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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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흑인
African-American

사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란 표현은 의미만 놓고 보면 마그레브북아프리카 출신의 아랍인이나 남아프리카백인까지 포함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 흑인을 말한다. 그런데 래퍼인 슬릭 릭처럼 부모가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 이민 간 사람이라 '흑인이면서도 영국계 미국인'이라는 희한한 사례도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 흑인은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을 총칭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살고 있는 흑인은 아프리카 흑인들 다음으로 숫자가 많다. 어디에서 왔다는 출신 성분 상관 없이 '흑인'이라는 것을 말할 때 의미한다. 그리고 미국 내 흑인을 말하는 명칭은 시대별로 변화해 왔다. 사람들의 의식이 진보할수록 명칭 또한 변해갔다. 처음에는 검둥이 삼보에서 블랙, 블랙에서 아프로 아메리칸, 아프로 어메리칸에서 아프리칸-아메리칸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러면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바누아투, 피지오세아니아에서 온 멜라네시아인들은 뭐라 불러야 될까?[1] 하지만 "내가 검은색인데 왜 아프리칸 아메리칸 같은 병신같은 말로 나를 지칭해야 하냐?"라며 블랙을 더 좋아하는 흑인들도 꽤 있다. 비공식적 자리에서는 블랙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부정적인 뉘앙스는 거의 없는 편.

그리하여, 현재는 흑인들도 사회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는 미국 시민이 되었다. 이는 19세기 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흑인 인권 운동가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20세기 초에는 그때까지의 흑인 인권 운동의 결과로 적어도 북부 지방에서는 백인들이 '흑인'들의 문화를 즐기러 보는 일이 가능해 졌다. 물론 북부 지방에서도 '흑인'들의 문화를 보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인종적' 편견이 존재했다.

1920년대에는 위의 결과로 힘입어 흑인 사회도 발전할 수 있었다. 흑인 사회는 백인 사회의 인적, 물적, 자본적, 산업적 성장보다는 미치지 못하지만 처음으로 자본가, 정치인, 의사, 기술자를 배출할 수 있었다. 이후 1940년대1950년대에는 그런 변화를 바탕으로 좀더 다양한 민권 운동이 벌어지게 할 수 있도록 원동력이 되었다.

혼혈인의 경우엔 자기의 정체성에 따라 백인인지 흑인인지를 택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보기엔 백인임에도 자신을 흑인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님 그냥 혼혈로 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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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FAO의 레드푸. 자신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인식한다.[2]

2 역사

미 흑인 사회는 미국의 건국될 때부터 시작했다. 그들의 역사는 미국의 현대사를 함께 이룬다고 봐도 무방하다.

3 정치

최초의 흑인 연방상원의원은 하이럼 리블스(Hiram Rhodes Revels, 1827-1901)이다. 공화당 출신으로 미시시피 주 연방상원의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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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블스는 1869년부터 1871년까지 연방상원의원으로 재직했으며 연방상원에서 유일한 흑인이었다. 1875년에는 미시시피에서 블랜치 브루스(Blanche Kelso Bruce, 1841-1898)가 연방상원에 올라 1881년까지 재직했다. 그 후 상원에 흑인이 없다가 1967년 공화당의 에드워드 브룩(Edward William Brooke, III, 1919-)가 매사추세츠에서 연방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1979년까지 연방 상원으로 재직했다. 1979년부터 1993년까지 흑인 상원의원이 없다가 다시 1993년에 첫 민주당 출신의 흑인 상원의원인 캐럴 브라운(Carol Moseley Braun, 1947-)이 나왔다. 그녀는 일리노이에서 당선됐으며 1999년까지 재직했다. 그리고 2005년에 버락 오바마가 일리노이에서 연방상원의원으로 당선된다. 대통령이 되면서 2009년에 사퇴하고 로널드 버리스(Roland W. Burris, 1937-)가 일리노이에서 새로 연방상원의원이 된다. 이렇게 해서 2012년까지 미국 역사상 흑인 상원의원은 여섯 명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영향 때문인지 2013년 113기 상원의원에서는 흑인 상원의원이 셋이나 나왔다.

  • 코리 부커(Cory Booker), 1969년생, 민주당, 뉴저지. 이 분은 흑백 혼혈인데 본인을 흑인으로 인식하는 경우다. 옆의 고양이는 덤.

