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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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onism

이스라엘유대인의 새 국가를 되찾겠다는 민족주의 운동 및 그에 대한 사상이다.

1 개요

시온(Zion)이란 원래 예루살렘 시가지 내의 언덕이름으로 예루살렘, 또는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대표되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인의 땅을 의미한다. [1]

2 역사

본래 이스라엘인은 성경에 따르면 이집트 난민 출신으로서 이집트 탈출로부터 40년까지는 어떤 명분으로도 자기 땅이라는 게 없었지만, 서서히 이스라엘 땅에 기반을 잡아 국가를 수립했다. 아무튼간에, 이후 주변국에 위세를 떨치는 전성기을 맞이하기도 하고 스스로 내분으로 부침을 겪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다가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 치하의 신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했다.

그 뒤로는 바빌론 유수라고 불리는 유대인의 타향살이 생활이 시작되며, 키루스 2세(고레스 대왕)의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공격해 멸망시키고서야 압제에서 풀려나 해방된다. 그러나 과거의 패권을 회복하지는 못하고 페르시아 치하에서 자치를 허용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속령으로나마 나름대로 터 잡고 자치를 누리던 유대인들은 AD 1세기에 로마 제국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티투스 황제(당시엔 장군이었다.)에 의해 수도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추방되었는데, 이 사건 이후 유대인들은 계속 예루살렘의 회복을 희망하였다.[2]

그러나 진짜 치명적인 사건은 로마가 아니라 이슬람 제국에 의한 것이었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성전을 시작하며 아랍을 정복해 나가자 당시까지 중동에 산재하던 유대인들은 가장 먼저 반발하다 결국 처참하게 패했고 생존자들은 타지를 떠돌게 되었다. 이른바 중동전쟁의 기원인 셈이다.

이곳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졌고 멀리는 아프리카로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유럽 지역에 남았다. 유럽에서는 가톨릭정교회 할 것 없이 유대인들을 대체로 멸시하였고, 때로는 전염병같은 재앙의 근원으로 지목되어 학살되기도 하였다. 유럽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이런 탄압을 겪으면서도 신앙을 지켜나갔다.

2.1 초기 시오니즘

그런데, 19세기 민족주의 열풍이 불면서 시오니즘도 유대인 사회에서 새로운 근대적 의미를 갖게되고 드레퓌스 사건에 깃들어있는 반유대주의의 뿌리깊은 앙금을 목격한 유대계 오스트리아 기자 테오도르 헤르츨의 제창에 의해 국제 시오니즘 협회가 창설되고 당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토였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의 이주를 원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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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모세 시오니즘의 제창자인 테오도르 헤르츨. 1897년 제1차 시오니스트 총회가 열린 스위스 바젤에서 찍은 사진이다.[3]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제국, 폴란드 일대의 중부 유럽에 뿌리를 깊게 내린 유대인 좌파 노조들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착취와 제국주의적 폭압에 병든 유럽을 버리고 유대인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신천지를 개척하자'라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퍼져 1920년대 경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이민자 사회가 팔레스타인에 형성되어 현지 아랍인들, 영국 식민 당국과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당시 유대인 정치 집단 중 조직화와 이데올로기적 무장이 가장 철저 했던 집단은 중부 유럽의 유대인 분트 (Bund), 각지 사회당-공산당의 유대인 조직 등 사회주의에 깊게 심취한 좌파였고,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시오니즘 또한 원래는 좌파의 이데올로기로 시작했다. 모세스 헤스, 나흐만 쉬르킨, 베르 보로초프 등 시온주의의 초기 이론가들은 또한 동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이기도 했으며, 베를 카츠넬슨, 다비드 벤구리온, 골다 메이어 등의 많은 이스라엘 초기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들 또한 평생 뿌리 깊은 사회주의적 신념을 품고 살았다.

