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권KO

안정권으로 검색해도 이 항목으로 들어올 수 있다.

파일:Attachment/4 9.png

나무위키에 문서가 만들어진 모든 방화범 집단의 반의어

힙합보이 안지만, 국노 정현욱, 파이어볼러 권혁, 언더테이커 권오준 쌍권총 듀오, 끝판왕 돌부처 오승환까지, KBO 리그의 전설이자 역사상 최강의 방패로 남은 불펜 5인방

JOKKA, 조까 불펜진

파일:Attachment/5 9.png
최훈 카툰에서 묘사된 안정권KO.[1] 와중에 물먹는 세일러유...아니 휘발유[2]

파일:Attachment/superrelieves.png
2011년 안정권KO가 모두 최고의 활약을 보냈던 시즌을 보여주는 최훈 카툰.정인욱은 덤이우선은 어디로간건가

파일:XGPfesu.png

가격이 ㅎㄷㄷ

1 개요

2000년대 중후반~2012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뒷문을 책임졌던 핵심 불펜투수 안지만, 정현욱, 권혁, 권오준, 오승환의 필승조 5인방을 줄여 부르던 말이다. 2012년 시즌 후 정현욱이 FA를 통해 LG 트윈스로, 2013년 시즌 후에는 오승환이 한신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사실상 해산되었다. 그리고 권혁도 FA가 되어 한화 이글스로 가버렸고, 안지만은 도박 사건으로 인해 계약해지 조치되어 팀을 나며 현재 권오준만 삼성에 남아 있다. 안권K불창용

2 이름의 유래

먼저 권오준-오승환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셋업맨-마무리 듀오를 이루며 K-O펀치라는 별명이 붙었다.[3] 그리고 권오준-권혁을 쌍권총이라고 부르다가 권오원까지 합쳐 잠시 세명을 삼권총이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여기에 2010년 안지만과 정현욱, 권혁이 5의 공식[4]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맹활약하면서 따로 성씨를 묶어 안정권이라 불리게 되었고, 이 후 11년에 부상에서 회복한 권오준과 오승환이 복귀하면서 여기에 원래 있던 K-O를 추가, 안정권KO라 불리게 되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JOKKA(4번 항목)라고도 부른다. 물론 상대 타자들 입장을 고려할 때 조까라는 별명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3 활약상

3.1 2006년 이전

  • 가장 먼저 데뷔한 선수는 1998년에 데뷔한 정현욱으로, 그저 그런 선발 유망주 수준의 성적을 남기다 2004년 병역비리에 걸리면서 단기징역을 살았고, 이후 공익복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3년 가량의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 두 번째로 1군에 데뷔한 선수는 2002년에 데뷔한 권혁으로, 데뷔 2년만에 타고투저를 감안할 때 꽤 괜찮은 성적을 기록하며 필승조로 자리잡았다.[5] 2004년 시즌 후 토미존 서저리를 받아 2006년 시즌 후반에 복귀했다.
  • 세 번째로 1군에 데뷔한 선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삼성에 입단해 2003년에 데뷔한 안지만으로, 2005년에 반짝 활약을 한 것 외에는 큰 존재감이 없는 투수였다. 여담으로 이때는 안지만이 팀내에서 가장 체중이 적은 선수였다고 한다. 설마[6]
  • 네 번째로 1군에 데뷔한 선수는 권오준[7]으로, 역시 2003년에 데뷔했으며[8]으로 2003년 시즌 후반에 반짝 등판한 이후 2004년에는 선발투수로서 10승을 거두며 신인상 후보에 올랐었다.[9]
이후 2005년에는 선동열 당시 감독이 권오준을 마무리로 전환시켰고, 17세이브 평균자책점 2.29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 투수에 정착한다. 하지만 어느 돌던지는 후배가 맹활약하자 다시 셋업맨으로 보직을 옮겼고, 2006년에는 당시 기준으로 KBO 한 시즌 최다 홀드 신기록인 32개의 홀드와 1.6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전 구단을 통틀어 최고의 셋업맨으로 자리잡게 된다.
  • 가장 데뷔가 늦었던 건 2005년에 데뷔한 오승환. 처음에는 팔꿈치 각도 수술 이력과 투구폼을 문제삼은 선동열의 반대로 삼성에 못 올 뻔했으나, 결국 삼성에 2차 1라운드에 지명되어 입단하여 데뷔 시즌부터 10승과 10홀드 10세이브를 기록하며 KBO 사상 전례가 없던 트리플 더블[10]을 달성하면서 신인왕에 오르게 된다.
이후 마무리로 고정된 2006년에는 무려 47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3년까지를 기준으로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아시아 최다 세이브 신기록이다.[11]

