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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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안희정 (安熙正)
출생일1965년 5월 1일[1]
출생지대한민국 충청남도 논산군 연무읍
본관순흥 안씨
최종 학력고려대학교 철학 학사
소속 정당더불어민주당
배우자민주원
자녀슬하 2남
현직충청남도지사
약력민주당 사무총장실 비서
자치경영연구원 사무국 국장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민주당 최고위원
공식 사이트공식사이트블로그트위터페이스북
역대 대한민국 충청남도 도지사
35대 이완구
권한대행 이인화
36~37대 안희정(현직)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선출직 공무원. 2016년 현재, 제37대(민선 6기)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충청남도 도지사충남도립대학교 이사장을 역임 중이다.

2 생애

2.1 유년기 시절

1965년 5월 1일[2]에 태어났으며, 충청남도 논산군 출신이다. 재미있게도 부친이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여서 아들의 이름을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인 정희(正熙)를 반대로 바꾼 희정(熙正)으로 지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 러시아 혁명사를 읽고 감명을 받은 것과 5.18 민주화운동을 보고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게 학생 운동에 뛰어든 계기라고 한다. 학력 과정이 묘한데, 남대전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불온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고등학교 1학년 때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맡기도 했다. 학교로부터 문제 학생들을 삼청교육대에 보내도록 하라고 지시를 받았으나 교장에게 "문제학생을 학교가 교화시켜야지, 왜 삼청교육대에 보내는가?"라고 항의하다 위의 불온 서적 문제까지 겹쳐서 제적 처분을 받았다고. 고등학교를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에 위치한 성남고등학교로 다시 다니게 되었지만, 얼마 안 가 자퇴했다. 참조

한동안 운동권에 몸을 담았던 그는 학생 운동을 목적으로 검정고시를 통해 1983년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3][4] 그러나 운동권 생활을 이어가다 1988년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수감되면서 제적되었고, 출소 이후 정치에 입문하면서 대학은 계속 쉬게 되었다. 정계에서 손을 뗀 이후 잠깐 출판사에서 영업일을 하다 정계에 복귀를 하기 위해 복학하여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2.2 정계 입문

정계는 1989년 통일민주당 김덕룡 국회의원실에서 일하게 된 것을 계기로 입문, 초기에는 주로 국회의원의 비서로 일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끼자 정계에서 손을 떼었고 한동안은 출판사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후 2001년 당시 노무현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이광재강원도지사와 함께 좌희정 & 우광재라고 불릴 만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했었지만 정작 참여정부 하에서는 별다른 공직을 맡지 못했다.[5][6]

불법 정치 자금 3억 9000만 원을 연구원 운영 자금으로 사용하고, 2002년 대선 이후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2006년 복권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의 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상술한 선거법 위반 전력이 발목을 잡아 낙천했다. [7]

2008년 7월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3 민선 5기 충청남도 도지사

36대 (민선 5기) 충남도지사를 역임했다.

2.3.1 선거과정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충청남도 도지사에 당선[8]되어 고향에 금의환향하였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선거결과는 상당히 접전이었는데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의 삼자구도로 진행되었고, 2위를 기록한 자유선진당의 박상돈 후보와 고작 20,023표 차이(2.30%)였다.

참고로 안희정 지사의 고향인 논산에서 박상돈 후보를 22,497표 차이{안희정-36,197표(61.24%), 박상돈-13,700표(23.17%)}로 이겨서 당선될 수 있었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연설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

2.3.2 주요공약

  • 6대 정책과제
- 3대혁신
일 잘하는 지방정부로 가는 「행정혁신」
주민이 주인 되는 「자치혁신」
농어촌에 희망 주는 「3농혁신」
- 3대 행복과제
자영업에서 기업까지 「행복한 성장」
아이에서 어르신까지 「행복할 권리」
도랑에서 서해까지 「행복한 환경」

2.3.3 직무수행

  • 민선 5기 안희정 지사가 도민에게 약속한 공약 이행도에 대한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평가결과 전국 최우수 등급인 ‘SA’를 획득했다고 밝혔다. 민선 5기 4년 내내!#
  • 2012년 1월 8일 SBS 신년특집 만사소통, 2부 '계급장을 떼라'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을 잘 모르는 도민들에게 봉사활동을 하러 온 사람처럼 꾸미고 민심을 들었다. 해당 영상
추가 바람.

