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러토가

1 미국의 지명

뉴욕 주에 위치한 마을. 원주민 토착어로는 '언덕 옆 샘'이라는 뜻으로 2000년 기준으로 인구가 5,141명인 큰 마을은 아니지만 독립 전쟁 당시에 영국군과의 격전이 있던 곳이기에 유명하고, 이를 기려 아래 항목의 항모 이름을 명명했다.

2 렉싱턴급 항공모함 2번함 CV-3 새러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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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원



* 전장 : 270.7m
* 전폭 : 32.31m
* 흘수선 : 7.39m
* 기준배수량 : 36,000톤
* 만재배수량 : 43,055톤 1942년 이후 49,552 톤
* 기관출력 : 180,000마력
* 최대속력 : 33.2kt, 과부하로 218,000마력 상태시 35.6노트
* 함재기 수 : 78기
* 승무원 : 2,791명
* 항속거리 : 10노트로 10,000 해리
* 자매함 : CV-2 렉싱턴

2.2 개요

엔터프라이즈의 그늘에 가려진 수훈함.

애칭은 시스터 세라(Sister sara)

렉싱턴급 2번함이자 미 해군의 5번째 새러토가인 CV-3 새러토가는 미국이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보유한 항모 7척중 마지막까지도 살아남은 세척의 항공모함중 한척이다.

본디 새러토가는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3번함으로 건조되고 있었다. 그러나...

2.2.1 생애

새러토가는 워싱턴 조약에 따라 전함 보유량에 제한이 걸리면서 항공모함으로 함급이 변경되고, 1927년 11월 16일에 항공모함으로써 취역하게 된다.

취역 후엔 28년 1월 6일에 필라델피아에서 함재기를 탑재, 1월 27일엔 태평양으로 향한다. 이후 병력을 수송하고 함대에 합류하여 훈련 등에 참여하다가 41년 1월 6일 브레마톤으로 돌아온 후 하와이로 수회를 왕복한다.

그리고 진주만 공습 당일날, 새러토가는 샌디에이고 해군기지에서 정비중이라 공습을 피한다. 하지만 그때 태평양에 항모라곤 두척뿐이었기에 급히 태평양에 투입되어 웨이크 섬으로 향하나 웨이크 섬이 함락된 것을 알고 도로 회항. 42년 1월 12일엔 엔터프라이즈와 합류를 위해 하와이에서 출항하나 일본 잠수함 'I-6'의 공격을 받아 도로 수리를 위해 브레마톤으로 돌아간다. 이때 처음으로 장비를 바꾸는 몸단장을 한다.

한편 그동안 새러토가의 항공대는 요크타운에 탑재되어 미드웨이 해전에서 활약하게 된다.[1]

2.2.1.1 태평양 전쟁

호넷이 항공대 훈련을 위해 이탈한 이후 새러토가와 와스프가 전열에 참여하게 된다. 7월 7일 새러토가는 진주만을 출항해 피지에 도착, 그리고 8월에 드디어 첫 전투인 과달카날 전투에 참여한다. 8월 24일, 새러토가는 동부 솔로몬 해전(2차 솔로몬 해전)에서 일본의 항모 류조를 격침시키나 8월31일, 초계항해 중 일본 잠수함 'I-26'의 뇌격을 받고 항행불능 상태가 되어 퇴각하고 6일간의 응급수리 이후 진주만으로 끌려간다.[2]

한편 그 사이 와스프와 호넷이 줄줄이 격침되고 엔터프라이즈가 중파 당해 태평양에 투입된 미 항모 6척이 전부 증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지만 진주만에 끌려간 새러토가와 달리 엔터프라이즈는 그 긴급수리 이후 도로 전투에 투입되고, 이 결정이 두 배의 운명을 가른다.

1943년 1월, 남태평양 전선에 복귀한 새러토가는 엔터프라이즈가 대규모 오버홀을 위해 전선에서 빠진 동안 태평양에서 유일한 미해군 정규 항모로서 영국에서 대여한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빅토리어스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였고 11월달에는 라바울 공습에 참여한다. 그 후 11월 말 전열에서 이탈. 대공무기를 증강시킨다. 1944년 3월에 인도양으로 가 영국 항모 부대와 함께 일본군이 점령한 항구를 폭격하기도 했고 이후 신규 비행대 훈련과 야간 항공 훈련에 종사하다가 이오지마 전투에 참여 카미카제의 공격을 받아 대파당하고 만다.