3.2 2007년

병역비리에 걸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정현욱이 2007년에 복귀하면서 처음으로 안정권KO가 한시즌에 같이 뛰게 되었는데, 정현욱은 이 해 8월 중순에서야 소집해제되어 복귀했기에 별다른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이해에 오승환은 2년 연속 40세이브를 기록하며 특급마무리로서의 입지를 굳혔으며, 안지만은 108이닝 동안 5승 3패 7홀드를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갱신하며 불펜 필승조로서 맹활약했고, 권오준은 전해의 혹사 휴우증으로 3.41 방어율과 3승 5패 6홀드라는 비교적 평범한 성적을 냈다.
사실 이 해에 가장 경악스러운 활약을 펼친 건 다름 아닌 권혁으로 불펜투수만으로 나오면서 한때 방어율 1위와 탈삼진 1위를 동시에 석권했었다! 하지만 초반부터 너무 등판한 탓에 시즌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가면서 다른 선발 투수에 비해 등판 이닝이 적어질 수밖에 없었고, 평균자책점[12]과 탈삼진[13] 모두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세 자릿수 탈삼진과 19개의 홀드(3위)를 기록하며 대활약을 펼쳤다. 다만 이 시기에도 제구는 불안해서 39개의 볼넷과 3개의 사구를 기록했다.

3.3 2008년

안정권 트리오가 각성한 시즌.

안지만은 커리어 최초의 2점대 방어율과 데뷔 후 두 번째로 많은 9개의 홀드를 기록했으며, 정현욱은 선발과 계투를 오가면서 규정이닝을 채워 평균자책점 9위에 등극했다. 여기에 권혁은 등판이닝은 전년의 절반수준에 그쳤으나 1점대 방어율과 14개의 홀드를 기록했으며 이때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병역 면제 혜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위의 안정권 트리오와는 달리 K-O 펀치는 전년에 비해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권오준은 각종 부상에 시달려 고작 16⅓이닝 밖에 등판하지 못했으며, 오승환은 이닝당 탈삼진이 1개도 안 되는 부진(?)[14]속에 1개 차이로 아쉽게 3년 연속 40세이브 달성에 실패하고 만다.

3.4 2009년

안정권KO의 최대 암흑기

잔부상에 시달리던 권오준은 생애 두 번째로 토미존 서저리 수술을 받으면서 시즌을 통째로 날렸으며, 안지만은 무리하게 많은 이닝을 소화하다[15] 어깨부상으로 시즌아웃 되었으며, 오승환 역시 어깨 인대가 찢어지며 시즌아웃 당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전설의 조원수박차가 이들을 대체하기 위해 등판했다가 처절하게 털렸으며, 이 때문에 앞선 세 명이 하던 역할이 권혁과 정현욱에 집중되어 버렸다. 물론 이로 인해 정현욱과 권혁은 혹사 휴우증으로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추락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9월 잔여경기에서 삼성의 발목을 잡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마감하는 원흉이 되고 말았다.

3.5 2010년

안정권 트리오에게는 황금기. 오승환에게는 암흑기

안정권 트리오가 세 명 다 커리어하이를 갱신하며 2010년 삼성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 안지만은 팀 동료 차우찬과 승률왕 다툼을 펼쳤으며 9승 3패 9세이브 8홀드에 2.74의 평균자책점과 데뷔 후 최다인 95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으며 조동찬과 함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선발, 병역면제 혜택까지 받았다. 시즌 후에는 삼성 자체 고과 산정에서 투수고과 1위로 선정되며 다시 억대연봉으로 진입하게 되었다.[16]
  • 권혁은 고질적인 제구불안이 해결되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탈삼진과 사사구의 비율이 3:1을 기록하게 되었으며, 2.09의 평균자책점과 7승 1패 4세이브 10홀드를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시즌 후반 롯데전에서 폭투로 삼성의 5의 공식을 마감시킨 것을 시작으로 다시 제구난조가 시작되었고, 포스트 시즌에서는 최악의 부진에 빠지며 최고의 시즌을 최악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 정현욱 역시 안지만과 같은 9승을 기록했으며 각각 팀내 최다인 12세이브와 11홀드를 기록하며 건재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 안정권 트리오에 대해 특기할 사항으로는 선동렬 감독이 이전까지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관리를 드디어 세 명 모두에게 하기 시작했다. 이때 선동렬 감독은 이전까지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등판간격과 소화이닝 수를 정확하게 지켜줬다. 3경기 이상 연투는 지양하고 2이닝 이상 던진 선수는 다음날 경기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등판시키지 않는 식이었다. 다만 이때 선발투수를 5이닝만 소화하게 하고는 바로 내리면서 이 원칙을 지키려 들었고 그 때문에 동점이나 지고 있지만 뒤집을 수 있는 상황에서 원칙을 지킨답시고 추격조 투수를 등판시키면서 엄청나게 까였다. 원칙을 지키는 건 둘째치고 애초에 선발투수를 5이닝만 소화시키게 하고 내린 게 불펜투수의 가용 폭을 좁힌 원인이기 때문.

