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직수

申稙秀
1927년 3월 21일 ~ 2001년 9월 9일

유신 정권 시절 중정부장으로서 온갖 뒷공작을 다한 인간말종 개새끼

1927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1946년 전주사범학교(현 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법무장교로 임관하였다. 박정희가 5사단장일 때 법무참모로 근무하기도 했고,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박정희와의 인연으로 5.16 군사정변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법률비서관이 되고, 1961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63년 중앙정보부 차장이 되었으며, 그 해 12월 불과 36세의 나이로 검찰총장이 되어 1971년 6월까지 재직하였는데, 고등고시 사법과 출신이 아닌 군법무관 시험 출신이 검찰총장이 된 유일무이한 사례. 검사장들이 이에 반발하여 검찰총장 취임식에 불참하기도 하였지만, 군사정권 시절에 중앙정보부 차장까지 지낸 사람이 낙하산 인사로 내려오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의 당선에 공을 세워(? 검찰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공을 세울 일이 무엇이 있는지? 관권선거이겠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한편 제 7대 대통령 선거 중 실세 검찰총장으로 있으면서 명목상의 윗사람인 배영호 법무부장관과 갈등을 빚었다. 이후 법무부장관으로 있으면서 김정렴 대통령비서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등과 함께 유신 헌법을 만들었다.

1973년 12월 이후락의 뒤를 이어 제7대 중앙정보부장이 되었다. 그러면서 김재규가 중앙정보부 차장으로 임명되었다. 사실 껄끄러운 점이 김재규가 제5보병사단 참모장을 지낼 때 신직수가 김재규의 밑에서 법무참모를 하였는데 신직수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중앙정보부 차장이 됨으로써 상하 관계가 역전되었기 때문이다.

1976년 12월 코리아게이트 사건 와중에 중앙정보부 요원이던 주미대사관 김상근 참사관이 망명하자 중앙정보부장직에서 경질되었다.

유신정권기간 동안의 인권유린 문제에 있어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 그가 검찰총장과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민청학련 사건인민혁명당 사건, 장준하 의문사 사건,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등등이 일어났었다.

여담으로 그의 사위는 그 유명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고, 직계 손자로 티켓몬스터 대표인 신현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