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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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안성기(安聖基)
출생1952년 1월 1일, 대구광역시[1][2]
본관순흥 안씨
본적강원도 강릉시[3]
신체173~5cm[4] , 72kg, B형
학력동성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데뷔1957년 영화 '황혼열차'
가족형 안인기(1947년 생), 배우자 오소영,
아들 안다빈(1988년 생), 안필립(1991년 생)
종교천주교(세례명 : 사도 요한)
소속사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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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1980년대, 90년대 초반 충무로황제[5][6]
국민배우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유니세프 아저씨[7]

국민배우로 알려져 있으며 그 생애에 흑역사가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8]

많은 연예인들의 치부인 병역문제에서도 모범적. 안성기는 장교의 신분으로 병역을 이행했다. 학군 12기로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하여 제12보병사단에서 복무, 중위로 만기 전역하였다. 학군 13기 출신으로 안성기보다 한 기수 후배[9]인 국회의원 정몽준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여, 2002년 월드컵 유치위원회에서 두 사람이 함께 일하기도 하고, 2013년 안성기가 현대중공업 CF에서 나레이션 형식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주로 대통령, 특정 집단의 우두머리의 배역을 많이 맡으며 특이하게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는 범죄자의 배역도 소화해냈다. 사실 워낙 출연작이 많다 보니 안해 본 역할이 없을 정도다.

2 생애

2.1 유년기와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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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1960) 출연 당시

안성기는 5살 때 처음으로 연기자가 되었으며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서는 10살 때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10] 계속 연기를 한 강수연이나 손창민, 이민우 같은 이후의 아역 출신과 달리 초등학생 이후에는 연기를 그만둔다.(60-70년대 당시는 아역 출신이 성인 연기자로 성공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서, 계속 연기를 하는 사람이 훨씬 적었으니 일반적인 길을 택한 쪽이다.)

아버지가 체육교사로 재직했던 동성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때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뜻하는 바가 있어서 베트남으로 진출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학교를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로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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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소위 안성기

대학에 진학한 안성기는 베트남에 가기 위해 ROTC를 지원해서 후보생이 되었다. 그러나 안성기가 소위로 임관하기 전에 전쟁이 종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성기는 포병 소위로 임관해서 열심히 군복무를 했다. 사단장배 음어 조립 해독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2.2 배우 안성기

안성기는 전역을 하고 나서는 회사원이 되려 했으나, 그 베트남이 공산화되는 바람에 전공인 베트남어가 쓸데가 없지졌던터라《병사와 아가씨들》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다시 연기자가 되었다.[11]

아역 스타 출신은 성인 배우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고정관념이 지배하던 시대였으므로 그가 성인 배우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로 충무로에 복귀한 후 이어진 영화의 성공으로 자리를 잡으며 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남자 배우가 되었다. 그 시절 화제작들의 주연을 도맡을 정도였다. 특히 8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든 명장 배창호 감독의 영화들에서 주연을 맡아 작품성과 흥행 모두를 잡으며 배우로서의 가치를 높였다. 신현준도 그가 출연한 영화 '기쁜우리 젊은날(1987년)'[12]를 보고 배우가 되었다고 훗날 무릎팍 도사에서 밝혔다. 《태백산맥》 촬영당시 안성기와 같은 숙소 같은 방을 썼을 때 신현준은 이 사실을 안성기 본인에게 털어놨는데 그 때 안성기는 눈도 안 마주치며(…) 응~ 그런 애들 많아~라고 대답했다고…안성기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자신의 수첩에 기록하는 신현준의 행동에 그만 놀랐다는 일화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본문에서 이야기되듯 아역 시절부터 계속 영화를 찍어온 공장장 배우다. 후배 배우들 중 그의 영화를 한 편도 못 볼 확률이 사실상 0.

