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다 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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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악당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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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에서 그의 위치를 잘 표현하는 아수라상(...) 이상한 사진들만 있는 것 같지만 다 사실.[1]

이름 : 시마다 신스케(島田紳助)
생년월일: 1956년 3월 24일생
출생지 : 교토시 미나미 구
신장 : 170cm
데뷔년도 : 1974년
소속사 : 요시모토 흥업
대표 프로그램 : 행렬이 생기는 법률 상담소[2], 퀴즈 헥사곤[3] 등.
동기 : 아카시야 산마
혼인 여부 : 기혼


일본의 유명 개그맨. 특히 MC로 유명하다.[4] 아카시야 산마와 동기이며, 시무라 켄, 타모리, 기타노 다케시 등 거물 개그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맡고 있었던 장수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오직 신스케의 진행 능력 하나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은퇴 선언 이후에는 그가 진행하던 프로그램들이 그대로 유지될지, 신스케의 빈자리는 누가 차지하게 될지에 대해 많은 추측이 있었다. 실제로 시마다 신스케가 은퇴하자 퀴즈 헥사곤과 시마다 신스케 사장의 프로듀서 대작전 같은 프로그램은 강판되었다.

신스케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엄청난 언변. 1초 만에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엄청난 순발력을 지니고 있어 애드립이 끊이지 않고 또 그게 빵빵 터진다. 시모네타에도 일가견이 있는 등 언변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사람. 시마다 신스케의 언변이 끝내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개그맨 데뷔를 스탠딩 만자이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언변을 무기로 거의 강요하다시피 하면서 웃음과 감동을 유도하려고 하고, 엄청난 언변으로 게스트의 의견을 깔아뭉개며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갔기 때문에 안티도 많은 게닌이었다.개그 스타일이 비슷한 한국 개그맨으로는 주병진이 있는데 게스트에 맞춰주기보다는 자기가 밀고나가는 진행 스타일, 일본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시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 등 유사한 점이 많다. [5]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외모도 비슷하다.

시마다 신스케는 자기가 방송에서 한 말도 수시로 뒤집고 마음에 안 드는 신인 게닌들은 무자비하게 짓밟지만 좋아하는 후배들은 대놓고 밀어주거나 방송에 나오는 여자 게스트를 눈물 흘리게 하는 등 정말 고압적인 진행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고 그가 밀어주던 여성 탤런트는 성 상납 의혹이 나돌 정도로 사생활도 좋지가 않았다. 심지어 방송에서 본인 입으로 부인과 이혼 위기가 몇번 있었고. 자랑이다. 남자의 바람기는 어쩔 수 없다는 등의 발언을 자주 하였다. 간 큰 남자여~ 다만, 출처가 없는 정보를 무조건 믿는건 금물이다. 마츠신 등의 프로에서 한 이야기 들을 들어보면 평소에 다소 다혈질이라서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닐 가능성도 존재한다.

2004년 10월 25일. 여자 매니저를 폭행, 고발당해 벌금을 물었다. 본인의 주장으로는, '돈을 버는 것'이나, '연예인을 프로듀스해서 성공시키는 것'이 재미있어서 하는거지, 돈 자체에 대한 욕심은 (이미 벌만큼 벌어서) 별로 없다고 한다. 마츠신에서는 자신을 둘러싼 소문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해명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다른 잘못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으나, 돈만 밝힌다는 이미지에 대해서는 자주 부정해 왔다. 그러나 다른 면 들을 봐 온 사람들 때문에 설득력이 없어서 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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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일본의 한 뉴스 오프닝 영상 중 캡쳐된 사진이다.

2011년 야쿠자와의 사건에 휘말려 은퇴를 발표했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시마다 신스케는 과거 도움을 받은 야쿠자(...)와 2~3회 정도 다른 사람을 통해 안부를 주고받은 일이 있고, 우연히 만났을 때 인사를 한 것이 전부여서, 본인은 '이 정도라면 OK'라고 생각했으나, 기획사에서 문제임을 들었고 그렇다면 은퇴가 맞는 것 같아 은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자숙으로 끝낼 수도 있었으나 본인의 의지로 은퇴를 선택했으며, 연관이 있던 야쿠자와 앞으로 연락하지는 않을 것이나 도움을 받은 사람의 은의로써 밖에서 마주치면 먼발치에서 고개를 숙이겠다고 당당히 말했다. 본인과 관련된 각종 의혹에 대해, 그동안은 연예인이라는 입장상 참았지만 추후로는 무조건 고소하겠다고 기자회견 중 엄포를 놓기도 했다. 기존 마츠신에서의 발언등을 보면, 돈도 쓸만큼은 있고, 은퇴도 수시로 고려를 하긴 했던 모양이다.

