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야구선수)

파일:/image/311/2015/03/28/1427533208858 99 20150328180102.jpg
한화 이글스 No.31
송창식(宋昌式 / Chang-sik Song)
생년월일1985년 3월 25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충청북도 청주시
출신학교서원초 - 세광중 - 세광고 - 대전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4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한화 이글스)
소속팀한화 이글스 (2004~2008)
한화 이글스 (2010~현재)
등장곡무한궤도 - 그대에게[1]
한화 이글스 등번호 31번
이범호(2002)송창식(2004~2008)안영명(2009~2010)
한화 이글스 등번호 98번
결번송창식(2010)임세업(2012)
한화 이글스 등번호 31번
안영명(2009~2010)
장성호(2010)
윤경영(2010)
송창식(2011~현재)현역

1 소개

구대성 - 마정길로 이어지는 한화 노예 라인의 차세대 주자
한화의 또 다른 불꽃남자이자 팬들에겐 가장 아픈 손가락

KBO 리그한화 이글스 소속의 투수. 같은 팀이었던 좌완투수 유창식과는 성을 제외한 한자 이름이 같다. 그래서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는 큰창식이라고도 한다.

류현진이 떠나버리며 투수진이 완전히 붕괴한 한화 이글스의 암흑기에 그래도 프로야구 구단의 존엄성을 지키게 해준 몇 안되는 투수 중 한명이자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선 인간승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40km/h 초중반대의 패스트볼과 100km/h대의 커브볼을 주로 구사하며 완급조절을 통해 타자의 눈을 속이는데 능하다. 특히 결정구로 던지는 12-6 커브가 일품이다. 빠른 구속으로 타자를 찍어 누르는 투수는 아니기에 보는 사람은 맞을까봐 조마조마 할 때가 많지만 정교한 제구를 바탕으로한 헛스윙 유도를 통해 타자를 잘 상대한다.

유승안, 김인식, 한대화, 김응룡, 김성근 다섯 명의 감독의 혹사를 모두 당해본 선수로 한화 팬은 안쓰러움과 고마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선수. 송창식의 야구에서 포기란 없다. ㅠㅠ

2016년 8월 현재 이 분들을 가장 쉽게 가릴 수 있는 방법은 권혁과 송창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점이다 이 두사람을 까는 사람은 거의 무조건 노리타라는 것이 지금 현재 야구판의 통설이다.[2]

2 아마추어 선수 경력

세광중학교 당시부터 두각을 드러내 주목받던 유망주였으며, 1학년 당시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별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지만 2학년때부터 부상을 떨쳐낸 송창식은 3학년이 된 2003년에 팀의 에이스로 팀을 봉황대기 4강[3]과 대붕기 준우승[4]으로 이끌었다. 이 당시의 송창식은 지역(충청권) 최대어로 손꼽혔으며, 효천고의 김수화에 이은 당대 우완 No.2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3 프로 선수 경력

48e88001_3.jpg
풋풋했던 그의 신인 시절.

정치적인 문제로 1차 지명은 결국 북일고의 좌완 투수 김창훈에게 넘겨줘버렸지만 한화 이글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하게 된다. 당시 송창식은 한화의 미래라고 평가를 받던 유망주였고, 팬들도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로도 데뷔 시즌에 평균자책점이 높긴 했지만 8승 7패를 거둬 현대 유니콘스오재영과 신인왕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3.1 프로 입단 후 찾아온 연이은 시련, 그리고 집념의 복귀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막장이 된 한화 투수진 상황 때문에 당시 감독이었던 유승안은 고1 때 팔꿈치에 부상을 입어 수술 전력이 있는데다, 고3 때 혹사를 당해서 반드시 관리가 필요했던 송창식을 전천후로 굴리기 시작했다. 송창식은 전천후로 등판하며 한화의 투수진을 메우면서 제 몫을 해냈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프로 데뷔 후 1년. 단 1년만에 송창식은 혹사로 인해 인대가 망가졌고, 결국 이듬해 5월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시련의 시작에 불과했다.

유승안에 이어 한화의 감독으로 취임한 김인식은 아직 재활의 터널에서 나오지 못한 송창식을 1군에 올려서 쓰기 시작했고,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던 송창식에게 이 일은 치명적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송창식은 버거씨병(손/발가락 혈행장애)에 걸리면서 야구 선수로서의 인생에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결국 버거씨병 판정을 받은 후 2008년 4월에 치료를 위하여 임의탈퇴 공시되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송창식은 자신의 모교인 세광고에서 투수코치로 일하면서 재활을 병행하고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때 손을 거쳐 간 모교 야구부의 선수들 중 2011년 마지막 지명자로 한화에 입단하면서 다시 만난 선수가 박건우다. 그리고 2년 간의 재활 끝에, 마침내 다시 한 번 뛸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송창식은 다시 한 번 한화에 입단 테스트를 받아 선수로 복귀한다. 2010년 박정진을 제외하면 전원 막장인 상태였던 중간계투진에 합류, 8월 19일 LG전에서 통증으로 자진 강판 후 2군에 다시 내려갈 때까지 12경기 17⅔이닝 방어율 4.08을 찍었다.