그래서인지 상당히 맡는 배역의 폭들이 넓은 편이기도 했다. 어리숙한 캐릭터부터 지적인 캐릭터, 심지어는 2010년에 히트한 모 드라마의 남자주인공보다도 더 오래 전에 까도남같은 역도 했을 정도(《그대 안의 블루). 다만 배창호 감독의 전성기가 끝난 후로 여러 감독들과 작업했는데, 이미 한국영화의 간판이던 안성기는 캐스팅 제의를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함량미달의 작품에도 얼굴을 팔아서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많이 잃었다는 평가가 있다. 덕분에 인간으로서의 흑역사는 없는데 괴작이나 졸작을 거절 못해서 배우로서의 흑역사만 있다.[13]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기억에 남는 게 안성기뿐이다 할 정도로 그 능력이나 지위가 확고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TV 드라마 출연이 극히 드물다. 이는 안성기가 성인 배우로 다시 복귀하던 시절부터 한국 영화는 컬러 TV 보급 등의 영향으로 방화[14]로 불리며 긴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영화판에서 새로 건진 배우가 있어도 곧 TV 탤런트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영화 최고 스타인 안성기로서는 자신만은 한국 영화를 위해 TV 드라마 출연을 자제하겠다고 맘먹고 그에 따른 것이다. 위의 흑역사라고 불리는 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한국 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이라도 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연기력 또한 원래 뛰어나지만 시대가 변해도 그에 침체되지 않는 배우다.90년대의 흥행배우들 대부분이 2000년대에 넘어오면서 자연스럽지 못한 억양에 침체되는 반면에 그는 안성기라는 개성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어울리는 억양을 쓴다.

영화계에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각종 매체에서 안성기가 마이크 잡고 시위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다. 특히 스크린 쿼터제는....

2016년 6월 런닝맨을 통해 처음으로 예능에 출연한다.

