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튼 FC

2016-2017 시즌 중 발생한 이슈에 대해서는 에버튼 FC/2016-2017 시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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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리버풀맨시티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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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즈브러번리본머스사우스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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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덜랜드스완지스토크아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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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튼왓포드웨스트 브롬웨스트 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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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크리스탈 팰리스토트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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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턴[1] FC
Everton F.C.
정식 명칭Everton Football Club
별칭더 토피스(The Toffees), 더 블루스(The Blues)
더 스쿨 오브 사이언스(The School of Science)
창단1878년[2]
소속 리그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ague)
연고지잉글랜드 리버풀(Liverpool, England)
홈 구장구디슨 파크(Goodison Park)
(40,157명 수용)
라이벌리버풀 FC[3]
회장빌 켄라이트(Bill Kenwright)
대주주파하드 모시리(Farhad Moshiri)
감독로날드 쿠만(Ronald Koeman)
주장필 자기엘카(Phil Jagielka)
공식 홈 페이지[1]
우승 기록 "'
프리미어 리그 (1부)
(9회)
1890/1891, 1914/1915, 1927/1928, 1931/1932, 1938/1939, 1962/1963, 1969/1970, 1984/1985, 1986/1987
챔피언십 리그 (2부)
(1회)
1930/1931
FA컵
(5회)
1906, 1933, 1966, 1984, 1995
FA 커뮤니티 실드
(9회)
1928, 1932, 1963, 1970, 1984, 1985, 1986, 1987, 1995
UEFA 컵 위너스 컵
(1회)
1985

2016-17 시즌 유니폼
어웨이서드

잉글랜드 축구 클럽들 중 1부 리그에서 가장 오랜 시즌 활약 중인 클럽[4]

1 간단 소개

에버튼 FC는 1878년 창단된 잉글랜드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축구 클럽이다. 에버튼은 112시즌간 잉글랜드의 최상위 리그에서 활동했으며 (단 4시즌만 2부 리그 활동), 프리미어 리그 시대에 들어서는 단 한 번도 강등된 적이 없다.

1878년 창단된 에버튼은 1888년에 설립된 잉글랜드 프로 축구 리그 조직인 "더 풋볼 리그 (The Football League)"의 창설 멤버이며 1890-91시즌 클럽 역사상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한 에버튼은 이후 9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에버튼의 가장 큰 전성기는 1980년대 중반으로 구단은 2차례 리그 우승, FA컵 우승, 1985 유로피안 컵 (현재의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등을 기록하는 황금기를 누렸다. 에버튼의 가장 최근 우승은 1995년 FA컵 우승....즉 20년 넘도록 우승 기록이 없다.

에버튼의 애칭은 "Toffees" "The Blues" "The School of Science" "The People's club" 등이 있으며, 구단의 전통적인 컬러는 파란색과 흰색.

에버튼은 같은 연고지를 두고 있는 리버풀 FC와 전통적인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두 팀간의 대결은 머지사이드 더비라고 부른다.

2 소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소속팀. 연고지는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 리버풀 시이다. 프리메라 리가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틱 빌바오, 세리에 A인테르, 분데스리가함부르크 SV 와 같은 1부 리그 개근 팀이 없는 잉글랜드 리그에서, 2016년 현재 1부 리그에서 112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으며, 강등 없이 60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1부 리그에 가장 오랜 시간 머무른 팀이다.[5] 통산 9회의 1부 리그 우승 경력은 잉글랜드 전체 클럽 중 4번째로 많으며(20회의 맨유, 18회의 리버풀 FC, 13회의 아스날 FC 다음이다) FA컵도 5회 우승을 기록, 명문 클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엠블럼에 있는 'Nil satis nisi optimum'은 라틴어로 '최고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의미다.

3 역사

1878년 세인트 도밍고스 풋볼 클럽(St. Domingo's Football Club) 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고 1879년에 에버튼 FC로 이름을 바꾸었다. 본래는 홈 구장으로 앤필드를 사용했으나 존 훌딩이 앤필드의 주인이 되면서 임대료를 올려버리자 구디슨 파크로 구장을 옮겼다. 에버튼이 구장을 옮긴 바람에 생긴 구단이 바로 리버풀 FC이다. 덕분에 리버풀과는 전통적으로 라이벌 관계이며 두 팀의 경기는 머지사이드 더비라고 불린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스포츠 정도로 귀족들이나 기득권들에게 무시당하던 프로 축구를 제대로 인식하게 한 구단이기도 하다. 1916년 구디슨 파크에 영국 왕세자 일행이 처음으로 보러 와서 인식을 다르게 만들었다.