그에게 거는 기대치도 컸고, 그가 프로계에서 떠난 이유도 혹사로 인한 것이었기에 한화 팬들에게 안타까움과 함께, 응원을 보내게 되는 투수. 한화 팬들은 다시 한 번 마운드에 올라서는 그에게 응원을 보냈다.

3.2 2011 시즌

시즌 시작 전에는 양훈, 안승민과 함께 2011년 시즌 한화 이글스 선발진의 새 얼굴이 될 전망이었다. 일단 규정이닝 채운 경험이 한 번은 있긴 한데 이는 7년 전 이야기고, 또한 예의 버거씨병이 있기에 세심한 관리가 요구된다.

2011 시즌을 앞두고 전지훈련과 연습경기, 시범 경기에서 호투하여 마침내 한화의 선발진에 합류하는 기염을 토했다. 말 그대로 인간 승리!

4월 6일, KIA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1⅓이닝 동안 KIA 타선에게 신나게 털리며 5실점하고 조기 강판당하며 호된 선발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다행히도 팀은 10:9로 연장전까지 가서 역전승. 결국 승리는 불펜인 정재원에게 갔다. 그리고 4월 12일 SK전에서 4⅓이닝동안 3피홈런 4실점으로 결국 첫 패전, 4월 17일에는 중간계투로 나와 2⅔이닝동안 1실점하여 아직은 갈망하던 첫승을 올리진 못하고 있다. 이후 5선발 경쟁에서 신인 장민제에 밀렸지만 중간계투로는 제 활약을 하는 중.

4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6회 말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삼진 3개를 잡고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뒤 7회초 한화의 다이너마이트 타선 폭발로 2004년 8월 4일 이후 2,459일 만에 승리를 얻어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별 활약을 못하고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고, 5월 10일 LG 전에서 7회에 갑자기 위기에 몰린 안승민을 구원하기 위해 등판했으나 몸에 맞는 볼로 주자 만루를 채우고는 박경수에게 만루 홈런을 맞아 안승민의 승리를 날리는 것은 물론 원치않는 분식회계까지 해버렸다. 안 그래도 시즌 초반과는 달리 송창식에 대한 시선도 싸늘해진 상황에서 더더욱 미덥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어 더더욱 까이는 중.

6월 들어서 1군에 콜업, 시즌 초와는 달리 예전의 구속과 구위를 회복했으나 종종 제구가 높게 되어 맞는 모습이 보임으로써 아직은 승리조에 두기는 시기상조로 보인다. 하지만 내년이 되면 한화의 우완 불펜은 송창식만 남아 있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5]

그러나 8월 21일 두산전에 선발로 나와 5⅔이닝 동안 107개의 공을 던져 6피안타 2볼넷 1사구 4K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하여 승리를 가져갔다! 직구 구속도 최고 145 km/h까지 나왔으며, 무엇보다 안정된 제구력과 침착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었다. 무려 2,573일 만의 선발승! 2004년 8월 4일 롯데전 이후 7년 만에 선발승을 거둔 것이다. 버거씨병에 걸리면 손가락에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에 투수로서 심각한 위기이나 결국 승리 쟁취! 오늘의 선수에 오르며 송창식은 "위기의 순간에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나아간다면 좋은 일이 생길껍니다"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보는이들을 감동시켰다.

10월 5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바티스타가 불을 지르고 6:3으로 역전당한 8회 말에서 등판해 고의여부는 알수 없으나 일관되게 타자 몸쪽으로 공이 날아가 황성용의 몸과 정훈의 팔꿈치를 맞추는 등 2연속 사구를 기록하고, 이를 빈볼로 판단한 주심이 퇴장 명령을 내리면서 시즌 1호 퇴장 선수가 되었다. 이 날 장성우가 2루 주루중에 헤드샷까지 당하면서 상당히 분위기가 심상찮았다.[6]

3.3 2012 시즌

박정진에 이어서 등장한 한화 불펜진의 희망
한화의 롱 릴리프

2012 시즌 6월 6일 롯데와의 경기가 방송사 중계 일정관계로 낮경기가 되면서 퓨처스 리그[7]에 있다가 전격적으로 콜업되어 류현진 대신 깜짝 선발 출장을 하였는데, 우려를 딛고 5이닝 1실점 1자책으로 호투, 2011년 8월 21일 잠실 두산전 이후 무려 290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되었다. 한대화감독에 따르면 퓨처스 리그에서 그날 선발 등판 예정이었으며, 낮 경기에 신체리듬이 익숙하기에 내 보냈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았던 투수가 3대 2의 신승으로 귀중한 3연승을 이끌어 가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승리.

6월 20일 LG 트윈스전에 선발등판하여 우려와 달리 5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여 시즌 2승째를 챙겼다.

