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마동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第六) 후제(侯第)
100위 알지절후 풍해감101위 중수장후 여마동102위 두연장후 왕예

여마동(呂馬童)은 중국 초한쟁패 시대의 장수이다. 원래 항우의 부하였으며, 항우와 같은 고향 출신이었다고 한다. 유방에게로 귀순했다. 그 이후 한고제의 휘하에서 종군하던 도중 해하전투에서 패배해 간신히 도망쳐나온 항우가 한나라군을 상대로 무쌍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여마동이 항우 앞에 나타나자 항우는 "너는 내 부하였던 녀석이 아니냐?" 고 물었다. 여마동은 차마 대꾸를 하기에는 겸연쩍었는지 옆에 있던 왕예(王翳)에게 "저 사람이 항우가 맞다"며 딴청을 부렸고, 항우는 그런 여마동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들으니 한왕이 내 목을 천금과 만호(萬戶)의 봉지로 사려한다고 했다. 내 그대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겠노라."

그러면서 항우는 자결했는데 그러자 유방군은 서로 항우의 시체를 가지려고 자기들끼리 아귀다툼을 벌였고 여마동도 이 아귀다툼에 말려들었지만 여마동은 다행히 항우의 마지막 뜻을 이루면서 항우의 사지 중 하나를 획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래서 여마동도 제후에 봉해지는 데에 성공했다. 이 아귀다툼에 참가한 병력들 중에서 여마동 이외에도 항우의 머리를 가진 왕예를 비롯하여 양무, 양희 등이 항우의 시체조각을 가로챘다.

이후 그 시체를 한 번 조립해서 맞춰보자 딱 맞아 떨어졌으므로 5명은 모두 책봉되어 열후가 되었다. 고조공신후자연표을 보자면 고조공신열후 143인 중 양무가 서열 94위, 여마동이 서열 101위, 항우의 머리를 가져간 왕예가 서열 102위, 양희가 서열 103위, 여승이 서열 104위가 되었다.

이 대목에서 특이한 부분이 비록 유방의 휘하로 돌아섰으나 항우가 여마동을 바로 알아보고 "내 시체를 그대들에게 주기 위해 자결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결했다는 부분인데 항우가 얼굴을 알아볼 정도였다면 항우를 꽤나 오래 모신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본디 한신이 지적했듯이 항우는 (큰일에는 인수가 닳을때까지 아쉬워하고 망설이지만) 주변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친절한 인물인 점을 감안했을때 이 점도 항우의 성격을 드러내는 일화 중 하나로 볼 수 있겠다.[1]
  1. 여마동을 보기 전까지 홀로 수백명이나 죽여댄 그 항우가 여마동을 보자 순순히 자살한걸 보면... 게다가 항우 성격상 이런 경우엔 왠만하면 그냥 그 즉시 칼로 죽여버릴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