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제이 굴드

Stephen Jay Gould
(1941년 9월 10일 ~ 2002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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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 여러 면에서 리처드 도킨스(동갑으로 굴드가 6개월 어리다.)와 대척점상에 서 있던 학자이며, 생전에 많은 비판과 진화론에 관한 논쟁을 가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같은 진화론적 입장에서. 학문적 성취도 뛰어나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저술활동으로 훨씬 유명하다는 점에서 도킨스와 비슷하다.

오랫동안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도킨스는 굴드 사후 굴드를 “뻔뻔하다”고 평가했다. 고인드립 그러면서도 도킨스는 굴드가 미친 영향은 나쁜 것보다 좋은 쪽으로 기울어 있으며, 자신은 굴드가 그리울 것이라고 회고했고, 굴드가 언제나 선배나 선생처럼 느껴졌다고 했다.츤데레? 한편, 닐스 엘드리지는 굴드 사망시 형님을 잃었다”고 했다. 본인이 직접 카메오로 목소리 출연했던 심슨 가족에서는 S13E22 말미에 에피소드 방영 당시 별세한 고인을 추모하는 메시지를 넣기도 했다.
즉, 굴드는 노안이다.[1]

참고로 강의 도중 어떤 학생과 라틴어로 10분이 넘게 문답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근데 굴드는 그렇다치고 라틴어로 10분이 넘게 이야기를 끈 그 학생도 대단하다... 당시 수강생이었던 최재천 교수는 굴드와 그 학생이 자기들만 알아듣는 말로 시간을 끄는데 화가 나서 강의실을 박차고 나갔고, 굴드는 다시는 오지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고 한다.[2]

2 업적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단속평형설을 제창한 것이 있다. 72년 엘드리지와 함께 발표한 이 이론은 생물의 진화가 불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으로 기존의 점진적 진화설과 대치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당부하고 싶은 건, 불연속적이라고 해서 애를 낳아보니 다른 종이더라 따위의 한 세대 차이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3] 어디까지나 기존 주장에 비해서 불연속적이라는 것이지, 실제로는 몇 만 년의 장구한 과정이다.[4]

단속평형설에서 주장하는 변화기는 병목 현상이나 창시자 효과 등의 sampling effect에서 온다. 즉 집단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모집단과의 유전자 조성이 크게 달라질 때 진화가 촉발된다. 평상시에는 돌연변이가 일어나도 모집단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또한 굴드는 자연 선택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회의적인 편이었다.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명언으로 '만일 생물의 역사가 테이프로 되어 있어서, 테이프를 수십 억 년 뒤로 되감은 뒤 다시 재생한다면 생태계가 지금과 똑같을 것인가?'라는 '생명 테이프' 질문이 있다. 기존의 주장 - 적응을 통한 변화의 누적 - 은 국지적인 부분을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고, 생태계 대부분은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

이 같은 생각의 연장으로 도입한 것이 삼각소간(스팬드렐, spandrel)이라는 개념이다. 삼각소간은 건축학 용어로 아치들 사이의 삼각형 구조를 얘기하는데, 그 자체는 미적인 용도로 자주 활용되었지만 실제로는 아치를 늘어세우다 보니 만들어진 부수적인 공간에 불과하다. 생물도 마찬가지로 어떤 기관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 반드시 자연 선택을 통해 선정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특히 굴드는 진화를 진보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관점, 다시 말해 진화 = 복잡성으로 여기는 일을 대단히 경계했다.[5] 진화한 생명체들이 더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된 이유는 단순히 가장 단순한 구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 전체적인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뿐인 것이다. 사실 지구상에서 차지하는 질량이나 종 분화로 봤을 때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한 생물은 박테리아로, 가장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는 대표적인 진화의 산물인 '지성'도 과대평가된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말했듯이 굴드는 대중저술로 유명했는데, 쉬운 말로 진화학적 개념을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생전 정력적으로 칼럼을 연재했으며, 대부분이 책으로 묶여 팔렸다. 대표작으로 풀하우스, '판다의 엄지',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등이 있다. 그 중 그의 사상을 가장 잘 대표하는 책은 '풀하우스'로, 도킨스의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에 비견될 만 하다. 관심있는 사람은 꼭 한 번 읽어보도록 하자.

3 야구광

엄청난 야빠다. 생물학 공부 안하고 수학 통계학 물리학 같은거 공부했더라면 세이버매트릭스 등을 통해 야구계에 큰 기여를 했을지도 모르는 양반. 풀하우스에서는 아예 한 챕터를 들여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마의 4할을 넘지 못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개했다. 진화론 책에서. 통계학적으로 똑같은 원리라고는 하지만 참...[6] 도킨스의 서평에서('악마의 사도'에 수록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불평한 대목도 걸작이다. [7]

무슨 알아먹지도 못할 야구 이야기가 이렇게 길어? 내가 크리켓[8] 이야기 주욱 늘어놓으면 댁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수?

정작 이 책에 실린 야구와 진화의 관계가 무엇인가 하면 아래와 같다.

풀하우스 출간 당시 야구계에선 4할타자가 사라진 이유가 '타자들의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가장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 좋던 옛날(Good old days)의 영리하고 근성있던 타자들과 달리 요즘 애들은 근성이 빠져서 안된다는 주장.