2.4 민선 6기 충청남도 도지사

37대 충남도지사를 역임했다.

2.4.1 선거과정

도지사 재선 의사를 밝히고, 새누리당정진석 후보와 경쟁하였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는 10% 이상의 꽤 큰 차이로 새누리당의 정진석 후보를 앞섰다. 선거 직후 출구조사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으로 나와 지지자들을 긴장하게 했으나, 개표가 시작되고 투표함을 연 후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정진석 후보를 약 8.26%(73,679표)차로 이기고 재선에 성공[9]하였다.[10]

참고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와 비교해 충남 모든 기초자치단체 지역에서 득표율이 올랐으나[11], 공교롭게도 고향인 논산 지역에서만 근소하게 득표율이 감소[12]했다. 이는 제 5회 지방선거에서 선거가 삼자구도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논산 사람들이 논산이 고향인 당시 안희정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삼자구도임에도 득표율 60%이상)했던 결과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13]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비해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약 10만 표 정도 더 득표했고 득표율도 10% 정도 올랐다. 5회 지방선거는 삼자구도로 진행되었고 이번 6회 지방선거는 양자구도로 선거가 진행됐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5회 지방선거에서 보수계라고 분류할 수 있는 한나라당, 자유선진당[14]과 진보계로 분류할 수 있는 민주당의 득표비는 약 5 : 4 정도로 보수계 정당의 득표를 단순 합산하면 보수세가 우세하였다. 하지만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 합당하여 새누리당이라는 거대여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6회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의 득표비는 4 : 5 정도로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의 안희정 후보가 우세하였다. 지역에서 정당 지지율은 새누리당이 크게 앞서는 걸 생각하면 충남에서 안희정 지사의 개인경쟁력을 알 수 있게 된 선거라는 평가가 있다. 이 때문에 충청권의 대표주자로 일컫어지게 된 면도 있다.[15]

참고로 고향인 논산에선 제5회 지방선거에 이어 2회 연속 60%이상의 득표(60.21% - 36,205표)를 했다.

제6회 지방선거 과정, 정진석 후보와의 TV토론에선 충청 대망론을 언급하며 충청도 출신의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라는 지역 사람들의 열망을 자극하기도 하였다. #[16]

2.4.2 주요공약

민선 5기 대와 같다.

2.4.3 직무수행

  • 안철수 의원이 2014년 7.30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직에서 사퇴하였을 때, '안철수 대표는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갖던 세력이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큰 공을 세웠다' 변호하기도 하고#, 역시 문재인 대표가 2015년 4.29 재보선이후 사퇴 등 여러 압박에 시달리고 있을 때도 그래도 당의 맏이는 당대표이므로 힘을 실어줘야한다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 메르스 사태 당시 충남 이내에서의 확산을 방지, 통제하는 데 성과를 거두어 위기 대응 능력에서도 긍정적인 점수를 받았다. 의료인들을 응원하자는 페이스북 글도 시의적절했다는 평가. #
  • 안희정 지사가 민선 5기부터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3농 혁신'이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긍정적 기사가 나왔다.#
  • 2015년 8월 15일, 광복 70년을 맞은 광복절 축사에서 광복절을 '승리의 날'으로 부르자, 안중근의사의 영향을 받은 '아시아 평화 공동체'라는 구상이 포함되어 있는 등,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였다. 연설 도중 마지막으로 발언한 하늘에 계신 애국열사, 애국선열들이시여. 우리들의 이 길을 굽어 살펴 주소서.가 인상깊었다는 평이 있다. #
  • 자신의 이름을 딴 '안희정 법(지방재정법 개정안)'이 2015년 11월부터 전국에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
  • 민선 6기 충남도지사로서 시도지사 직무평가에서도 꾸준히 상위권을 달리고 있으며, 2015년 6~8월에는 3개월 연속 전체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도정을 잘 운영한다면 '스스로가 언급한 대로 (대권을 노리는) 충청권의 대표주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자신의 SNS에서 “김대중 노무현의 못 다 이룬 역사를 완성하고자 노력할 것”이라며 대선 도전을 사실상 선언했다. #
  • 그리고, 김문수 前 경기도지사가 그랬던 것처럼 도지사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대권 경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추가 바람