실제로 이들이 이스라엘 건국 이후 막장 민족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쓴 글들만 하더라도 순진한 건지, 이상이 지나친 건지 수 천년만에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가 떡 떨어지면 현지 아랍인들과 대립과 반목은 커녕 서로 서로 손 잡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평등한 이웃으로 존중하며 오순도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 희망이 넘친다. 니네민족끼리. 이러한 믿음 또한 이들이 결코 전통적인 종교적 관점에서 [4] 단순히 '우리민족끼리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땅을 차지해야겠다!' 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나름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벨 에포크의 낙관적 계몽주의에 기반하여 시오니즘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현실의 벽과 맞닥뜨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게 나름 호소력이 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단순한 병신짓 취급을 넘어 환빠에게 굳이 정치적 정체성을 부여하자면 전형적인 팽창주의적 민족주의 극우에 속하는 반면 시오니즘은 역사적 관점에서 동급으로 취급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3 충돌의 시작

문제는 팔레스타인지역은 몇십만명 아랍인들이 오랫동안 살아왔으며 그들중 일부는 추방을 당하거나 죽음(학살) 당하고[5] 유대인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들 지역 아랍인과의 충돌을 의미했다.[6]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더더욱 시오니즘에 집착하게 되었으며, 서유럽 여러 나라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방관했다는 빚과 민족자결주의, 격화되는 식민지의 독립 민족국가 수립요구 등으로, 또 소련의 경우에는 서유럽의 영향력이 막강한[7] 아랍지역에 공산국가[8]를 하나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 등등 각각의 계산에 따라 유대인 국가가 성립하는 것을 찬성했다.

1948년 UN의 분리독립안에 따라 이스라엘의 건국이 선포됨과 동시에 주변 아랍국가들은 일제히 이스라엘에 선전포고 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는데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아랍계 팔레스타인인들이 추방되고 주변 아랍국가에서는 유대인들이 추방되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결론적으로는 그 사상은 팔레스타인 고통의 원인이라고 볼수있다.[9]

전쟁 이전부터 약 1년간 무기 금수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 영국령 팔레스타인 식민지 내에는 소화기 이상의 무기는 없는 상태로 주변 아랍국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아랍계가 유리했지만 유대계는 2차대전 중 영국이 롬멜을 상대하기 위해 예비로 모병해둔 부대 출신자와 유럽 각국에서 군경력을 쌓은 전역자들이 있어서 조직력 면에서는 우수했다.

1차 중동전이 시작되면서 신생 이스라엘은 미리 수입해둔 공작기계로 간단한 무기를 생산하는 한편, 유럽과 미국 등지에 특사를 파견해 기부금을 모았고[10] 그 돈으로 2차대전 이후 처리에 고심하고 있던 구형 무기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해 전쟁 초기에는 기갑 차량이나 공군력이 거의 전무하던 상황에서 후기에는 체코에서 전투기 등을 수입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력 격차를 메꾸는 데 성공했다.[11]

결국 아랍계는 우세한 무기와 전력체계[12]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의 이권다툼[13]때문에 참패하고 말았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떡실신되고 결국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14][15] 더이상 반 이스라엘 정책을 펴지 않는다. 시리아는 아직도 적대관계이나 전략적 요충지인 골란 고원을 빼앗기고 그저 바라만 보고있는 수밖에 없다. 아니 시리아같은 경우는 서로 국경에서 포격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리아로선 이대로 평화적으로 대충 놔두는 분위기(물론 골란 고원은 포기 안 하지만)였는데 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서 발생한 시리아 내전으로 더 엉망이 되면서 이스라엘에선 독재자 아사드 일가가 무너질 경우 호스니 무바라크 실각 직후의 이집트 꼴이 나지 않을까 우려중이다. 나중에는 어쨌거나 팔레스타인의 고통과 그들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담 후세인 시절에는 요르단을 사이에 두고 이라크와 이스라엘은 으르렁거렸지만,[16] 걸프 전쟁 이후 미국한테 실컷 얻어맞은 이라크가 너무나 약체화되어 이스라엘은 한시름 놓는가 했는데(...)

아랍 민족이 아니라서[17] 같은 친미국인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았던 이란은 혁명 이후 이슬람 세력이 집권한 후 외교 방침을 180도 돌려 반미-반이스라엘 정책을 펼친다. 호메이니는 이슬람 영토를 점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스라엘을 "악마 제국"으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없애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되찾아주는 것을 국가적 사명으로 삼았다. 그 뒤를 이은 이란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정책을 펴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현재 이스라엘과 이란은 서로를 제1의 가상 적국으로 삼고 있다. 물론 이란과 이스라엘이 직접적으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요르단과 이라크가 양국 사이에 있기 때문에 희박하다. 특히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는게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짓이라서 이란으로서는 더욱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할수가 없는 상황.

