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일기

  • 원제(네덜란드어): Het Achterhuis
  • 영어 제목: The Diary of a Young Girl

1 개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파일:Attachment/unesco-memoryoftheworld.gif
이름안네의 일기
Diaries of Anne Frank
국가·소장네덜란드
네덜란드 전쟁기록연구소
등재유형기록유산
등재연도2009년
제작시기1942년 6월~1944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나치 독일의 잔인한 홀로코스트가 횡행하던 시절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네덜란드 소녀 안네 프랑크가 가상의 친구인 키티와 대화하는 형식[1]으로 남긴 일기. 전쟁의 비참함을 후대에 일깨워 준 문화유산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많은 학살이나 2차 대전의 온갖 폐해들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가 이어져 인기 있는 책이 아니었으나, 후에 2차 대전에 대한 온당한 평가가 이뤄지면서 전 세계인의 애독서가 되었다.

2 상세

원제인 "Het Achter-huis(헷 아흐터르-하위스)" 는 "은신처"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2] 원제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그런지 영어로 번역될 때는 "어린 소녀의 일기(The Diary of a Young Girl)" 라는 제목으로 변경되어 출간되었다.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안네의 일기" 라는 제목은 1959년에 미국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 제목인 "The Diary of Anne Frank" 에서 유래했다.

전쟁의 참혹함과 나치 치하 유태인들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그 시절 소녀의 풋풋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책. 친구나 가족과 다툰 이야기, 첫사랑 이야기 등등 그녀가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담 등도 기록되어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그들이 살았던 집을 생생히 구경할 수 있다. 일종의 가상현실인데 마우스로 움직이기가 좀 불편하긴 해도 천천히 둘러보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 특히나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을 벽에 표시해둔 것을 보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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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터에 세워진 안네와 마르고트 자매 추모비

안네 본인은 사실 자신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도 훨씬 전에 끌려간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서 1945년 3월[4] 장티푸스에 걸려 죽었다. 훗날 책으로 탄생된 것은 안네 가족의 은신을 도왔던 동료 미프 히스(2010년 작고)가 그녀의 일기장을 소중히 보관하다[5] 유일하게 살아남아 돌아온 안네의 아버지에게 전한 뒤 아버지가 이 일기를 출판사로 보낸 덕에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그녀 스스로가 전후 자신의 경험담이 담긴 일기를 책으로 내겠다고 소망하기도 했다. 안네가 직접 출판을 목적으로 사적인 부분은 편집하고 지인의 실명을 가명으로 바꾼 편집본 작업을 했다. 오토 프랑크가 그녀의 일기를 출판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죽은 딸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단, 오토 프랑크는 프랑크 가족의 이름만은 실명으로 출판했다.

안타까운 점은 안네가 숨을 거둔 지 불과 한 달이 지난 4월 15일 베르겐-벨젠 수용소가 영국군에 의해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딱 한 달만 버텼어도 영국군에 구조되어 살아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초 출판자였던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출판할 때는 매우 사소해서 가치가 없는 내용, 살아있는 가족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내용(이라고 해봤자 본인 한 명), 사춘기 소녀가 느끼는 성에 대한 내용[6]이 포함된 부분은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펴냈다고 초판본서에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수정 때문에 일기가 조작되었다는 논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후 세월이 흘러 1980년에 오토 프랑크가 사망하고 책의 저작권이 안네 프랑크 재단으로 넘어갔을 때 원본에서 거의 편집을 가하지 않은 재판이 발매되었다. 그래서 현재는 초판과 완전판의 두 가지가 따로 나오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문학사상사에서 나오고 있다. 문학사상사판은 번역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참고로 초판만 읽은 사람이라면 완전판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이 판본에서는 나치의 잔혹함 이외에도 안네 스스로가 어른(여성)으로 각성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어서 페미니즘 문학으로도 가치가 높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때 네오 나치들과 일부 반유대주의자들이 이 일기를 '유대인들이 창작해낸 가짜다' 라는 드립을 시전했지만 완전판 나올 당시 원본이 공개되면서 닥 버로우 탔다.

