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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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8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념하고, 인류화합과 세계평화 정신을 승화·발전시키고,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민족의 평화를 실현한다는 취지로 1990년 제정되었다. 주최 및 시상은 서울올림픽 잉여금 가운데 100억 원을 출연해 설립된 서울평화상문화재단이 맡고 있다. 수상 대상은 국가·인종·종교·이념을 초월해 전 세계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인류화합과 세계평화에 크게 이바지한 개인 또는 단체이다.

시상식은 격년제로서, 해당 연도의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열린다. 수상자 선정은 시상식 1년 전에 각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인사 1,000여 명의 추천을 받아 시상식 3개월 전까지 추천서를 접수한다. 이어 추천서를 접수한 서울평화상위원회는 추천된 후보자에 대한 조사내용과 공적사항을 등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심사하여 몇 명의 최종 후보자를 선정하고, 다시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한다.

수상자에게는 상장 및 상패 외에 부상으로 미화 20만 달러를 수여한다[1]. 단일 부문의 상으로는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노벨상, 일본국제상 다음으로 상금 규모가 크다.

한국의 유일한 국제평화상으로서 수도 서울의 이름을 내걸었다는 점에서 나름 한국을 대표하는 상이지만, 초기에는 거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올림픽 관련 인사들에게 상을 수여했기 때문에 매우 까였다. 그러나 점점 제대로 된 사람들에게 상을 주면서 나름대로 권위를 세워가는 중.하지만 여길 진행하는 재단 측 관계자가 막장으로 전설이 된 인물인지라...

2 여담

보자면 1, 2회는 좀 막장이었지만 나머지는 정상이다. 북한 관련 인사가 많은 것은 주최하는 나라가 북한의 적국이라서가 아니라, 북한 자체가 실로 막장이며 세계 평화에 지대한 위협을 끼치는 괴뢰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마 앞으로도 북한 관련 수상자가 한둘은 더 나올 것이라 생각된다. 그 전에 북한이 망하지 않는다면.

짝수해 시상이 원칙이지만 1994년이 빠져있다. 1993년 김영삼 정권 출범이후 권위도 없고 수상자 선정도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상이 필요하냐는 비판으로 폐지위기에 몰렸다. 계속해봐야 국제 망신이라는 폐지론과 우리도 이런 거 하나쯤 있어야 된다는 옹호론이 맞서다가 결국 1996년 재개된다. 3회부터 비교적 제대로 된 인물들에게 상을 주기 시작한 게 이런 배경이 있다.

물론 해가 지나가면서 점차 수상자가 반공반북 인사 일색에서 보편적인 인권운동가나 사회봉사자로 선발되면서 정치색이 조금씩 빠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만큼 여전히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칼럼이라든가.

1996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서울평화상을 시상하는 재단인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의 이사장이 누군지 위에 링크된 홈페이지에 가서 찾아보자. 임화수 참조하면 나오는 이철승이었다. 그밖에 초대 위원장은 전 외무부장관을 지낸 김용식, 2대는 한 술 더 떠서 전 안기부김덕이었다. 그나마 교수출신 외부 인사 언급을 들었지만, 이 사람도 결국은 YS 정부시절의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에 연결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래서 이 상은 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2]
2015년 2월, 이철승 이사장이 94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는데, 후임 이사장은 93세인 권이혁 전 보건사회부 장관이다. 역대 최고령 기관장 취임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

공자평화상보다는 낫기야 하지만... 애시당초 공자평화상은 이건 뭐...

그리고 언론을 찾아봐도 알겠지만 언론에겐 그다지 많이 거론되지 않는 편. 평화상 수상자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철승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봐야할(...) 조중동 같은 언론도 별로 언급을 안한다. 하긴 조폭 동원하여 선거방해하고 정치깡패 짓이나 한 작자이니... 2012년 수상자인 반기문 사무총장이 한국 방문한 것을 몇몇 언론이 보도했지만 반총장이 한국에 온 이유가 이 상 받으러 한국에 왔다고 작게 거론하고 반기문에만 초점을 맞춰 인터뷰 및 보도했을뿐이다. 조중동도 이러다보니 아직도 이런 상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허다하다.