그러나 어쨌든 이란-이스라엘의 갈등은 심각한 편. 이란의 핵 개발도 사실상 핵 보유국인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 만약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이란을 폭격할 경우에는 정말로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헬게이트가 열릴지도 모른다. 물론 핵 협정 타결로 이란이 핵포기를 함에 따라 핵전쟁은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란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적으로 생각하기에 핵전쟁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전쟁의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집트에서 2011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몰락하면서 이스라엘에겐 잠시 비상이 걸렸다. 8,000만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아랍권에서 정보 및 여러 모로 중요한 나라이자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고 친미 국가가 되면서 미국제 무기를 도입하던 이집트가 단기간에 친미 독재자를 잃은 셈. 2012년 시점에서는 군부는 아직도 무시 못하나 여론은 반군부에 무슬림 형제단을 지지하고 1차 총선에서도 이들이 압승을 거두는 통에 이스라엘로선 30년 넘도록 평화를 유지한 이집트와 충돌도 염려해야 할 판국...일 줄 알았으나, 1년도 못 가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집권하던 무슬림 형제단이 개박살나면서 유야무야된 듯. 새로 집권한 엘시시 정부는 내부문제와 이슬람 무장단체들에만 신경쓰며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고 있다.

4 대이스라엘주의

이스라엘 극우파[18]들의 주장. 이들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땅은 나일 강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모든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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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내 강역을 봐줘 어떻게 생각해? 크고 아름답습니다.
3000년 전 이스라엘의 전성기였던 다윗왕 때 유대 왕국의 영토가 그 정도였다고 성경에 언급된다고 한다. 이는 레바논(400만), 시리아(2400만), 요르단(640만) 전 영토와 이라크(2800만) 반절 이상을 합친 범위인데 대충 현재 이스라엘 면적의 25배 정도? 덕분에 1982년 이집트에게 시나이 반도를 반환할 때 극우파의 반발이 극심했다. 심지어 극우 민병대들이 시나이에 또 다른 이스라엘을 건국하겠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시나이 지역을 돌려준 가장 큰 까닭은 도무지 자기들로선 여길 지배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내 지식인, 전문가들도 이스라엘 극우 환빠들의 엉터리 주장 영토는 설령 전쟁을 통해 차지한다 해도 계속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의견을 모은다. 팔레스타인조차 관리하지 못하는 6백만 수준 이스라엘 인구로[19] 현재 인구 6천만이 넘는 저 지역을 지배한다? 절대로 불가능하다.아 물론 전 이스라엘 국민들이 총을 잡고 나서면 이길수 있다! 다만 10:1 교환비로 이긴 후 국민들이 0명으로 된다는게 문제지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영토에 관한 부분은 당연히 엄청난 과장이 섞인 기록이다. 실제로는 아무리 크게 잡아야

[1]

이정도 크기였다. 이게 사울왕과 다윗왕의 시절 최전성기였던 이스라엘 왕국의 최대 영토. 그저 현재 이스라엘 영토보다 조금 큰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 그 시기에 저영토를 가진 국가가 있었다. 다만 주인이 전혀 다른 민족이라 그렇지

그런데 이걸로도 부족한지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쿠웨이트 영토 상당수에 터키이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일부, 거기에 아예 키프로스 전역까지 지들 땅이라며 갈수록 그 억지가 늘어나고 있다...[20] 위 아 더 월드 여기 포함하면 사우디아라비아(인구 2700만)와 이집트 상당 부분에서 이젠 쿠웨이트땅 통째로에 터키이란 땅 일부까지 무려 3억 3천만이 넘는 인구(참고로 터키(7500만)와 이란(7600만), 이집트(8100만),겨우 이 3나라 인구만 합쳐도 2억 3천만은 거뜬히 넘어간다!)를 지배하겠다고 나서는 셈. 정말 이런 게 이뤄지면 본격 이스라엘 헬게이트 성립. 아니 정말 이스라엘이 저런다고 무력을 동원하다간 세계대전급 전쟁이 벌어질테고 이스라엘은 정말로 확실하게 멸망한다. 특히 물주인 미국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미국은 이란을 제외하곤 이 국가들과 적대하지않는데 이스라엘에 군대 파견과 같은 직접적인 도움을 줄리가 없다.[21]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집트와 전쟁하는 이스라엘을 뒤에서 보며 한숨쉬며 그 뒷감당해야할거 생각하면서 주름이 팍팍 생길 미국을 볼수있을듯