그런데도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2013년 3월 3일자 방송에서 원본이 공개되었다는 건 그냥 무시하고 '아직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는 드립을 시전. 역시 서프라이즈!

2014년 2월 25일에 일본의 각종 도서관에서 이 안네의 일기를 비롯하여 각종 홀로코스트 관련 서적이 인위적으로 손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쿄에서만 300권이 넘는 권수가 파손되었다고 한다. 이에 경악한 이스라엘과 유대인 단체들이 진상조사를 촉구하였고, 이에 일본 정부와 경찰이 수사 중에 있다. 일각에서는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사실은 거짓'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지는 틈을 노린 극우의 만행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 동안 큐어 해피라며 지칭한 누군가가 안네의 일기와 문구들을 보냈다 (현재는 포스트가 없다고 뜬다). 누군가가 보낸 건지 알 수 없지만 참 훈훈한 내용이다.

그리고 마침내 범인이 잡혀 수사 중이다. 링크 범인은 안네의 일기가 대필이라는 해묵은 드립을 시전하는 중. 그런데 장갑까지 껴서 지문을 남기지 않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는데도 불안정한 언동을 보여 정신 상태가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인지 확인해보고 있다고...

그리고 영화화되는 것으로 결정이 되고 2016년 2월 11일에 개막되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첫 상영될 예정이다.#

3 등장인물

3.1 은신처의 사람들

3.1.1 프랑크 일가

모두가 아는 일기의 저자이자 주인공. 연표는 항목 참조. 평범하고 활달한 소녀였으나 유태인 탄압으로 인생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족들을 따라 은신처에 숨어들게 된다. 한창 감수성이 풍부할 때에 은신처에서 보내면서 자신의 상황과 성장을 겪는 고뇌를 겪으면서 성장한다.

착하고 긍정적인 성격이지만[7] 허영심 많고 참을성이 부족해 화를 내는 미숙한 면모도 많이 보여준다. 하지만 그 나이답지 않게 속이 깊고 조숙한 데다 깨어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차츰 세월이 지나면 나아졌을 가능성이 높다.

일기 후반엔 여성으로서 살아가는게 어떤 건지, 성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면서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여권 신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많다. 일기를 읽어 보면 어머니랑 대립하고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엘렉트라 콤플렉스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곤 한다. 무삭제판에선 어머니가 죽는 건 상상해도 아버지가 죽는 건 상상할 수 없다라고 적기도.사실 이 나이 여자 아이들이라면 흔히 있을 법한 일이긴 하지만 안네는 때론 어머니와 친가족으로서의 정조차 느끼지 못하기도 했다. 물론 에디트의 보수적인 성격이 진보적인 안네하고 충돌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을듯. 또한 안네의 시점에서 보자면 양쪽 부모님과 다른 어른들이 명랑하고 수다스런 안네보다 얌전하고 공부를 잘 했던 안네의 언니만을 칭찬하고 우대해 줬던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후에 가면 아버지에게 실망하는 반면,[8] 자신이 어머니에 대해 극렬한 증오심을 가진 것에 대해 후회하고 스스로 반성한다.

일기를 읽어보면 안네의 성격은 크게 1942년 말과 1943년 1944년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42년 말에는 은신처로 옮기기 전 상황도 일기에 적혀 있기 때문에 굉장히 활발하고 항상 행복한 소녀로서의 이미지로의 성격으로 그려진다. 그러나42년 말 은신처로 옮기게 되면서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해 절망과 희망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가 43년 말기에 접어들면서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페터는 오히려 42년이 더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고 안네가 성숙해지는 시기인 43년 말에는 어머니에게 대드는 ... 일상적인 아이로 그려지고 있다.) 44년에는 왜 전쟁이 일어나는지, 사람들 모두가 친하게 지낼 수 없는지 등에 대해 고민하는 굉장히 생각이 깊고 조숙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후에는 아시다시피 누군가의 밀고로 게슈타포에게 발각되어 가족들과 흩어져 강제수용소에 이리저리 끌려다니지만 당시 안네와 함께 있었던 수용소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대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9] 판 단 부인과 마르고와 안네 셋이서 수용소에서 제일 건강한 여성 3명으로 뽑혀 베르게-벨젠 수용소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마르고와 안네는 티푸스에 걸리고 마르고가 먼저 죽고 난 뒤[10] 씩씩했던 안네는 언니의 죽음에 모든 희망을 잃고 끝내 사망하고 만다.