잉글랜드 1부 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골(1927/28 시즌, 60골)을 집어넣은 윌리엄 랄프 '딕시' 딘이 이 구단 소속이었다. 1925년에 트란미어 로버스에서 에버튼으로 이적해 온 그가 최다 골 기록을 갱신하기 전까지 최고 기록은 59골이었고 그가 57골을 기록했을 때는 단 한 경기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기록을 깨려면 해트트릭을 기록해야 했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아스날이라 모든 사람들이 최다 골 기록을 깨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그는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그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선수 은퇴 뒤 딕시 딘은 1980년 머지사이드 더비 관전 도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1937년에 딕시 딘이 팀을 떠난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재정난, 주축 선수들의 이탈로 부침을 겪다가 1961년에 팀의 센터포워드 출신인 해리 캐터릭이 감독으로 취임하여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을 앞세운 '토탈 풋볼'을 적용, 로이 버논과 알렉스 영, 조 로일 등의 활약으로 1963년과 1970년에 리그 우승을 했고, 1966년에는 FA컵에서 우승을 했다.

이후 라이벌인 리버풀 FC의 상승세로 또 부침을 겪다가 1980/81 시즌 도중에 '캐터릭의 아이들'의 일원이었던 하워드 켄달이 감독으로 취임하여 1985년에 리그 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에 우승시킴으로써 또 전성기를 누렸으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여러 악재(잦은 감독 교체, 재정난, 적절한 선수 이용의 실패 등)가 겹치면서 이렇다 할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1995년에 FA컵 우승과 커뮤니티 실드 우승을 이루어냈으나 그때뿐이었고, 하락세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어졌다. 이때는 매년 강등권을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대탈출'이 이어졌을 정도로 팀 사정이 암울했다.

특히 1994년부터 부임한 피터 존슨이 에버튼 타투를 새길 정도로 팀을 사랑하던 팀의 간판 공격수 던컨 퍼거슨을 감독 몰래 뉴캐슬로 이적시키면서 팬들이 일어섰고, 그 이후 1999년에 필립 카터가 회장직에 복귀했다가, 2004년에 켄라이트에게 넘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역대 에버튼의 회장들

그러다가 2002년에 프레스턴 노스 엔드의 감독이었던 데이비드 모예스를 영입하였는데 이 영입이 에버튼의 역사를 바꾸게 된다. 모예스가 다시금 에버튼의 상승세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점점 머니 게임이 되어가는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많이 떨어지는 에버튼의 상황에도 가격 대비 성능비가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고 유소년 선수들을 대폭 기용하면서 팀의 전력을 상승시킨 것이 모예스의 대표적인 공적.

모예스 감독의 부임 이후 2004-05 시즌에 축구신동 웨인 루니를 팔고도 잉글랜드 정통 축구의 맥을 고수하며 리그 4위,[6] 2007-08 시즌 칼링 컵 4강, 2008-09 시즌 FA 컵 준우승 등 가시적인 성과가 계속 나오고 있으며 리그에서는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2013-14 시즌부터 로베르토 마르티네즈 감독이 부임하여 새로운 첫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다 리그 승점과 함께 5위를 기록하여 미래가 밝아보였으나, 14-15시즌에는 11위로 순위가 곤두박질쳤다. 그 다음 시즌인 15-16시즌에도 상위 10위권 진입에 실패하면서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경질되었으며 로날드 쿠만 감독이 2016-17 시즌부터 에버튼의 새로운 사령탑을 맡게 되었다.