단지 인구가 많아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나 종전 중동전쟁과 차원이 다른 전쟁이 된다. 이집트만 해도 아랍 지역에서 군사강국이며 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승리를 거뒀고[22] 이후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으로 미국제 무기를 상당히 들여와 무장했다. 게다가 심심하면 터지는 이슬람 과격파 토벌 및 수단과 리비아와 국경분쟁으로 실전경험도 틈틈히 쌓았다. 거기에 역시 상당한 군사강국인 터키만 해도... 거기에 키프로스까지 먹는다고 이스라엘이 개기다간 키프로스를 자기땅으로 여기는 그리스가 분노할 것이 뻔하며 터키랑 그리스는 NATO 가입국이다... 이스라엘이 개털리지 않아도 그 피해는 종전 전쟁과 차원이 다른 피해를 입은 게 뻔하다. 그리고 사실 저정도 전력차이면 당연히 이스라엘이 개털릴수밖에 없다. 적어도 이승에서 히브리어 듣기 힘든 세상이 될거라는건 확실하다.(...)진짜로 일어나면 나토의 이름으로 터키와 그리스를 때리는 미국 응?

그럼에도 저게 가능하다고 믿는 시오니즘 광신도들도 있는데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영국이 이보다 훨씬 넓은 인도에서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로 가졌으며 야,적어도 영국은 식민지는 옛날부터 우리땅이니 정당한 땅먹기라고 안했다.정당하다고 했는데? 자기들이 식민지를 구원해주네 이런 꼴깝을떨면서영국보다 훨씬 작은 나라인 네덜란드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가졌다느니 이런 경우가 얼마든지 있으니 전혀 불가능하지 않는다고 망상에 젖어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개소리 중 개소리. 영국이 인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건 그 인도가 지금의 인도 공화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 영국조차도 인도 대륙에 있던 원래 크고 작게 나뉘어진 많은 나라들을 다먹는데 200년이 걸렸다는 건 생각도 못한다. 이들이 서로 남남이었다가 영국에 따로국밥으로 싸우거나 아니면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느냐 멸망했던 것도 모르는 듯. 인도네시아 또한 네덜란드가 1602년에 단숨에 식민지로 먹은 게 아니며 1602년부터 1904년까지 무려 302년에 걸쳐 여러 나라이던 인도네시아 섬나라들을 하나하나 개고생하며 차지한 것이다. 거기에 국제여론도 당시 백인의 의무 등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행위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과연 그럴까? 그 대영제국이 인도점령에 200년이 걸렸으면 이스라엘의 땅찾기운동은 2만년쯤?

그런데 우습게도 이스라엘 리라 동전에 새긴 지도가 이스라엘 땅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위에 열거된 나라들 지도까지 새겨져 있다. 즉 돈에도 이런 짓거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었다. 이 엄청난 패기를 높이 사줘야하나(...) 덕분에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항의를 했음에도 배째라모드. 다만 2014년 현재 이 동전은 쓰여지지 않는다. 2012년 여행자들이나 책자에서도 현지에서 봤다고 증언하는게 나온 걸 보면 하두 주변 나라들의 비난에 일단 안 쓰는 모양이다.