안네의 아버지. 1889년생으로 히틀러와 동갑.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다. 하이델베르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미국 뉴욕에서 백화점, 은행에서 일했다.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육군 포병으로 징병되어 1917년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 종전 후 중위로 전역하였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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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시기 오토 프랑크(중간).

1차대전 종전 후에는 사업가였으며 나름 유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12] 그러나 나치의 유태인 탄압 정책으로 가족을 이끌고 네덜란드로 이주하면서[13] 숨을 돌리나 했더니 히틀러가 네덜란드를 먹어버리는 바람에 망했어요. 결국 SS에서 소환장이 날아오자 자기가 운영하던 회사 건물에 숨어든다는 계획을 세워 실행해버린다. 이후 은신처 일가의 리더 역할을 하면서 살림을 꾸려간다.
기본적인 성격은 무뚝뚝하고 엄격하지만 자상한 편. 성미가 급한 아내에 비해서는 다소 느긋하고 유한 편이지만 안네 시선에서는 어머니만큼은 아니여도 구시대적이고 답답하다고 느낄때도 있다. 사춘기 소녀 안네의 반항에 눈물 짓기도 하고, 일기 내에서지만 '왜 내가 힘들 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지 못하나' 라는 안네의 원망을 듣기도. 그리고 후술했다시피 은신처 멤버 중에 유일한 생존자로, 오토 프랑크가 끌려간 수용소가 얼마 뒤에 소련 육군에 의해 해방되어 구출되었다. 간신히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자기처럼 가족을 잃은 여인과 재혼. 안네의 일기를 정리해 내놓고 스위스로 이주 후 거기서 쭉 살다가 1980년에 세상을 떠났다.

  • 마르고 프랑크

안네의 언니. 성격은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닮았다고 묘사될 정도로 다소 느긋하고 둥글둥글하며 마이페이스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래서 트러블이 많은 안네와는 달리 은신처 사람들하고는 대부분 별탈없이 잘 지내며 안네하고도 서로 다툴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이가 좋은 편. 심지어 안네가 페터랑 연인 관계가 들어갈때도 질투할수도 있었는데 자신은 페터하고 친해지고 싶은건 맞지만 아직까진 큰 감정이 없으니 양보하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안네의 말로는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우등생이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안네가 상당히 의존을 많이 했던 걸로 보이며, 수용소에서 마르고가 죽자 안네 역시 급속도로 절망해 1달 뒤에 죽었다.

여담으로 번역본에 따라서 마르고라고 번역된 곳도 있고 마르고트라고 번역된 곳도 있다.

  • 에디트 프랑크

안네의 어머니. 오토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유복한 집안 출신이였다고 한다. 오토처럼 그 당시 기성세대답게 구시대적인 사고관를 가지고 있어서 안네랑 자주 충돌하며 안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답답하고 속좁은 어머니로 묘사된다. 무삭제판에서 보면 성에 대해서도 보수적이며 성미가 급하고 꼼꼼하지 못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허황된 생각만 한다는 둥 부정적인 묘사가 대부분.(...) 물론 일기가 안네의 시점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걸러서 들어야 할 필요가 있긴 하다.

베프의 회고에 따르면 안네가 글 쓰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던걸 보면, 좀 막혀있긴 하지만 나름 딸이 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고 신경써주는 성격이였던 것 같다.

게슈타포에게 발각 이후 안네, 마르고트 판 단 부인과 함께 수용소에 끌려가고 안네, 마르고트, 판 단 부인이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옮겨졌을 때 혼자 아우슈비츠에 남겨져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사망했다고 한다.