이 사건 때문에 닛케이 엔터테인먼트에서 발표하는 싫어하는 게닌 랭킹에 1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얻었다. 그리고 에가시라 2:50 10년 연속 1위의 독주를 막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거 좋은거냐? 물론 에가시라 2:50가 시마다와 달리 공사 구분이 철저한데다가[6] 투표 당시 도호쿠 대지진 때 봉사를 하고 개념 발언 등을 하면서 나름(?) 호감도를 산 것도 있긴 있다.

다운타운마츠모토 히토시가 고교생 시절 이 사람을 보고 감동해서 게닌이 되었다. 둘이서 진행하는 <마츠신>이라는 만담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신이라고 불릴 만한 두 사람인 만큼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하는데도 미친듯이 웃긴 최상급 퀄리티를 자랑한다. 재미있게도, 아직 마츠모토 히토시가 무명이나 다름없던 신인시절, 시마다 신스케는 다운타운의 만담을 보고 신스케 류스케로는 이길 수 없다 생각하여 콤비해산-만담은퇴를 선언하게 된다.(실제 콤비 해산 기자회견에서 다운타운을 언급했다) 이 에피소드는 서로가 좋아하는 네타로, 마츠신에서도 자주 써먹었으며 야쿠자 사건으로 은퇴를 표명할 때도, 마츠모토에게 만큼은 먼저 알렸다고 한다.

오키나와섬과 인연이 깊은 편인데, 비트 타케시와 함께 현재의 오키나와 붐을 일으킨 장본인 중 한 명이다. 이국적이면서도 푸근한 시골같은 이미지가 좋았다는 듯. 심심하면 방송에서 '이시가키 섬'이나 '미야코 섬'같은 야에야마 제도의 섬들 예찬을 늘어놓았고, 실제로 마츠신에서 처음 꿈이라고 말 했던 '이시가키 섬에서 하는 찻집'을 토무루라는 이름으로 오픈했다. 다만 이런 오키나와에서의 장사는 금전적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거주인구도 얼마 없고, 대중교통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위치들이라... 가격도 그다지 비싼 편이 아니다. 본인도 방송에서, 돈은 쓸만큼 벌었고 재미로 하는거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은퇴한 후배 개그맨들을 점장으로 앉히고 밥벌이를 만들어 주기도 하는 듯.

재능 하나는 인정할만 한 입담꾼으로, 좋게 한 은퇴가 아님에도 요시모토의 후배 게닌들이 간혹 방송에서 (주로 신스케가 진행했던 행렬이나 프로그램에서 산마가 게스트 MC로 섭외되면) 신스케를 언급하기도 한다.
  1. 전체적으로, 되도 않는 일에 쉽게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방송을 통해 도움을 주는 어린아이같은 면과, 뻔뻔하면서도 돈만 밝히는 못된 이미지가 공존하기 때문에 전자의 면마저 가식으로 치부되는 인물.
  2. <솔로몬의 선택>의 원조 프로그램.
  3. <퀴즈! 육감대결!>의 원조 프로그램. 육감대결에서의 "너 모르지?", "다알지?"는 각각 "헥사곤!", "세이프!"에 해당한다.
  4. 대한민국에서나 일본에서나 MC는 원래 희극인들이 맡는 역할이 아니었다. 타모리가 "모리타 카즈요시 아워! 웃어도 좋다고!(森田一義アワー 笑っていいとも!)>(통칭 와랏테이토모)"의 MC를 맡으면서 개그맨이 MC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처음 알렸다면, 시마다 신스케는 개그맨으로 이름을 알린 뒤 MC 쪽에서 크게 성공하면서 대중들에게 MC 역할을 맡는 개그맨을 각인시켰다.
  5. 평소 시마다 신스케는 마츠신 등의 방송에서 일본의 경제 문제나 정치에 대한 관심을 표시한 경우가 많은 게닌으로 유명했다.비록 정치계 입문설은 자주 부인했으나, 실제로 선거유세까지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방송에 게스트로 정치인이 나오면 깨갱했다. 그 예로 아소 타로 전 총리가 총리되기 전에 행렬이 생기는 법률상담소에 나왔을 때.
  6. 개그 안 할 때는 상당히 신사적이고 점잖은 사람인데다 영화평론집도 낼 정도로 의외의 면모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