4.1 반론

위 문단의 내용은 좀 어폐가 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도 음모론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을 당연한 사실인 양 기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오니즘을 비판하는 입장에선 그럴싸해 보이긴 하지만,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 음모론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도, 사실만 두고 보자면 이스라엘과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인 팔레스타인의 예서 아라파트 대통령이 그렇다고 주장한 것이 시초이며, 당연히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했다. 이스라엘 측의 말로는 'Mattathias Antigonus II' 치세하의 금화 유물의 외형을 따라 그린 것 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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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해당 도안은 이스라엘 중앙은행의 마크이기도 하다. 우측과 상단이 많이 갈려나갔지만, 좌측 하단의 톱니바퀴 모양으로 난 자국은 이 모양이 동전을 본뜬 것이라는 이스라엘 측의 해명에 무게를 실어준다.

yx51bab7b8.gif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Greater Israel" 지도의 예 1. 자세히 보면 시나이반도-이스라엘로 이어지는 지중해 해안선이 맞지도 않으며, 홍해를 어중간하게 가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지도라며?

BankofIsrael_zps1e594f43.jpg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Greater Israel" 지도의 예 2(...). 이쯤되면 이스라엘이 그냥 싫은거다

4.2 재반론

다만 모든 게 음모론이 아닌데 위에서처럼 지나치게 이스라엘 까는 조작도 있지만 실제로 일부 유태인을 직접 만나서 듣어본 이야기보면 이웃 나라가 예전 이스라엘 땅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든지 점차 우경화되는 이스라엘을 보면 죄다 음모론만도 아니다.. 이런 식이면 환빠도 음모론이라고 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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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히브리어로 주장하는 걸 봐도 무조건 음모론만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여기에 실제로 하레디같은 답이 없는 이스라엘판 일베같은것들은 얼마든지 이런 주장을 한다. 거기다 이들이 많이 낳는 전략으로 점차 이들 입지가 커지는 이스라엘의 현 상황을 보면 그저 반유대주의 조작이니 음모론으로 깔 일도 아니다.애초에 이렇게 음모론이라고만 치부하고 물타기 하며 시오니즘의 우경화를 덮으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 당사자인 이스라엘 극우나 하레디라면 이런 언플을 하려고 들겠지만

5 아랍에서의 시오니즘

당연히 말이 필요없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시오니즘 자체가 유대인과 유대교를 찬양하는 주의이자 잃어버린 유대국의 영토를 수복한다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제외한 아랍 대부분은 이 시오니즘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통적인 이슬람 율법을 통해서 시오니즘 찬양을 금지하고 있고 그 외 다른 아랍국가들도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시오니즘에 대해서 적시하거나 불온적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

특히 이스라엘 주변국인 레바논, 시리아 등 이슬람교 국가 입장에서는 자기네 영토가 포함되어 있는 것 때문에 더욱 시오니즘에 대한 혐오성향이 짙다. 그것도 이슬람교가 아닌 유대국의 영토라는 점 때문에.

