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

width=100%
이름심혜진(본명: 심상군)
출생1967년 1월 16일, 서울특별시
본관청송 심씨
가족남편 한상구, 언니 故 심명군[1]
데뷔1986년 [코카콜라]CF
종교가톨릭(세례명 : 데레사)
대종상 여우주연상
장미희
(1992)
심혜진
(1993)
윤정희
(1994)
최진실
(1995)
심혜진
(1996)
심혜진
(1997)
심혜진
(1996)
심혜진
(1997)
심은하
(1999)[2]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윤정희
(1992)
심혜진
(1993)
김서라
(1994)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김혜수
방은진
(1995)
심혜진
(1996)
신은경
(1997)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최명길
(1995)
심혜진
(1996)
심혜진
(1997)
심혜진
(1996)
심혜진
(1997)
심은하
(1998)

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대한민국 신여성의 아이콘, CF스타로 등장하여 90년대 충무로의 상징이 된 배우 심혜진
"콜라의 톡 쏘는 맛처럼 떠오르는 여자"

유하 「콜라 속의 연꽃, 심혜진論」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2 연예계 데뷔와 CF스타 심혜진

1985년 보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CF모델로 활동하던 중 코카콜라 CF를 통해 광고모델로 일약 스타가 된다.[3]

TV 광고 속의 한 여성이 젊은 남성들뿐 아니라 젊은 여성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았다. 하늘색 블라우스에 몸에 착 달라붙는 짙은 청색 투피스를 입은 회사원 여성이었다. 그녀는 키가 또래의 남자들보다 조금 더 크거나 대등했고, 팔꿈치로 옆자리의 남자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그녀는 남자의 한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아, 알았어!’라는 뜻을 전하곤 다시 일에 몰두한다. 미모와 지성, 섹시함을 두루 갖췄을 뿐 아니라 자기 힘으로 돈을 번다. 바로 커리어 우먼의 등장이었다. 어느 시대에서도 볼 수 없던 여성이 코카콜라 광고에 등장한 것이다.

1980년대 말 이 광고를 본 수많은 여성은 광고 속의 여성과 닮으려고 노력했고, 당시 나이 어린 여자들은 커서 이 여자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지적이고 세련됐으며 섹시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성들 앞에서 당당하고 존재적으로 우위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 옆의 남성들도 모두 한가락 하는 멋쟁이이지만, 이 여자 앞에서는 뭔가 모자라 보였다. 매혹적인 신세대 여왕벌, 그녀는 심혜진이었다.[한국 여배우 열전 ⑧ 80년대 신여성 아이콘 심혜진]

"단 십초의 미소로 바보상자들의 관객들과 쇼부를 끝낸 여자 심혜진" - 콜라 속의 연꽃, 심혜진론-난 느껴요 / 유하 -

파일:KBCxVc3.jpg
1988년 코카콜라 광고

1989년 삼성 카메라 광고

12785653190.gif
2000년 SK-2 광고[4]

3 영화배우 심혜진

한창 CF모델로 활동하던 중 영화사 '지미필름'을 설립한 영화배우 김지미의 제안으로 '지미필름'과 전속 계약을 맺고 영화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1989년 김지미, 이덕화와 함께 주연을 맡은 <추억의 이름으로>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하였고 같은 해 지미필름의 영화 <물의 나라> 에도 출연하였다.[5] 그러나 당시 체계적이지 못한 영화 제작 시스템과 아무런 준비 없이 소속 영화사에 의해 촬영장에 투입된 심혜진은 영화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고, 스스로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다시는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한다.

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심혜진을 찾아가 절대 촬영장에서 하루종일 기다리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찍은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이 1990년 개봉하였다.[6] 심혜진은 <그들도 우리처럼>을 통해 영화를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문성근, 박중훈 두 배우사이에서 ‘그들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심정으로 완전히 악에 받혀서 촬영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확실한 존재감을 보인 심혜진은 영화배우 데뷔 1년만에 국제 영화제인 낭트 영화제와 춘사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는다.

1992년 영화배우 심혜진, 한국영화사,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작품 <결혼이야기>가 개봉하였다. 최민수와 함께 주연을 맡았으며 서울 관객만 53만명을 동원하며 그 해 압도적인 관객수로 1위를 기록한 대흥행작이다. [7] <결혼 이야기>로 대종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충무로 심혜진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심혜진은 당시 여성들의 워너비로 등극하였다.

그때까지 만 해도 여배우는 절대로 시나리오나 짜인 콘티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어떤 공식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니까 작가나 감독이 만들어 놓은 박스 안에서 그걸 최대한 팽창시켜 주기만을 원한 거다. 그 이상에 대한 기대도 없었고 그 박스 바깥으로 나가면 다 편집 되어서 잘려나갔다. 난 그런게 납득이 안됐다. 다행히 힘들었지만 김의석감독과는 그런 문제를 많이 이야기하면서 찍어나갈 수 있었다. 그게 <결혼이야기>다.