2.2.1.2 전후

하지만 새러토가 역시 만만한 항공모함은 아니었다. 카미카제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지만 침몰 하지 않고 본토로 돌아가 개장 및 수리를 받았고 1945년 5월에 수리를 완료하고 복귀한 새러토가는 훈련항모로서 종전까지 종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종전 이후였다.

종전 이후 새러토가는 너무 구식이 되었기에 예비함으로써의 보관도 생각지도 않았고, 기념함으로 남기자는 말도 있었지만 예산크리로 결국 포기.

그리고 46년 비키니에서 행해진 핵실험의 대상으로 선정되어 그 최후를 마친다.

2.2.2 기타

사실 새러토가가 어뢰에 당한 이후 선택을 달리했다면 엔터프라이즈의 위치를 대신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결국 새러토가 역시 전쟁 이후까지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엔터프라이즈만큼의 인지도를 가지지 못했다.

그래도 가장 많은 함재기를 이착함시킨[3] 항모라는 기록도 있고, 미국의 실질적인 두번째 항모라는 점에서도 새러토가는 나름의 할 몫은 충분히 해낸 항공모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저 엔터가 할 몫 이상을 했을 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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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비행선도 착륙시킨 적 있다. 뭐야저거 해당 비행선의 이름은 사진에도 나와있듯이 로스 엔젤레스 호. 다른 사진들 사진제목이 세라쨩_갑판이다

레인저가 대서양에서 주로 활동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러 훈장을 타기도 했는데 새러토가는 훈장 숫자에 면에서 밀려 콩라인이 되버렸다. 그렇다고 짬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기에 엔터프라이즈와 함께 야간작전에도 투입되곤 했다.

CV-3이고, 렉싱턴급 2번함이긴 하나 태생이 순양전함인걸 개조했기 때문에 놀랍게도 진수일과 취역일은 새러토가가 앞선다. 첫 항공모함이 그냥 석탄 나르는 배에 비행갑판만 씌웠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새러토가는 미국의 첫 항공모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걸 핵실험에 갈아넣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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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포레스탈(CV-59)과 함께 방치 중인 새러토가(CV-60)

이후 포레스탈급 2번함으로 새러토가가 새로이 건조되었으나 또 2번함이야 이후 하나둘 후계함들이 등장하며 퇴역하게 되었다. 이 새러토가는 본래 해군박물관으로 개조될 예정이었으나 예산 부족으로 취소, 해체 되기를 기다리며 방치 된 상태로 녹슬고 있는 중이었고[5] 결국 해당 새러토가도 팔려 스크랩으로 처분되는 운명을 맞았다. 매각가는 단돈 1센트. 1센트에 팔린 새러토가저걸 사왔어야한다. 함재기는 어디서 구하지?

2.3 외부 링크

NavSource Online : Aircraft Carrier Photo Archive USS SARATOGA(CV-3)

Kamikaze Damage to US and British Carriers
  1. 당시 일본군은 미드웨이는 기습작전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5 항공전대에게 함재기를 보충할 시간을 주지 않고 다른 두 항공전대를 데리고 미드웨이로 향했다.
  2. 이 피격때 프랭크 플레처 제독이 부상을 당해 지휘권을 놓게 된다. 기함 세대째를 잃을 수 없다는 의지로 발동된 아스트랄 가드
  3. 98,549기의 항공기가 새러토가를 거쳐갔다. 어느정도인지 감이 안 온다면 전쟁 기간동안 일본이 생산한 모든 제로센의 합이 1만이 조금 넘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입이 떡 벌어지는 수량.
  4. 실제로 엔터프라이즈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임에도 그 후계함인 에식스급 항공모함보다 더 험한 임무에도 투입됐다.
  5. http://www.npr.org/2012/07/25/156732936/when-the-ship-comes-in-to-brownsville-rip-it-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