4 우승 경력

  • 잉글리쉬 풋볼 리그 디비전 1/프리미어 리그: 9회
1890/91, 1914/15, 1927/28, 1931/32, 1938/39, 1962/63, 1969/70, 1984/85, 1986/87
  • 잉글리쉬 풋볼 리그 디비전 2/챔피언십 리그: 1회
1930/31
  • FA 컵: 5회
1906, 1933, 1966, 1984, 1995
  • FA 채리티 실드/커뮤니티 실드: 9회
1928, 1932, 1963, 1970, 1984, 1985, 1986, 1987, 1995
  • UEFA 컵 위너스 컵: 1회
1985

5 최근 시즌

5.1 2008-2009 & 2009-2010 & 2010-2011 시즌

에버튼 FC/2008~2011 시즌

5.2 2011-2012 시즌

에버튼 FC/2011-2012 시즌

5.3 2012-2013 시즌

에버튼 FC/2012-2013 시즌

5.4 2013-2014 시즌

에버튼 FC/2013-2014 시즌

5.5 2014-2015 시즌

에버튼 FC/2014-2015 시즌

5.6 2015-2016 시즌

에버튼 FC/2015-2016 시즌

5.7 2016-2017 시즌

에버튼 FC/2016-2017 시즌

6 리즈 시절

1888년 창립된 "더 풋볼 리그" (The Football League)의 공식 창설 멤버인 에버튼은 1890-91시즌 클럽 역사상 최초의 우승으로 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 에버튼은 1906년에는 첫 FA컵 우승을 달성한 에버튼은 1914-15년 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고, 한동안 축구 경기가 중단되면서 구단의 상승세도 한 풀 꺾이게 된다.)

한동안 잠잠하던 에버튼은 1925년 클럽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딕시 딘을 영입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 1927-28시즌 39경기에서 무려 60골을 넣은 딘은 에버튼의 세번째 리그 우승의 일등 공신이 된다. 이 시즌에 작성한 딕시 딘의 득점 기록은 여전히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메시도 이 기록은 깨지 못했다.)

1부 리그로 돌아온 직후인 1931-32시즌 (예상치도 못한 구단 내분이 발생하며 뜬금 없이 2부리그로 강등된 에버튼은 그 다음 시즌 부진을 만회하는 엄청난 호성적을 거두고 바로 1부 리그로 재승격한다.) 기세를 탄 에버튼은 리그 4번째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The Toffees는 그 다음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두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하고, 1936년에 토마스 H. 매킨토시가 사망한 뒤 시오 켈리 비서가 비공식적으로 팀을 지휘한 1938-39시즌에는 팀 역사상 다섯번째 리그 우승까지 차지한다. 그리고 20년 넘게 부진이 이어진다.

에버튼의 두번째 전성기는 해리 캐터릭 감독이 부임하는 1961년에 찾아왔다. 캐터릭 감독의 에버튼에서의 두번째 시즌인 1962-63시즌 에버튼은 25년여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하고, 1966년에는 FA컵을 우승한다. 1968년 다시 FA컵 우승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 에버튼은 2년 후 리즈 유나이티드에 승점 9점을 앞서며 리그 우승을 거뒀다. 한편 이 기간, 에버튼은 잉글랜드 축구 팀 역사상 최초로 5년 연속 유럽 대항전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61-62시즌 ~ 1966-67시즌)

1980년대 에버튼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는 1980/81 시즌 도중에 새로 부임하는 하워드 켄달 감독과 함께 찾아왔다. 에버튼은 1984년 FA컵에서 우승하고, 1984-85시즌 & 1986-87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85년 에버튼은 UEFA 유로피안 컵 위너스 컵 (현재 UEFA 유로파 리그) 우승에 성공하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유일한 유럽 대항전 우승 기록이다.

7 에버턴 자이언츠

항목 참조.

8 이모저모

8.1 서포터

에버터니언(Evertonian) 혹은 토피(Toffees. 카라멜 비슷한 그것!)라고 주로 불린다. 리버풀 시와 잉글랜드는 물론, 전 세계에 광범위한 서포터층을 자랑하는 리버풀 FC에 상대적으로 밀리는 편이고 한국에선 더더욱 리버풀의 서포터 수에 비해 한참 밀리는 모습이다.[7] 오죽하면 아이러브사커의 한 에버튼 팬이 에버튼을 응원하다가 제발 한국인이면 맨유좀응원합시다란 소리를 들었겠는가. 그래도 과거 강호이자 명문구단으로 역사가 있기에 여기도 세계적으로 서포터층이 있는 편이다.

