺼리는 풍조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33. 다만 후술할 상은회의 경우 상당히 잘 운영되었던 편.
  34. 상문고를 다닌 위키러로서 적자면 상문고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시피하고 선생님들을 찾아오는 학생들의 수도 굉장히 적다.또한 매번 운동회가 열릴 때마다 자신을 찾아오는 제자가 없다고 불평불만 하는 선생님들이 굉장히많다...
  35. 등교시간에 이 파출소 앞 부근에서 상문고 학생들이 무단횡단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지라, 이 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이 가끔씩 아침에 단속을 하기도 한다.고등학생들 중에 나이가 안되어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경우도 있는지라 벌금딱지까지 끊기는 좀 거시기한지 현장에서 그냥 야단만 좀 쳐주고 훈방 조치 하거나, 좀 심하면 적발자 명단을 적어다가 학교 학생주임에게 전달해 주는 듯...
  36. 사족을 붙이자면 사실 대부분의 상문고 입학생들은 서울고를 1지망으로 쓴 학생들이 많다.하지만 서울고에 다들 1지망을 넣다보니 2지망에 상문을 적거나 상문고에 뽑혀가는 지역에 있는 학생들이 가게 되는것...
  37.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이 부분을 잘 고증해 주고 있는데, 1978년 상문고(정문고) 2학년 권상우는 은광여고(은명여고) 3학년 한가인과 버스에서 첫눈에 반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두 사람의 인연외에도 실제 버스 내의 풍경을 보면, 상문고 학생과 은광여고 학생들간에 '통학'이라는 일상생활 속에서 두 학교 재학생간의 자연스런 접촉의 기회가 많았을 수 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38. 인근에 위치한 서울고, 동덕여고(이쪽은 직접 연결되는 버스 노선이 있기는 하다) 등은 원래 강북지역에 교정을 두고 있다가 정부의 강남개발 정책으로 80년대에 강남으로 완전히 이전한 케이스라 전혀 관계없고, 서문여고는 상문고와 거의 같은 시기에 개교한 학교였지만, 강남이나 말죽거리 지역의 학생들 보다는 방배, 반포 지역의 학생들이 주류였고,현재는 오히려 방배, 반포 지역 학생들이 주류라는 점이 아이러니 은광여고와 달리 단일 버스노선으로 상문고와 직접 연결되지 않아 유대감이 없었던 듯 하다.
  39. 심지어 LA에도 있다 카더라(...)
  40. 양정고등학교(서울) 前 교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