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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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를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게 만든 기반 브랜드[1]

삼성전자가 사용했던 피처폰 브랜드. 다만 스마트폰에 해당되는 옴니아갤럭시 S[2], 갤럭시 A, 갤럭시 탭의 경우, 애니콜 브랜드가 붙어있다. 초기 스마트폰 출시 때에는 피쳐폰스마트폰 개념을 중요시하지 않았기 때문.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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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아날로그 휴대폰 시장에 뛰어든 삼성전자는, 1994년한국지형에 강하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애니콜이라는 브랜드를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애니콜의 의미는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잘 된다는 뜻으로, 당시 선발주자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모토로라를 겨냥하여 만든 브랜드다. 하지만 당시 세계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모토로라보다, 기술이나 기능 면에서 뒤쳐지며 삼성 핸드폰의 품질은 소비자들에게 나쁘게 각인되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심지어는 설을 맞아 직원들에게 선물된 2천여 대의 휴대폰마저 제대로 통화가 되지 않는 등 말썽을 부렸으니...

이때 삼성전자 역사에서 잊지 못할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소식을 들은 이건희 회장이 "고객이 두렵지도 않나. 돈 받고 불량품을 팔다니"라며 분노하여 "시중에 판매중인 핸드폰 전량 수거 후 소각하라!"라는 지시를 내리기에 이른다. 1995년 3월 구미 공장 직원들이 "품질은 나의 인격이오! 자존심!" 이라고 내걸린 현수막 아래 500억원 어치의 자사 무선전화기, 키폰, 팩시밀리 등을 해머로 때려 부수고 소각하게 된다. 이 화형식 이후 삼성전자 휴대폰의 품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내구성면에서 만큼은 지금까지도 까방권을 얻었으며,최근까지는 그래도 소프트웨어가 문제였지만 이제는 한 번 더 화형식을 치러야 할 것 같다 사실 자기가 알아서 화형한다 카더라 이듬해인 1996년에 삼성전자는 드디어 51.5%의 점유율을 달성하며 국내 휴대폰 시장의 선두에 처음으로 등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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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에 CDMA 방식의 디지털 휴대 전화애니콜 디지털(SCH-100S)을 출시하였고, 이듬해인 1997년 플립형(SCH-200F)을 출시하며 핸드폰 시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인 1997년 PCS 서비스가 시작됨에 따라 애니콜 PCS 모델(SPH-1100)을 출시하였으나, 애니콜은 당시 검정색상 원톤의 투박한 디자인으로 아저씨폰 이미지가 상당히 강했고,[3] 기기 가격도 고가였던데 반해,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저렴한 가격의 모델에 대한 신생 업체 모델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참신한 디자인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신모델들이 경쟁사로부터 쏟아져 젊은층 및 알뜰고객 공략에 실패하며[4] PCS 쪽의 시장 점유율은 주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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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여파가 엄청났던 1998년에 삼성전자에서 폴더형과 플립업이라는 혁신적인 스타일로 야심차게 준비한 애니콜 폴더(SCH-800)와 애니콜 플립업(SPH-5000) 모델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모델이 되었다. SCH-800의 경우 PCB 회로 기판에 "할수 있다는 믿음"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것이 10년 뒤인 2008년에 한 누리꾼의 분해기를 통해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사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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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1999년 장혁이 첫 광고모델로 활약한 깍두기폰으로 불리는 애니콜 미니폴더(SCH-A100/SPH-A1000)가 출시되었는데, 당시로서는 가히 혁신적인 초경량, 초소형 설계임에도 성능은 향상된 대혁신[5]을 가져왔으며, 외관 케이스에 알루미늄을 도금함으로써 밀레니엄 스타일의 세련된 최고급 분위기를 연출해 중장년층과 젊은층 고객들을 모두 사로잡으며 비싼 판매가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여 애니콜의 명성을 되찾게 된다. 현재까지도 애니콜의 명작 1순위로 들어갈 정도로 그야말로 시대를 풍미했던 애니콜의 전설적인 모델이다. 이듬해인 2000년 기존의 각진 디자인을 다소 라운딩 처리하고 폴더 전면에 액정을 추가한 후속작 애니콜 듀얼폴더(SCH/SPH-A2000)를 출시하여 다시 한 번 대히트를 치면서 그 명성을 이어갔고, 그해 11월에 메인 LCD의 표시량을 기존 4라인에서 7라인으로 넓히고 디자인 또한 이전 미니폴더의 사각 디자인을 반영하고 2000 시드니 올림픽을 기념하는 모델로 폴더 전면의 올림픽 로고 부분을 24K 금도금으로 처리한 듀얼폴더인 올림픽폰(SCH-A350)도 출시했다.[6]

