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프랑크

안네 프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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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은신처생활 비밀문복원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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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저기 있는 파일철들은 '밀가루 맛있게 만드는 법', '잼 보관법' 등에 대해 정리해 둔 파일철이라고 한다.

Annelies "Anne" Marie Frank (아넬리스 "안네"[1] 마리 프랑크, 1929년 6월 12일 - 1945년[2])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는 것은 사람들의 진심은 정말 착하다는 것이다

-안네의 일기中

내 소망은 죽어서도 사는 것.[3]

1 소개와 일생

안네의 일기의 저자. 안네는 1929년 독일의 상업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넉넉한 유대인 은행가 오토 프랑크(Otto Frank)와 어머니 에디트 프랑크(Edith Holländer Frank)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안네가 네덜란드의 유대인 소녀로 유명하지만 사실 안네의 일기는 독일어로 쓰였고 독일의 유대계 독일인 집안에서 태어났었다. 나치 치하에서 독일의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자 1933년 프랑크 가족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민을 떠났고 안네는 네덜란드에서 자랐다. 뒤에 나치 독일이 유럽 전체로 동맹국이나 점령국을 확대해 가며 네덜란드도 나치 치하가 되자 프랑크 일가는 미국 또는 캐나다로 망명을 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홀로코스트를 피해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암스테르담의 은신처에서 숨어 지내게 된다.

당시 은신처 건물은 회사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가 들릴까봐 제대로 대화를 나누거나 일상생활을 하기도 어려웠으며, 공간이 좁아서 여러 명이 함께 방을 사용해야 했다. 물품은 늘 부족하여 작은 속옷을 억지로 입거나 개인 물건을 가지거나 청결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누구라도 견디기 어려운 답답한 환경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해외로 휴가를 다녀올 정도로 유복했던 가정에서 자란 안네에게는 특히나 열악했을 것이다. 안네는 은신처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에 비하면[4] 천국 같은 곳이라며 견뎌내는 어른스러운 모습도 보여준다. 안네의 일기는 안네가 13세 생일선물로 일기장을 받은 1942년 6월부터, 은신처가 들켜 수용소로 압송된 1944년 8월까지 약 2년 2개월 동안 쓰였다. 안네는 은신처에서 함께 지내던 가족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지고, 이후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옮겨졌다. 1945년 3월 경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안타깝게도 약 1개월 후 영국군이 베르겐벨젠 수용소를 해방시켰다. 만약 안네가 수용소에서 딱 한 달만 더 버텼다면 영국군이 그녀를 구출할 수도 있었어서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안네의 일기는 프랑크 가족의 친구이자 은신처 삶을 도왔던 네덜란드 여성 미프 히스(Miep Gies)[5]가 가지고 있었다가, 가족 가운데 홀로 살아남은 오토 프랑크가 네덜란드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 전하여 책으로 펴낼 수 있었다. 안네는 일기에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 말대로 안네는 비록 수용소에서 15세의 나이로 죽었지만 그녀의 일기는 전세계에서 스테디셀러가 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라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한 때 유투브에서 화제가 된 이 영상은 1941년 7월 22일 네덜란드에서 촬영되었으며 12살의 안네가 발코니로 얼굴을 내밀고 당일 결혼식을 치룬 신랑 신부를 바라보는 모습이 수 초간 나왔다.귀엽다!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는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을 가지거나 유럽 왕실의 계보도를 외웠다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안네의 이름은 밤하늘에도 남아있다. 1995년 2차대전 종전과 안네의 50주기에 명명된 소행성 5535 Annefrank가 그것. 이 소행성은 NASA의 혜성 탐사선 스타더스트 프로브가 목적지 81P/빌트 혜성으로 향하면서 플라이바이를 실시하기도 했다.

2 작가로서 안네 프랑크

안네의 꿈은 작가였으며, 은신처 생활 중에 자신이 쓴 일기를 전쟁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비록 안네는 그 모습을 보지 못 했지만, 결국 그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미프 기스는 안네와 그 가족이 살던 모습이나 생활을 보고 몇 가지 말한 적이 있는데, 안네의 어머니는 미프에게 우리 딸은 작가라고 하며 딸의 재주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실제로도 안네의 글재주는 매우 뛰어나며, 그 덕분에 안네의 일기가 단순히 전쟁 상황에서 어린 소녀가 쓴 일기를 넘어서는 가치를 가졌다고 평가받을 수 있었다. 유대인 박해나 전쟁, 은신처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과 두려움, 그 안에서도 느낄 수 있는 작은 즐거움들을 사실 그대로 자세하게 묘사했으며, 안네 자신의 생각이나 성장과정 같은 풍부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안네의 나이나 유대인 박해 때문에 제 나이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보다 문장 수준이 높아서 일기의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었으나[6] 원본이 알려지고 전문가들의 필체 감정으로 정말로 안네의 필체가 맞다고 판단됐다. 누군가는 그것을 두고 장래에 뛰어난 작가가 되어 더욱 많은 작품을 남길 수도 있었을 소녀가 나치의 인종 학살로 안타깝게 희생됐다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로 안네는 은신처 생활 중에서도 간간히 동화 등을 써서 은신처 식구들에게 들려주었으며, 은신처 식구들도 재밌게 보았다고 한다. 이는 안네의 일기 본문에도 언급되어 있는 사항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적도 있다. 세로쓰기로 쓰여져 있는 오래된 안네의 일기 판본 뒤에 부록으로 달려 있었는데, 현재 그 내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추가바람.

  1. 네덜란드어와 독일어 발음은 '아널리스 아너(네덜란드어: /ɑnəˈlis ˈɑnə/, 독일어: /anəliːs ˈanə/)'에 가깝다.
  2. 사망일자는 수용소의 기록이나 안네와 함께 수용소에서 생활하던 사람의 증언 등을 통해 1945년 3월 중순 정도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3. 근데 넓게 보면 안네는 소원성취했다.
  4. 실제로도 안네 일가는 아버지 오토 프랑크의 재산과 준비성 덕에 당시 나치 점령국 유대인들 중에서는 굉장히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다. 수용소로 간 유대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숨어살던 유대인들 대부분의 거처도 잠도 자기 어려운 헛간이나 가정집 창고 같은 곳이 고작이었다.
  5. 안네가 나치에게 잡혀가게 된 원인은 이 인물의 친지가 밀고 했기 때문이라 카더라. 물론 이 사람은 사실상 목숨걸고 숨겨주었기 때문에 충분히 대인배이다. 안네 일가가 체포될 때 그녀 또한 체포되었는데, 이후 석방되어 목숨은 건졌다.
  6. 이 논란에는 안네의 일기가 유대인이 지어낸 가짜라고 주장한 인간 쓰레기나치 옹호자들도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