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하라 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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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방패 소린
麻原(あさはら)
彰晃(しょうこう)

1955년 3월 2일생. 혈액형은 A형
본명은 마츠모토 치즈오(松本智津夫)
지상렬의 원쑤[1]
스티브 아오키
해그리드

1 개인 및 가족사

옴진리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이자 테러리스트이다. 일본판 오사마 빈 라덴, 짐 존스[2] 또는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현재 사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이다.
'쇼코'라는 이름만 보면 여자인줄 착각하겠지만 이거는 한국어의 일본어 표기법 문제로 이름의 읽는법이 しょうこ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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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시절 사진

1955년 3월 2일 쿠마모토현 야츠시로 시(八代市)에서 타다미를 만드는 집안에서, 9남매 중 7번째 아이(4남)으로 태어났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이지만 전맹은 아니다. 아사하라 쇼코의 아버지와 역시 같은 시각장애인이던 형에 따르면 아사하라 쇼코의 시각장애는 미나마타병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아사하라의 아버지는 미나마타병의 환자로서 인정받지 못하였다. 세월이 지나서야 일본 후생성에선 야츠시로 시에서 50명이 넘는 이 병 환자들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아사하라와 같은 시각장애인인 형 만쿄는 1950년대 당시에는 미나마타병으로 당한 환자들이 되려 매국노 취급을 당했다면서 치를 떤 바 있다. 야츠시로 시가 미나마타에서 멀리 떨어졌기에 환자로 인정받지 못했고 어릴 적부터 앞을 보지 못했음에도 되려 주변에선 자기들 유전병을 미나마타 병으로 연루하여 야츠시로 시 이미지를 망친다고 비난을 당했던 점으로 사람을 증오해왔다고 했다. 물론 만쿄는 옴진리교를 미화하지도 않았고 비난했다.[3]

학창 시절은 쿠마모토 현립 맹인학교에 전하여 기숙사생활을 했고 1975년 3월(20세)에 졸업했다. 도쿄대 문과1류 수험을 지망하여 같은 해 3월 말에는 도쿄도 오오시마, 8월에 시나가와구로 이주했으나 9월에는 본가로 돌아갔다.1976년 큰형의 가게에서 전 종업원이 형을 모욕하자 그 종업원의 머리를 타박하여 9월 6일, 상해죄로 1만 5천엔의 벌금형을 받는다.

1977년 4월(22세)에 다시 상경하여 요요기제미날 시부야교(일본의 입시학원)에 입학했으나 도쿄대 수험에는 실패했다. 이때부터 선도나 요가의 수행을 하기 시작했다. 1978년에는 입시학원에서 알게 된 부인 마츠모토 토모코와 결혼하고, 치바현 후나바시시에 신혼집을 차리고 침술원 '마츠모토 침술원' 을 개원했다. 같은 해 9월 15일 침술원을 접고, 혼마치의 진료실겸 한방 약국인 "아세아당"을 개업하였지만 1980년 7월에 보험료의 부정청구가 적발되어 670만엔의 반환을 요구받았다.

동년 8월 25일(25세), 신흥종교단체 아함종(阿含宗)에 입신하고, 이후 3년간 정도 재적한다. 1981년 2월 건강약품판매점 "BMA약국"을 개국했으나, 1982년 무허가 의약품을 제조판매한 것 때문에 같은 해 6월 22일에 약사법위반으로 체포된 후 20만엔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1983년 여름(28세), 도쿄도 시부야구 사쿠라오카에서 선도, 요가, 동양의학 등을 종합한 (초)능력개발을 지도하는 학습학원 "봉황경림관鳳凰慶林館"을 개설하였으며, 이때부터 '아사하라 쇼코'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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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님 공중부양법 쓰신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공중부양 사진인데, 힘들어 보인다알고 보면 별 게 아니고 그냥 양반다리를 한 상태에서 몸을 움츠렸다가 펴면서 그 반동으로 허벅지를 아래로 내려 바닥을 차면서 점프! 그야말로 앉은 상태 그대로 점프를!? 그 나름대로 대단한 재주이긴 하지만(...)[4] 그래서 표정이 저 모양 한때 디시인사이드 등지에서 오쇼라 빈라즈덴(...)이라는 짤로 퍼지기도 했다. --그의 행적은 아무도 모른다--

이 자세 자체는 아무 문제 될 게 없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는 단순히 '공중부양 수행의 첫 단계' 일 뿐이다. 공중부양 수행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는데 그 중 첫 단계가 이처럼 바닥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로 점프하는 게 첫 단계이다. 각 수행원마다 그 단계 분화는 다르지만 보통 3~5단계로 나뉜다. 물론 실제로 다음 단계는 그딴 거 없다(...) 허경영이 더 잘한다