3 기타

  • 영화 《실미도》에서는 안성기가 실제로 장교 출신이였기 때문에 이것이 반영되어 684부대장(공군 준위) 역을 받았다.
  • 아역 시절에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특별상을 받았는데, 이게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 영화제 연기자 수상 기록이다.
  • 가끔 '영화배우 A 성기 사진 (공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놓고 안(Ahn)성기 사진을 올려놓는 낚시를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도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신문 유머란에는 이름이 섹드립으로도 유용되는 등 여러모로 굴욕을 겪었다. 한국 영화는 성기를 보여줘야 히트한다는 식으로. 안습. 이 때문에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는 이 문서에서 이름과 관련된 드립을 아예 작성금지시켜버렸다. 사실 이미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90년대에도 개그맨 김형곤이 진행하던 '김형곤 쇼'에 나와서 굴욕의 인증을 한 바 있다. 김형곤이 질문을 하면 "네/아니오"로만 대답을 해야 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본명이 안성기씨 맞죠?"라고 하면서 "어릴때 성기라는 이름으로 놀림받은 적이 있죠?"라고 하자 안성기가 머쓱한 웃음으로 "네"라고 스스로 말했었다.
  • MBC 《인간시대》에서 단란한 가정을 보여주었고[15] 안성기는 그 다큐 최초로 나온 연예인이었다. 이후 무명에서 막 뜨기 시작한 최진실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유명인이 자신이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평. 이후에도 큰 스캔들이 없어서 그때의 인상이 남아있었고 다른 배우들과 달리 TV 출연이나[16] 다작 CF도 없어서 상대적으로 성실함과 신비감을 유지했다.[17]
  • 대한민국 가요계의 제왕 조용필과 경동중학교 동창이다. 실제 학생시절부터 알고 지냈다고 한다. 한 명은 영화계를 평정한 국민배우, 한 명은 가요계를 평정한 국민가수.
  • 그리고 영화배우로 있는 동안 박중훈콤비를 이뤘는데 첫 콤비는 《칠수와 만수》로 시작하여 《투캅스》 시리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등 상당히 많은 작품에서 콤비를 이루었다. 이제 안성기에게 박중훈은 사실상의 절친이다. 물론 나이는 안성기쪽이 훨씬 많긴 하지만…아무튼 박중훈은 데뷔초부터 지금까지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항상 안성기를 꼽는다. 특히 그의 인격적으로 변하지 않는 모습에서 완성된 인격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이 항상 감동을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방송에서 나오는 모습과 실생활의 차이가 없고, 실제로 볼 때 카리스마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성격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잘 따를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하고, 후배들에 대한 배려도 잘 하기 때문에 실제로 안성기와 함께 촬영을 해본 다른 후배들이 단순히 선배 배우로가 아니라 인격자로서 존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안성기가 출연하던 영화에서 그와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었으나 나이가 조금 있던 무명 단역 배우가 촬영장에서 짧은 연기를 하다 자꾸 실수를 했을때 화가 난 감독이 그 쉬운것도 못하냐며 욕을 섞어가며 심각하게 모욕적인 말을 하자 안성기가 직접 나서서 그 상황을 무마시키고, 그 단역 배우를 잠시 따로 데려가서 "신경쓰지 마라. 당신은 틀림없이 할 수 있다는 걸 믿어라."라며 위로하고 촬영을 잘 마치게 하여 그 배우가 크게 감동받아 후에 영화관계자들에게 당시 안성기에게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를 하여 영화계 미담이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 연기폭이 다양한 반면 베드신은 못 찍는다고 한다. 일설에는 기독교인이라거나 혹은 아내나 아들 보기 민망해서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가 오인돼서 안성기는 영화에서 벗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로 발전했었다.[18] 모 토크쇼에서 고백한 바에 의하면 이런 저런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연기 인생이 오래 돼도 베드신은 감정 이입이 안 되어서 찍지 않는다고. 그래서 《깊고 푸른 밤》 등에서 나온 장면은 많은 부분 대역을 썼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박중훈이 과거에 한 인터뷰에 의하면, 안성기는 꿈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유혹하자 꿈에서라도 아내를 배신할 수 없어서 억지로 잠에서 깼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내에 대한 엄청난 충실함(!)을 보여주는 대목. 그렇게 부인에게 충실하니 베드씬에서 몰입을 못하지 흠좀무.그리고 박중훈이 아는 사람중에 유일하게 혼외정사를 하지 않은 사람이 안성기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 1996년 영화주간지 씨네21에서 안성기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었는데, 그를 싫어한다는 이유들 중 하나가 아내에게 너무 잘해줘서라고 한다.
  • 2001년 영화 '무사'로 제 21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생애 첫 남우조연상 수상인데, 그 동안 주연급 배우로서 활동하면서 주연상만 독식해오다가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포지션까지 양보하면서 영화를 위해 많이 고생한 노고가 인정되었다. 그의 수상호명과 함께 그 영화제에 참석한 모든 배우, 제작자들이 객석에서 기립박수로 화답해 주었다. 청룡상 영화제의 몇 안되는 명 장면이기도..
  • 팝음악을 좋아하고 엠넷에 출연해서 좋아하는 팝음악을 소개한 적 있다, 샤데이를 소개할 정도로 팝음악에 조예가 있다