특히 1999년과 2000년 사이는 삼성전자국내 또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당당하게 달 수 있을 정도로 당시로서는 아스트랄한 컨셉으로 파격적인 디자인과 최첨단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실험적인 모델들을 쏟아 내던 매우 특별한 시기다. 이 모델들 대부분은 실제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시판되었다 해도 당시에는 그닥 인기를 많이 얻지는 못한 편이지만, 이 다음 세대의 양산 모델에 들어갈 새로 개발된 최신 기능 및 멀티미디어 복합 기술들을 선행 개발의 성격으로 적용시켜 보면서 그에 대한 기술적인 노하우를 축적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오늘날의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삼성전자가 마켓 리더로 활약하는 밑거름이 된다.

  • 세계 최초의 여성전용 휴대폰 (SPH-A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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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KTF와 합작하여 개발한 일명 드라마폰.[7] 생리주기, 칼로리계산, 외장형 연결 신호 램프[8]등 여성 고객들에게 필요한 기능들이 추가로 탑재되고, 붉은 장미를 형상화한 우아한 레드 색상에 골드톤 무늬를 적용한 고급스런 디자인으로, 남성위주의 디자인이 주류였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여성 전용 휴대폰이라는 수식어를 들고 전면에 등장했다. 이 모델 이후 후속작 모델들도 계속 나왔을 정도로 호응이 괜찮은 편이었다.
  •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폰 (SPH-W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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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보이