그 후에 주로 불펜으로 활약하며 터프한 상황에서 잘 막아주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8월 15일 삼성 라이온스전에 바티스타가 부상으로 내려간 2회에 올라와 갑자기 등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5⅔이닝동안 1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봉쇄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날까지 7, 8월 성적은 15게임에 등판해 25이닝동안 단 2점만을 내준 특급 불펜의 성적으로 먹튀 송신영에게 기대했던 역할 이상을 해주고 있다.

8월 31일 KIA 타이거즈 전에서 9회 말 박정진의 뒤를 이어 등판,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이 날 선발이었던 류현진의 승리를 지켜냈다. 3:0 승리.

9월 9일 기준, 59이닝동안 3.05의 평균 자책점에 단 37피안타밖에 허용하지 않았고 볼넷도 22개로 많은 편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WHIP가 1.00인데, 어느정도인가 하면 박희수가 0.98을 기록하고 있으며 팀의 셋업맨 역할을 하는 안지만, 홍상삼, 이동현 등이 각각 1.04, 1.01, 1.02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2011년에 비해서 놀라울 정도의 성장을 거두었다.

총 성적 4승 3패 1세이브 12홀드 평균자책점 2.91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며 13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3.4 2013 시즌

해당 항목으로.

3.5 2014 시즌

해당 항목으로.

3.6 2015 시즌

불꽃한화! 투혼 이글스!
팀 슬로건을 몸소 실천해낸 투수이자 2015년 야갤에서도 차마 안까는 까임방지권 발급자
살려조에서 기존 한화 팬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혹사 피해자

파일:TOMJSXu.png

5년만의 10선발 40불펜[8]

해당 항목으로.

3.7 2016 시즌

한화의 마지막 불꽃은 혹사로 인해 꺼져버렸다.

해당 문서로.

4월 14일, 김성근은 송창식이 12실점을 하는 동안 동안 투수를 바꾸지 않았고, 혼자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보였다.[9] 그 이후로 거짓말 처럼 각성한다.

그러나 8월 29일, 부상으로 인해 일본으로 가게 되어 사실상 시즌 아웃 확정. 현재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조만간 복귀할것이라는 설이 커지고 있었지만 결국 포스트 시즌이 사실상 좌절되면서 쓰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 투수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4한화 이글스26140⅓87000.5335.1314315718083801.468
20051군 기록 없음
2006211700010.0005.29132121110101.412
20072401000.00013.509023662.750
2010한화 이글스1217⅔00000.0004.08171511881.245
2011346143000.5716.347511305243431.607
20124774⅓431120.5712.91457316624240.955
20135771462000.4003.42633406727271.394
2014262913130.2507.45359172124241.690
201564109870110.5336.4411529718782781.64
20166697⅔85080.6154.989710457761541.45
통산(11시즌)355621373522350.5145.13612872894753683541.450

5 기타

한화 이글스 선수가 언뜻 닮았다. 근데 이 중에 한 명은 2014년에 승부조작 한 뒤 2015년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 안승민장민재보다 앞서 있던 노안(…)으로 안승민의 노안이 부각되면서 장민재와 송창식의 노안도 같이 부각되어, 이제 세 사람이 합쳐 한화의 노안 삼총사(…)가 되었다. 심지어는 한화 삼대 원로라는 드립을 디시위키[10]에서 치고 있다.
  • tumblr_nucgd103Uq1ut6iqpo1_1280.jpg
믿기 힘들겠지만 1985년생 동갑내기다(...).
  • M형 탈모를 겪고 있다. 정우람과 같이 앞으로 대머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 혹사당하는 것도 그렇고 사실 저정도 M자는 이미 탈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다. 아마 본인도 관리를 하고 있겠지만...
  • 한화 이글스의 투수 박정진대학 시절 세광중 교생 실습을 하던 당시에 반 학생이 송창식이었다.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근데 학생이 선생보다 늙어보이는 건 함정
  1. 선발 투수나 중간 계투로 나와 마운드에서 연습 피칭시 응원단에서 트는 노래. 굴곡이 있었던 선수생활 기록 때문인지 등장곡을 듣고 있으면 뭔가 짠하다.
  2. 한화와 사이 안 좋은 다른 갤러리의 갤러들 마저도 이 두사람은 이 두사람이 까일 건수를 만들지 않는 이상 건들지 않는다. 이 두사람이 김성근 치하 밑에서 얼마나 고생하는 지 잘 알기에.
  3. 김재호의 중앙고에 패배
  4. 박석민의 대구고에 패배
  5. 그래서 김광수를 데려온 것이지만...
  6. 다만 공을 던진 백승룡의 표정으로 봐선 장성우를 맞춘 것에 대한 고의성은 없어보인다.
  7. 다시 말해 2군
  8. 참고로 송창식 이전 마지막 10선발+40구원으로 출전한 선수는 당시 SK 와이번스 소속이었던 고효준이다. 누가 세이콘 아니랄까봐
  9.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10. 디시위키에서는 송창식의 생년을 1885년으로 바꿔놓은데다 전직 국회의원인 동시에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