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부타이


중국화의 수부타이.

몽골어 Сүбээдэй[1], 한자 速不台(속불태), 速不臺(속불대)
(1176 ~ 1248)

1 개요

중국에서 유럽까지 누빈 역사상 최고의 명장 중 한 명

몽골 제국의 장군으로 칭기즈 칸이 가장 신임하는 장수인 사준사구 중 한 명이다. 원조비사에서는 용맹한 수부타이라 부른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장군 중 한 명. 그가 남긴 기록은 인간의 상상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그는 32개의 나라를 정복하거나 멸망[2]시켰으며, 역사에 정확히 기록된 것만 65번의 회전에서 승리했다. 회전(會戰, pitched battle)이란 두 군대가 적당한 장소에 결집해 '모 아니면 도'식의한타 총력 대결하는 전투를 말한다. 보통 회전은 그 특성상 국운을 건 모험인 때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뛰어난 장수도 일생 5번 이상의 회전을 경험하기 힘든데 수부타이는 평생 그가 만난 금나라, 송나라, 서하, 각 유목 부족, 여러 국가, 중앙아시아중동이슬람의 수십 개 국가, 러시아, 불가리아, 폴란드, 헝가리, 조지아, 아르메니아의 군대를 격파했다.

몽골군 중에서도 수부타이는 주로 중국, 고려 전선보다는 서쪽 정벌에서 많이 활약했기 때문인지 대한민국에서는 인지도가 다른 장군보다 낮은 편이지만 직접 침략을 당한 서양, 중동권에서는 칭기즈 칸과 거의 동급으로 악명(...)이 높다. 역사학자들이 서술한 책 『What if』에서는 역사상 가장 무시당한 명장으로 꼽히는가 하면, 미국 역사 밀리터리 잡지 『암체어』에서는 세계사상 최고의 명장 6위에 선정되었다.[3] 참고로 인터넷에는 BBC에서 선정한 명장 순위라는 자료가 돌아다니는데 이것은 엄연히 가짜이다.[4]

2 생애

우량카이족 출신으로, 칭기즈 칸 초기 파티의 2인자였던 젤메의 아우다. 몽골 고원 유목민 일파 중에서도 본디 초원이 아닌 속에서 살던 부족민이라 어느 정도 장성한 후에야 말 타는 법을 배웠고, 이후에도 말 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수부타이를 낳다가 사망. 아버지는 자르치우다이라는 이름의 대장장이.[5] 젤메에 이은 둘째로 가업인 대장장이를 이어받아야 할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14세 때 형인 젤메를 따라 칭기즈칸의 군에 입대한다. 그때부터 칭기즈칸의 막사에서 각종 시중을 드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스럽게 칭기즈칸 막하 장군들의 전략 및 전술회의에 배석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6] 이로 인해 어릴때 부터 전략/작전 수준의 관점으로 전술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각 및 이해력이 길러졌을 것이라는 것. 이는 향후 제베라는 명장의 부관으로 복무하며 정교한 전술적 능력을 흡수하여 압도적인 전공을 세운 토대가 된 것으로 보인다.

1204년에 칭키즈 칸이 나이만족의 다얀 칸과 싸운 차키르마우트 전투에서 철륜차로 산맥을 돌파하여 적진을 탈취하기도 하였으며 메르키트족의 잔당을 소탕하는 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몽골이 통일되자 천호장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칭기즈 칸의 서정군에 제베[7]와 함께 참전하여 호라즘 왕국을 공격하여 그 국왕을 카스피해의 작은 섬으로 몰아넣어 죽게 하였으며, 몽골로 귀환하는 김에 전리품을 좀 더 챙겨서 가자고 해서 이란, 캅카스의 여러 도시와 러시아 남부의 공국들을 쓸어버리면서 공략하였다. 크림 반도에서 이탈리아제노바 공화국의 식민군을 격파하기도 했으며, 러시아 공국들의 연합군 8만명을 격파하기도 했다(칼가강 전투) 이 때 러시아의 공국들의 야전 역량이 무너져, 나중에 있었던 본격적인 동유럽 원정 때는 속수무책으로 밀리게 되었다.