3 앞으로의 가능성

  • 과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요 측근 인사이자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절친이었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더불어 '좌희정 우광재'라 불렸을 정도.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측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직후, 안희정은 자신을 포함한 친노 진영을 '폐족'[17]이라고 지칭한 바 있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사망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여론, 이명박 정부의 정책실패 연속에 따른 국민적 실망 등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친노 진영은 부활하게 된다. 안희정 지사가 처음으로 충남지사에 당선됐을 때에도 이런 바람을 탔었다.
  • 하지만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의 충남도지사 재선을 계기로 더 이상 '친노'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서도, 스스로의 능력[18]을 바탕으로 정치세력화를 추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문재인이나 김두관, 이해찬 등 확고한 친노 진영의 지지를 얻고있는 정치인들이 도리어 선거의 득표력의 확장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에 비해 매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셈.
  • 그리고 조선일보 등의 언론을 통해 보수 진영에 손을 뻗는 등 중도층에게도 호감을 얻는 중이다.
  • 위에 언급된 제 6회 지방선거에서의 충남도지사 후보 1대 1 토론에서 말한 것처럼 충청도 출신 거물 정치인인 김종필, 이회창,이인제는 안희정 본인과는 세대 차가 크고 서로 다른 진영이기에 소원할지언정 정계 내 동향선배들로, 모두 대권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아픔이 있다. 이들의 대권도전 실패에 박탈감을 느낀 충청도민들의 마음을 공략하고자 두 사람의 사례를 토론에서 우회적으로 언급한 충청 대망론의 근거로 적절하게 활용[19]했다.
  • 게다가, 여야 동년배 정치인들 중에서 돋보이는 수려한 외모, 준수한 화술과 논리력, 인생역정은 연설이나 토론, 방송, 유세 등에서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플러스 요소라고 할 수 있다.
  • 스스로 친노계의 적통이라고 부르면서 김대중-노무현을 잇는 장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현재의 행보와 활약을 보면, 충분히 기대를 모을 수 있는 수준이다.
  •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야권의 잠룡으로 거론되지만 본인은 아직 선발투수가 아닌, 불펜투수라면서 아직 실력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나이도 상당히 젊은 만큼[20] 지금처럼 계속해서 순탄한 행보와 결정적인 성과 몇 가지를 내준다면 차기는 아직 이르더라도 잠재적으로 차차기인 2022년[21] 대선에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 야권의 유력한 잠룡 중 하나이다.
  • 아래의 기타사항을 같이 살펴보면 전국적으로도 상당히 주목받는 차세대 정치인인 사실과 충청 정치인, 충청 대망론의 대표주자로 지역민들 사이에선 이미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게다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일화 실패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대전광역시-충청남도 지역에서 집권 새누리당과 무승부[22]를 기록했고, 아울러 그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김종민 전 정무부지사(충남 논산-계룡-금산), 조승래 전 비서실장(대전 유성 갑), 정재호 전 정책특보(경기 고양 을)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안희정 마케팅'이 더민주 지지층에게 상당한 호소력이 있다는 점까지 입증했다. 이 중에서 김종민 후보는 그 피닉제의 독주를 꺾으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거기다가 친노의 좌장인 문재인 前 대표가 20대 총선 불출마와 "호남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광주 지원 유세 당시의 발언으로 인해 영남권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입지가 좁아진 터라 안희정 대안론이 더욱 힘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10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남도지사)민주당367,288 (42.2%)당선 (1위)
2014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남도지사)새정치민주연합460,691 (52.2%)당선 (1위)