마치 007 영화나 만화에나 등장할 법한 아스트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모델. 1999년에 개발된 제품으로 기네스 북에 등재된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이 되겠다. 음성 인식장치를 이용해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시계에다 대고 번호를 부른후, '통화' 라고 말하면 자동 연결된다고 한다. 소음이 많은 장소에서는 물론 다이얼식 버튼을 통해 손으로 번호를 입력해도 된다. 통화 대기 시간은 당시의 기존 제품보다 조금 웃도는 48시간 정도인 반면, 통화 가능 시간은 기존 휴대폰보다 짧아 겨우 90분 정도(...) 다만 손목에 차고 귀에 갖다대어 통화한다는 게 영화에서는 멋있게 보여질지는 몰라도, 실 사용시에는 의외로 불편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일반인이 사용시 무척이나 아스트랄하여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쉬웠다. 그래서인지 실제 양산 및 판매는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아니고 실제로 양산도 되고 판매도 했었다. 다만 가격도 비싸고 사용하기 불편하여서 (특히 문자메세지) 판매량은 매우 적었다. 10년 뒤인 2009년에 동일한 모델명으로 후속모델인 워치폰이 출시되었다. 전작과 달리 블루투스 헤드셋이 기본지원 되기에 그나마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듯 했으나, 이 해에 3G 서비스가 안정화되고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 열풍이 본격화 되면서 삼성전자도 이 열풍에 가세하여 결국 워치폰은 역사의 유물이 되었다. 대신 손목에 차는 기기라는 개념은 훗날 자사 스마트 워치갤럭시 기어를 통해 부활하게 된다. 단 갤럭시 기어는 단독으로 사용 가능한 기기가 아닌 스마트폰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기기이므로, 진정한 단독 사용이 가능한 기기로서의 부활은 기어 S기어 S2 3G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세계최초의 MP3폰 (SCH-M210 / SPH-M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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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출시된 세계 최초의 MP3. 이 해에 휴대용 MP3 플레이어가 갓 태동하던 점을 생각해 본다면 꽤 아스트랄한 모델. 아마도 삼성전자에서 직접 개발한 MP3 플레이어인 YEPP의 기술을 이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실제 시판으로 이어지긴 했으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모델로 각인되던 폴더형이 아닌 플립형인데다, 내장 메모리 용량도 32MB로 당시 MP3 플레이어와의 차별화를 꾀하지 못했고, 디자인 또한 그닥 별로라 크게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술적 잠재성은 뛰어났는지 이듬해인 2000년에 경쟁사였던 LG전자에서도 자사의 MP3 플레이어인 '엠피프리'의 기술을 이식하여 '싸이언 MP3'라는 휴대폰 모델을 내 놓기도 했다. 이쪽은 MMC 메모리 카드를 외장 메모리 형식으로 삽입하는 방식이라 용량 확장성을 무기로 내세웠다.[9]
  • 세계 최초의 TV폰 (SCH-M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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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에 발표된 세계 최초로 TV 기능을 내장한 핸드폰. 애니콜 폴더 초기 모델인 SCH-800을 베이스로 재설계한 모델이며, 기술적인 어려움과 단가상의 문제로 당시에 양산 모델로 탑재하기 어려웠던 컬러 액정을 TV 기능 때문에 탑재하였다. 2003년 후속작인 SCH-X820이 나왔으며 이후에 DMB 기능이 탑재된 모델로 계보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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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T-2000 통신 기술이 국내에 도입 및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멀티미디어 복합 통신의 잠재적 수요가 예상되어 2000년 7월에 개발된 휴대폰에 디지털 카메라가 적용된 국내 최초의 카메라폰[10].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적으로 보급화 되기 훨씬 전의 시기에 이런 제품을 내놓았다는게 아스트랄하다. 당시로서는 기술적인 어려움과 고가의 제조비용으로 양산 모델로의 탑재가 불가능했던 컬러 액정이 탑재되고, 국내 최초로 휴대폰에 내장 카메라가 탑재 되었으며, 해상도는 35만 화소로 무려 20장 촬영이 가능[11]했고 매크로 촬영도 지원한다. 하지만 당시에 프리미엄 모델로 하향세였던 플립형인데다, 컬러액정에다 카메라까지 달렸기에 가격이 현실성이 없었는지 실제 시판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며, 대신에 준폰으로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 프리미엄 모델이었던 동기식 IMT-2000을 지원하던 SCH-V300이 후속으로 대를 이어 나가더니 결국 핸드폰에 카메라는 필수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2000년 말에 2G3G의 과도기였던 CDMA2000 1x 기반의 SCH-X100도 출시되었다.
  • 국내 최초의 풀터치 PDA폰 (SCH-M100 / SPH-M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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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출시된 국내 최초의 풀터치 PDA.[12] 기본적인 전자수첩 기능은 모두 탑재된데다 인터넷 브라우징과 이메일 송수신, 음성 및 필기 인식도 가능하며, 공학용 계산기 및 어학사전 기능은 물론이거니와 성경, 찬송가, 성서, 성가, 불경 등도 들어있고, 실제 제대로 지원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게임, 추가 기능을 위한 어플리케이션의 다운로드 기능 역시 존재했다.
스마트폰의 시조격인 IBM 시몬은 시제품의 성격이 강한 데다 완전 벽돌 모양이었던 것에 반해, 이 모델은 당시의 주류였던 플립형 휴대폰에 준하는 사용성 및 휴대성을 가졌기 때문에,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 의외로 인기가 꽤 있었으며 후속모델인 SCH-M200 / SPH-M2000도 출시되었고, 이후 당시 PDA에서 많이 쓰이던 OS인 Palm OS가 설치된 SCH-M330, 윈도우 모바일의 선조라고 볼 수 있는 Pocket PC를 OS로 적용한 SCH-M400이 나오기도 했다.(옴니아의 시조이다!) 모델명으로만 본다면 옴니아 II가 같은 계열의 마지막 후속작이다. 참고로 이때 삼성은 "MITs(미츠"라는 이름의 PDA폰 브랜드를 런칭시켰었다. 지금은 운영이 중단된 스마트폰 사용자 모임인 마이미츠가 바로 MITs PDA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동호회였다. 비슷한 예로 클리앙이 있다. (그러나 클리앙은 오히려 덩치가 더 커진채 정상적으로 운영중이다.)

여담으로 국내 최초의 폴더형 PDA폰도 삼성이 최초이다. (SCH-M500) OS는 Palm OS가 적용되었다.

  • 세계 최초의 전자동 폴더 (SPH-A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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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출시된 세계 최초의 전자동식 폴더폰. 모터를 사용하여 폴더를 열고 닫는다. 기기 우측에 있는 버튼으로 동작하며, 휴대폰 관리에서 설정 및 해제가 가능하다. 이런 방식의 단말기는 2004년에 후속작(SPH-E3300 / SPH-E3350)이 나왔고[13], 2009년 매직홀(SCH-W830 / SPH-W8300 / SPH-W8350)[14]까지 이어진다.