<결혼이야기>는 여성을 수동적인 자리에서 벗어나 남성과 대화하고 상의 할 만한 수준의 동등한 ‘주류세력’으로 키워준 거다. 그게 90년대의 한국사회의 트렌드가 되었던 거지. 그러다가 2000년대에 <엽기적인 그녀>가 나오면서 ‘여성상위’의 시대로 역전이 된 거고. - 심혜진

코카콜라 광고를 통해 스타가 된 심혜진은 당찬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로 관객에게 어필했다. 이전의 여성 연기가 남성에 대한 순종, 복종, 희생적이거나 섹슈얼 무드로 일관했다면 심혜진은 남성 우월주의자인 최민수에게 당당히 맞서 자기 주장을 펴고 과감하게 애정표현을 할 줄 아는 현대적인 캐릭터를 살려냈다. 이는 당시 부상하고 있던 신세대론과 여성 권리 신장론을 관객의 기대치에 맞게 계산된 것으로 1990년대 한국 대중영화의 지형도를 바꾼 계기가 된 작품이 됐다.

이효인 『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 문화사』

심혜진의 영화배우 인생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96년 심혜진은 대한민국 영화계 3대 메이저 시상식인 대종상[8],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에서 각각 다른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며 당시 영화계에서 심혜진이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할수있다. <은행나무 침대>와 <박봉곤 가출사건> 두 편 모두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청룡영화상에서는 인기스타상을 수상하였다.[9]

1997년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물고기>에 문성근, 한석규와 함께 출연 하였다. 이 작품으로 심혜진은 대종상[10],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2년 연속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1993년, 1996년, 1997년 이렇게 3회에 걸쳐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영광은 단순히 여배우의 기근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영화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탈바꿈하는 심혜진의 연기력과 배우정신에 기인한다. 연기력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대표적인 영화배우였다.

1999년 심혜진은 TV 드라마로 활동영역을 넓혀 MBC 미니시리즈 <마지막 전쟁>에 출연하였다. 5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1999년 말 심혜진은 아비정전, 중경삼림 등으로 한국 영화계에도 큰 영향을 줬던 홍콩 왕가위 감독의 영화 <2046>에 캐스팅되었다. 한국[11], 홍콩, 일본 합작 영화로 각국의 톱스타들이 캐스팅 된 대형프로젝트였다.[12] 왕가위 감독이 대표인 매니지먼트사 하우스원(HOUSE1)과 10년의 계약을 맺으며 아시아를 넘어 국제스타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왕가위 감독은 <2046> 캐스팅 후 심혜진에게 영어공부와 피부관리를 요구 하였고 심혜진은 1998년을 마지막으로 한국 영화 출연을 중단하고 <2046> 준비에 매진하였으며 왕가위 감독은 심혜진이 모델로 발탁된 화장품 SK-2 광고를 홍콩에서 직접 촬영하는 애정을 보였다. 1995년 12월에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중경삼림,타락천사가 한국에서 개봉해 흥행성공을 거두어 큰 인기를 끌어 내한했었는데, 그 기간동안 그녀가 출연한 은행나무 침대 촬영장을 방문하면서 그녀와 만남이 성사되어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가위 감독 특유의 비정상적으로 느린 영화 제작 속도 때문에 2003년 심혜진은 왕가위의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정리하며 <2046>에서 하차하게 되었다.[13] 영화가 예정대로 제작되고 개봉 되었으면 국제적인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결과적으로 심혜진에게 국내 영화계 공백기를 가져다주었고 심혜진의 빈자리는 90년대 말 충무로에 등장한 여배우들이 채워가고 있었다.[14]

2003년 심혜진은 1998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이후 5년만에 <아카시아>로 충무로에 컴백하였다.

2005년 10대와 20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심혜진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게된 작품,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출연한다.[15] 주인공 프란체스카깜장드레스를 연기하였으며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시즌3까지 제작되었다.

심혜진이 <안녕, 프란체스카>를 택했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인의 등용문’으로만 인식됐던 시트콤에 당대의 여배우가 출연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심혜진은 그 시기를 자신이 성(城) 문을 열고 나선 때로 규정했다.

“자기만의 성에 갇혀 있을 때, 그게 힘들다고 느끼지면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 같아요. 물론 그 변신이 쉬운 일은 아니죠. 성 안에만 살아온 공주는 성 밖을 부러워하면서 갇혀 있죠. 어느 순간에 바깥으로 나갈까 고민하죠. 그런 시기가 올 때 자연스럽게 자기를 던질 수 있어야 돼요. 던질까, 말까 고민하는 동안은, 사실 너무 힘들죠.”

4 트리비아

  • 집밥 백선생 프로그램을 통해 그녀의 집이 공개된 적 이 있다.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초호화 저택이였는데 3000평 규모의 땅에 집이 3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엄청난 크기의 마당과 수영장, 사우나 등이 있는 집이였다. 그녀가 타고 다니는 차량 또한 화제가 되었는데, 롤스로이스 팬텀 흰색과 포르쉐 카이엔을 소유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 백주부소유진을 연결시켜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두 사람과 친분이 있고, 백주부 또래이기도 한 심혜진이 두 사람이 성격적으로 닮은 부분이 있어 잘 어울릴 것 같아 어느 날 소유진에게 고깃집하는 총각이 있는데 어떻냐며 주선하여 두 사람이 결혼까지 골인했다.

