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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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슈누 신을 보좌하는 용왕 중 한 명

2 석가모니10대 제자 중 하나

'아난'이라고도 한다. 아나율과 더불어 석가모니의 사촌형제. 고로 크샤트리아, 왕족 출신이다. '아난'은 기쁨, 환희라는 뜻으로 중국에서 경희라고 번역되기도 하였다.

인도 카필라의 승려로 늘 석가모니를 따라다니면서 시중을 들었으며, 또 가장 많은 질문을 했기 때문에 최초의 경전 결집 당시 가장 많은 가르침을 모았다고 한다. 가장 많이 들은 자라고 하여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는 호칭이 붙는다.

이부종륜론에 의하면 부파 불교의 한 부파인 경량부는 "경희(아난다)로써 스승을 삼는다."고 하였다.

불경 중에는 "아난다야. 어쩌구 저쩌구"하는 구절이 매우 많으며,[1] 또한 모든 불경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2]로 시작한다. 석가모니에게 들었던 설법을 아난다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재현하여 불경을 집편하였기 때문이다[3] 이를 따르기 위해 다른 제자들 역시 석가모니의 경을 암송할 때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읊는다.

아난다는 석가모니에게 자신의 시자가 되어 줄 것을 직접 부탁받았다. 몇 번을 거절하다가 8가지 약속을 석가모니에게 받고서 시자가 되었다.

  • 첫째, 붓다께서 받으신 가사를 그에게 주어서는 안된다.
  • 둘째, 붓다께서 받으신 음식을 그에게 나누어 주셔서는 안된다.
  • 셋째, 붓다의 처소에 같이 살도록 하면 안된다.
  • 넷째, 붓다께서 초대받는 곳에 항상 자신을 데리고 가려하면 안된다.
  • 다섯째, 멀리서 붓다를 친견하러 온 방문객을 붓다께 소개할 수 있도록 허락하셔야 한다.
  • 일곱째, 의심나는 부분이 있을때 언제라도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 여덟째, 자기가 없을때 설법하신 내용을 흔쾌히 다시 설법해 주셔야 한다

이후 가장 오랜 기간 석가모니의 시자였다. 또 아난다의 기억력이 한번 보고 들은 것을 절대 잊지 않는 수준인 덕에, 불멸 후 석가모니 부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아난다를 찾아오자 모든 법문을 암송해 주었다. 법문 암송 해주느라 너님 수행 안하는 거 과연 잘하는 일일까?라고 디스를 당하자 수행에 매진하는 일화가 있을 정도. (…)

석가모니의 이모이자 양모인 마하파자파티가 출가하기 위해, 수백명의 여인들과 함께 노란 가사를 입은 채 맨발로 걸어가고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할 때, 이를 가엾게 여겨 석가모니에게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석가모니는 여덞가지 법을 조건으로 여성의 출가를 허락한다.

또한 석가모니가 인정한 석가모니불 다음으로 잘생긴 사람이었다. 잠깐 본인 '다음으로' 잘생겼다고 인정하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석가모니 당시 불교의 승복은 한쪽 어깨를 드러내는 형태였으나, 아난다는 여성을 미혹하지 않게 양쪽 어깨를 모두 가리도록 하였다. 사원에서 찹쌀떡을 사람들에게 1개씩 나눠주다가 실수로 어떤 소녀에게 2개를 주는 바람에 다른 여자들에게 입방아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처럼 여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4] 아난다에게 반한 나머지 주술로 조종해서[5] 결혼 하려다 석가모니가 주술을 없애면서 실패 하고 아난다의 아내가 되기 위해 비구니가 되었는데 결국 도를 얻은 여성도 있을 정도.(...)[6] 아난다의 미모에 관한 내용은 곳곳에서 언급된다.

한편 혼미한 정신으로 여인의 집에 도착한 아난은 노골적으로 몸을 드러낸 채 한껏 치장한 젊은 여인이 자신을 맞이하자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여인의 손길은 그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었고 아난은 어찌할 줄을 모른 채 자신을 유혹하는 여인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오열하였다.

“나는 어찌 이리도 가호를 받지 못해 이런 고난을 만나게 되었을까. 대자대비한 세존께서는 어찌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위호(威護)하는 마음을 내어 괴로움을 받지 않도록 하시지 않을까.”

- 마등가의 여인에게 유혹을 받으며 오열하는 아난다[4]

“그대는 아난존자의 어디가 그토록 좋은가?”

“저는 아난존자의 눈도 좋고 코도 좋고 입도 좋고 귀도 좋다 모두가 다 좋습니다.”

여인의 대답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희대의 독설로 답하셨다.

“눈에는 눈곱이 있고 코에는 콧물이 있고 입에는 침이 있고 귀에는 귀지가 있고 몸에는 피고름이 흐르는데 그것이 좋단 말인가?”

- 석가모니 앞에서 아난다와 결혼하겠다고 고백하는 마등가의 여인과 석가모니의 대화[4]

얼굴은 맑은 보름달 같고

눈은 푸른 연꽃 같은데
불법의 큰 바닷물이
아난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갔도다.

