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 모리타네


相馬盛胤
1529 ~ 1601

1 개요

일본 전국시대의 다이묘. 소마가 15대 당주. 이름은 13대 당주인 조부 모리타네로부터 따왔다. 아키타네(顕胤)의 아들.

다테가와 혈연관계에 있었지만, 다테 다네무네(伊達稙宗)와 그 아들 하루무네(晴宗) 간의 내분인 덴분의 난(天文の乱)이 벌어지자, 부친인 아키타네와 함께 다네무네 편을 들어 이후 다테가와 사이가 틀어진다. 여기에 아시나(蘆名), 다무라(田村), 이와키(岩城), 사타케(佐竹)가와도 대립하여, 거의 반 세기 가까이 이들과 싸웠다. 특히 영지를 서로 접한 소마 모리타네, 아시나 모리우지(蘆名盛氏), 니카이도 데루유키(二階堂照行), 다무라 다카아키(田村隆顕)는 서로 동맹을 맺고 인척을 맺고 이를 다시 파기하는 등 이합집산을 벌였다.

1549년 부친 아키타네가 사망하자 가독을 계승한다. 같은 해 여동생을 다무라 다카아키의 아들 기요아키(清顕)의 정실로 시집보내 인척 관계를 맺은 후, 다테가와 전쟁을 벌인다. 한때 이구군을 점령하였으나 오랜 전쟁으로 영지는 피폐해지고 가신들이 떠나는 등 소마가는 쇠퇴해간다. 또한 남쪽의 이와키가와도 계속해서 전쟁을 벌여 한때 승기를 잡으나 이후 전선이 고착화되어 결국 양가가 합의하여 경계선을 확정한다.

1578년 장남 요시타네(義胤)에게 가독을 양도하고 은거한다. 1589년 다테 마사무네의 침공을 받는다. 이때 당주인 요시무네는 이와키 쓰네타카와 함께 다무라가를 공격 중이었기 때문에 은거 중이던 모리타네가 전투를 맡았다. 하지만 요시무네의 귀환이 늦어지는 바람에 압도적인 전력의 다테군에게 고마가미네, 아라지, 구사노를 빼앗긴다. 여기에 차남 다카타네(隆胤)가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나섰다가 전사하고 만다. 때문에 가문의 존속을 위해 다테가에 복속하려 했으나 아들 요시무네가 차라리 자결하거나 싸우다 죽자며 반대하자 이에 동조한다. 때문에 같이 죽기 위한 동료들을 모집하자 사무라이, 농민등 2천여명이 참가했다. 하지만 이듬해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와라 정벌에 나섰고 다테가의 침공이 중단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이후 소마가는 히데요시로부터 영지를 그대로 안도받는다. 세키가하라 합전이 발발하자 중립을 지켰으며 1601년 사망한다. 향년 72세.

2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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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의 야망 11~14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 등장한다. 능력치는 최신작 기준으로 통솔 78/무용 71/지략 62/정치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