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식

1 소개

1939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손영기[1]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5학년 때 6.25발발을 지켜봤고, 1.4후퇴 때 아버지의 고향인 경상남도 밀양시로 피란을 갔다. 이후 부산광역시에 피난 와 있던 경기중학교로 입학했는데 당시 천막을 치고 공부했다고 한다. 경기고등학교 재학 중 검정고시를 통과해서 이후 3개월만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합격해 수재로 떠오르기도 했다. 졸업한 후 1961년 한일은행에 입사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오클라호마주립대 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2 기업 활동

1968년 귀국해 삼성 회장 비서실에서 삼성전자 설립에 기여했다. 1973년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이사로 옮긴 뒤 1977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제일제당의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삼성그룹과의 분리과정에서 제일제당이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해결사로 활약했다. 삼성이라는 초거대 기업의 우산 아래서 떨어져 나온 제일제당이 큰 위기 없이 현재의 CJ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그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이병철 당시 삼성그룹 회장 또한 자신의 '경영스승'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며 그룹의 주요 결정이 있을 때마다 허심탄회하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CJ에서 영향력은 절대적이였다고 한다. 1995년 CJ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2005년 11월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이 중도 사퇴하자 대신 회장직을 맡았다.

2008년, 3년 임기의 대한상의 회장에 재선임됐다.

한국능률협회, 산업기술진흥협회, 식품공업연합회 등을 맡으며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온 그는 대한상의 회장을 맡기 시작했다. 대한상의 회장으로서 재계와 정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한 데다 한국 경제 홍보대사 역할도 톡톡해 해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3 여담

여담으로 인맥이 엄청나기로 유명하다. 대외 직함만 70여 개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세제발전심의위원장, 환경보전협회장, 한중민간경제협의회장 등 대한상의 회장이 함께 수행하게 되는 직함들 이외에도 손에 꼽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이다.
  1. 여담으로 친일 논란이 있던 인물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