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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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안지만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 No.15
신용운(申龍雲 / Yong-un Shin)
생년월일1983년 9월 8일
신체180cm, 72kg
출신지전라북도 전주시
학력전주진북초 - 전주동중 - 전주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2년 2차지명 1라운드 (전체 5번, KIA)
소속팀KIA 타이거즈 (2002~2011)
삼성 라이온즈 (2012~ )
등장곡유정석- 질풍가도
KIA 타이거즈 등번호 49번
게리 레스(2001)신용운(2002~2003)마해영(2004~2005)
KIA 타이거즈 등번호 41번
박창열(2003)신용운(2004)김희걸(2005~2006)
KIA 타이거즈 등번호 37번
최향남(2004)신용운(2005)조경환(2006)
KIA 타이거즈 등번호 19번
이강철(2001~2005)신용운(2006~2007)손영민(2008~2009)
KIA 타이거즈 등번호 19번
손영민(2008~2009)신용운(2010~2011)손영민(201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5번
박화랑(2010~2011)신용운(2012~ )현역
오늘 던지고, 내일 던질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런 하루가 조금 더 이어지기만 바라고 있다.

ㅡ 기나긴 재활의 끝, 2110일 만의 승리 후 인터뷰에서인터뷰 기사 원문

1 소개

삼성 라이온즈의 사이드암 투수. 그리고 타이거즈 투수혹사 역사의 피해자[1]중 한 명.

사이드암 투수지만, 한때는 150km 안팎의 강속구로 윽박지르는 타입의 투수였다.[2]

2 선수 생활

2.1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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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시절 투구 모습.마해영?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KIA 타이거즈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루키 시즌부터 불펜 투수로 뛰다가 2003년 불펜의 핵으로 자리매김, 11승을 거두며 활약했다. 이 때의 활약을 담보로 연봉도 엄청나게 상승.

2004년에는 팀 사정상 마무리도 맡으며 전천후로 뛰었으나, 하필이면 당시 감독었던 김성한 감독은 위기 상황이다 싶으면 선발 투수를 내리고 바로 신용운을 투입하는 경기 운영을 주로 했다. 이것은 2003시즌 당시 마무리였던 진필중과 다른 불펜 투수들의 잦은 방화로 인한 투수 운용이기도 했지만, 이 때문에 혹사 문제가 불거져 나오게 되었다.

게다가 신용운 본인에게 충공깽이었던 사건을 하나 소개하자면, 그 유명한(!) 대구에서 벌어진 2005년 4월 30일 경기. 당시 팀이 5:4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는데 2아웃 상황이었기에 경기는 이대로 끝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양준혁의 타구를 김종국의 송구 에러를 일루수 장성호가 놓친 게 빌미가 되었고 곧이어 터진 심정수의 타구를 심재학이 열심히 쫓아갔지만 놓치면서 6:5로 끝내기 역전패를 당하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었다. (역전패를 당하고 신용운이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모습이 인상 깊었다.) 본인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굴욕. 결국, 이 경기 이후 팔꿈치 수술을 받게 되었다.[3][4]

팔꿈치 수술을 받은 이후 팔 각도를 약간 올려서 변칙 쓰리쿼터 투구폼으로 수정했다. 재활 후 2006시즌 중반에 복귀했는데 복귀 후에는 선발에서 제 몫을 못 하고 불펜으로 내려와 불펜에서 밥값을 하던 한기주와 승리 조를 구축, 당시 KIA 팬들에게 신한카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2007시즌 암운이 드리우는데, 당시 팀은 김진우, 전병두 등 주축 투수들의 부상 이탈과 더불어 상당한 엇박자를 내고 있었는데, 신용운 본인은 불펜에서 제 몫을 하며 한때 구원승으로만 다승 선두로 치고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뛰던 최희섭이 국내 복귀를 선언하며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면서부터 팀의 포지션 연쇄 이동이 벌어지고 말았다. 최희섭의 영입과 더불어 외국인 타자였던 래리 서튼을 퇴출시켰고, 그 자리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불펜 투수로 뛰던 펠릭스 로드리게스를 영입했던 것. 더불어 이때 장성호도 외야로 나가는 빈도가 잦아졌다.