이후, 1230년 중국에서 도화곡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있는데 알려진 정설과는 달리 완안진화상에게 패배했는지는 약간 논란할 여지가 있다. 금나라 역사서 『금사』에는 완안진화상과 싸운 장군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으며, 수부타이라고 나오는 출처는 어디까지나 일본과 남송 측 기록이다. 수부타이는 패배 이후에도 1233년 금나라의 도읍인 변경을 함락하여 금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바투동유럽 원정에도 부사령관으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운 뒤에 귀환했다. 당시의 러시아 공국 지역을 거의 초토화 시켰고, 레그니차 전투사요강 전투에서 각각 3-5만 명 가량의 폴란드/튜튼, 헝가리 기사단을 전멸시켰다. 특히 사요강 전투는 패퇴하는 헝가리 군 수만명을 수일간 포위 기동으로 추적하며 학살. 유럽지역에 남아있는 몽골에 대한 공포는 이 전역들에 기반한 것. 명목상의 총사령관은 바투였으나, 실제로 해당 전역들을 주관한 것은 수부타이로 보이며, 이로 인해 킵차크 칸국의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신성로마제국을 정복할 계획을 세우던 도중 몽골 본토에서 우구데이 칸의 병사 소식이 알려져, 몽골 본토에서 열리는 쿠릴타이에 참가하기 위해 회군하게 되었다. 이후 구유크 칸은 그를 중국 원정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으나 귀환 중 병사. 원정 당시 이미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쇠약해져 말을 못타게 되긴 했었다고. [8] 몽골의 대칸 3대(칭기즈 칸, 오고타이 칸, 구유크 칸)를 섬긴 백전노장으로 수명도 몽골인 치고는 꽤나 장수한 편.

사후 그의 일족은 몽골 제국(원나라)의 4대 명문 중의 하나로 권세를 떨치게 된다.[9] 특히 그의 아들인 우랑카다이와 손자인 아쥬도 몽골 제국의 명장으로 용명을 떨쳤다.

금나라 정벌 때 빼고는 패배한 적도 별로 없었고 생애 20번의 원정 동안 65번의 회전에서 승리했고 갈아 버린 나라만 32개(…). 또 싸워본 문화권만 해도 몽골계(칭기즈 칸의 몽골 통일 시절), 중국계, 중동계, 유럽계로 사실상 유라시아 대륙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문화권의 군대를 쓰러뜨렸다. 흠좀무.

3 건강 및 철수레에 대한 이견[10]

몽골비사에 철수레에 관한 언급이 2회 등장하는데, 모두 수부타이에 관한 내용이다. 그로 인해 일각에서 수부타이만 철수레를 탔다는 것을 근거로 비만 및 당뇨설을 제기하는데, 이는 논란이 있는 주장이다.
수부타이의 체격이 비대했다는 내용은 몽골비사에도 없고, 별도로 당시에 기록된 사서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본문 처음에 보이는 중국 문헌 속의 초상화는 그다지 뚱뚱하지 않다. (후대에 상상에 기반하여 그려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철수레에 사용에 대한 해석으로 비만설이 제기된 저서는 Richard Percival Lister가 집필한 "The Secret History of Genghis Khan : London: Peter Davies, 1969." 이다. 하지만 해당 저서에는 비만에 대한 인용 출처가 없고, 별다른 근거 내용도 없다. 작가가 원래 소설을 쓰던 사람으로, 수부타이의 비만설은 작가적 상상 혹은 해석으로 보여진다. 문제는 위 내용을 근거로 후대에 수부타이의 비만 및 당뇨설이 퍼지고 있다.
이런 비만설이 본 글의 주석 중에도 육식 위주의 식습관 때문에 비만 및 당뇨에 걸렸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최근 의학계의 주류 이론은 육식보다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가 비만과 당뇨의 주된 원인이라고 본다.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좋지는 않았겠지만, 육식만 하는 황제 다이어트도 존재하는 만큼, 수부타이가 그로 인해 비만과 당뇨가 심했을 것이라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본문 글처럼 수부타이는 당시의 몽골인치고 장수한 편인데, 이것이 당시 몽골의 열악했을 의료 환경에서 당뇨환자로써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된 몽골비사의 원문을 보면 수부타이만 철수레 혹은 철윤차를 타고 전쟁에 임했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으로 보인다. 몽골비사의 메르키트족 추적에 관한 부분을 보면 "소의 해에 테무진은 수부타이의 군대를 '테무르 테르겐'으로 무장시켜 톡토아베키의 아들들과 그 추종자들을 쫒게 했다."라는 구절로, 수부타이만 철수레를 타고다녔다는 내용이 아니다. 또한 이 테무르 테르겐의 해석이 애매하여, 철수레 혹은 철골 전차 등으로 내용이 다른 형태로 해석한 책들이 존재한다. 철골 전차로 해석한 르네 그루세는 험한 지역과 협곡에서 사용된 특수 전차의 의미로 번역했다. 이 경우 수부타이만 탄 것이다 하더라도, 숲속 부족 출신이라 기마술이 부족한 수부타이를 위한 배려로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비만과 당뇨로 철수레를 타고 다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철수레로 해석한 쪽에서도, 물자 수송용 수레를 험지에서의 내구성 때문에 특별히 제작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당시의 나무수레는 나무를 구하기 힘든 초원에서 유지보수에 난점이 많았으나, 대장장이의 아들인 수부타이가 철테를 두른 수레바퀴등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냐는 것. 그렇기 때문에 철수레와 수부타이가 같이 언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수부타이는 대장장이 아들 출신 답게, 새로운 기술 도입 및 운용에 적극적이었다고 평가 받는다. 중국 및 러시아 지역의 대장장이와 기술자들을 휩쓸다시피 동원하여 모든 전역에 데리고 다녔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또, 위에 언급된 사요강 전투에서 헝가리 군의 석궁병들의 거센 반격을 제압하기 위해 투석기를 활용하여 공격하였다. 이는 유럽 사서의 기록상 최초 혹은 초기에 기록된 야전에서의 공성병기 운용술에 해당한다고 한다.)

