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진(농구선수)


현역 시절


이제는 kt의 코치!

부산 kt 소닉붐 코치
송영진(宋永鎭)
생년월일1978년 10월 2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경상남도 창원시
출신학교마산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포지션파워 포워드
신체 사이즈198Cm, 95Kg
프로입단2001년 드래프트 1번(창원 LG 세이커스)
소속팀창원 LG 세이커스 (2001~2005)
부산 KTF 매직윙스/kt 소닉붐 (2005~2015)
국가대표팀2006 도하 아시안 게임[1]
지도자부산 kt 소닉붐 코치 (2015~)
2005~2006 한국프로농구 기량 발전상
이병석(울산 모비스 피버스)송영진(부산 KTF 매직윙스)강대협(원주 동부 프로미)

1 소개

대한민국농구 선수. 부산 kt 소닉붐의 프랜차이즈 스타.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선수

중앙대학교 시절 황진원, 후배인 김주성과 함께 무적 중앙대의 시대를 열며 맹활약했다. 파워포워드 자리에서 속공에도 능하고,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이면서 일찍부터 프로에서도 통할 유망주로 지목받은 것. 중앙대에서 무수한 대회를 휩쓸고, 2001년 프로 드래프트에서 당당히 전체 1번의 지명의 영광을 안았다. 당연히, 창원 LG 세이커스에서는 기대가 컸고, 기대대로 활약할 줄 알았는데...

2.2 프로 선수

창원 LG에서는 망했다. 원래 빠른 움직임과 스피드가 주 무기였던 선수가 프로에서 외국인 선수와 대결하기 위해 억지로 몸을 불렸다가 스피드는 죽고, 몸빵도 되지 않으면서 이도저도 아니게 변해버린 것. 사실 프로 첫 해 평균 8.9점으로 다른 신인이라면 칭송받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 해 김승현이 등장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통에 송영진은 제대로 묻혔다. 결국 LG에서는 두 자리수 평균 득점은 커녕 이도저도 아닌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성장이 정체되었고, 결국 LG는 현주엽을 데려오면서 그를 FA 보상 선수로 보내버렸다.

송영진은 LG에서의 시간이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김승현에게 빼앗겼고 개인적인 성적도 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후 인터뷰를 찾아보면 LG 시절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태환 감독과의 갈등도 있었으며 선수단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극도의 스트레스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573&redirect=true

그런데 새로 옮겨간 KTF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추일승 감독의 조련 아래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과거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인 스피드와 움직임을 다시 되찾은 것이었다. 2005-06 시즌 향상된 기량을 보이며 기량발전상을 수상했고, 2006-07 시즌에는 평균 13.7점을 넣으며 KTF의 사상 첫 챔프전 진출의 주역이 되었다. 역대 보상 선수 가운데 가장 성공한 케이스.(우지원이나 이상민이 이름값으로는 가장 높지만 이들은 특수한 경우인지라...) 그 뒤로는 FA 자격을 얻고도 팀에 남으며 자신을 알아준 팀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포워드가 많은 KT지만, 큰 키를 바탕으로 골밑에서 활약해주는 선수는 송영진이 역시 1옵션. 움직임도 괜찮고, 미들 라인이나 골밑에서든 어느 위치에서든지 다양하게 쓸 수 있기 때문에 비록 신인 시절의 기대처럼 4번 자리에서 대활약하는 정도는 아니어도 상당히 유용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다. 수비력도 적당히 괜찮은 편이라서 KT 이적 후에는 국가대표에도 종종 발탁될 정도로 성장했다. 기대만큼은 아니라도 준수한 파워 포워드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2013-2014시즌에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내 빅맨 자원인 민성주, 장재석, 김승원의 성장세가 더딘 관계로 결국 주전으로 계속 출전하며 팀의 6강 진출에 힘을 보탰고, 준PO에서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상대로 평균 12.8득점을 넣으며 후안 파틸로, 조성민과 함께 4강 진출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시즌이 끝난 후 다시 FA 자격을 얻은 송영진은 2년간 보수 총액 2억원(연봉 1억 5천만원, 인센티브 5천만원)에 재계약했다. 아울러 김승현, 황진원, 전형수, 이현준이 은퇴하면서 97학번 중 유일한 현역 선수로 남게 되었다.

3 지도자

2014-15시즌 종료 후 은퇴해 팀의 코치를 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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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앙대 졸업직후인 2001 상하이 ABC때 처음 국대에 선발되었으나 부상으로 낙마, 한양대 4학년 센터 김태완으로 교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