그런데 골 때리는 일이 하나 더 생기고 말았다. 정재공 단장이 직접 가서 영입해 온 펠릭스 로드리게스가 선발로는 죽어도 뛰지 않겠다고 한 것. 션 헨처럼 뭐 본인이 애초에 메이저리그에서도 불펜으로 뛰던 선수이기도 하니 당연히 선발로 뛰면 힘들겠지만, 선발이 붕괴하였는데 중간계투가 문제인가? 결국 서정환 감독은 신용운을 선발 로테이션에 집어넣었고 이것은 팀이나 신용운 본인이나 재앙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선발 투수로 전업하기 전 신용운은 구원승으로만 6승에 평균자책점 2점대 초반의 준수한 활약을 보였으나, 선발로는 전혀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탓에 선발 투수로 전업한 9경기에서 단 1승만 거두고 선발로 뛴 기간에만 평균자책점이 5점대 중반을 넘어서는 등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 애초에 선발투수를 데리고 오던가 신용운을 불펜으로 내버려뒀어야 했는데 기껏 용병 슬롯이 하나 남는 곳에 중간계투 용병을 데려오고 선발 체질이 아닌 선수를 선발로 돌렸다가 이런 끔찍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결국 2007시즌을 제대로 말아먹고 베이징 올림픽 최종 목록에 드는 데 실패했으며, KIA팀도 결국 해태 시절을 포함하여 두 번째 최하위를 기록하는 굴욕을 맛봤다. 신용운은 이에 대한 불만 표시로 자신의 싸이 미니홈피에 직접 서정환 감독을 비방하는 문구를 써넣었다.(혐오 주의) 본격 갸갤의 꾸준글. 앞의 제목을 유심히 잘 관찰하면 사계절이 바뀌고 있다![5] 그리고 그 해 말 서정환 감독은 시즌 중에 영입한 조범현 배터리 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사퇴했다.

후임 감독으로 취임한 조범현 감독은 신용운에게 1년만 더 뛰자고 권유를 했다. 하지만 김성한-서정환으로 이어져 오는 혹사에 지쳐 버린 신용운은 입대를 원했고 결국 경찰청으로 들어가 군 복무를 시작했다.

2010시즌을 맞아 기아 팬들은 신용운이 제대하여 팀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워낙 입대 전부터 몸이 망가져 있던 모양인지 팀 자체적으로 만든 3군에서 몸 밸런스를 잡고 2군에서 뛰었으나 2010년 5월 2일 상무와의 2군 경기에서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6피안타 7실점(1피홈런)으로 부진, 기아 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제구고 구위고 전성기 시절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고 하며, 유승안 경찰청 감독은 경찰청 동기이자 팀 동료인 사이드암 차정민의 구위가 더 낫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본인도 크게 실망했다 카더라. 이후로 3군에서 훈련에만 매진했다.

2011년 4월 5일 복귀, 아킬리노 로페즈의 뒤를 이어 1이닝 2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하지만 1군에서는 4경기만 등판하고 다시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다. 9월에 팔꿈치 재수술을 받았다.

결국 그 해 11월 22일에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어, 질곡 많던 10년 동안의 KIA 타이거즈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암흑기의 KIA를 지탱하면서 희생당한 비운의 선수이며, KIA에 굉장히 아픈 손가락이다.[6][7]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순 없겠지만 재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삼성 라이온즈로 떠나게 되었으니 재활에 성공해서 부활하기를 많은 팬도 바랐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11년 11월 22일에 시행된 2차 드래프트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었다. 부상 경력이 있는 신용운을 재활시켜 내년이나 내후년에 기용할 생각으로 지명했다고 했으며, 류중일 감독은 지명이 끝나기 무섭게 신용운을 당장 STC에 입소시키라고 지시했다. 삼성은 국내 최고의 재활훈련 시설을 구비하고 있는 삼성트레이닝센터(STC)를 갖추고 있으며, 이미 삼성에서는 신용운처럼 팔꿈치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던 사이드암 투수를 성공적으로 재활, 복귀시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STC에 입소해 재활했다. # 그래서 이적한 첫해에는 재활에 몰두했다.