이 주장에 반론을 펴기 위해 굴드는 일단 야구연감에서 1900년부터 현재까지의 타율 기록을 모두 뽑아 다음과 같은 작업을 해 보았다.

  • 모든 타자들이 친 타율의 표준 정규분포 곡선을 년도별로 그려본다.(x축 = 타율, y축 = 타자수)
  • 그리고 표준 정규분포 곡선이 매년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해 본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 표준 정규분포 곡선의 꼭지점(=그 해의 평균 타율)은 매년 조금씩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즉, 리그를 구성하는 타자들의 전반적인 배팅실력은 매년 향상되었다.
  • 표준 정규분포 곡선의 폭은 매년 조금씩 좁아졌다. 즉, 리그 최고의 타자와 최악의 타자 사이 실력차는 매년 줄어들었다.
  • 요약하자면, 타자들의 실력은 꾸준하게 상향 평준화 되어 왔다.

굴드는 이 정보를 가지고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표준 정규분포 곡선은 매년 오른쪽으로 찌그러지면서 이동했다.
  • 그렇게 되면 4할 이상의 타율에 해당하는 정규분포 곡선의 오른쪽 최말단의 면적은 매년 좁아진다. 즉, 4할 타자라는 이상치(Outlier)의 발생 확률은 점차로 줄어든다.
  • 요약하면, 타자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 됨에 따라 4할 타자를 보기 힘들어 진거다.
  • 굴드는 타율의 정규분포 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해 가면서 찌그러드는 모양세를 보고 마치 오른쪽 벽이 있는듯한 이동이라고 표현했다.
  • 오른쪽 벽은 리그 전체 타자들과 투수들의 수준이 극한으로 상향 평준화 되는 상황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타율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100미터 달리기의 9초 대와 같이.)

굴드는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진화란 어떤 종이 고도로 복잡화되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생물계 전체의 다양성 증가임을 설명한다.

  • 모든 생명 개체들이 지닌 복잡성 정도에 대한 분포 곡선이 있다고 하자.(x축 = 복잡한 정도, y축 = 개체수)
  • 원시 생명이 최초로 등장했을 때의 분포 곡선은 생물계가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복잡성이라고 볼수 있다. 이를 생물 복잡성의 왼쪽 벽 이라고 부르자. 어떤 생물 종도 이 왼쪽 벽보다 더 낮은 복잡성을 가질 순 없다.
  • 생명 개체수가 증가하고 종이 늘어가면서 (=생명의 다양성이 증가하면서) 분포 곡선은 팽창하게 된다. 그런데, "생명이 성공적으로 팽창해 나감에 따라 분포곡선은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갈 수 밖에 없다." 최소 복잡성을 의미하는 왼쪽 벽은 넘어갈 수 없고, 열린 길은 오로지 오른쪽 뿐이기 때문이다.
  • 이때, 이 분포 곡선은 왼쪽으로 치우쳐지고 오른쪽으론 얇은 손을 쭉 뻗은 것 같은 모양세가 된다. 생물계에선 복잡도가 높은 종들보다는 단순한 박테리아들이 개체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 시간이 흐르며 생물계의 다양성이 증가하면 인간과 같은 복잡성 높은 종들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그 수는 생물계 전체를 기준으로 볼때 엄청나게 적다.
  • 고도로 복잡화된 종들의 개체수가 작으므로, 이들이 생물계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즉, 고도로 복잡한 생물의 발생이란 현상을 생물계 전체의 특징으로 볼순 없다.
  • 생물계 전체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자면, 진화란 생물들이 복잡해지는 과정이라기보단 종과 개체들의 다양성이 증가해 가는 과정이라 보는 것이 옳다.
여담으로 야구/기원을 두고 엉터리 조작을 한 더블데이 기원설을 두고 믿지않았고 이걸 믿는 메이저리그와 미국 야구계를 깠다. 공교롭게도 그가 죽고나서야 메이저리그와 명예의 전당은 애브너 더블데이 기원설의 조작을 인정하고 수정했다. 버드 셀릭 같이 여전히 더블데이 기원설이 진리라고 하는 이들도 많지만.
  1. 도킨스와 굴드는 41년생 동갑이다. 참고로 이명박권영길도 41년생.
  2. 참고로 최재천 교수는 어느 강의에서 굴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깐 적이 있다. 자기만 잘난 줄 아는 사람이라 같이 있으면 유쾌하지 않다나.
  3. 사실 낳아보니 다른 종인 경우가 있기는 하다. 식물의 생식 과정에서 염색체 비분리가 일어나 배수체가 되는 경우로, 밀이나 보리 등의 분화는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4. 창조설자들은 종종 이를 왜곡하여 굴드가 진화를 부정했다는 식으로 몰아간다.
  5. 물론 굴드만이 아니라 다른 생물학자들, 적어도 진화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한 학자들은 진화를 진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6. 장대익 교수는 "좋은 책이지만 야구를 모르는 사람한테는 비추"라고 평가.
  7. 도킨스는 책 전체에 대해선 진화론에 대해 잘 설명하는 책이라고 호평했다. 다만 '진화론 설명할 땐 점잖은 양반이 야구 이야기만 나오면 왜 이래?'란 말을 덧붙였다.
  8. 도킨스는 영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