4 가족관계

  • 여담으로 전형적인 아들부잣집이다. 아버지 형제들, 사촌에 조카들까지 집안 대대로 이 매우 귀하다. 그의 아버지는 4남 1녀 중 둘째로, 큰집은 아들만 5명 본인 형제는 아들만 3명, 작은집은 아들 여럿에 딸이 하나씩이라고 한다. 형제들 중에서도 큰형(안인기PD)씨만 2남 1녀의 자녀가 있고 나머지 형제는 모두 아들만 있다고(...). 그래서인지 본인도 결혼 후에 어느정도 예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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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인 오소영 씨는 이화여자대학교 조소과 출신 조각가/교수이다. 안성기는 직접 부인의 전시회장에서 작품을 나르기도 할 정도로 자상한 면을 보이기도 했다. 부인은 상당한 미인으로, 미남인 아들들 외모는 상당 부분 엄마 덕인 듯.
  • 장남인 안다빈은 프랫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있다. 여담으로 어느날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만난 이정재정우성을 개인전에 초대해서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싶었다며 찍은 사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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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진
작풍은 에곤쉴레나 클림트가 생각나는 그런 그림. 이정재와 정우성 옆에 섰는데 신장과 비율에서 꿀리지 않는다.안성기의 유전자를 고대로 물려받았다. ㅎㄷㄷ
  • 둘째 아들 이름이 안필립인데, 1992년 로드쇼와 인터뷰에서 안창호 선생 아들 이름에서 따왔다고 밝힌 바 있다. 건축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아기 때 위의 《인간시대》에 나왔다.
  • 안성기 본인은 육군 ROTC 출신이지만 두 아들은 모두 공군에서 현역병으로 복무했다. 기묘하게도 두 명 모두 공군교육사령부에서 복무를 했다. 첫째는 교육사 천주교 군종병, 둘째는 공군행정학교 총무병으로 복무.