2012년 8월 29일에 올라온 기사에 의하면 재활은 순조롭게 진행된 듯하다. 반드시 재기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2.2.1 2013 시즌

그간의 재활이 헛되지 않았는지 140km대의 공을 던지며 재기에 성공, 삼성 라이온즈의 추격조 불펜으로 낙점받았다. 그리고 친정 팀을 상대로 이적 후 첫 승을 거두었고, 삼성의 옆구리 불펜이었던 권오준이 또 한 번 토미 존 수술을 받아 자리를 비우면서 심창민과 함께 그 자리를 잘 메워 주었다. 그리고 데뷔 첫 한국시리즈에 출전하게 되었고, 팀이 V7, 통합 3연패, 그리고 1승 3패 뒤 3연승으로 4승 3패 역전 우승이란 대기록을 장식하며 본인도 그토록 소원이던 첫 우승 반지를 끼는 영예를 안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2.2.2 2014 시즌

그러나 첫 우승의 기쁨도 잠시, 다시 팔꿈치 통증을 느껴서 검사를 받은 결과 뼛조각이 발견되어 2013년 12월 27일에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거기에다가 12월 31일에는 재수술까지 받았다고.... 본인은 여러 차례 전신마취와 수술을 받아 봤기 때문에 별 느낌은 없었다고 한다.[8] 2014년 1월 17일부터 STC에 입소해 재활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한다. 복귀 시기는 후반기로 잡았다고 한다. 다만 또 수술을 받았다는 점 때문에 일부 팬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결국 1군은커녕 2군 경기에도 등판하지 못했다.

2.2.3 2015 시즌

무사히 수술과 재활을 마치고 개막전부터 1군에 합류, 2013년처럼 불펜의 한 축을 든든히 맡아주었다.

5월 28일 넥센전에서 6회 2사 1루 상황에서 등판해 아웃카운트를 한 개도 못 잡고 볼넷과 몸에 맞는 공으로 만루를 만든 다음 박동원에게 만루 홈런을 맞으면서 강판됐다. 다음날인 5월 29일 1군 엔트리에서 빠지고 대신 조현근이 올라왔다.

2군에서는 주로 마무리로 등판하면서 비교적 호투했으나, 6월 4일 경찰전에서 4점 앞선 9회에 등판해 5실점을 하면서 어이 없는 역전패를 허용하기도 했다. 6월 11일 이상훈 대신 1군에 다시 올라왔는데, 이미 사이드암 투수가 3명이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신용운을 다시 올려야 했냐는 반응이 있었다.

5월 이후 급격하게 무너져 6월 25일 기준으로 ERA가 6.11이나 된다. 하지만 팀에 그렇게 많던 사이드암이 한 명은 마무리로 고정돼 있고, 한 명은 부상으로 2군에 있으며, 한 명은 신용운과 다를바 없이 부진해 여전히 1군에서 던지고 있다. 당연히 필승조에선 제외되어 4점차 이상에서 던지는 추격조 내지 패전조가 되었다. 7월 5일 복귀한 장원삼을 대신해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7월 23일 조현근과 함께 1군에 복귀했다. 7월 24일 한화전에서 9회초에 등판했는데 6점이나 앞선 상황이었음에도 아웃카운트 1개 잡는 동안 피안타 1개와 볼넷 2개로 1실점을 하면서 조현근으로 교체됐다. 이후로는 등판이 없다가 갑상선 수술로 인한 체력 저하 때문에 7월 31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후 류중일 감독의 지시로 BB아크행. BB아크에서 훈련을 받은 3인방 중 9월 1일 한화 2군과의 경기에서 가장 나은 모습을 보여[9], 9월 2일 1군에 올라왔다.

이번 시즌에는 부진했으나 도박논란으로 마무리 투수인 임창용과 홀드왕 안지만이 이탈하면서 약화된 불펜진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2.2.4 2016 시즌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1군 전지훈련이 아닌 2군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시범경기에도 등판하지 못하면서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4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 결장했지만 8월 이후로는 꾸준히 경기에 나왔고 9월 1일 엔트리가 확대되면서 시즌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왔다.