권오준은 32⅓이닝동안 3.58의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수술 복귀를 알렸으나 정작 문제는 오승환이었다. 복귀하자 마자 이진영에게 홈런을 맞으며 블론세이브, 이 후 롯데전에서 이대호에게 홈런을 맞으며 다시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부진을 펼치다 팔꿈치 뼛조각 제거로 시즌 아웃되었다가 이후 한국시리즈에서 복귀했다. 근데 여기서 선동렬이 복귀 후 첫 등판을 만루상황에서 시키는 병크를 저질렀고, 결국 오승환은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강판당하고 만다. 이후 등판에서는 1⅓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팀은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3.6 2011년

파일:Attachment/3 12.png
정현욱의 패기

안정권KO가 처음으로 동시에 활약한 년도.

2011년 오승환이 완전체로 돌아왔으며 권오준이 전성기에 비하면 다소 부진했지만 쌍권총 콤비 권혁과 함께 각각 좌-우를 나눠맡으면서 원포인트 릴리프로 좋은 모습을 보였고, 장원삼의 공백 때문에 잠시 선발 투수를 맡았던 안지만이 11승과 17홀드를, 정현욱이 1개 차이로 리그 2위를 기록한 24홀드[17]를 기록하면서 불펜 야구를 제대로 보여줬다. 거기에 오승환이 0.63의 방어율과 1승 47세이브, 1 블론세이브[18]라는 비현실적인 성적을 기록했으며, 2011년 삼성의 불펜 방어율 2.44[19] 팀 블론세이브가 고작 8개[20]에 구원 성공률이 93.13%[21]로 압도적 1위였다.

개개인의 자세한 활약상에 대해서는 삼성 라이온즈/2011년과 각각의 선수들의 2011년 항목을 참고하는 게 좋다.

3.7 2012년

오승환을 제외하고는 전원 시즌 출발이 좋지 못했다. 그나마 오승환도 424 대첩의 주인공이 되는 등 불펜의 부진이 심각해지며 한때 삼성 라이온즈가 7성까지 떨어지는 원흉이 되었다. 그러나 정현욱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점점 회복세를 펼쳤고 거기에 심창민, 정인욱이 가세하면서 예년과 마찬가지로 2.64의 압도적인 불펜 평균자책점[22]과 작년보다 줄어든 5개의 팀 블론 세이브[23]를 기록하며 여전히 KBO 최강의 불펜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다만 권오준은 팔꿈치 통증으로 다시 한 번 토미존 서저리 수술을 받게 되었으며, 정현욱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크게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역시 자세한 활약상은 항목이 길어지므로 삼성 라이온즈/2012년과 각 선수들의 2012년 항목을 참고 바람.

3.8 해산 그리고...

정현욱이 안정권KO 중 첫 FA 자격자가 되었다. 그런데 계약 기간에 이견을 보여[24] 삼성과의 협상이 결렬되었으며 이 후 4년 계약을 제시한 우규민 나오는 팀로 이적하게 되면서[25] 안정권KO는 6년 만에 해산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 이후 5명 모두 안좋은 상황에 빠져버렸다.