3.1.2 판 단 일가(판 펠스 일가)

판 단(Van Daan). 즉, 판 펠스(Van Pels) 일가를 포함한 은신처 사람들의 이름은 오토 프랑크의 요청으로 전부 가명으로 쓰여 있다. 즉, 안네네 가족을 제외한 은신처 사람들의 이름은 진짜 이름이 아니라는 것. 이들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펠스 씨가 프랑크 씨와 사업상 인연을 맺어 은신처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 헤르만 판 단 / 헤르만 판 펠스 (Hermann van Daan / Hermann van Pels)

페터 판 단의 아버지이자 판 단 부인의 남편. 안네와 데면데면한 관계였는지 딱히 일기장에 두드러지게 쓰여있지는 않았다. 다만 꽤나 완고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역시 수용소로 끌려간 뒤 가스실에서 사망. 정말 안습인 것은 아우슈비츠의 마지막 가스실 집행에 끌려간 것. 엄지손가락을 다친 것 때문이었다고. 여담이지만 담배를 매우 좋아해 담배가 없으면 아주 까칠해졌다고 한다.

  • 페트로넬라 판 단 / 아구스테 판 펠스 (Petronella van Daan / Auguste van Pels)

판 단의 아내이자 페터 판 단의 어머니.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 토론하는 것을 즐겨했고, 정말 신경질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처음 은신처에 들어왔을 때 요강을 가지고 와서[14] 주변 사람들을 웃게 해줬다. 참견이 심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서 안네와 자주 다퉜는데 그 때문인지 키티에게 어머니인 에디트 다음으로 가장 험담을 많이한 대상(...)이기도 하다. 안네가 야채만 남겼을 때 계속 훈계를 늘어놓자 참다 못한 오토 프랑크가 안네를 옹호해주며 판 단 부인의 접시에 담겨있는 야채를 지적해 아무 말도 못했다. 오토 프랑크에게 자꾸 집적거리는 듯한 묘사가 보이며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보이던 안네는 이에 대해 매우 분개한다. 여담이지만 욕 솜씨가 아주 찰지다고. 독일어와 네덜란드어를 섞어 말하는 게 그야말로 생선 장수 아줌마를 연상하는 솜씨였다고 한다. 안네는 그녀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
후에 안네, 마르고트와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고 안네, 마르고트와 수용소에서 건강한 여성 3명으로 뽑혀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사망했으나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아는 사람들은 없다고. 일단 1945년 4-5월 독일 혹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사실은 불명.

  • 페터 판 단 / 페터 판 펠스 (Peter van Daan / Peter van Pels)

판 단과 판 단 부인의 아들. 소극적이고 얌전한 성격으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다락방에서만 지낸다고 한다. 초반에는 안네를 시끄럽고 수다스러워서 싫어했으나[15] 안네와 몇 번 얘기를 주고 받은 후 따로 만나서 얘기하고 놀 정도로 관계가 발전했다. 안네의 뚝심 있고 긍정적인 성격을 굉장히 부러워했으며, 의존도 많이 했다. 안네와 썸도 탔다. 마르고트도 그에게 관심을 보여 이것 때문에 마르고트와 안네가 잠깐 싸우기도 했다고. 수용소에 끌려간 뒤, 유대인들을 전부 독일로 옮기라는 명령 때문에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와 헤어지게 되었고, 1945년 5월 10일 오스트리아의 마우트하우젠(Mauthausen) 수용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초기엔 어른스러운 이미지로 그려지지만 후기로 갈수록 어머니랑 싸우는 모습도 그려지고 상당히 반항적인 모습도 자주 보여준다.

  • 무쉬: 페터가 데려온 고양이. 배가 불렀던 것 때문에 안네가 암컷이 아니냐고 했는데 알고 보니 뼈다귀를 주워 먹어서 배가 불렀던 것이고 사실 수컷이다.[16] 은신처에 머물렀다가 집을 나가 버려서 페터가 상심했다. 안네도 집에 두고 온 모르체(Moortje)라는 고양이가 있었기에 좋아했다고.