국내에서 제일 팬이 많은 사이트는 네이버 카페 [2]이며 다음 카페 [3]에서 비교적 전문적인 정보들과 빠른 뉴스들을 볼 수 있다. 2000년 초반에 축구인 서형욱이 에버튼을 방문했는데 구디슨 파크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에버튼 서포터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동아시아인이 오는 것은 반갑다고 맞이하더란다. 그리고 주로 아시아 쪽 축구 팬이 너무나도 리버풀을 알아준다며 에버튼에 와서 리버풀들 더 많이 찾는다고 속상하다고 할 정도이다. 그나마 에버튼에서 중국인 선수들이 뛸 때에는 중국인 서포터들이 늘어났지만 워크 퍼밋 및 여러 조건이 강화되면서 중국인들이 떠나자[8] 중국인 서포터들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그래도 둘러보면 여기저기 서식하는 에버튼 서포터들이 조금씩 보인다. 유명인 에버튼 서포터로는 비틀즈폴 매카트니, 실베스타 스탤론이 있으며 스탤론은 영국에 오면 여길 자주 들를 정도로 팬이라고 한다. 실제로 에버튼 구단 박물관에 가보면 에버튼 머플러를 들고 웃으며 사진을 찍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 에버튼의 서포터들이 재정위기에 처한 구단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서 폴 매카트니에게 애정을 갖고 구단을 인수해달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감당할 범위가 아니라고 말했다. 전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자 WWE에 'YES!' 광풍을 일으킨 불세출의 테크니션 대니얼 브라이언도 에버튼 팬이다.

라이벌 팀의 양대 전설이 된 스티븐 제라드제이미 캐러거도 유년 시절 에버튼 서포터였다는 얘기가 있으며[9][10] 이와 같이 리버풀 FC에서 선수 생활을 한 에버튼 서포터로는 로비 파울러, 마이클 오웬 등이 있다. 캐러거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에버튼의 선수로 리버풀에게 골을 넣는 것이 소원이어서, 리버풀 대 에버튼의 자선 경기를 개최하여 에버튼이 얻은 페널티킥을 대신 차 넣으며(...) 어린 시절의 소원을 성취하기도.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에버튼 유스 출신인 웨인 루니의 경우 맨유에서 뛰면서 에버튼 팬들에게 유다 취급을 받으면서도 "한번 블루는 영원히 블루다"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갓난아기 아들도 에버튼 서포터로 등록시킨 진성 에버튼 서포터이다. 그러면서 맨유로 이적 안 시켜준다고 모예스 감독한테 대들었냐

2016년 7월에 보스니아 사람 한 명이 영국 프로 축구 리그 4티어에 걸쳐 있는 모든 92개의 팀들에게 왜 자신이 이 팀의 서포터여야 되는가하고 묻는 이메일을 보냈고 이를 레딧에 인증했는데,[11] 이 중 에버튼에서는 답장과 함께 같은 보스니아인인 무하메드 베시치가 특별히 비디오 메시지를 제작해서 보내는 정성 끝에 그 사람이 에버튼을 응원하게 되었다는 훈훈한(?) 해프닝이 있었다.

8.2 최초의 기록들

에버튼은 축구와 관련해서 다양한 최초의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우선 에버튼의 홈 경기장 구디슨 파크는 세계 최초의 축구 전용 경기장이며, 여기서 최초의 FA 컵 결승전이 개최되었다. 경기장에 조명 스탠드와 스코어 보드, 선수단 대기 더그아웃을 가장 먼저ㅡ 설치하며 축구 경기장의 현대화에도 기여했다. 위에 나온 대로 하층 노동자들이나 본다고 무시당하던 프로 축구에 처음으로 왕세자가 찾아온 것도 에버튼 경기이다.