수부타이가 중앙아시아 및 동유럽에서 지휘한 전역들의 기동 거리가 1-2000 km에 육박하고, 1600 km에 달하는 거리를 칭기즈칸의 소환으로 홀로 여행했다는 기록들을 봤을 때, 평소 승차감이 극도로 열악했을 철수레를 타고 이동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즉 철수레는 부대 차원에서 특수 목적 혹은 수송용으로 운용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수부타이의 비만 설은 근거가 희박하다.

4 기타

중국 드라마 <칭기즈 칸>에선 칭기즈 칸이 호라즘을 발라버리고 돌아갈 때 부하들이 "수부타이는 어쩌고요?"라고 묻자 별 걱정도 안 하고 그냥 돌아가 버린다(…). 물론 수부타이의 행적을 보면 걱정 안 해도 되긴 했지만. 이 드라마에서 수부타이는 연출 때문인지 실제 역사 기록과는 달리 몽골 제국 초창기에도 말도 잘 타고 다닌다.

칭기즈 칸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는 게임에서 자주 나오는 인물로 천지를 먹다의 외국내수판에서는 조운이 스부타이가 되었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서도 영웅 유닛(기마 궁사)으로 나온다. 코에이징기스칸 시리즈에서도 대활약하는데 칭기즈 칸 본인 다음으로 전투력이 강하게 묘사된다. 서양 게임인 미디블2: 토탈워에서는 "수바다이"라고 나온다.

파일:Attachment/수부타이/수부타이.png
징기스칸 4 일러스트

징기스칸 4에서는 전투력이 우수하지만 다른 능력치가 암울. 하지만 수명이 긴 메리트가 있어서 장기간 사용 가능하다. 그런데 연사 특기가 없어서 몽골 기병을 쓰기 약간 애매하니 전투 경험을 쌓아서[11] 연사 특기를 얻게 해 주는 것이 좋다. 정치력이 바닥이 기는데 어쩐 일인지 등용 특기가 있어서 재수 좋으면 재야의 우수한 장수를 불러들이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이사람의 열전에서 촐몰년도가 ???? 년 ~ ???? 년으로 되어있고, 출생년도는 에디터로 뜯어보면 1173라고 나온다. 명백한 고증오류 중 하나 웃긴 점은 유져들이 만든 시나리오에서도 수부타이의 출생몰년년도가 전혀 수정되지 않는다.고려냐?

