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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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제국의 역대 가한
3대 뵈귀 카간 이르킨 뵈귀4대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 톤 바가 타르칸5대 텡그리데 볼미쉬 퀼뤽 빌게 카간 탈라스

Alp qutlugh bilge qaghan(합골돌록비가가한, 合骨咄祿毗伽可汗)
재위기간 (780 ~ 789)

위구르 제국의 4대 가한. 고대 투르크어로 “용감하고 축복을 받은 현명한 군주”라는 의미이다. 이름은 톤 바가 타르칸(돈막하달간, 頓莫賀達干).

780년, 톤 바가 타르칸은 정변을 무사히 마치고 카간의 자리에 올랐다. 정변을 일으킨 이유는 위구르 내부에 정주적인 문제가 등장하고 소그드 상인이 카간과 결탁해 일어난 것으로 보는게 일반적이다. 이 해에 당덕종 톤 바가 타르칸을 무의성공가한(武義成功可汗)으로 책봉하였다.[1] 787년,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수령을 파견해 당나라에 토산물을 바치며 화친을 청했다.

이러한 위구르의 우호적인 체스처는 780년대 지배집단의 내분과 뵈귀 카간대 당나라와의 결별, 그리고 호시 상인들의 활동마저 위축됨으로써 경제력 약화 등을 타개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787년 위구르는 재차 사신을 파견해 당과 손잡으려 하였던 것이다. 덕종은 즉위 이전에 위구르가 자행한 것을 온몸으로 느낀 사람이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거절하였다. 그러나, 토번과의 관계가 약화되고 번진의 할거도 좀처럼 풀리지 않자 덕종은 재상의 건의로 결국 위구르의 화친을 받는다. 당시 토번은 안서북정으로 가는 길목을 수시로 어지럽혀 당나라는 위구르와 연계하여 토번에 대해 방비하고자 하였다.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은 덕종이 화친을 받아준것에 대해 기뻐하였고 덕종은 조서를 내려 함안공주(咸安公主)를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나 789년,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은 죽었다. 이 해에 당나라에서는 예를 차려 조정의 일을 사흘동안 중지하였다.
  1. 신당서에는 위구르 제국에서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이 즉위한 이후에 구성호(九姓胡)를 귀국시키는 과정에서 진무군 절도사 장광성(張光晟)이 이들을 모두 살해한 사건이 기록되있다. 위구르의 사신이었던 돌동(突董)을 비롯한 구성호 살해 사건은 당나라가 위구르와 연합을 끊고 토번과 연계하려는 외교 노선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