4 사회

흑인들의 사회는 현재에 들어서는 매우 분화, 다양화하였고, 개인주의적으로 변했다. 흑인들의 향상된 사회적 지위 덕에 흑인들은 다양한 헤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흑인들의 삶은 여전히 향상되지 않은 면이 있다. 미국 남부에서 플렌테이션 농업에서 대규모 농업기업 식으로 바뀐 후, 흑인들은 대규모로 미 북부 대도시에 이주했다. 그들은 흑인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이 말하던 레드넥 문화를 가지고 왔다. 결과 미 남부에서 백인이 보여주던 행위를 그대로 흑인들이 따라하게 되었다.

5 성향

사실 흑인들이 참정권을 처음 가졌을 때부터 1920년대까지는 공화당 지지성향이 강했다. 애초에 공화당 자체가 휘그당이 노예제 폐지에 미온적이라고 반발한 당원들이 탈당해서 만들어진 정당이라 노예제 폐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던 정당이었고 노예해방선언을 한 링컨 대통령도 공화당 소속이었기에 흑인들도 자연히 공화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 이후 경제난으로 대다수의 흑인들이 피해를 봤고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펼치면서 대다수의 흑인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공화당 지지성향이 약해지고 민주당이 우세해지더니 1960년대 민권운동 시기 공화당에서 민권운동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민주당에서 흑인들의 권리향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자(이른바 남부전략) 민주당 지지가 절대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는 절대다수의 흑인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며 진보적 성향을 갖고있다. 2008년 미국 대선때 폭스 뉴스의 코믹한 실험은 아직도 유명한데,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의 공약을 민주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의 공약이라고 속인 뒤 길거리의 흑인 행인들을 붙잡고 공약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는데, 하나같이 "역시 오바마!"라고 하였다 (...) 한마디로 민주당/흑인 정치인들을 맹목적으로 지지한다. 실제로도 2008년 대선에서는 흑인들의 95%가, 2012년에는 93%가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에 투표했다. 민주당 후보군중에서는 민주당의 적자, 주류후보에게 지지를 많이 보내주는 성향으로 인식된다. 민주당내에서는 오바마의 후계자로 인식되는 힐러리가 흑인들에게 압도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슈퍼회요일 경선에 이르기까지 클린턴가에 대한 애정과 민주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힐러리의 매우 효율적인 방화벽 역활을 해주었다. 힐러리가 민주당 경선 참여 백인종들에게는 42%대 58%로 샌더스에게 밀렸지만 흑인층에서는 82%대 17%로 발라버렸다. 앨라배마나 조지아 등지에서는 93%의 흑인이 힐러리로 갔으며 흑인여성에 한정하면 96%가 힐러리를 지지했다. 20대 백인 남성도 이만큼 샌더스를 지지하지는 않았을걸로 파악되는 현실에서 보면 단순히 지지를 넘는 열렬한 팬심이 작용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016년 현재는 미국 흑인의 대략 87%~92%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고 있다고 파악되고 있으며 현재의 오바마를 향한 배타적 지지와 마찬가지로 힐러리를 향한 열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6 범죄

흑인 사회에서 범죄 문제는 주요 문제 중 하나다. 흑인이 미국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3% 남짓인데 미국 전 감옥 수감자의 반이 흑인이고 살인이나 강간등 강력범죄자의 56%는 흑인이다.

이러한 원인은 흑인의 대부분이 아직 빈민층이고 흑인 청소년의 70%는 편부모가정에서 자라나고 있어 제대로 교육의 기회 자체를 받지못하고 있는것이 큰데, 알다시피 미국 공교육은 거의 파탄 상태로 백인 학부모들은 약이나 빨고 학교폭력 문제도 심한 공립학교에 애들을 잘 안 보내고 싶어한다. 학군이 좋으면 몰라도 학군 안 좋은 가난한 동네들은 더욱 그렇다. 공립학교는 파탄 상태인 만큼 교육이 정상적으로 될 리 없고, 백인들이 가기를 기피하는 학교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흑인이 그 자리를 채운다. 선생들도 박봉에 열악한 여건 때문에 의욕적으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니 뭘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운다. 그 결과 흑인사회가 일종의 갈라파고스화되어 미국 평균사회와 너무 유리되어 버렸다. 교육 부재로 인해 도덕성이 낮아 거리낌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갈라파고스화 된 흑인 사회는 아무도 신경 안 써서 부모가 자식에게 도둑질을 가르치든 10대 비행청소년에 가입하든 아무도 신경 안 쓰게 되었고 이것의 결과물이 흑인의 범죄율이다.