여담이지만 수부타이가 러시아에서 돌아오자 그의 나이를 걱정해서 칭기즈 칸은 그로 하여금 후방에서 쉬게 하려고 했지만 수부타이는 칸이 전선에 나서는데 어떻게 자신이 뒤에서 쉬고 있겠냐며 거부했다.

수부타이의 활약상은 디시위키 수부타이 문서에 잘 정리되어 있다.수부타이

  1. 발음은 '수베테이'이다. 몽골어는 모음조화가 지켜지는 언어이기에 단어 앞의 모음에 따라 뒤의 모음이 결정되기에 본래 수부 다음에는 타이가 아닌 테이가 나와야 한다. 물론 현대 몽골어에서는 수베테이가 정식 발음이다.
  2. 물건너에선 갈아버린 나라 숫자만 따지만 알렉산드로스 이상이라는 출처모를 말이 떠돌기도 한다
  3. 1위부터 칭기즈 칸, 알렉산드로스, 티무르,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수부타이 밑으로는 구스타브 2세 아돌프, 한니발 바르카, 한신, 카이사르, 곽거병, 오다 노부나가, 악비, 롬멜 등등 쟁쟁한 이름이 존재한다. 대체로 이 순위에서는 일반 무장보다는 정복군주가 높은 평가를 받은 편이고, 동시대 수부타이의 주군이자 자국의 군주인 칭기즈 칸이 이미 1위이므로 수부타이는 최전선을 뛰는 일반 무장으로서는 거의 인류 역사상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셈이다. 참고로 이순신은 54위.
  4. BBC가 아닌 외국의 포럼에서 일개 네티즌들이 만든 순위인 데다가 여러 차례 갱신되었기에 국내에서 돌아다니는 자료는 아예 최종 순위조차 아니다(...).
  5. 자르치우다이가 테무진이 고생하던 시절 식량을 제공해주고 여러 도움을 줬다는 설도 존재한다.
  6. 원래 젤메는 테무진과 같은 달에 태어나, 아버지 자르치우다이가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에게 테무진의 노예로 바쳤다. 그러나 갓태어난 테무진 키우기에도 벅찬 예수게이가 장성하면 보내라고 돌려보냈고, 예수게이 독살 이후 어렵게 살던 테무진이 장성하자, 예수게이의 죽음으로 약속 이행을 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젤메를 테무진에게 보낸다. 그로 인해 젤메는 테무진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고, 그와 유사한 행적을 보인 동생 수부타이도 어릴 때부터 각별한 신임속에 각종 군사 기술을 배웠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7. 수부타이가 뛰어난 군사상 역량을 갖추게 된 것은 제베의 부관으로 일하면서부터이다. 타이치우트 족에서 항복하여 칭기즈 칸 측에 새로 합류한 제베의 뛰어난 실력을 파악한 칭기즈 칸은 그로 하여금 사실상 그보다 고참인 수부타이를 지도하게 하여 그의 포텐을 만개시키도록 이끈다. 인재를 파악하고 그들의 사회상 지위에 상관없이 기용하는 칭기즈 칸의 통찰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
  8. 수부타이는 말 타기를 좋아하지 않고 식욕이 왕성하여 현대 의학의 입장에서 보면 젊은 시절부터 이미 비만, 당뇨성인병 증세가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 육식 위주의 몽골 식생활은 말 타기와 같은 격렬한 운동이 전제되지 않으면 살 찌기에 딱 좋은 식단이다. 칭기즈 칸이 그에게 철륜차를 하사한 것은 이러한 신체상 약점 탓에 유목민족의 장수인데도 말 타기에 부적합하게 된 그를 배려한 일환이었다.
  9. 나머지 3명은 무카리, 보오르추, 티라운의 일족.
  10. 리처드 A. 가브리엘의 저서 "칭기즈칸의 위대한 장군, 수부타이(Genghis Khan's Greatest General Subotai the valiant)"의 내용 인용 및 참조
  11. 정확하게는, 해당 전투 특기를 가진 장수를 포로로 잡으면 일정 확률로 특기를 배운다. 여기서 포로를 잡는다는 것은 해당 장수와 전투를 벌어서 잡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지만, 일하고 있는 장수를 잡아도 일정확률로 배운다. 단, 도시에 있는 장수는 수성전을 치른 장수를 제외하면 해당사항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