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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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SK 와이번스로 이적 직후에 찍은 사진.[1] 유니폼만 보면 채병용인데

이름신윤호(申潤浩 / Yoon-ho Sin)
생년월일1975년 5월 15일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서울청구초 - 충암중 - 충암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4년 고졸우선지명(LG 트윈스)
소속팀LG 트윈스(1994 ~ 2008)
SK 와이번스(2008, 2014)

2001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임선동
(현대 유니콘스)
신윤호
(LG 트윈스)
송진우
(한화 이글스)
2001년 한국프로야구 구원왕
진필중
(두산 베어스)
신윤호
(LG 트윈스)
조용준
(현대 유니콘스)
2001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정민태
임선동
김수경(현대 유니콘스)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신윤호
(LG 트윈스)
마크 키퍼
(KIA 타이거즈)
2001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송진우
(한화 이글스)
발비노 갈베스
(삼성 라이온즈)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신윤호
(LG 트윈스)
김현욱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등번호 26번
김동재 (1989~1993)신윤호 (1994~1996)장문석 (1997~2005)
LG 트윈스 등번호 87번
신윤호(1997~1998)송구홍(2010~2013)
LG 트윈스 등번호 16번
앤더슨(1998)신윤호 (1999~2007)이재영(2008~2010)
SK 와이번스 등번호 32번
장재중(2007)신윤호 (2008)박윤(2010)
SK 와이번스 등번호 30번
신정익(2011~2013)신윤호 (2014)오수호(2015~)

1 소개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소속의 야구 선수.

2 선수 시절 1기

충암고 시절 주형광과 함께 고교 야구계의 좌우 쌍두마차라고 불리며 엄청난 기대를 받던 역대급 유망주였다. 고졸 신인으로써는 사상 최초로 총액 1억 원대(계약금 8,800만 원+연봉 1,200만 원)의 몸값을 받았던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정작 데뷔 후에는 구리 2군 숙소에서 축구 팀 버스와 승용차를 두들겨 부수고 다니는 등의 기행[2](…)과 불성실한 연습 태도로 인해 고교 때의 명성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다. 당시 LG 구단의 기대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1995년 마이너리그로 진출한 이상훈에 딸려서 미국 연수를 1년 간 보내 줬을 정도였다. 그러나 신윤호의 실패로 인해 LG는 고졸투수들의 무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인식을 얻기도 했다.

1996년 말 현역으로 입대하여 철원군에서 복무했지만, 허리를 다쳐 의병 제대했다. 2001년이광은 감독이 경질되고 김성근 수석코치가 1군 감독 대행으로 선임된 이후 집중적인 조련을 받고 기량이 급상승하여, 1군 70경기(2위)(선발은 4경기) 144⅓이닝 15승 6패 18세이브(4위) 32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점 3.12(2위)라는 엄청난 활약을 했다.[3] 이 활약으로 신윤호는 손민한과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으며 다승, 구원, 승률 1위를 하여 3관왕에 올랐고 MVP투표 1차에서는 이승엽을 우세했다. 하지만 2차투표에서 이승엽,신윤호를 투표하지않은 기자들이 이승엽에게 투표하면서 MVP는 수상하지못했다신윤호 인지도가 이승엽에비하면 넘사벽이라 그렇다고 한다투수 골든 글러브까지 받았다.[4] 하지만 규정 이닝을 넘어 불펜 투수로서는 이례적으로 144이닝이라는 무지막지한 수의 이닝을 먹은 탓에 혹사 논란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으며, 김성근 감독의 대표적인 혹사 사례로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신윤호 본인은 이에 대해 인터뷰에서 이후의 몸 관리가 문제였음을 밝히고 있고, 오히려 김성근 감독 덕분에 잠시나마 돈도 벌어 봤고 선수 생명을 더 이어갈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는 뜻을 비추고 있다.멘탈레기를 그나마 사람이라도 만들었으니 그거라도 다행이지

더불어 LG 트윈스 최후의 한국시리즈 선발 투수다.[5]

이후로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고[6] 2008년에 웨이버 공시되어 김성근 감독이 재직 중이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나, SK에서도 마땅한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하였다.

3 은퇴

은퇴 이후에는 인쇄업 등 개인 사업을 했다. 2009 시즌에는 LG 트윈스에 상품을 공급하기도 했다.# 한편 야구 레슨을 하며 사회인 야구 팀에서 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4 선수 시절 2기

불혹을 앞두고 2013년 9월 9일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사회인 야구 팀에서 활동하면서 꾸준히 몸을 만들어 왔다고.

2013년 10월 27일 SK 와이번스의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여 복귀에 성공했다.#

2014년 2월, 그동안 몸 상태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한 시선이 있었지만, 6일 스프링캠프 자체 홍백전에 출장하여 1이닝 무실점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어느 정도 게임을 뛸수 있는 몸 상태는 되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시즌이 시작된 후 퓨처스리그에서 6월 17일까지 기준으로 2군 14경기 26이닝 1승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5.19로 부진했다. 그러다 8월 31일 자로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고, 바로 당일에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16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하지만 2이닝만 던지고 내려왔으며, 2실점(2자책)을 기록했다. 그래도 본인은 감격스러웠다고 한다. 팀은 4:3으로 이겼다. 이후 2014년 9월 10일 사직 롯데전에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 4피안타 1실점(1자책)을 기록했다. 2014 시즌에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9.00만 기록했다. 그걸로 그의 1군 복귀전은 끝났다.

시즌 종료 후 선수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연봉은 안 받아도 되니 현역으로 계속 뛰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그걸로 끝.

이후 사회인 야구를 했었을 때 알게 된 사람의 회사에 취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나온 후 현재는 주류도매업을 하면서 원흥지구 근처의 도내동에서 서승화와 함께 야구 레슨을 하고 있다고 한다.

5 주점 행패 논란

주류 유통업을 하다 거래하던 식당에서 거래를 끊자 식당을 찾아가 영업주를 협박하고 행패를 부린 혐의로 기소 되었다고 한다. #

6 여담

송진우 하면 떠오르는 이색 커리어인 투수 끝내기 안타의 희생양이 신윤호다. 그것도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던 2001년(6월 3일)에 맞은 것. 그런데 송진우 본인이 네이버 라디오볼 2015년 8월 21일 방송에서 LG 덕아웃의 싸인을 훔쳐서 쳤다는 발언을 했다....
  1. 흔히 2014년에 찍은 사진으로 아는 경우가 있는데, 모자에 있는 패치를 보면 2008시즌에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다.
  2. 이 때 최용수와 맞짱을 뜨려 했는데, 최용수가 신윤호를 보고 쫄아서 도망쳤다는 카더라가 있다. 참고로 최용수는 축구계에서 한 주먹 하는 걸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3. 참고로 신윤호의 통산 승수는 28승이다(…).
  4. 하지만 신윤호의 투수 골든 글러브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2012년까지 각 항목에 투수 골든 글러브가 누락되어 있었던 선수는 신윤호가 유일하다.
  5. 가장 마지막 투수는 알다시피 최원호.....
  6. 2001년 이후 가장 평균자책점이 좋았던 해는 2007년으로, 그나마도 고작 14이닝만을 던지고 4.50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