3.1.3 기타 세입자

  • 뒤셀(Albert Dussel) (프리츠 페퍼(Fritz Pfeffer)) (1889~1944)

은신처에서 새로 받아들인 세입자. 치과의사다. 샤를로트 칼레타(Charlotte Kaletta)라는 비유태인 프랑스 애인이 있지만 홀로코스트 와중에 이별했다[17]. 원래는 전쟁 이후 그녀와 함께 남미로 이주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사망 플래그인가? 여담이지만 베라 비티네(Vera Bythine)라는 여자와 이혼한 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네와 같은 방을 사용해야 했는데 이것 때문에 안네하고 대판 싸웠으며, 일기장에서는 권위를 내세우는 꽤나 고지식한 쫌팽이[18]로 그려지며 어머니, 판 단 부인 다음으로 안네에게 제일 까이는 사람이다. 가족 없이 혼자 있다보니 상당히 신경질적이고 짜증나는 성격을 간간히 표출했지만 미프는 그가 마음씨가 좋고 잘생기고 매력적이라고 증언했다.
프랑크 및 판 단 가족과 같이 게슈타포에게 연행되어 강제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1944년 12월 20일에 독일 함부르크 노이엔감메(Neuengamme) 수용소에서 사망.

3.1.4 조력자들

조력자들은 오토 프랑크의 소유 회사[19]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대부분이다. 은신처인 프란센라흐트 263번지는 원래 오펙타 사무실이었는데 이 곳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 일부가 서로 짜고 유태인들을 숨겨주었다.

  • 코프하이스 (요하네스 클라이만(Johannes Kleiman)) (1896~1959)

오토 프랑크의 회사 직원 중 한 명으로 상냥하고 착한 성격이다. 게슈타포에게 발각되어 유대인을 숨겨준 죄로 안네, 판단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강제 노역을 하다 중간에 병이 생겨서 적십자의 도움으로 석방되었다. 전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 그곳에서 사망. 일기에 보면 위궤양 등으로 상당히 고통받았으며 전후에도 지병의 악화로 사망. 여담으로 문고리가 고장났는지 확인해 보겠답시고 문고리를 계속 돌려서 은신처 식구들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가 했다.(...)

  • 크라렐 (빅토르 퀴흘레르(Viktor Kugler)) (1900~1981)

오토 프랑크의 회사 직원 중 한 명으로 상냥하고 착한 성격이다. 게슈타포에게 발각되어 유대인을 숨겨준 죄로 안네, 판단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자기들 때문에 무고한 직원들까지 끌려가게 되었다고 자책하는 오토 프랑크에게 자기들은 당연한 일은 한거니 후회하지 않는다는 대인배 발언을 했다. 이동 도중 연합군의 공습을 받자 혼란을 틈타서 탈출해 집으로 돌아왔다.

  • 엘리 (벱 포스카윌(Bep Poskujl)) (1919~1983)

오토 프랑크의 회사 직원 중 한 명으로 다른 직원들처럼 상냥하고 착한 성격이다. 판단 부부의 잦은 심부름에도 짜증 별로 내지 않고 오히려 밖에 나가지 못 하니 답답할텐데 자기가 도와줘야 한다고 말하는 엄청난 대인배. 정확히는 몇 번 한계에 부닥쳐 거절한 적은 있으나, 그마저도 다 정상참작이 가능한지라... 안네는 그를 천사로 비유하며 찬양했다. 게슈타포한테 은신처를 발각 당했을 때 미프와 더불어 끌려가지 않았다. 1983년 작고. 미프와 함께 식료품 조달을 담당했다.

  • 미프 (미프 히스(Miep Gies)) (1909~2010(!!!))