5 출연작

5.1 영화

  • 왓니껴 (2014)
  • 다우더 (2013)
  • 파파 (2012) - 미영
  • 페스티발 (2010) - 순심
  • 흑심모녀 (2008) - 엄마 박남희
  • 국경의 남쪽 (2006) - 경주
  • 아카시아 (2003) - 미숙
  •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1998) - 이기자
  • 실락원 (1998)[16]
  • 초록물고기 (1997) - 미애
  • 꽃을 든 남자 (1997) - 정민
  • 마리아와 여인숙 (1997) - 명자
  • 박봉곤 가출사건 (1996) - 박봉곤
  • 큐 (1996) - 혜수
  • 은행나무 침대 (1996) - 선영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1995) - 경혜
  • 손톱 (1995)
  • 결혼이야기 2 (1994) - 장선주
  • 세상밖으로 (1994)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 옥님
  • 비상구가 없다 (1993) - 영숙
  •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 (1993) - 진희
  • 결혼이야기 (1992) - 최지혜
  • 비처럼 음악처럼 (1992) - 인경
  • 하얀전쟁 (1992) - 사라
  • 제5의 사나이 (1991)
  • 내일은 비 (1991)
  • 그들도 우리처럼 (1990) - 송영숙
  • 추억의 이름으로 (1989) - 오유경
  • 물의 나라 (1989) - 송미란

5.2 드라마

6 수상내역

연도수상작품
2007년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국경의 남쪽
2006년SBS 연기대상 10대스타상돌아와요 순애씨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우수연기상돌아와요 순애씨
2005년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안녕, 프란체스카
1999년MBC 연기대상 인기상마지막 전쟁
1997년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초록물고기
대종상영화제 인기상초록물고기
황금촬영상 시상식 인기여우상은행나무 침대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초록물고기
1996년여성관객영화상 최고의 여자배우상은행나무 침대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은행나무 침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박봉곤 가출사건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박봉곤 가출사건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1994년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세상밖으로
춘사영화상 여우주연상세상밖으로
1993년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결혼이야기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결혼이야기
1992년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결혼이야기
1991년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그들도 우리처럼
1990년낭뜨영화제 여우주연상그들도 우리처럼
춘사영화상 여우주연상그들도 우리처럼
  1. 1남 3녀 중 둘째언니로 CF모델로 활동했으며 2011년 3월 사망했다.
  2. 1998년에는 후원사의 부도로 열리지 못했다.
  3. 코카콜라의 'I feel Coke' 캠페인의 사실상 메인 모델이었다.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에 나오는 광고와 똑같은데, 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동일한 포맷으로 만든 광고라서 그렇다. 'I feel Coke'가 '난 느껴요 코카콜라'로 바뀐것은 당시 외래어를 광고에서 사용할수 없었기 때문. 여담으로 이 광고에는 배우 이종원도 나온다.
  4. 한국 첫번째 모델이다.
  5. 이미 스타였던 심혜진은 데뷔작을 포함해 단 한번의 오디션도 본적이 없다고 한다.
  6. 당시 심혜진을 설득하러 찾아온 박광수 감독의 조감독은 후에 그대안의 블루, 시월애, 푸른소금을 연출한 이현승 감독이다. 심혜진은 그대안의 블루에 출연할뻔 하였으나 스케줄이 맞지 않아 출연하지 못하였다.
  7. 2위는 서울 관객 23만을 동원한 최민수의 <미스터 맘마>, 3위는 서울 관객 17만을 동원한 심혜진의 <하얀 전쟁>
  8.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은행나무 침대>로 중복 노미네이트
  9. '은행나무 침대'는 강제규 감독이 그녀의 집앞에서 진을 치면서까지 캐스팅 하려고 애를 썼었다 한다.
  10. <초록물고기>, <마리아와 여인숙>으로 중복 노미네이트
  11. 한국에서는 LG전자가 투자에 참여하였다
  12. 심혜진, 양조위, 장만옥, 기무라타쿠야...후에 장쯔이 캐스팅
  13. 심혜진, 양조위, 장만옥 당시 캐스팅 된 배우들은 처음에 시놉시스만 받고 시나리오는 받지 못했다고 한다. 즉흥적인 제작스타일이 한국의 홍상수 감독과 비슷하나 홍상수는 저예산으로 단기간에 제작을 끝내는 감독 계속되는 촬영 중단으로 제일 먼저 촬영에 들어간 일본 배우 기무라 타쿠야는 '이 영화 2046년에나 개봉하는거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2004년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 된 뒤 재편집을 거쳐 개봉되었다. 이후 작품에서도 왕가위 감독의 느린 제작속도는 여전하다
  14. 대표적으로 당시 TV에서 인기를 얻은 심은하가 떠오르고 있었다.
  15. 심혜진의 전성기에 태어난 90년대생들은 심혜진을 프란체스카로 인식한다.
  16. 한국판으로 제작된 영화로, 상대배우는 이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