팔꿈치 통증으로 등판을 못했던지라, 원포인트 릴리프식으로 짧게 한두 타자만 상대하고 교체된 적이 많았다.

3 이야깃거리

최형우와는 초중고교 동기로 계속 배터리를 이뤘으며 전주고 시절에는 신용운이 3번, 최형우가 4번 타자로 나섰다. 하지만 동기 이상으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며, 최형우의 말로는 프로에 입단한 후 서먹서먹해졌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한 게 신용운은 KIA 타이거즈 입단 후 계속 1군에 있었던 반면 최형우는 중간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경찰 야구단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제대한 후 2008년이 되어서야 1군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해 프로에서 서로 얼굴을 볼 일이 적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형우가 제대 후 신인왕을 먹었을 때 신용운은 경찰청에서 군 복무 중이었다. 그래도 신용운이 삼성으로 이적한 후 최형우가 옷도 벗겨주고 신용운이 최형우의 팔꿈치 재활을 책임져준다고 했다는 등의 일화를 보면 다시 친해진 듯하다.

경찰청에 있었을 때 이재곤에게 싱커를 가르쳐 줬다고 한다. 이 덕분에 이재곤은 전역 후 롯데 자이언츠 데뷔 후 처음으로 1군으로 올라와 맞이한 첫 시즌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할 수 있었고 언론에서도 촉망받는 젊은 선수가 되었다. 롯데 팬들이 이를 알게 된 것은 최악의 투코께서 인터뷰에서 이재곤을 자기가 키운 것 마냥 자화자찬을 늘어놓자 분개한 한 팬이 까기 위해 신용운이 키웠다는 사실을 여기저기 힘써서 퍼뜨렸기 때문.
ㅇㅋ
2013년 5월부터 안지만이랑 같은 집에서 살고있다고 한다. 경산에서 사는게 당연하지만 힘들긴 했던듯.#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2KIA 타이거즈283820003.55331530
2003701191134113.631114496
20044356⅓421102.08432843
20054161⅓46743.08563531
20061837⅔40020.7225817
20074099810064.731074048
2008군 복무(경찰 야구단)
2009
20101군 기록 없음
201145⅓00001.69253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12삼성 라이온즈1군 기록 없음
2013444020022.03261636
20141군 기록 없음
20153525⅔11027.01351822
201613800023.381277
통산336490⅓362222293.40450218333
  1. 한기주이상화, 윤석민 등등...
  2. 당장 현재(2013~15)에도 140대 초중반을 마크하며,평균은 140대 초반.
  3. 어느 정도였냐면 팔꿈치가 아파서 울고 있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찍힐 정도였다.
  4. 참고로 신용운은 바로 전날이었던 2005년 4월 29일에도 끝내기 안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되었는데 이날도 끝내기 안타를 맞음으로서 이틀 연속 패전투수가 되는 불운을 겪게 된다. 참고로 4월 29일 끝내기 안타를 친 선수는 박석민. 끝내기 홈런을 단일 투수로는 2경기 연속으로 얻어맞고 패전투수가 된 홍상삼이 대응된다.
  5. 수술로 팔꿈치의 살을 절개한 모습의 사진이 있다. 사람에 따라 혐짤로 보일 수 있으니 주의 요망. 참고로 저 사진은 본인의 미니홈피에 올라왔던 사진이었다. 기아 팬들은 왜 저려나면서 경악했다고...
  6. 김성한, 서정환 감독이 지금까지도 혹사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욕을 얻어먹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한기주, 윤석민도 이 시절 많이 굴렀다. 결과는 한기주는 수술(고교 때부터 혹사를 많이 당하긴 했다), 윤석민은 아킬레스건 부상.
  7. 참고 : 신용운 혹사 일지. # 한마디로 충공깽
  8. 2013년 5월부터 같이 살고 있던 사람들 셋이 같이 병실에 있어줬다고 한다.그중 하나가 힙합맨 안지만이였다고.
  9. 신용운은 삼진 2개를 잡는 등 공 9개만으로 1이닝을 퍼펙트로 막았다. 반면 백정현은 1이닝 1피안타 1삼진 2볼넷 1실점, 김현우는 1이닝 3피안타 2삼진 1볼넷 3실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