5 여담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2007년 6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게 경고를 받자 나라의 왕인 대통령이 경고를 받았다면서 # 선출직 공무원만이 권력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고 임명직은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당시 분노에 찬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평소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당시 매우 격하게 노무현 사망에 관한 의견과 감정을 표현하였다.
  • 2013년 시사저널에서 선정한 차세대 리더 100인 '정치인 분야'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 2014년 2년 연속으로, 시사저널에서 선정한 차세대 리더 100인 '정치인 분야'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 2015년 9월, 충청인이 선호하는 '충청 출신' 정치인에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기도 하는 반기문유엔 사무총장(2위 - 11.4%)을 제치고 1위 - 26.6%에 뽑혔다. 도지사로 재임하고 있는 충남지역(39.6%)에선 무려 10명중 4명이나 안희정 지사를 선호 정치인으로 꼽았다. 그 외에 대전(23.8%), 세종(34.8%)로 각각 지역에서 1위이다. 한편으로 충북에선 충청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였는데 10.8%로 충북이 고향인 반기문 현 유엔 사무총장, 도지사로 재임 중인 이시종 현 충북지사에 이어 3위에 올랐다. # 고무적인 것은 야권의 취약세대인 55세 이상에서도 22.9%로 1위를 차지했다는 것과, 선거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30~54세의 선호도가 30.3%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19~29세에선 18.4%의 선호도를 보였고 전체적으로 남녀간 지지차이(남성 26.4%, 여성 27.0%)는 미미했다. 이 여론조사를 통해 안희정 지사가 '충청대망론'의 선두주자임을 알 수 있다. 안희정 지사 측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망을 밝게 전망하는 여론조사라고 할 수 있겠다.
  • 충남도청이 대전광역시에 있을 시절에 민선 5기 이자 36대 충남도지사로 선거에 당선되었으므로 역대 충남도지사 중 마지막으로 대전에서 근무했던 지사이다. 당연히, 내포신도시에서 근무하는 첫 번째 지사가 되는 것은 덤이다.
  • 지역 농민과의 대화 같은 자리에서 도지사석만 가죽이 입혀진 나무 의자가 놓여진 일이 있었는데, 도지사 의전실에서 사전 점검을 와서는 전부 치우게 하고 다른 의자와 같은 접의식 철제 의자를 놓았다. 아마도 본인의 나이 때문에 이런 부분에 있어서 특별히 더 조심하는 듯 하다.
  • 병역은 이행하지 않았다. 다만, 병역비리로 이행하지 않은 게 아니라 젊은 시절에 학생운동을 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했기 때문이었다. 관련 링크 80년대 중후반에는 20대들 중에서 사상범으로 감옥살이를 한 사람은 병역 대상이 아니었다. 사상범을 군대에 보내면 위험인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참고로, 1984년까지 80년대 초반에는 녹화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징집시켰는데 항목에 적혀있는 대로 그야말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군대에 가둬놓는 방식이라 그에 따른 문제가 심각했다. 심지어, 공식으로 확인된 녹화사업 관련 의문사 피해자만 무려 6명이다. 문재인 전 대표도 이 녹화사업의 대표적인 피해자였다. 그 엄혹한 전두환 정권에서도 이 강제입대와 녹화사업을 1984년 9월에 폐지했을 정도다. 그 이후부터는 안희정의 사례처럼 학생운동권을 감옥에 보내서 군대에 아예 못 가도록 막았다.
  • 노무현 전 대통령 2000년 16대 총선 다큐 미공개 영상 에서 안희정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다.#
  •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권 잠룡으로 손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前 경기도지사가 대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듯한 발언을 하며 관심을 모으던 와중에 같은 대권 잠룡이기도 한 안희정 지사도 '불펜투수로서 몸을 풀겠다'며 대권에 도전할 뜻이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안희정 지사의 이러한 말에 더불어민주당 최강의 차기 대권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안희정 지사 같은 훌륭한 후배와 경쟁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영광스런 일이다"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 2016년 5월 25일, 헌정 팟캐스트가 생겼다.
  • 상술 했듯이 부친의 영향으로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 적도 있었다는데 현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함께 친노무현계의 대표적인 대권 잠룡이 된 것을 생각해보면 세상사는 인생사가 참 알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굽시니스트 : 정희? 희정? 어? 깨알같은 김종필
