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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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DOUARD MANET (1832년 1월 23일 ~ 1883년 4월 30일)

에두아르 마네는 할아버지도 판사이고 아버지도 판사인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하기도 했지만 1849년 시험에 떨어지고 난뒤 화가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부모님은 마네가 아버지처럼 판사가 되길 원하였으나 마네의 오랜 설득 끝에 허락해 주었다. 마네는 그 이후 1년에 180프랑 정도 되는 미술 학교에서 미술을 배웠다. 1863년에 샬롱에 낸 작품이 낙선되었을때 낙선된 작품만 모아 낙선전을 만들었는데 그의 작품인 <풀밭위의 점심식사>는 많은 이들의 조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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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때까지의 회화와는 다른 관점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그림은 명암의 변화를 섬세하게 구분하여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렸지만 마네는 쏟아지는 햇볕아래서 밝은 부분을 어둡게 보이고 어두운 부분도 주위 사물에서 내쏘는 반사광으로 인해 어둡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인 풀밭위의 점심식사는 어두운 부분은 하나의 색채를 가지고 그림 속의 사물들은 입체감을 잃고 평면이 되었다.그 이후에도 그의 그림은 여러번 논란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의 작품인 올랭피아는 1865년 샬롱에 전시되었지만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

<폴리베르제르의 바 (Un bar aux Folies Bergère)> 역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매우 최근까지도 미술학도와 일반인들이 즐겨 씹는 안주거리였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이 매춘부라는 주장부터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구도는 실제로는 불가능한 구도이며 마네는 미술의 기본도 모른다는 등 갖가지 구설수에 시달린 작품. 결국 21세기 들어서야 사진 전문가가 그림 속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사진을 촬영함으로써 마네의 억울함을 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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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베르제르의 바>. 중앙의 여성의 뒷모습과 그녀 앞에 서 있는 남성의 정면이 거울에 비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런 각도가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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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진으로 실제로 재현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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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즉 사진사)와 모델, 거울의 위치 및 각도를 나타낸 그림. 출처: Manet's Bar at the Folies-Bergère: One Scholar's Perspective, Malcolm Park, 2000.

이처럼 당시엔 마진요라도 있는 것처럼 집요한 안티들에게 시달린 마네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그림은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1881년에는 레종 도뇌르 훈장까지 받게 된다.

여담으로 BBC의 다큐인 빛을 그린 사람들에선 매독으로 사망한다.

에로게 사쿠라의 시에서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가 자주 언급된다.
  1. 비평가曰 :"배가 누런 이렇게 천하게 생긴 모델은 어디서 누가 구했을까?" 이 모델의 이름은 빅토린 뫼랑으로 '올랭피아'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등 모네의 그림에 많이 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