  • 오승환, 안지만: 각각 KBO 역사상 최고라 불렸던 클로저와 셋업맨이었건만 야구 외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오승환은 리그에 다시는 복귀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26] 범죄자가 되었고 안지만 역시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임창용의 전례에 따라 방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안지만은 2016년 7월 21일 자로 계약해지통보를 받게된다(...) 그러나 오승환은 일본 찍고 MLB로 진출해서 선수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MLB에서 실패하면 호주나 대만으로 갈듯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정현욱은 FA로 팀을 떠날 당시 삼성 라이온즈를 비하하는 인터뷰를 남기며 본인의 인성을 안좋은 쪽으로 인증해버렸고, 이적한 팀에서 한 해 반짝하는 듯 했으나 수술을 받으며, 선수 커리어에 큰 타격을 입었다.
  • 권혁은 같이 이적한 삼성의 새로운 금지어와 달리 겸손한 인터뷰를 하면서 삼성팬들에게 한화가서도 잘하라는 격려를 받았으나 성적에 미쳐 선수들의 팔을 갈아넣은 희대의 막장감독에게 KBO 역사상 최악의 혹사를 당하며 그야말로 선동렬 시절에 버금가는 악몽같은 상황에 직면해있다. 다행히(?) 구원투수로 정우람이 와서 2015시즌의 역대급 혹사를 볼 확률은 적어질것으로 보였으나...2016년에도 철저히 굴려지다가 결국 8월 시즌아웃되었다.현실은 역대급 혹사...
  • 권오준은 세 차례나 토미존 서저리를 받아가면서까지 재기를 노렸으나 2014년 스프링캠프에서 골절상을 당하며 복귀가 늦어졌고 결국 한해 늦은 2015년이 되어서야 복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속 부상의 여파 때문인지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도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이쪽도 사실상 선수 커리어가 끝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가 2016년 들어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군 선수들의 성장이 더디고 앞서 언급된 도박 사건 연루 선수들이 방출되면서 일단 기회를 조금 더 부여받게 되었다는게 선수 본인에게는 그나마 다행인 상황. 그리고 현재 안정권KO 중 유일하게 삼성에 남아 있다.

한 장으로 요약

4 성적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이다.

4.1 안지만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3삼성 라이온즈1421⅔10007.8931911
2004122200007.77301213
20056382⅔83014
(3위)
3.48654372
20067601029.001064
20075310853073.421004483
20085169⅔51092.97673064
2009175124015.12541932
2010679293982.74743295
201147861150172.83742477
20125663⅓22028
(2위)
1.71422058
20135463⅔62022
(3위)
3.11462660
통산441666482491083.49593265569

4.2 정현욱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성적만 표시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8삼성 라이온즈57⅔10004.70662
19992578⅔37005.03803256
20002500003.60632
20011군 기록 없음
2002203611004.00321834
20034385⅓45134.59913477
20042785⅔45013.36814267
2005군복무(공익근무)
2006
20071114⅔01105.5215116
200853127[27]1040113.401085697
2009627985616
(2위)
3.42773866
20106170⅓9112113.20663061
20115972⅓43124
(2위)
2.36703452
20125462⅔25033.16572148
통산422725⅓463721693.86689325568

4.3 권혁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성적만 표시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2삼성 라이온즈24010013.501101
20032339⅓32025.26402126
2004378133034.78804278
20051군 기록 없음
200612800024.50866
20076077⅔710192.794742100
20084347⅔60015
(4위)
1.32362337
20096380⅔57621
(1위)
2.90644676
20106073⅓714102.09542173
20115848⅓13019
(4위)
2.79382427
20126449⅓231183.10482038
20135236⅓01033.96351741
통산474545⅓3422111123.27461253503

4.4 권오준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3삼성 라이온즈132301013.1322610
200447153⅓115273.23
(5위)
12847142
(5위)
200546633117
(5위)
12.29471769
2006678091232
(1위)
1.69613583
20073434⅔35063.41321628
20081916⅔00034.3216517
200921⅔00000.00221
20104232⅔10233.5839932
20115348⅓110112.79481252
20124642⅔130102.95321348
20131군 기록 없음
통산369495⅔291723742.85427163482

4.5 오승환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5삼성 라이온즈619910116111.184620115
(5위)
200663
(5위)
79⅓4347
(1위)
01.594313109
20076063⅓4440
(1위)
01.40411969
20085757⅔1139
(1위)
01.40341651
20093531⅔2219
(4위)
04.83281751
2010161400404.5013519
201154571047
(1위)
00.63271176
20125055⅔2137
(1위)
01.94331681
20134851⅔412801.74331254
통산444510⅓2813277
(1위)
111.69298129625

5 정말로 선동열이 키웠나?