사람들의 마음과 눈으로 하여금
보기만 하면 크게 환희하게 하고
부처님을 뵈러 온 모든 이들
잘 인도하여 화목함을 잃지 않네.
- 아난다를 찬탄한 대지도론 게송[7]

아난다는 석가모니에게 여자의 출가를 허락하도록 설득하였는데, 석가모니의 열반 후 이것 때문에 보수적인 마하가섭에게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비구니교단은 마하가섭보다 아난다에게 호의적이였다고 한다.[4]

석가모니 부처님이 자신의 수명을 결정할 적에, 여러 번 선문답을 던졌지만 아난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암송하느라 그 뜻을 파악하지 못했다. 입멸에 들기 전, 석가모니"네가 '오래오래 살아 주세요!!'라고 했으면 그러려고 했는데, 안 그래서 나 그냥 정해진 수명대로만 살겠음."하고 아난다에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 [8]

그 말을 들은 이는 아난다 자신뿐이었음에도, 아난다는 모두에게 그 사실을 감추지 않고 전부 말해주었다고 한다. 또한 석가모니도 아난다가 모든 사실을 말할 것임을 알고, 다른 제자에게 미리 언질하기를 "너희들 아난다 갈구지 마라. 아난다 완전 똑똑하고, 성실하고, 아무튼 더할나위 없는 시자였다. 딴 사람이라면 아난다 절반도 못했을 걸??"라고 했다고.

석가모니가 불멸할 때까지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 후 계속 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었으며 불교의 제3대 지도자가 되었다.

일화는 이러하다. 아난다는 석가모니의 불멸 후, 불법을 지키기 위한 1차 결집 전날까지도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시자로써 아난다의 법문 암송이 꼭 필요한데, 아라한이 아니라 자격 미달[9]인지라 끼워줘? 말아? 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본인도 걱정이 태산 같아서 밤 늦도록 경행을 하다가 지쳐 잠자리에 누웠는데 머리가 베개에 닿는 순간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 유명한 데바닷타가 형인데 항목을 참조해보면 이과인 형제의 시초가 아닌가 싶다. (…)

삼장법사가 인도에 갔다오면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120살까지 살았으며 강을 사이에 둔 마가다국과 비사리국 사이에 자신의 유해를 놓고 다툼이 벌어질 것 같이 되자 강 한 가운데서 공중으로 떠올라 공중에서 입적한 후 유해가 양쪽 강변으로 떨어져 내렸다고 한다.

2.1 대중문화 속의 아난다

세인트☆영맨부처는 제자인 아난다를 모티브로 성인(聖人)용 4컷만화 깨쳐라! 아난다를 그렸다. 성인 한정으로 웃길 수 있는 센스라 어린 우리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천계에서는 경리담당을 하고 있고, 하계에 머무는 붓다와 예수의 지출 일부를 천계 경비로 돌려서 자금압박을 줄여주는 위엄을 보인다. 하계에 내려올 때는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써서 변장하는데, 그냥 다니면 여자들이 미모에 반해 홀딱 빠진다고 한다. 여성이 자신에게 반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맑은 표정으로 악담을 날리거나 음식에 얼굴을 처박는 기행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붓다의 목소리를 듣는 즉시 눈물을 흘리며 오체투지하기에 그게 아니어도 기행으로 보이긴 한다.

3 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등장인물

이라 더 비숍의 파트너로 거의 유일하게 등장한 소년형 파티마. 이라 대주교의 변태성을 증명하는 예라고 해야 하려나. 카스테포에서 아슈라 템플의 실험을 하여 50기 이상의 MH를 파괴하는 위력을 보여줬다. 아슈라 템플의 능력탓도 있겠지만 이라 대주교와 이 파티마의 능력도 상당한 탓일 듯. 뮤즈 반 레이박파열의 인형에게 패해 아슈라 템플과 이라 대주교를 잃고 창파티마촌에 끌려가게 된다.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하는 파티마의 대표적인 예.

창파티마촌에서 여장을 하고(...) 손님을 받다가 크라켄 벨 메요요의 방문을 받고 비밀을 누출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한 후 살해당한다. 안습. 아이러니 한 게 그 창파티마촌에는 파르쉐트에스트도 있었다.
  1. 물론 수보리 등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쓰인 불경도 많다. 출처가 필요함
  2. 한역(漢譯)으로는 '여시아문(如是我聞)'
  3. 한편으로는 '석가모니께서 하신 설법의 깊은 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쨌건 아난다 자신은 이러이러하게 이해하였다.'라는 식으로 겸손을 나타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4. 4.0 4.1 4.2 4.3 인용자료1 인용자료2 인용자료3
  5. 이 여성의 어머니가 주술사였다는 설도 있다.
  6. 석가모니가 아난다와 결혼하고 싶으면 몇가지 조건을 따라야 허락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조건이 출가하여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이 여성은 출가한후 결혼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7. 대지도론의 저자는 용수보살로 석가모니 시절의 사람은 아니다. 당연히 아난다를 실물로 본 뒤에 쓴 게송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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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1차 결집의 조건은 '아라한+석가모니의 제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