1933년에는 최초로 선수들의 유니폼에 등번호를 넣었다. 1888년 풋볼 리그 창설, 1992년 프리미어 리그 창설 때 원년 멤버로 참가하였다. 또한 최초로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르는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970년 유러피언 컵, vs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8.3 기이하게도 운이 없는 클럽

괴이하게도, 에버튼은 우승을 거두고 상승세를 탈 즈음에 항상 사건들로 인해서 가로막혔다. 1914/15 시즌에 1부 리그 우승을 달성하고나서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리그가 중단되었고, 1939/39 시즌에 1부 리그 우승을 했으나 이번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리그가 중단되었으며 클럽 역사상 가장 전성기를 누렸던 1980년대에는 UEFA헤이젤 참사의 책임을 물어 잉글랜드 클럽들의 유럽 대회 출전을 금지 조치하여 2번의 UEFA 챔피언스 리그(이 당시에는 유러피언 컵)와 1번의 UEFA 유로파 리그(이 당시에는 UEFA 컵)진출 기회를 놓쳤다. 그 외에도 68/69 시즌에서 3위로 시즌을 마치며 69/70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출전 자격을 획득했으나, 1도시 1구단이라는 악법 때문에 2위인 리버풀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하는 등 실력에 비해 지독히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 15/16 리그 22라운드 첼시전에서 추가시간 막바지 98분에 자책골을 넣었던 존 테리의 골이 오심으로 밝혀지면서 승점 3점을 도둑맞게 된다. 또한 오심에 대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15/16리그컵 준결승전에서 맨시티 와의 경기중 오심골이 나오면서 패해 그야말로 안습....

이쯤 되면 안습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지경. 특히 헤이젤 참사로 인해서 유럽에서의 더 큰 성공이 가로막히게 되자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리버풀에 대한 에버튼 서포터들의 증오와 반감이 커지게 되었다.

8.4 리그 컵과의 악연

잉글랜드에서 손꼽히는 명문인 에버튼이 풋볼 리그 컵(2013년부터는 캐피탈 원 컵. 스폰서에 따라서 컵 이름이 계속 바뀐다)에서 우승 경력이 없다는 사실은 흠좀무. 준우승 기록만 2번 있을 뿐이다(1977, 1984). 참고로 역대 리그 컵 우승팀들을 살펴보면 레스터 시티(우승 경력이 무려 3회!), 미들즈브러(동궈 이동국이 한때 뛰었던 그 팀), 루턴 타운(현재 4부 리그 팀) 등등이 있다. 10-11 시즌 리그 컵에서는 3라운드에서 3부 리그 팀 브렌트포드와 맞붙어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명경기졸전 끝에 패배, 자이언트 킬링의 희생양이 되며 좀처럼 풀릴 기미가 안보이는 악연을 지속하게 되었다. 이후 15/16시즌에 준결승전 까지 가며 오랜만에 우승에 도전했지만 그마저도 오심골이 나오면서 패하고 만다.

9 회장에 대하여

빌 켄라이트는 건강 악화인 상황에서 2016년 2월 28일, 이란의 부호 파하드 모시리씨가 대주주가 되었다. 하지만 켄라이트 구단주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켄라이트가 회장 직위는 유지한다.(켄라이트의 대리는 존 우즈)

10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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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사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13-14 시즌 엠블럼(역대 최악의 엠블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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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사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현재의 엠블럼