오토 프랑크의 비서 출신. 남편 행크와 함께 안네와 판단 가족이 은신처로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안네의 일기가 나올 수 있도록 해 준 은인이기도 한데 게슈타포가 처들어왔을 때 기지를 발휘해 [20] 안네의 일기를 숨긴 뒤 돌아온 오토 프랑크에게 일기를 넘겨줘 안네의 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해줬다. 안네가 자신의 일기를 공모전에 내려고 했던 걸 생각하면 안네의 꿈을 이뤄준 은인이기도 하다. 아마 이 사람이 일기를 숨겨주지 않았다면 안네의 일기는 빛을 보지 못 하고 끝났을지도 모른다. 여담으로 은신처 일원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생존한 인물이다. 베프와 함께 식료품 조달을 담당했다.

  • 행크 (얀 히스(Jan Gies)) (1905~1993)

미프의 남편. 은신처로 떠나기 전날 미리 짐을 은신처에 가져다 주는 등[21]안네와 판단 가족이 은신처로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시 의회에 약간의 연줄이 있어 옷이나 음식 쿠폰을 가져다 주기도 했으며 새로운 뉴스를 가지고 들어오는 역할을 맡았다. 종종 점심시간에 들르기도 했다고. 여담이지만 미프와 함께 은신처에서 같이 밤을 지낸 적도(...) 있다고 한다.

  • 빌렘 판 마런(Wilem van Maaren)

위의 미프의 친지. 1943년부터 요한 포스콰일의 뒤를 이어 회사의 창고를 관리하던 사람이다. 후술되겠지만 안네 일행을 밀고한 유력한 용의자들 중 하나다. 본인은 끝까지 부정했지만. 1971년 사망.

  • 요한 포스콰일(Johan Voskujl)

베프 포스콰일의 아버지. 회사의 창고를 관리하던 사람. 관리자로 있던 도중 병으로 인해 판 마런에게 관리자 역할을 넘겼다. 바로 그 유명한 회전 책장을 만든 사람. 손재주가 아주 훌륭했다고 한다. 1937년 위암으로 입원했으며, 1945년 11월 사망했다.

3.2 안네 가족을 밀고한 자는 누구인가?

은신처 가족들을 밀고해 수용소로 끌려가도록 만든 밀고자의 정체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떡밥이다. 체포 당시 경찰들이 은신처의 비밀스러운 구조를 훤히 꿰뚫고 있었으므로 밀고자는 은신처에서 안네 가족들과 매우 가깝게 지낸 사람일 것이며, 아마도 그 정도면 안네의 일기에 등장하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가장 유력한 인물은 오토 프랑크의 회사 창고 관리인인 판 마런인데 평소 돈이 쪼들리는 편이고 안네 일행이 발각당한 후 독일 당국이 그에게 건물 열쇠를 준 뒤에는 자기가 사장인 양 회사 일에 간섭해댔기 때문이다. 단순히 하급 직원에 불과했던 마런이 열쇠를 맡게 된 경위도 미심쩍은 점이다. 일기에서도 안네는 마런의 행적이 조금 수상하다고 [22] 적었다. 하지만 그 외의 증거는 없는데다 마런 본인은 죽을 때까지 이를 부인했다.

또다른 유력한 용의자는 창고의 청소를 맡고 있던 리나 하르토크라는 여성으로, 병역을 기피한 아들을 숨겨두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안네 가족이 들켜서 수용소에 끌려간다면 자신의 아들도 들킬까봐 늘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10여 명의 유대인을 밀고하면 매우 큰 공을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들과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안네 일가를 밀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안네의 일기 출간 이후 암스테르담 경찰이 밀고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경찰에 전화를 건 밀고자의 목소리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하르토크가 더욱 의심받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사망함에 따라 흐지부지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오토 프랑크의 동업자였던 안톤 할러가 요주의 밀고자 후보로 지목되고 있다. 처음 할러를 밀고자로 지목한 사람은 오토 프랑크의 전기를 저술한 캐럴 앤 리로, 할러가 돈을 받고 유대인들을 밀고한 전적이 여러 번 있는 데다가 은신처를 습격한 경찰 중 할러의 친구도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참고로 할러는 오토 프랑크가 수용소에서 돌아온 후 그가 나치와 거래했던 사실을 숨겨주는 대가로 주기적으로 많은 돈을 받았다.

