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장

1 소금이나 간장 등으로 음식을 절여 보존하는 것

  • 사전적 의미 - 소금간장.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하다. 소금에 절이다.

원리를 설명하면 염분의 고장성(高張性)과 삼투압 작용을 이용해서 유해 세균이 번식하기 힘들게 만들어 해당 육류나 채소 등을 장기간 보존하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놀라운 저장기술 중의 하나로 이 스킬을 사용하면 원래 금방 썩을 음식도 오랫동안 먹을 만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다. 건조는 햇볕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훈제는 비싸고 거창한 설비가 필요한 데 비하여 염장은 그냥 소금이나 간장을 뿌리고 서늘한 데 밀폐해서 보관하면 끝이므로 그 간편함에 의해 예로부터 많이 사용되어 왔다.

현재는 신의 발명품 냉장고로 인해 위상이 다소 줄어들었으나 염장과 숙성을 통해 더 풍미가 좋아지는 음식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젓갈이 대표적. 현재 먹는 염장식품은 냉장고 덕분에 덜 짠 편. 그 전에는 물에 행궈서 먹어도 짤 만큼 짜게 염장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염장을 하면 원재료가 다소 쫄아들지만 흐물텅하게 썩지는 않는데 이 때문에 고대 중국에서는 사람 목(처형한 죄수나 적군 등)을 쳐서 그 증거로서 보낼 때 염장을 해서 보냈다.[1]

2 사람을 약올리는 행위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불만인데 다른 사람이 옆에서 그 일에 대한 이야기로 화를 돋우는 경우를 말한다. 한마디로 불난 집에 기름 내지 상처에 소금.

어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소금과 간장을 의미하는 '염장(鹽醬)' 이란 단어에 뿌린다는 뜻을 가진 '지르다' 가 붙어 "생선이나 고기 등을 소금으로 절이는 행위" 를 의미하던 것이 죄인을 심문할 때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고문법으로서의 의미가 더해져 오늘날의 의미로 확대되었다는 설이다.

두번째는 염장이 "염통(심장)" 의 "염" 에 내장을 의미하는 한자 '장(臟)' 이 합성되어 심장이라는 설이다. '지르다' 는 팔다리나 막대기 따위로 대상을 때리거나 찌르는 행위를 일컫는 의미이므로 결국 '염장 지르다' 는 "타인의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마음을 아프게 한다" 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2.1 커플이 애정행각으로 솔로를 놀리는 짓

위 사전적 의미의 염장에서 파생되어 쓰이는 유행어다. 일단 현장을 본 솔로는 엄청난 시각, 청각 테러를 당한다. 그러다가 자괴감과 회의감에 휩싸여서, 자살까지 결심할 수도 있다.

스킨십같은 성적인 행위보다 깨가 쏟아지고 닭살이 마구 돋아오르는 서로 귀여운 척하는 염장질이 더욱 큰 피해를 입힌다. 특히 연인이 주변 시선을 배려하지 않고 그 강도를 더할 경우 최종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전부 으로 만들어버리는 참상이 발생할 수 있다.

잘못하면 주변 사람들이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이 나올 수도 있으므로 주의하자. 이 행위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의 주요 이슬람국가에선 정말 불법이다. 현지 종교경찰에 적발되면 구류 및 태형을 받고 추방될 수 있으니 조심하자.

어원은 2. 사용법도 동일하게 '염장질', '염장지르다' 고 한다.

이거는 엄연히 민폐면서 악행일 뿐이다. 참고로 염장질에는 친구고 뭐고 없다. 일어서라 솔로부대.

3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를 암살한 인물

이름閻長(염장)
출생생몰년도 미상
나라신라

무주 사람으로 염장(閻丈), 염문(閻文)이라는 기록도 있다.

신무왕민애왕을 물리칠 때 장보고군이 가담했는데 이때 선봉을 섰다. 문성왕 때 장보고가 역모를 꾀하자(이 역모설도 서라벌 귀족들의 음모라는 주장이 있다) 장보고를 배신하고 그에게 접근해 암살하였다. 이후 청해진을 장악하고 일본에도 사신을 가끔 보냈으나 아마도 장보고 때만큼 흥성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해신에서 송일국이 이 인물을 맡아 제법 떴다. 장보고의 라이벌격 인물로 묘사됐으며 당시에 그의 명대사였던 "내 반드시 네 심장비수를 꽂겠다!!" 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는 정화와 장보고의 아이를 탈출시키는 걸 돕다가 죽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장보고 사후에 청해진을 장악한 모양이다. 이와 관련한 기록은 '속일본후기'나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나온다.

4 신라시대의 진덕여왕 때 인물

이름廉長(염장)
출생생몰년도 미상

삼국유사에 따르면 중요한 나라 일을 결정하는 4영지 회의에서 알천, 임종, 술종, 호림, 김유신 등과 함께 남산 오지암에서
나라 일을 결정했다고 하며 금입택 중에서 수망택이 바로 염장의 집이라고 한다.

4.1 화랑세기

풍월주17세 풍월주[2]
출생586~647
혈통진흥왕의아들인 천추공과
진지왕의 비인 지도태후의 아들[3]

호림이 14세 풍월주가 되자 18세의 나이로 전방대화랑이 되었다. 보종과 사이가 좋아 보종이 김유신에게 부제의 자리와 차기 풍월주의 자리를 양보하자 혼자 반발하였다. 이것 때문에 아래처럼 김유신과 사이가 안 좋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보종이 여색에 관심이 없어 여자를 자주 양보했다. 보종의 처 양명공주(김춘추의 장모)와 밀통하여 아들 장명을 낳았다. 하종의 딸인 하희가 보종을 사모하였는데 "염장을 좋아한다면 나도 좋아할 것" 이라고 해 염장에게 시집가 하장, 윤장, 춘장을 낳았다.

선덕여왕에게 붙어 칠숙의 난을 평정한 뒤 조부의 영이 되었는데 사적으로 치부하여 부유했다. 흔히 미생과 비교되었는데 미생은 사치스러웠지만 염장은 부유한데도 검소했다고 한다.

4.2 드라마 대왕의 꿈의 등장인물

담당 배우배도환(아역 : 김기두)

처음에는 가야계라고 김유신을 깔보는 찌질한 역할로 나온다.
그러나 만용을 부려 고구려군에 붙잡혔다가 김유신에게 구출된 이후로는 형세 역전.
특히 장성해서는 화랑세기처럼 화랑의 풍월주를 맡고 있는데 승만왕후와 술판을 함께 벌이며 놀아나다가
김유신에게 개갈굼을 먹고 짤없이 데꿀멍한다. 오히려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이 더 김유신에게 대든다
10화에서는 사정부와 화랑도의 화해를 위한 연회 자리에서 서라벌 풍이야를 외치며 말춤을 준다. 시대를 앞서간 월드 스타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과 주로 콤비를 이뤄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1. 쫄아든다는 점 때문에 외형이 좀 변하기도 했으며 이를 악용해 다른 사람의 목을 쳐서 그 사람인 것처럼 위장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2. 31세에 풍월주가 되었다.
  3.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의 이부동모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