11 1군 스쿼드

에버튼 FC 2016-17 시즌 스쿼드
등번호국적포지션한국어 명칭 기울임체는 임대 간 선수.영어 명칭 볼드체는 유니폼 표기명.생년월일신체 조건
130pxGK호엘 로블레스Joel Robles1990년 6월 17일195cm, 90kg
230pxMF모르간 슈네데를랭Morgan Schneiderlin1989년 11월 8일185cm, 75kg
330pxDF레이튼 베인스Leighton Baines1984년 12월 11일170cm, 70kg
530pxDF애슐리 윌리암스Ashley Williams1984년 8월 23일183cm, 77kg
630pxDF필 자기엘카(주장)Phil Jagielka(C)1982년 8월 17일183cm, 83kg
830pxMF로스 바클리Ross Barkley1993년 12월 5일189cm, 76kg
930pxFW아루나 코네Arouna Kone - Kone.A1983년 11월 11일181cm, 74kg
1030pxFW로멜루 루카쿠Romelu Lukaku1993년 5월 13일190cm, 94kg
1130pxFW케빈 미랄라스Kevin Mirallas1987년 10월 5일182cm, 69kg
1230pxMF아론 레넌Aaron Lennon1987년 4월 16일165cm, 63kg
1430pxFW야닉 볼라시Yannick Yala Bolasie1989년 5월 24일188cm, 84cm
1630pxMF제임스 맥카시James McCarthy1990년 11월 12일180cm, 72kg
1730pxMF이드리사 게예Idrissa Gana Gueye1989년 9월 26일174cm, 74kg
1830pxMF가레스 배리Gareth Barry1981년 2월 23일183cm, 79kg
1930pxFW에네르 발렌시아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에서 임대Enner Valencia1989년 11월 4일174cm, 74kg
2130pxMF무하메드 베시치Muhamed Bešić1992년 9월 10일180cm, 80kg
2230pxGK마르턴 스테켈렌뷔르흐Maarten Stekelenburg1982년 9월 22일197cm, 92kg
2330pxDF셰이머스 콜먼Séamus Coleman1988년 10월 11일177cm, 67kg
2530pxDF라미로 푸네스 모리Ramiro Funes Mori1991년 3월 5일186cm, 80kg
2630pxMF톰 데이비스Tom Davies1998년 6월 30일180cm, 70kg
2830pxMF키어런 도웰Kieran Dowell1997년 10월 10일175cm, 59kg
2930pxDF도미니크 칼버트-르윈Dominic Calvert-Lewin1997년 3월 16일180cm, 64kg
3030pxDF메이슨 홀게이트Mason Holgate1996년 10월 22일181cm, 73kg
3130pxDF아데몰라 룩맨Ademola Lookman1997년 10월 20일174cm, 79kg
3830pxDF매튜 페닝턴Matthew Pennington1994년 10월 6일185cm, 77kg
구단 정보
회장 : 빌 켄라이트감독 : 로날드 쿠만구장 : 구디슨 파크
출처 : F.C. 영어 위키백과, 마지막 수정 일자 : 2017년 1월 31일

12 응원가

가사

Everton,

Everton,

We're Forever Everton



All for one

One forall

Everton's the team that plays beautiful football

We've got the

best supporter's

On any football ground

And as long as they're behind us

We'll never let them down

The men who go from Merseyside

To sail the seven sea's

Will hear the call of Everton

Come riding on the green



Everton, Everton

We're

Forever Everton

All for one One for all

Everton's the

team that plays beautiful football

We're the kings of Goodison

We play in Royal Blue

On the ball the Toffeemen

Will play it sweet for you

We play it on the carpet

We play it in the air

Whichever way we play it

We play it fair and square



Everton,

Everton

We're Forever Everton

All for one One for all

Everton's the team that plays

beautiful football

The story that is Everton

From the days of Dixie Dean

The story we will carry on

The glory of our team In every land and continent Wherever football goes

We'll play the game that's Everton

And bring the honours home



Everton,

Everton

We're forever Everton

All for one One for all Everton's the team that plays

beautiful football

13 그 외

2012년 8월 8일(현지시간), AEK 아테네와의 친선 경기에서는 한 수비수가 골을 넣자 열광한 팬들이 피치로 난입해 선수들과 같이 골을 축하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골의 주인공은 토니 히버트. 10살 때부터 에버튼 유스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2001년 데뷔 이후 12시즌 동안 에버튼 유니폼만을 입으며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던 '원 클럽 맨'이다. 308경기를 출장해온 그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그 동안 골을 못 넣었다는 점. 서포터들도 "히버트가 골을 넣으면 우리는 폭동을 일으킬거야" (When Hibbo scores, We Riot)"라는 응원가를 부르며 그의 골을 학수고대해 왔는데... 드디어 이날 경기에서 골을 넣은 것이다. 그것도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치러진 친선 경기에서. 기쁠 만하다. 덧붙이자면 15/16시즌에도 재계약을 했다고 한다.