2000년대에 들어서 대화면 및 컬러 액정 등을 탑재하기 시작하며 멀티미디어 기능을 중시하는 휴대 전화로 진화한다. 이 당시의 슬로건은 디지털 익사이팅 애니콜로, 카메라, MP3, 동영상 촬영 등을 지원했고, 2005년부터는 싱글 수준의 CM송 발표와 함께 뮤직비디오와 CF를 결합한 애니 시리즈 마케팅이 화제거리였다. 사실 이 시기에는 애니콜이라는 브랜드가 '어른들이 쓰는 폰'이라는 인식이 젊은 소비자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젊은 소비자층에 더욱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의 모델 출시와 함께 이에 어울리는 마케팅이 이루어졌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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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3년에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 삼성전자에서 특별 제작한 매트릭스폰이 깜짝 등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에서 컨셉 모델을 가지고 모토로라노키아에 제작 의뢰를 했으나 상용화에 무리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그 와중에 삼성전자는 컨셉 모델과 매우 흡사하게 설계한 안을 내보여 채택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 북미 시장에는 SPH-N270이라는 모델명의 매트릭스폰 컬렉터스 에디션으로 5000대 한정으로 시판되었다. 액정도 영화에서의 흑백 화면이 아닌 당시 기술 트렌드를 반영하여 컬러 액정을 탑재하였다. 하지만 나머지 해외를 비롯한 국내에서는 아쉽게도 선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다면 다음의 블로그 포스트를 참조하길 바란다. 매트릭스폰 구입 및 개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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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에는 이 매트릭스폰의 슬라이딩 방식을 응용한 SCH-S250이라는 기종을 양산하였는데, 이 기종 또한 세계 최초 500만 화소 카메라 탑재 휴대폰이라는 비범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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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는 국내 최초로 WCDMA(3G)휴대전화인 SCH-W110를 선보이기도 했다. WCDMA 통신망 문제로 CDMA 2000을 동시에 지원하며 단말기 임대 형식으로 제공했다고 한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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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부터 2009년까지 토크.플레이.러브로 슬로건을 변경했다. 애니밴드 참고.

그 후에는 햅틱 시리즈를 필두로 한 풀터치폰의 비중이 높아졌다.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역사가 오래되었으나 Windows Mobile의 한계와 부족한 최적화 등으로 인하여 비난을 받아왔으며 아이폰의 국내 진출 이후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에 사업 역량을 쏟기 시작했다.

디자인은 매직홀폰 등의 아예 디자인에만 올인한 제품 몇 개를 제외하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딱 무난한 물건이 대부분. 게다가 다른 회사에 비해서도 같은 디자인 우려먹기가 좀 심하다. 디자인을 중시하여 휴대폰을 고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점도 좀 까인다. "새 것을 사도 중고를 사는 느낌"이라고 혹평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신상품이 나와도 어차피 디자인이 똑같기 때문에 구매욕이 줄어든다"라는 관대한(…) 평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핸드폰을 그냥 기능만 보고 사거나 공짜폰으로만 쓰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한국에 출시되는 휴대전화의 브랜드 중에서 동급 스펙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내거는 경향이 있는 대신, 살 때는 비싸더라도 가격방어가 잘 돼서 시간이 지나도 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는 면이 있었지만, 이젠 옛날 얘기. 지금은 애니콜이라고 특별히 더 비싼 것도 아니고, 가격방어도 안 된다. 버스폰건 결국은 버스폰된다.[16][17]

이후 나온 주요브랜드로는 흑역사옴니아, 아몰레드, 햅틱, MITS, 갤럭시, 웨이브, 아티브가 있다.

애니콜의 문자입력 방식은 천지인 자판이다.

여담으로 국내 브랜드야 아시다시피 애니콜이지만 외국에서 팔리는 제품에는 Anycall이 아닌 Samsung Mob!le[18] 브랜드가 들어가는데 이유는 이 단어가 '전화로 연락하면 오는 창녀들'이라는 속어로 쓰이기 때문이라고(정확히는 콜걸). 지펠[19]도 그렇고 이름을 왜 그렇게 짓는 건지...

현재 애니콜이라는 브랜드는 어찌 보면 존폐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싸이언이 사라진 것도 영향이 없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스마트폰의 경우는 갤럭시 S II부터는 그냥 삼성이라고만 표기하고 애니콜 브랜드는 피처폰에만 사용하기 때문. 최근 나온 피처폰인 삼성 마스터마저 그냥 삼성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것을 보면 애니콜 브랜드는 완전히 버린 듯 하다. 한때 국내 휴대폰 브랜드 가치 1위였던 브랜드였으나, 조용히 그 자리를 삼성 갤럭시에게 물려주며,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야구선수 임창용의 경우 삼성 라이온즈 서정환 감독 시절 혹사를 당할 때 구단의 모기업인 삼성과 맞물려 '애니콜'로 불렸다.