2 옴진리교 창설

1984년 아사하라 쇼코는 요가도장 「옴의 회(オウムの会)」를 결성한다. 이 도장은 후에 「옴 신선회(オウム神仙の会)」로 개칭한다. 당시 오컬트계 잡지인 무(Mu)가 옴의 회를 일본의 요가단체로서 취재하여 사진이 실린 기사를 연재한다. 이 사진은 좌선을 한 채로 도약하는 것으로서, 후에 옴진리교가 말하는 '다르두리-싯디(darduri-siddhi)' 공중부양의 원형이 된다. 실제로도 인도 요가 중에 저렇게 가부좌를 하고 도약하는 요가가 있다.

또한, 아사하라는 '라-테루' 1985년 11월호에서 사카이 카츠토키의 예언서 '신비의 일본'에 근거하여, 초능력 개발을 가능하게 해서 영적으로 진화하기 위한 돌 히히이로카네 – 일본 고대신화에 나오는 신비의 금속 - 를 발견했다는 기사를 투고하였다.

1987년 동경도 시부야구에 있었던 옴 신선회를 개칭하여, 종교단체 옴진리교가 설립되었다. 동년 11월에는 뉴욕 지부도 설립하였다. 1989년 8월 25일에는 동경도에서 종교법인으로서 인증받았다.

3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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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하라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일본 대표였던 페마 갤포와 접촉하여 그의 조력으로 1987년 2월 24일 및 1988년 7월 6일에 달라이 라마 14세를 인도에서 회담하였다. 아사하라 측은 양자가 대화하는 모습을 비디오와 사진으로 촬영하였고, 회담에서 달라이 라마 14세가 "일본에서 진정한 불도를 펼치세요"라고 아사하라에게 전했다며 옴진리교의 광고 및 선전에 크게 활용되었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평범하게 올바른 부처의 가르침을 펴라고 말한 것이다. 즉, 여기서 말하는 "올바른" 이라는 말은 일본의 불교가 잘못되었으니 아사하라가 올바른 불교를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 아닌, 부처의 가르침을 곡해하지 말고 올바르게 알려달라는 부탁의 말이다.

달라이 라마가 명목상 한 나라의 지도자이긴 하지만, 티베트 망명정부는 결국 망명정부인지라 한 명이라도 해외 협력자가 아쉬운 상황이다. 불교에 기반을 둔 티베트 망명정부는 각국의 불교 단체와 적극적으로 협력함으로서 해외 협력자를 늘려나가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조계종 같은 일반적인 불교 단체가 대표적이다. 조계종은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찬성하는 등, 티베트 망명정부와 협력하는 입장에 있다. 관련 기사. 문제는 이때는 아직 일본 국내 사정에 어두워서 옴진리교가 평범한 불교단체 코스프레를 하고 찾아오자 수상한 단체라는 걸 몰랐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먼 나라에서 "나 불교 수행자요" 하는 사람이 찾아왔다면 "아이구, 그러십니까? 수고하시네요. 계속 수행해서 그곳에서 올바른 불도를 펼치세요" 라고 덕담해 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저 달라이 라마에게는 관심법이나 예지능력이 없었던 것 뿐이다 즉, 달라이 라마의 발언은 그냥 일반적인 수준의 덕담에 불과하지만, 옴진리교는 이를 "티베트 불교의 종주 달라이 라마가 아사하라의 가르침이 올바르다고 인정했다"는 식으로 왜곡하여 퍼트려서 교세 확대에 활용하였다.

다행히 페마 갤포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옴진리교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적극적으로 대립하게 되었으며, 티베트 망명정부에 아사하라와 관계를 멀리할 것을 충고하였다. 그 직후 티베트 망명정부와 티베트 불교의 승단에서는 옴진리교와의 관계를 모두 단절하였다. 그런데 이게 씨가 되어서 요즘에도 일본의 몇몇 신흥종교에서 일본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티베트의 린포체(고승)들을 이용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4 노선 전환과 망상의 시작

아사하라 쇼코는 대량의 LSD를 항시 투약하고 있었는데, 이 LSD를 제조하는 설비가 옴 교단 내부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며 LSD의 복용도 수행의 일부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포악포아(ポア)'[5]라는 살인정당화 논리를 제공하여 제자들에게 살인을 강요한 주요인이며, 자신이 재림예수이며 제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후에 스스로 신성법황으로서 일본을 다스리겠다고 생각한 과대망상증 환자이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아사하라 쇼코의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하면 마하야나와 바지라야나(ヴァジラヤーナ)[6]인데, 마하야나는 온건한 종교적인 활동으로서의 구제활동을 의미하는 것이고, 바지라야나는 무력투쟁을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종교적으로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한 자는 낮은 수준의 인간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중의원 선거의 참패 이후에 아사하라는 "마하야나로는 안 된다. 바지라야나로 간다"라고 발언하였다. 그리고, 이 발언 이후의 옴진리교는 무장투쟁노선을 따르기 시작한다.