조아라의 연재소설 나는 귀족이다의 주인공 유지웅이 인수한 구단이 바로 이 에버튼 FC이다. 작중에서는 레드몹 레이드로 2개월간 벌어들인 22억 파운드 가지고 구단 인수는 물론 메시, 팔카오, 카바니, 아자르, 함식, 디 마리아, 카바예, 보누치, 쿠르트와 등등의 초호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해서 리그 우승을 노렸다. 작가의 말로는 '모예스 움짤'에 필을 받아서 이 에버튼을 선택했다고.(근대 대주주 파하드 모시리가 100m을 지원할 것이란 말이 나오며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 /ˈɛvərtən/
  2. 세인트 도밍고스 F.C.로 창단.
  3. 자세한 내용은 머지사이드 더비 항목에서 참조바람.
  4. 라리가의 레알, 바르셀로나, 빌바오,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세리에A의 인테르가 각 리그의 1부리그 전출 클럽들이다. 잉글랜드의 경우 EPL 출범 이후엔 에버튼을 포함한 몇개의 전출 클럽들이 있으나, 전체 1부리그 역사를 볼 때 전출 클럽은 없으며, 그 중 에버튼이 가장 많은 1부리그 출전을 자랑하고 있다.
  5. 연속 참가 기록은 1부 리그에서 93시즌째 버티고 있는 아스날에게 뒤지지만, 1부 리그에서 보낸 시즌은 리그 최다.
  6. 소위 '빅 4' 체제를 깨기 힘들었던 최근 프리미어 리그 상황을 보면 이 것도 꽤 큰 업적이다. 4위 안에 들어야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32강도 못가고 3차 예선에서 비야레알에게 2패로 허무하게 탈락했다. 그리고 2009-10 시즌 토트넘 핫스퍼가 리그 4위로 진출하여 챔피언스 리그 8강까지 간 것에 견주는 경우도 있다...
  7. 에버튼의 유니폼 스폰서가 바로 태국 맥주 회사인 창(Chang)이다. 에버튼 서포터들은 창이 스폰서가 되자 '뭐냐 그런 업체도 있냐?'라는 반응이었고 반대로 태국에서는 '에버튼은 뭥미?'라는 반응이었다. 태국에선 리버풀이 워낙 인기가 많아 에버튼은 가려졌고, 전 태국 총리이자 맨시티 구단주였던 탁신 치나왓은 리버풀을 소유하면 태국 내 입지가 강화된다고 계산하여 리버풀을 사려고 했을 정도이다. 참고로 창은 에버튼 경기장에선 창 맥주만 판매하라는 방침을 내세웠다가 에버튼 서포터들이 반발하여 없던 일로 했다. 구디슨 파크 매점에서 창 맥주를 팔긴 하지만 당연히 인기는 진짜 없다.
  8.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가 피파 랭킹 70위 내 나라들 선수들로 영입 조건을 강화하면서 중국인 선수들은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9. 사실 제라드가 원래 에버튼 서포터는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열렬한 리버풀 서포터였고, 제라드의 삼촌이 에버튼 서포터였다고 한다. 그래서 둘은 항상 제라드를 각자 자기들이 응원하는 팀의 서포터로 만들려고 했다고... 제라드의 어린 시절 에버튼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어서 그가 에버튼 서포터였다고 설명이 돼 있는 거 같지만 그건 그의 삼촌이 제라드의 아버지 몰래 에버튼 경기에 데리고 가면서 찍었다고 한다. 이 삼촌의 아들이자 스티브의 사촌동생인 앤서니 제라드(허더스필드 타운 소속, 중앙 수비수)는 실제 에버튼 유스로 축구 인생을 시작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제라드는 어느 한 팀이 중요한 게 아니고 축구 자체가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한테 토트넘, 맨유(!)같은 여타 팀의 유니폼을 사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어느 팀이든지 축구 경기를 보러 가는 게 즐거웠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현재에 와서는 삼촌을 따라 에버튼 경기장에 간 것이나, 에버튼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은 것이 조금은 부끄러운 과거라고 선수 본인이 자서전에 기고한 바 있다.
  10. 제이미 캐러거는 진짜 어릴 때는 에버튼 서포터맞다. 그래서 포포투 인터뷰때 처음 프로 데뷔했을 때는 리버풀과 에버튼이 둘 다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느날 중요한 경기에서 패하고 울적한 기분으로 펍에 갔더니 에버튼 서포터들이 리버풀을 조롱하는 것에 빡쳐서 팬심을 버렸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지금은 에버튼이 무조건 졌으면 좋겠다고.
  11. 이 중 실제로 답장한 곳은 10팀 정도였고 상당수가 복붙 메시지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