흑인들 사이에서 마약이나 폭력단(갱스터)가 퍼져 큰 문제이다. 그들은 대도시에서 뿌리를 내리고 마약을 퍼트려 흑인 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 괴짜 경제학이라는 책에 따르면, 1990년대 즈음 크랙이라는 코카인의 변종인 마약이 퍼져 흑인 사회가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흑인의 진학률과 소득은 급격히 감소했다. 대도시의 흑인들은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마약에만 의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건 역시 인종 차별. 화이트칼라라면 흑인이라도 의심하진 않는다. 그저 화이트칼라가 아니라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는 경찰의 인종 차별이 문제이다. 마약 관련해서도 그러했으나 2010년 공정한 처벌법의 발효로 코카인이나 크랙이나 둘다 미국 연방지정 2급 마약류로 처벌 기준은 똑같다.

7 소수 집단 우대정책

영어로 어퍼머티브 액션이라고 부른다. 소수 집단 우대정책은 진보-보수 양 측간의 논란 대상이다. 보수측은 미국의 모든 시민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어야 하므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 진보 측은 미국의 모든 시민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사회적 소수자'에게는 더 공정하게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이를 위해 소수 집단 우대정책을 찬성한다.

일단 흑인 사회에서는 진보 측의 입장을 지지한다. 그러나 클래런스 토머스[3]같은 흑인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움직임에 반대한다. 그는 이렇게 발언했다. "소수 집단 우대정책은 흑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들의 학력만 더 낮아질 뿐이다."

소수 집단 우대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무래도 백인과 아시아인이다. 대학/대학원 진학시 흑인학생보다 월등한 스펙을 갖추고도 단지 백인/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이 낮은 흑인 학생은 붙고 백인/동양인 학생은 떨어지는 사태가 일어난다. 주의 해야 할 것은 흑인 학생들 같은 경우 타 인종보다 Athlete student (운동 특기)로 입학 하는 비율이 많이 높아서 상대적으로 입학시 학업성적이 떨어져 보이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예는 1978년에 일어났던 바키 대 캘리포니아대학교 사건이다. 요약하자면, 앨런 바키(Allan Bakke)라는 백인 대학생이 UC 데이비스 의과전문대학원에 낙방했는데, 소수인종 지원자들이 자신보다 낮은 학업 점수로 입학 한 것을 발견한 바키는 곧바로 대법원에 헌법 위반 (Title IV) 위반이라며 제소했고 결국 승소하여 UC 데이비스 의전으로의 입학이 허가되었다. 이후 UC 데이비스는 소송비를 내는걸 계속 거부하다가 바키에게 고소를 당하고 결국 1980년 2월에 $180,000 가까이를 물어줘야했다. 사립대학교 4년 장학금 후에 앨런 바키는 UC 데이비스 의전을 정상적으로 졸업하고 메이오 대학병원에서 의사 경력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8 같이 보기

9 유명 인물

9.1 정치

9.2 군사

9.3 음악

주로 힙합, 랩 분야에 많이 포진해 있다.

9.4 배우

9.5 모델

9.6 스포츠

9.6.1 NFL

9.6.2 NBA

9.6.3 MLB

9.6.4 기타 스포츠

9.7 기타

  • 크리스 락: 코미디언. 미국 흑인 사회에서 흑인들이 겪는 애환과 차별을 코믹하게 소화하는 것이 특징.
  1. 이쪽은 미국 내 분류에서 흑인이 아니라 '태평양 섬 주민'으로 따로 분류된다.
  2. 이럴 수 밖에 없는 게, 자기 아버지가 워낙 저명 인사다보니 그렇다. 그것도 마빈 게이, 다이애나 로스, 스티비 원더, 마이클 잭슨 등을 배출한 전설적인 팝 지향 흑인음악 레이블 '모타운 레코드'의 사장 '베리 고디 주니어'니까...
  3. 매우 보수적인 몇 안되는 흑인. 그는 백인 경찰관이 흑인을 구타한 사건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일단 판결은 판결이다. 그가 내린 집행은 합당했다." 타 흑인들은 그에 이런 발언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그를 "배신자" "백인의 꼭두각시" "백인의 노예" 로 취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