사실 안네 일행은 은신 도중 몇 번의 위기를 겪었는데, 사무실에 강도가 침입한 사건도 있었고, 건물주가 조력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집을 팔아버려 새 집주인이 집을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열쇠가 없다고 해서 넘어갔지만.

이렇게 많은 밀고 후보자가 거론되고 있고, 나름대로의 근거도 있지만 밀고자의 확실한 정체는 여러 번의 경찰 수사에도 결국 밝힐 수 없었으며 사건의 직접적인 관련자들은 모두 사망한 현재 시점에서는 밝혀질 가능성이 요원해 보인다.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밀고자는 이미 그에 대한 심판을 받고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당시 유태인을 신고하면 유태인 한 사람당 1.40길더를 포상금으로 주었다고 한다. 길더는 유로 이전 네덜란드의 화폐 단위인데 이게 현대 가치로 대략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추가바람

4 기타

1959년에 20세기 폭스사에서 "안네 프랑크의 일기(The Diary Of Anne Frank)" 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흑백 영화이지만 명작이다. 1959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과 미술상, 촬영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칸 영화제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프랑스와 일본 합작으로 극장 애니로도 만들었으나 확 망했다.(...)

인디 뮤지션인 제프 맨검이 영향을 받아 전설적인 포크 락 앨범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를 써냈다.1998년에 발표됐지만 오늘날까지 최고의 명반으로 추앙받으며 특히 4chan 등지에서의 제프 맨검 찬양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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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Seiection이 매우 신경쓰인다

과거에 국내에 나온 안네의 일기는 대체로 멀쩡하게 안네의 사진을 표지로 썼지만 왠지 전혀 엉뚱한 인물을 가져다 쓴 표지(...)가 이상한 판본이 화제가 되었다. 분위기가 완전 에로배우 정식으로 출간되어 서점에 진열되었던 책이 아니고 8-90년대 거리에서 리어카에 담아놓고 팔던 물건이다. 정식으로 출간된 책의 내용을 그대로 베낀 건지 번역 등에 전혀 문제가 없는 책도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표지는 저 모양으로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물건이 제법 있었다. 내용도 보지 않고 그냥 가까이 있는 아무 사진이나 표지로 이용했던 듯.