6 관련 항목

시오니즘을 반대하는 유대교 종파 및 단체들도 있다. 이들은 시오니즘은 유대교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다. 비유대인 반 시오니스트들과 논리를 같이 하는 세속적 유대인들의 반시오니즘은 논외로 치고 유대교 자체의 종교적 관점, 즉 굳이 말하자면 보수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신이 유대인들을 나라 없는 떠돌이 민족으로 지냈던 것은 하느님의 뜻이었다'라며 유대 민족의 구원은 신이 보낸 메시아에 의해 이루어 져야지 인간의 손으로, 그것도 원쑤인 세속주의자 좌파들이 새운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인간이 하느님 흉내를 내려는 신성모독이란 관점이다. 이들의 일부인 네투레이 카르타의 웹사이트.
  • 문화적 시오니즘
시오니즘의 발흥과 언어면에서 히브리어만 써야한다는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의 운동으로 이디시어는 '오염'된 언어 취급받아 명맥만 이을 정도다.
  • 읽을거리
이스라엘 정보국 전 국장과의 인터뷰 (슈피겔)
  1. 다른의미로는 천국을 지칭하기도 한다.
  2.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것이지 이스라엘에서 쫓겨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티투스 이후에도 로마제국이 유지되는 동안 유대인들은 정치, 문화적 중심지가 북부로 이동하기는 했지만 오늘날의 이스라엘 지역에 살고 있었다.
  3. 참고로 헤르츨은 7년 후인 1904년 44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스라엘의 건국은 44년 후에 이루어졌다. 그의 유해는 1949년부터 이스라엘로 이장되었다.
  4. 사실 전통적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게, 시오니즘을 일반적인 민족 국가의 내셔널리즘의 땅이 없는 유대인 버전으로 보자면, 종교적인 우파의 관점에서 유대인 민족 국가를 얘기하기 시작 한 것은 이들보다 한 박자 늦게 활동을 시작한 블라디미르 야보틴스키가 소위 말하는 '수정 시오니즘'을 주장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만 하더라도 다수의 이민자들이 1차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굉장히 화려한 문화적, 지적 발달을 영유했던 중부 유럽의 유대인들이여서 이런 고지식하고 단순무식한 민족주의보다 보편적이고 세련된 좌파 시오니즘을 선호했으나, 6일 전쟁을 기점으로 근대적 이데올로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중동의 유대인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 좌파는 무너지고 우익이 등극하게 된 것이다
  5. 아랍에 동화된 유대인들의 후손이라는 말도 많다.사실 아랍인들 자체가 이집트인과 베르베르인, 시리아인, 메소포타미아인들을 흡수해서 형성된 종족이라는걸 생각해보면 타당성은 있다.
  6. 초기에는 유대인 사회의 설립이 반드시 팔레스타인과의 대척을 의미하지만은 않았다.
  7. 지금의 상황과는 매우 달라서 당시에는 이집트나 시리아, 이라크와 요르단 등의 왕가가 친서구적 성격이 강했다.
  8. 이것도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이스라엘 건국 이후 오랫동안 제1당이 노동당이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집단농장들이 공산주의적 이상주의자들의 흔적.
  9. 그래서 아랍국가들은 1차 중동전을 알 나크바, 대재앙이라고 부른다.
  10. 이때 미국에 파견되었던 사람이 나중에 이스라엘 최초의 여수상이 된 골다 메이어.
  11. 이때 체코에서 Bf-109를 수입하다 보니 이집트군이 사용하는 스피트파이어와 묘한 공중전을 치르기도 했다.
  12. 특히 요르단 군은 영국군의 지도를 받아 아랍군단이라고 불리며 아랍계 최정예로 불리는 서구식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13. 자국 이득도 있거니와 내부 갈등도 컸다. 1차 중동전쟁 끝나고 겨우 3년만에 이집트 파루크 왕가가 쿠데타로 무너진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14. 심지어는 이스라엘의 요구에 응해 자국 내의 팔레스타인인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그래서 분노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게 총리가 암살당하는 사건까지 터졌다.
  15. 또 다른 의미로는 당시 팔레스타인을 지도하던 PLO가 입헌군주국인 요르단에서 지나치게 세력을 확대했기 때문에 입지를 안정시키기 위해 숙청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PLO는 요르단을 떠나 레바논으로, 다시 레바논에서 리비아로 본부를 옮겨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참고.
  16. 1981년에는 이스라엘 공군이 이라크에 있는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하기도 했다. 원자로는 타격을 받았지만 목표로 하던 완전 파괴는 실패했고 결국 걸프 전쟁 때서야 미군이 엄청나게 폭격하여 비로소 완전히 파괴했다.
  17. 이란은 페르시아 민족이며 아랍인과는 언어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전혀 다르다. 나름 아랍인에 비해 더 문화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고 이란의 환빠들은 아랍 주변 나라들이 과거 페르시아 제국 땅이라고 자부하는 게 비슷하다. 다만 환빠와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게, 이들이 주장하는 페르시아 제국은 실존했던 강대국이었다. 환국과는 다르다! 환국과는!
  18. 세속주의자도 있고 하레디도 있는데 최근 그 세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
  19. 이스라엘 현재 인구인 8백만에서 아랍인을 빼고 이스라엘 내의 유대인만을 계산한 수다.
  20. 김어준<건투를 빈다>에서 남한 절반도 안되는(...) 작은 나라를 대제국으로 뻥치는게, 환단고기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깠던 적이 있다.
  21. 당장에 이스라엘에 미군을 주둔시키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22. 물론 후반에 미국의 도움을 받은 이스라엘한테 역관광당해 물러나야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