  1. 실제 출생일은 1964년 음력 10월 28일, 출처.
  2. 호적상 생일, 상술했듯이 실제 생일은 1964년 음력 10월 28일
  3. [[고려대학교|틀:글씨 색]]에 간 이유도 학생운동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라고. 당시 [[서울대학교|틀:글씨 색]]-[[연세대학교|틀:글씨 색]]-[[고려대학교|틀:글씨 색]]는 학생운동의 메카였다.
  4. 처음에는 재수종합반을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국영수에서 150점 만점, 암기과목 170점에서 반 정도 맞고 체력장에서 20점 만점을 받으면 고려대 정도는 갈 수 있겠지 싶어서 독학했다. 결과는 대입시험에서 만점 340점 중 270점을 맞으며 고려대 철학과 합격. 1983년 수석이었던 그 원희룡이 339점, 차석이었던 그 장하준이 330점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200점대 중후반이면 독학으로 우수한 결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5. 2002년 대선 관련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아서 공직을 맡을 상황이 아니였다.
  6.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안희정의 출판기념회 축사 영상을 찍으며 "내 대신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다 했죠. 나는 뭐 엄청난 빚을 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7. 여담으로 당시 같은 당이였던 이인제 역시 같은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마했다. 낙천을 받아들인 안희정과는 달리 이인제는 이에 반발하여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고 그 결과 전국 최저 득표율(...)로 당선되며 '피닉제'의 전설을 이어갔다. 그러나 2016년 4.13 총선에서 안희정 지사의 최측근인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패해 피닉제의 전설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8. 42.2%, 367,288표
  9. 52.2%, 465,994표
  10. 충남의 기초자치단체 중 예산, 부여, 태안을 제외한 충청남도의 모든 지역에서 정진석 후보를 이겼다.
  11. 득표수는 충남의 기초자치단체 지역중 인구가 감소한 지역도 있기 때문에 득표율은 올랐으나 득표수는 감소한 지역이 있다.(공주)
  12. 6회 지방선거 논산지역 득표수는 제5회 지방선거에 비해 고작 8표 증가
  13. 물론 논산의 인구가 6회 지방선거 때 5회 지방선거 때보다 근소하게 감소한 영향도 있다.
  14. 물론 지역정당을 모두 보수계 정당이라고 말할 순 없으나, 자유선진당은 강령과 정책 등으로 볼 때 분명한 보수계 정당이었다.
  15. 5회 지방선거에서 자유선진당의 박상돈 후보를 선택했던 유권자의 30%정도가 6회 지방선거에선 안희정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있다.
  16. 토론 내용을 언급하자면 정진석 후보는 안희정 지사를 깎아내리는 데 급급했지만, 안희정 지사는 이러한 공격에 대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지역주민들과 이야기하는 식으로 맞받아쳤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쪽과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끌렸겠는가?
  17. 廢族: 조상이 큰 죄를 지어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는 집안
  18. 시도지사 직무평가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달리고 있으면 2016년 4~8월에는 5개월 연속으로 전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지지도가 높다
  19. 참고로 충청도 정치지형은 진보와 보수가 고루고루 섞여있는 우리나라의 캐스팅보트 오브 캐스팅보트이기 때문에, 당파를 넘어 같은 지역의 대표 정치인이라는 점을 활용할 수 있다면 비약이지만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중도에 가까운 이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지지를 결집할 가능성이 다른 지역보다 더 커진다.
  20. 1965년생으로 2015년 기준 만 50세. 만약 19대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다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민선 최연소 대통령이 된다.
  21.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다면 3선이기 때문에 연임에 제한이 걸려서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따라서 차차기 대선인 2022년이 오히려 더 수월하다는 의견도 있다.
  22. 대전 새누리 3 : 4 더민주, 충남 새누리 6 : 5 더민주, 합치면 새누리 9 : 9 더민주가 된다. (거기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이해찬을 합치면 1석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