삼성출판사에서 안네의 일기를 만화를 그려 출판했는데 지금 보면 상당히 오류가 많다. 미프가 오토프랑크에게 일기를 넘긴 걸 청소부가 발견하고 넘겼다던가, 엘리의 이름을 베프로 바꾼다던가...
  1. 한국에는 그런 문화가 잘 전해지지 않았지만, 서양에서는 일기장을 한 명의 친구로 여기며 그 친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말을 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오늘의 일기"로 시작하는 것을 서양에서는 "일기장에게"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2. 안네가 전쟁이 끝나고 자신의 일기장을 공모전에 출품하려 했을 때 쓰려 했던 제목이다.
  3. 책장 쪽 숨겨진 방을 들어간 뒤 프랑크 가족의 방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프랑크 일가가 체포될 당시 그 자리에 있던 SS장교가 오토 프랑크에게 '이런 곳에서 숨어살면서 당신들은 행복했었냐?'라는 질문을 했는데 그 말에 프랑크 씨는 이 표시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4. 영국군에 의해 해당 수용소가 해방되기 고작 한달전이다.
  5. 무삭제판 후기에 따르면 절체철명의 순간에 미프가 기지를 발휘해 일기와 안네의 글이 담긴 종이들을 간신히 빼돌렸다고 한다.
  6. 자신만 보는 일기이니까 당연하겠지만 자신의 성기 생김새를 묘사했다던가(...) 적나라한 것들이 있다.
  7. 물론 종종 우울함에 빠져들때가 있기는 해도 전반적으로 희망을 가지려고 하는 묘사들이 많다. 본인 스스로도 "나는 가끔씩 우울해했지만 결코 절망한 적이 없다." (1944.5.3)라고 적을 정도. 그야말로 비참했던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상당한 멘탈갑이다. 결국 비극으로 끝난 게 문제였지만.
  8. 하지만 아버지만큼은 자신을 믿어주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다고 옹호했다.
  9. "하지만 아무것도, 그 누구도 안네를 묶어 둘 수는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안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10. 안네가 크게 상심할까봐 수용소 사람들이 마르고의 죽음을 쉬쉬했지만 2-3일 뒤에 안네가 눈치챘다고 한다.
  11. 훗날 은신처에서 나치에게 체포되었을 때, 가족의 물건 중에서 오토 프랑크의 전역 증명서를 발견한 나치 장교가 짐 싸는 시간을 5분에서 1시간으로 늘려 주었다고 한다.
  12. 안네 언급에 따르면 사업하기 전에도 부잣집이였다고 한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본인 재산을 날려먹긴 했지만 친척들이 부자라서 별 걱정없이 살았다고.
  13. 지금 시점에서는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였지만, 당시만 해도 네덜란드는 독일 유대인들에게는 이상적인 피난처였다. 네덜란드와 독일은 서로 이웃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는 언어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많으며, 서로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국민들이 많고, 서로 언어가 유사해 가서 지내기도 더 편했다. 네덜란드 내 유대인 커뮤니티도 꽤나 튼튼했기 때문에 피난 온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큰 손실 없이 경제적인 기반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결과를 아는 훗날의 시점에서야 영국이나 미국, 스위스로 갔으면 참화를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아쉬워하지만, 해당 국가들은 당시 독일 유대인들이 의지할 기반이 없어 처음부터 맨손으로 다시 시작해야했다. 즉, 당시 입장에서는 네덜란드가 해당 국가들보다 리스크가 적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시엔 설마 나치가 네덜란드를 공격하겠냐는 믿음도 한 몫 했다. 실제로 제 1차 세계 대전 때도 독일이 네덜란드는 건드리지 않기도 했고. 그래서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많은 독일 유대인들이 나치를 피해 네덜란드로 도피했다. 네덜란드 외에는 프랑스, 벨기에, 헝가리 등 독일 주변국들로 도피한 수가 많았다고 한다.
  14. 이것이 없으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나.
  15. 안네도 페터를 게으르고 별로 재미 없을 거 같다고 안 좋아했다.
  16. 페터가 안네에게 무쉬의 생식기를 보여 주며 성교육을 해 줘서 알았다. 페터가 너무 진지해서 안네도 딱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고.
  17. 가끔 식량을 선물로 보내주곤 했는데 혼자만 먹는다고 안네가 일기에서 깠다.
  18. 방 문제로 싸우고 난 뒤 화장실을 오래 사용하는 식으로 복수(...) 했다고 한다. 이건 은신처에서는 상당한 문제로, 사실이면 상당히 찌질하다고 해도 할 말 없다.
  19. 오펙타(OPEKTA)는 이름의 회사였다
  20. 게슈타포가 프랑크 일가를 잡아가는 동안 일기를 서류철에다 재빠르게 쓸어담았고 게슈타포가 추궁하자 자기 문서라고 우겼다고 한다.
  21.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옷, 구두 등을 챙겨 은신처로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노란 별을 착용한 유태인이 짐가방을 잔뜩 들고 길을 나서면 바로 신고당하는 게 당시 상황이었기에 이렇게 짐을 분산시켜야 했다. 실제로 오토 프랑크는 이런 상황을 대비하고 조금씩 미리 은신처에 쌓아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르고트를 소환하는 소환장이 도착하는 바람에 예상보다 일찍 은신처로 숨었다고 한다. 판 단 가족도 열흘 정도 일찍 들어온 케이스. 안네는 이 때문에 은신처로 이사하던 날 옷을 그야말로 껴입을 수 있을 만큼 껴입어서 걷는 것도 버거웠다고 일기에서 불평을 했다.
  22. 작중에서 도난 사건이 등장하는데, 당시 은신처 사람들과 회사 직원들은 판 마런이 관련되어 있는거 아니냐고 의심했다. 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결국 의심으로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