3 수상자 명단

제1회
1990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Juan Antonio Samaranch),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올림픽 조공 1. 서울 올림픽이 분명 냉전기 자본주의-공산주의 진영이 화합하는 대축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무튼 사마란치가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이외에 별달리 한 일이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조공임에는 분명하다.
제2회
1992년
조지 슐츠 (George Pratt Shultz), 미국 국무장관
올림픽 조공 2. 미국의 국무장관으로서 미-소 정상회담을 이끌어나가며 세계평화에 노력하기는 했지만 그보다 KAL기 폭파 사건 이후 서울 올림픽에서의 테러 방지 확약을 받아낸 활약이 더욱 강조되는 기분이 든다. 원래는 평화적 독일 통일을 이룬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에게 수여하기로 했으나, 콜 총리는 시상식을 위해 한국에 참석할 수 있냐는 타진을 받자, 이런 듣보잡 상을 타러 한국에 온다는 것은 국격이 떨어진다고 판단, 그럴 수 없다고 했고, 결국 수상자를 변경했다는 후문이 있다. 콜 총리를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만약에 아프리카의 어떤 국가에서 한국의 대통령에게 듣보잡 상을 수여하고 이 상을 받기 위해 자기나라를 방문해달라고 하면 .. 이런 거면 뭐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닌지?
제3회
1996년
국경 없는 의사회 (MSF)
받을 만한 사람이 받은 것이지만, 이들의 수상은 1995년 북한 수해 당시 비정부단체로서는 유일하게 현장에 투입되어 활약했다는 점이 돋보였기 때문인 듯. 뭐 그게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제4회
1998년
코피 아난 (Kofi Annan), 국제연합 사무총장
1998년 사담 후세인을 방문하여 무기사찰에 동의하게 함으로써 이라크전을 몇 년 늦춘(…) 공로. 뭐 조져부셔조지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전을 일으킬 줄은 그 당시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고, 이런 식으로 평화상 받은 사람은 많다. 이후 2001년노벨평화상도 수상하였다.
제5회
2000년
오가타 사다코(緒方 貞子), 국제연합 난민고등판무관
르완다 난민의 보호를 필두로 하여 수십만의 생명을 살렸다. 수상 당시 탈북난민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결정적인 수상 계기가 된 것으로 추정.
제6회
2002년
옥스팜 (Oxford Community for Famine, 옥스퍼드 기아 커뮤니티), 국제적인 빈민구호단체
이들은 빈민 및 후진국의 자립을 돕는 단체로서 르완다 내전에서 난민 80만명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북한에서도 활동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너무 막장이라 4년만에 철수(....) 그 외에 남아공 에이즈 약값 인하에도 큰 공을 세웠다. 그 밖에도 스타벅스에티오피아 커피원두 헐값 구매를 고발하기도 했다.
제7회
2004년
바츨라프 하벨 (Vaclav Havel), 체코 대통령
체코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자 동유럽의 반공투사. 인권 문제에도 힘썼으며 수상 당해 6월에 워싱턴 포스트에 "북한에 대해 행동할 때"라는 칼럼을 기고하여 북한의 비인도적 정치범 탄압 실태를 고발하면서 "유럽연합과 미국, 일본, 한국 등 세계의 민주국가들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제8회
2006년
무함마드 유누스 (Muhammad Yunus), 그라민은행 설립자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창시자. 이 공로로 그는 같은 해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왠지 노벨평화상 따라가는 분위기가 나지만 사실은 조금 먼저다
제9회
2008년
수잰 숄티 (Suzanne Scholte), 미국 디펜스포럼 회장
북한 인권 문제 전문가. 또한 서사하라의 난민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제10회
2010년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José Antonio Abreu), 빈민 청소년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젝트인 엘 시스테마(El Sistema)의 설립자
베네수엘라의 빈민 청소년들을 관현악 활동을 통해 올바른 길로 이끌어 사회개혁의 새로운 모델을 수립하고 사회통합에 기여.
제11회
2012년
반기문, UN 사무총장
개발도상국의 빈곤 타파를 위한 지원 기금을 확보해 지구촌의 성장과 발전을 주도하고,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국제적인 인식을 높임.
제12회
2014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과거 나치 시절에 대해 끊임없이 참회했다는 점 등이 꼽혔다. #
  1. 이것도 1회와 2회는 30만 달러였다. 1회와 2회 수상자가 누구인지 보자. 이후 폐지 논란을 거치면서 상금도 20만 달러로 줄었다.
  2. 이철승도 수꼴 인사로 욕을 먹었으며 정치깡패을 동원하는 막장짓(김태촌 참고)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걸 회고록에서 조국을 위한 짓이라고 정신승리를 구사하는 짓이나 하던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은폐 의혹 조사를 촉구하는 유가족들에게 빨갱이 드립을 치다가 욕을 거하게 먹었다.) 인물이라 안 그래도 안 좋은 소리 많이 듣는 이 상을 오명을 씌운다는 소리를 듣게하고 있다. 뭐 이철승도 2016년 병사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