5 PSI(Perfect Salvation Initiation)

자신의 뇌와 연결해서 자신의 뇌파를 수행자들에게 옮김으로써 최종해탈을 이끄는 행위를 PSI(Perfect Salvation Initiation)라고 불렀다. PSI는 다른 옴진리교의 수행 과정과는 다르게 아사하라 쇼코는 완전 害奪 해탈자이므로 아사하라의 사고는 무조건 옳다는 병맛 같은 사고방식에서 시작되었다.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이후에 옴진리교가 세간의 관심을 받게되자 아사하라의 뇌파를 복사한다고 알려진 헤드기어도 일본의 매스미디어에 의해서 다루어지게 되었다.

옴진리교 교리에서 소위 말하는, 자신의 마음 속에 타락한 데이터를 지우고 완전해탈한 마하 구루인 아사하라의 데이터를 삽입하는 것으로 사마나들도 완전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교리를 바탕으로 개인의 독자적인 판단능력을 부정하고 아사하라 쇼코의 논리는 무조건 옳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게 되고, 이 비판없이 교조에게 모든 것을 맡기게 되는 기묘한 분위기가 중의원 선거 참패 이후의 옴진리교의 무장노선을 추구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

6 다키니

본격 옴진리교기쁨조.

6.1 다키니 해설

옴진리교의 출가신도의 계율에는, 불사음(不邪淫)이라는 것이 있어서, 자위행위와 연인과의 성관계를 제외한 성관계가 금지되어있다. 그런데 아사하라 본인은 "최종해탈자"로서, 계율도 초월한 존재이므로, 아사하라 전용의 일종의 하렘을 건설하였다. 아사하라 본인은 오오오쿠(大奥) 제도를 확립한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환생(...)이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같은 조직을 지어도 상관 없다는 핑계였다. 종교적인 이유로서는, "젊은 여성을 높은 차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좌도 탄트라이니시에이션(성행위)을 최종해탈자의 의무로써 베풀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논법을 사용하였다. 다키니는 약 30명이고, 제 2사티 안에는 상시 10~15명이 살고 있었다. 다키니가 된 여성들은 홀리네임 '다키니'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6.2 다키니의 선발

  • 옴진리교에서는, 입교시의 얼굴 사진을 찍게 되어 있다. 이 사진들을 교단 본부에 보내서, 아사하라의 취향에 맞는 여성이 선발되었다. 한 번 고려 대상이 된 여성은 다시 얼굴 사진 촬영을 하고, 아사하라에게 사진이 제출되었다. 뭐야, 시각장애인 아니었어?[7]
  • 선발된 여성들은 본부에서, 아사하라 본인과 직접 면담을 나누었다.
  • 면담을 통과한 여성은, 아사하라로부터 좌도 탄트라이니시에니션을 받았다. 이 시점에서 처녀였을 경우, 다키니가 될 수 있었다.

6.3 여담

아사하라는 자신이 성관계를 맺은 여성들의 음모를 작은 병에 담아 보관하는 페티쉬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경찰의 제 6사티 안 일제조사 당시에 나온 병의 수는 100여개 가량이었다고 한다.

7 후일담

옴진리교 지하철 살인 사건 이후에 대대적인 수사와 함께 체포된 아사하라 쇼코는 사형판결을 받은 지금도 수감 중이다. 이후, 옴진리교의 목표는 아사하라 쇼코의 석방이 중심이 되었으며, 이를 위해 청년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켜 탈옥시킨다는 시도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 와중에 러시아제 헬기를 1대 밀반입하기도 했으나 결국 범행에는 활용되지 못했다. 헬기는 나중에 압수처리 당했다.

아레프로 이름을 바꾼 옴진리교는 2인자였던 죠유 후미히로의 개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죠유 구상으로 아사하라 석방의 일환으로 아사하라는 교조에서 前 대표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그의 가족과 교단과의 연관은 부정되고, 마츠모토 일가는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사라졌다. 그러나 아사하라를 신이라 부르는 걸 부정하자 결국 불만이 폭발한 구 장로단은 죠유 측과 분열하여 다투게 되었고, 결국 2007년 죠유는 '히카리노와'로 자신을 아사하라로 여기게 만드는 유사 옴진리교를 만들었다.