선까와 선빠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논쟁. 선까와 선빠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선까의 주장

  • 조계현이 1군 투수코치로 부임한 후[28] 2009년에 안정권KO가 망했으며 조원수박차까지 등장했으며 양일환이 복귀하고 나서야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 선동열은 애초에 오승환을 뽑지도 않으려했다.[29]
  • 5명 다 원래부터 대 투수로 성장할 자질이 있었기 때문에 큰 거지야잘잘[30], 선동열이 육성을 잘해서 큰 게 아니며 2010년에 혹사당하지 않은 것도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 코치의 공이 컸던 거다.[31]
  • 권오준은 군 제대 후인 2003년부터[32] 김응용 감독이 1군에서 제대로 밀어주는 등 기회를 주었고 권혁 역시 김응용 감독 시절 1차 지명으로 입단하였고 시속 150km대의 강속구를 던지는 흔치 않은 좌완 파이어볼러로 유명했다.
  • 권혁, 권오준, 정현욱은 선발투수감이었는데 무리하게 계투로 전환시키는 바람에 2000년대 중후반 삼성 선발이 부실해진 원인이다.

선빠의 주장

  • 오승환이 가장 고마워한 감독이 다름아닌 선동열이다. 선동열이 아무 것도 안 했다면 이런 말이 나올 리가 없다.
  • 정현욱은 병풍사건 전까지 그저 그런 투수였는데 복귀 후 선동열 감독 밑에서 포텐이 터졌다.[33]
  • 5명 모두 김응용 시절이 아니라 선동열 시절에 포텐이 폭발했다.
  • 권혁은 전형적인 투피치 투수인데, 투피치 투수를 선발로 키웠으면 오히려 실패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투피치 투수 중에 성공한 예는 매우 적다.

선동열이 경질당한 직후였던 2011년 시즌만 해도 맹렬한 키배가 벌어지곤 했으나.. 지금은 타어강 이 후로 선동렬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면서 선까 쪽의 주장이 조금 더 힘을 얻고 있는 편.[34]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에게 맡긴다.

6 트리비아

  • 마운드에서는 5명 다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지만 마운드 밖에서는 5명 모두 개그캐릭터. 정현욱과 권혁은 실제 성격과 달리 노예와 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야구 카툰이나 칼럼등에서 개그소재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며, 안지만은 박석민과 함께 개그 라이온즈의 쌍두마차로 예전부터 활약해왔다. 여기에 오승환은 돌부처 속성 때문에 역시 예전부터 개그소재로 많이 다루어진데다 실제로 안지만과 같이 인터뷰를 하면 이미지와 달리 개그 라이온즈다운 안지만에 맞먹는 입담을 자랑하곤 한다. 그리고 권오준은…

1296960499.jpg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프야매에서도 이들과 관련해서 08' 정현욱-권혁-오승환을 모으면 발동되는 지키는 야구라는 팀컬러가 있다. 이 팀컬러가 나온 건 2009년.