5 출연작

5.1 영화

5.2 광고

  1. 명목상 출신지가 대구로 나온 것은 그의 부모가 한국 전쟁 당시 피난길에서 그를 낳았기 때문이며, 실제로 전쟁 후 자란 곳은 서울특별시이다. 이 때문에 보통 그의 고향을 서울이라고 많이 말하는 편. 참고 자료를 보도록 하자.
  2. 프로필 상으로는 52년 1월, 속칭 빠른 52년 생으로 되어 있는데 50년 생 조용필과 절친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으나 안성기는 50년 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녔고, 조용필과는 중학교 동창 같은 반 친구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절친으로 지내는 것이다. 아마도 안성기 본인이 실제로는 50년 생 또는 빠른 51년 생일 가능성이 있다. 행정 마비 내지 유아 조기 사망, 도로교통 미개발 등으로 출생 신고시 오류가 생기거나 늦게 등록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나 출생 당시가 6.25 전쟁 중이 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 생년월일호적이 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장 부모님 세대만 해도 민증상 나이와 실제 나이가 차이 나는 경우가 꽤 많다. 이경규 역시 비슷한 상황으로 실제 1960년생이지만 호적상으로는 1962년생이다.
  3. 부친의 출생지.
  4. 안성기가 작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생각보다는 키가 크다. 화려한 휴가를 보면 자신의 딸 역할로 나오는 이요원이 170cm인데 집안에 있는 장면을 보면 이요원보다 더 컸다.
  5. 한국의 배우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원톱의 인기와 영향력을 누렸으며 연기로도 고평가를 받은 배우이다. 안성기를 제외하면 신성일, 한석규가 충무로 한 시대의 원톱이었으나 전자는 당대 미남배우로서의 인기를 누린것이어서 배우 자체로서의 능력, 연기력에 대해선 저평가를 받으며 후자는 연기력 또한 뛰어났으나 그 기간이 짧았다. 박중훈, 최민수, 그리고 2000년대 설송최 트로이카는 전성기에 완전한 원탑이 아니었다.
  6. 실제로 그 명성에 걸맞게 역대 한국 배우를 통틀어 굵직한 수상기록이 가장 화려한데 한국 3대 영화시상식으로 유명한 대종상, 청룡영화제,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트리플크라운에 성공한 몇 안되는 배우이며 심지어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역대 최다수상 배우이다.(대종상 : 5번, 백상 : 8번) 아쉽게도 안성기의 최전성기였던 80년대에는 청룡영화제가 폐지되어 있었던 터라 청룡상 수상커리어가 부족하지만 역시나 90년도 청룡영화제가 부활한 첫 해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데에 성공했다.
  7.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꽤 오랫동안 활동해 왔는데, 케이블TV의 후원회 광고에 계속해서 목소리 출연하고 있다. 그런데 왜 전화번호는 무미건조한 여자 목소리로 내보내나요? 홍보 대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들리는 그 목소리는 뭔가 무섭다고요.
  8. 물론 망한 영화는 많다. 《퇴마록》이라든가 《한반도》라든가 《7광구(영화)》 등. 하지만 본인이 망한 영화에 대해 흑역사로 생각하지 않으며, 최근에도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거저나 다름 없는 개런티로 흥행성 없는 영화에 출연 중이다. 개념 충만한 다작 배우. 병역, 연기력, 배우로서의 개념, 사생활…개드립용으로도 깔 거리가 없다. 게다가 시나리오 자체가 개판이라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답이 안 나오는 영화에서조차도 자기 역할만큼은 충실하게 소화해 낸다. 《퇴마록》의 박신부 역이 좋은 예.
  9. 안성기가 빠른 52년생, 정몽준은 51년생이라서 나이 상으로는 같은 학년이지만 안성기는 1년 위인 50년생들과 학교를 다녔다.(안성기 실제나이가 50년생 또는 빠른 51년생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50년생인 조용필과 중학교 동창이고 51년생인 정몽준보다 1년 선배인 것이다.
  10. 안성기의 아버지 안화영은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하기도 하였고, 이후 동성고 체육교사로 재직하였는데, 허리가 안 좋아 교사직을 그만둔 후 친구였던 김기영 감독의 권유에 따라 영화제작자로 전직하였다. 이후 김기영 감독은 영화 <황혼열차>를 만들때 마땅한 아역배우가 없자 친구의 아들인 안성기를 캐스팅 하였고, 그렇게 안성기는 연기자가 된것이다. 참고로 <황혼열차>는 배우 김지미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11. 물론 아무리 베트남어가 쓸모없어졌다해도 대학 졸업하면 거의 취직이 보장되던 시절, 공무원은 할거 없으면 하는거라던 그 시절에 한국외대 나온 장교 출신이 정말 일자리가 없었을리는 없고 전공을 못쓰게되어 마음에 맞는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고 보는게 맞겠다. 본인 회고로는 당시에 워낙 고급 인력이 없으니 베트남 다녀온 장교 출신 친구들은 다 취업 잘 되더라고.
  12. 차승원도 고교시절 이 영화를 보고, 마지막 장면 안성기의 모습에서 (엄마가 일찍 죽어 없는) 딸에게 슬픔을 티내지 않으려 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비애의 모습이 묻어나오는 아빠를 연기하는 안성기를 보며 '저게 진짜다'를 느꼈다고 한다. 재미있는건 차승원도 무릎팍도사에서 말했다.
  13. 물론 농담으로 안성기 본인이 해당 영화 출연 사실을 흑역사화 한 적은 없다.
  14. 일본에서 쓰는 한자말(邦畵)을 그대로 쓴 표현. 2000년대 이후엔 거의 쓰지 않는다.
  15. 80년대 일반인들의 삶을 다룬 한시간짜리 리얼 다큐로, 매주 월요일 8시 MBC에서 방영했다. 현재 KBS에서 방영되는 《인간극장》과 비슷한 컨셉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인간극장보다는 훨씬 정통 다큐멘터리에 가깝다.(인간극장은 방송제작 관련 수업에서는 '잘 만든 프로그램이지만 절대 저렇게 나레이션 치면 안 된다, 너희들은 이금희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귀따갑게 듣는다.)
  16. 유신시대에는 실화극장류의 반공물에는 유명 영화배우들이 반강제로 출연했었다. 신성일이나 김승호도 TV 출연경력이 있는 게 이런 이유. 다만 안성기의 전성기때는 그때만큼 반공 드라마가 빡센 편이 아니라서 강제출연은 없었다.
  17. 나이가 들어서 전자제품 CF를 찍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에는 모 커피 CF가 유일했다.
  18. 안성기는 필요할 때면 얼마든지 영화에서 벗는다. 《하얀 전쟁》에서 고자인증 장면이나 《남부군》에서 집단 목욕 장면 부러진 화살에서의 강간 당하는 신 등등.
  19. 원제 라스트 나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