한편, 여전히 아사하라 쇼코는 신으로 숭상받고 있어서 아사하라의 가족들은 표면적으로는 아닌 것처럼 위장했지만, 실제로는 교단 측에서 계속해서 지원을 받았다. 그들은 탈퇴자인 척 하는 신도들에 둘러싸여 편안하게 생활하였으며, 특히 마츠모토 토모코(아사하라의 처)는 계속하여 교단 인쇄물 등에 실리는 그림 사용료의 명목으로 생활비 지원을 받았다. 아사하라를 혐오하여 직접 인연을 끊었던(당시 미성년) 아사하라의 3녀는 현재 수도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아사하라 쇼코는 물론 그의 수하들도 사형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 중 하나라도 사형을 받아 죽을 경우 신격화가 매우 용이하기 때문이다. 시체팔이 참조.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며, 원래부터 망상집단인 만큼 또 다시 폭주할 수 있다는 우려 덕에 잔존 교단들이 완전히 와해되지 않는 한, 옴진리교 사형수들을 사형시킬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다고 해도 중간에 생명을 거두는 일만 없다 뿐 살아서는 절대 감옥을 나가지 못할 테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형벌이기도 하다. 물론 행적에 비해선 어떤 형벌도 충분하진 않지만

8 수감 이후

사형 판결 이후 아사하라를 비롯 옴진리교 일당들의 존재는 거의 잊혀졌는데, 최근 일본의 매스컴에서 그의 근황에 대해 다룬 바에 의하면, 똥오줌을 가릴 수 없어서 기저귀를 차고 있고 혼자서 소리를 지르는 등 정신 이상을 보이고 있다고 하며 부인을 포함한 가족도 알아보지 못해 면회도 가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가석방을 노리는 연극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실제로 이는 컨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베 신조 정부하에서 사형 집행이 급증한 데다가 이전이라면 사형수 중에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물의가 적고 최근에 형이 확정되어 살 기회를 오래 주는 게 보통인 사형수까지도 주저 없이 사형장에 보내는 와중에 재심을 신청했기 때문. 제정신이 아니면 재심 청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결국 아사하라 쇼코는 제정신인 셈이다.

한편 아사하라 자신은 재심 청구 이외에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있지만 그 수하 중에 사형이 확정된 3명이 특정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한 적이 있다.

9 트리비아

아사하라 쇼코가 저술한 서적은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나왔고, 그가 체포된 뒤에도 오랫동안 서점 일각에 남아있었다. 안 팔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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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시티헌터 3 제11화 방송(1989년 12월 24일) 당시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얼굴이 나오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그러나 방영 이후인 1995년에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이 발생하자 해당 장면이 발각되어 문제시되었는데, 원인은 제작 당시 한 제작진이 우편함에 끼워진 옴진리교 찌라시를 장난으로 사용한 것이 밝혀졌다.[8], 재방송이나 DVD 발매 시에 해당 장면이 삭제되었다.1분경에 욱일기가 신경쓰인다
  1. 아사하라를 닮은 외모 탓에 출국할 때마다 강도 높은 입국심사를 받는 신세다.
  2. 인민사원 집단자살사건의 주범. 미수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대량살인이라는 것은 똑같다. 아직도 미국에서는 쇼코 못지 않게 사이비 종교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3. 황천의 개-후지와라 신야(청어람 미디어) 참조.
  4. 그렇게까지 대단한 재주도 아니다. 몸이 너무 무겁지 않고(뚱뚱하면 힘들다) 상당한 근력과 유연성이 있는 사람이 충분한 연습을 한다면 쉽게 따라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단순히 근력을 이용한 점프일 뿐 신통력 따위와는 아무 관계 없다. 이 때문에 옴 진리교 반대 운동에 참여하던 변호사가 아사하라 쇼코의 거짓말을 분쇄하기 위해 자신도 이걸 연습해서 성공한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을 정도.
  5. 해탈한 자에게 살해당하면 구제를 받게 되므로 구제불능이라고 판단한 인물을 제자에게 살해 시켜서 전세계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행위라고 한다.
  6. 원래 산스크리트어로 마하야나(Mahayana)는 '큰 수레'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한자로 '대승'(大乘)이라고 번역하는데, '대승불교'라고 할 때의 그 대승이다. 바지라야나는 일본식 발음이고 한국에서는 보통 '바즈라야나'라고 쓰는데, 산스크리트어로 Vajrayana를 말한다. 한국불교학회의 음역법으로는 와즈라야나라고 쓴다. 이는 금강승(金剛乘), 즉 밀교를 가리키는 단어다. 아사하라 쇼코는 멀쩡한 불교 용어를 본디 의미와는 전혀 다른 별도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7. 시각장애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완전히 안 보이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 작자는 전맹은 아니다.
  8. 정작 해당 제작진은 옴진리교 신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