7 관련 문서

  1. 삐뚤어진 모자는 안지만, 무표정은 오승환, 쌍권총은 말안해도 알것이다.
  2. 야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저 뒤에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은 오세훈 당시 서울특별시장이다. 무상급식 관련 이슈 및 2011년 7월 강남구 일대에 있었던 호우 피해와 관련한 비판 여론이 있었던 시기이다.
  3. 참고로 2005년 시즌 중반까지는 권오준이 아니라 오승환이 셋업맨이었다. 이 후 오승환이 활약하자 선동열 당시 삼성 감독이 오승환을 마무리에 고정시킨다.
  4. 5회까지 리드시 무려 55전 53승 2패를 기록했다. 그나마 2패도 모두 상대에게 안타나 홈런을 맞은 게 아니라 권혁의 제구 난조로 내준 패배였다. 덧붙혀 저 때 2패는 모두 롯데 자이언츠에게 내줬다.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
  5. 이때 권혁선발 투수로 뛰고 싶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투수코치는 선동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6. 실제로 신인 시절에는 65kg 가량밖에 되지 않았으며, 아이돌 연습생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턱선이 살아 있었고 곱상했다. 하지만 경산밥을 먹으면서 돈성화, 삼적화 몸을 불린 후로는돼지만….
  7. 안지만은 3월 21일, 권오준은 9월 23일.
  8. 입단 순서로 따지면 1999년에 입단한 권오준이 두 번째지만, 권오준은 재활과 군복무로 1군 데뷔가 늦었다. 참고로 권오준은 이때 상근예비역이긴 하지만 해병대에서 복무했다.
  9. 하지만 신인상은 권오준보다 성적이 한참 처지는 오재영이 받았는데, 이 때문에 신인상 나눠먹기 의혹이 불거졌다.
  10. 공식명칭은 아니고 팬들이 임의로 붙힌 별명이다. 과거에는 홀드를 공식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홀드가 인정되기 시작한 시기에는 선발 투수가 마무리도 맡는 혹사가 유행했으며, 현대에는 선발-중계-마무리로 분업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10승 10홀드 10세이브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으므로 앞으로도 이에 대해 공식명칭이 붙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11. 2011년에 타이기록이 나오긴 했다. 근데 그 타이기록을 세운 사람이 또 오승환이다.
  12. 2007 시즌 권혁의 평균자책점은 2.79로 만약 규정이닝을 채웠다면 2.07의 다니엘 리오스에 이어 평균자책점 2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다.
  13. 100개로 전체 11위.
  14. 그래도 57⅔이닝 동안 무려 51개나 되는 탈삼진을 기록했다.
  15.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날린 2006년 시즌을 제외하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260⅓이닝을 소화했다. 거기에 2009년에도 시즌 중간에 어깨부상으로 아웃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무려 51이닝을 소화했으니 그야말로 숨겨진 혹사 투수였다.
  16. 2010년 9000만원, 2011년 1억 7000만원
  17. 1위는 25홀드를 기록한 SK 와이번스빛나리정우람.
  18. 심지어 그 경기도 동료들의 도움으로 승리했다..블론해서 팀이 진경기는 하나도 없는셈
  19. 2위는 SK 와이번스의 2.78
  20. 안지만, 권혁, 오승환 각각 1개, 정현욱 2개, 권오준 3개. 2위는 10개를 기록한 KIA 타이거즈한화 이글스.
  21. 2위는 85.47%의 SK 와이번스
  22. 2위는 롯데 자이언츠의 3.35.
  23. 2위는 10개를 기록한 LG 트윈스.
  24. 삼성은 3년을 제시했고 정현욱은 4년을 주장했다.
  25. 이와 관련해서 김기태가 정현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붙잡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6. 오승환이 KBO 리그로 복귀한다면 7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감수해야 한다.
  27. 10홀드 이상 투수 중 유일하게 규정이닝을 충족했다.
  28. 원래 조계현은 2군 투수코치를 맡고 있었다가, 2008년 5월 양일환 당시 1군 투수코치와 보직이 맞바뀌었다.
  29. 오승환의 팔꿈치 수술 경력과 도움닫기를 두 번 하는 독특한 투구폼 때문에 지명을 만류했다고 한다.
  30. 마찬가지로 선동열이 그렇게 밀어주었던 조원수박차 중에서 터진 선수는 차우찬 뿐이다.
  31. 이 부분은 흔히 오해들을 하는데 10년의 관리는 선동열이 지시한게 맞다. 08년까지 계투진을 갈아넣다 09년 충격적인 연쇄 시즌아웃 사태를 맞은 여파로 관리를 시작한것. 또한 오치아이는 선동열 시절 투수교체 전권을 감독이 가지고 있어서 본인은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고 본인이 밝힌바 있다. 따라서 선발을 5이닝만 던지게 한 뒤 1점이라도 지고 있으면 필승조 관리를 핑계로 추격조를 올려 사실상 경기를 포기하는 짓이 문제였지, 10년의 관리 그 자체는 선동열이 잘한 일 이었다.
  32. 2003년이면 선동열이 삼성에 없었던 시절이다. 선동열이 코치로 삼성에 합류한 건 2004년부터다.
  33. 이에 대해선 선동렬이 가르친게 아니라 00년도 당시 김성근 2군 감독이 배영수와 정현욱의 기초를 죽빵을 갈겨가며 잡아줬기 때문에 성공할수 있었다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도 배영수는 2001년부터 바로 완성형 투수의 자질을 보였고, 정현욱 역시 선동렬이 투수코치로 부임하기 전까지 특출나진 않았어도 삼성의 처참한 계투진을 충분히 매꿔줬었다. 이 때문에 김성근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선동렬은 이미 기틀이 잡힌 투수를 굴려놓고 운좋게 공로를 독차지 한게 아니냐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34. 근데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삼성에서 성공했다고 반드시 KIA에서 성공하란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