모델명은 항상 SCH, SPH, SGH[20]로 시작했는데 SCH는 Samsung CDMA Handset, SPH는 Samsung PCS Handset, SGH는 Samsung GSM Handset의 의미라고 한다.
SHC는 Samsung Handset CDMA, SHW은 Samsung Handset WCDMA, SHV는 Samsung Hanset long term e'V'olution이다. 드럽게 기네 Long Term Evolution의 약자는 다름아닌 LTE.

여담이지만 1997년부터[21] 2000년대까지 MBC 뉴스데스크의 시보를 맡아왔었다. 2010년대 들어 애니콜 자체가 한물이 간 브랜드가 되면서 움니아, 갤럭시가 그 역할을 맡고있는 중
  1. 삼성전자를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로 끌어올린 것은 갤럭시 시리즈지만 애니콜 시절부터 갖춰진 탄탄한 기술력이 없었다면 삼성의 1위 신화는 불가능했다고 보는 이들이 대다수다.
  2. 갤럭시 K, 갤럭시 U도 포함
  3. 이 당시 애니콜 디지털 모델을 지원하는 CDMA 디지털 방식의 SK텔레콤스피드 011 역시 PCS 보다 넓은 통화권역을 제공하는 대신 그만큼 비싼 요금으로 중장년층의 고객들이 대부분이라서 아저씨들의 이동통신 서비스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SK텔레콤은 1999년에 와서야 젊은층을 위한 요금제인 TTL을 브랜드화하는 전략을 통해 기존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데 성공한다.
  4. 당시 젊은층 고객들은 통화권역이 다소 협소하나 통화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단말기 가격도 착한 PCS 통신사 쪽으로 많이 몰렸기에 보수적인데다 프리미엄 이미지가 강했던 애니콜은 이들 젊은층 고객 공략에 불리했다.
  5. 전작 모델이자 애니콜 폴더의 초기모델인 SCH-800 대비 부피는 26% 감소되고, 무게도 89g에 불과할 정도였음에도, 기존 모델보다 부가기능도 향상되고 배터리 시간은 기존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6. 당시 미니폴더와 듀얼폴더로 연이은 히트를 치며 애니콜 폴더는 국내 휴대폰 시장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잡았고, 거기에 삼성전자가 2000 시드니 올림픽의 공식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었던지라 끝물 격으로 금도금 장식까지 하는 등 상당히 고급스럽게 치장하여 출시하였다.
  7. 이 폰과 연계된 KTF의 여성 전용 휴대폰 서비스 명칭이 드라마였기 때문. 광고
  8. 외출시 핸드백 속에 핸드폰을 넣어두는 여성들의 성향을 잘 파악한 장치로, 핸드백 외부에 램프를 연결해 달아두면 핸드폰 신호가 올 때마다 자기것인지 꺼내서 일일이 확인 할 필요가 없게 되고, 진동모드나 무음모드로 전환해도 신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9. 이 모델의 CF를 보면 모델로 출연한 가수 조PD가 MMC 카드를 시리얼 부어먹듯 그릇에 부어서 숟가락으로 떠먹으려 하고, "메모리 칩이 多, 음악이 多"라는 문구로 확장성을 내세우며 마지막에 혓바닥을 내밀며 혓바닥에 붙어있는 MMC 카드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10. 세계 최초로 카메라를 탑재한 휴대폰은 1999년 9월 출시된 교세라의 VP-210이다.
  11. 이 당시 매우 빈약하던 휴대폰 내장 메모리 용량을 감안한다면 '무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12. 세계 최초로 개발된 풀터치 폰은 1994년 8월에 출시된 IBM 시몬 이다.
  13. 모터 소리가 줄어들고 여닫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한다.
  14. 단 매직홀은 앞의 두 기기와는 달리 모터를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장된 스프링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닫기도 자동으로 가능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열기만 자동으로 되고 닫기는 수동으로 해줘야 한다.
  15. 대표적으로는 박정아와 함께 출연했던 소녀시대로 데뷔하기 전 수영의 모습을 CF 속에서 볼 수 있다.
  16. 출고가가 135만원이던 명품폰인 '조르지오 아르마니'조차 버스폰으로 나왔다...
  17. 그리고 전지전능한 옴니아 2도 출시 1년 6개월만에 버스로 나왔다...
  18. Mobile 부분의 i가 거꾸로다. 즉 느낌표가 된다.
  19. 독일어로 zifel은 최고라는 뜻도 있지만 남자의 거시기의 뜻도 있다고 해서 zipel로 이름을 바꿨다
  20. 해외판 한정
  21. 그 이전에는 삼성시계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