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군

禰軍
613년 ~ 678년

1 소개

백제매국노이다. 자는 온(溫). 예식진과 더불어 매국노 형제이기도 하다.

백제가 멸망할 때 의자왕 일행과 함께 에 투항해 관리가 되었다. 이후 일본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했지만, 중국 천자의 사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국 거부를 당했다. 삼국사기에 예군의 행적이 기록이 되었는데, 삼국지의 관해처럼 등장빈도가 적어서 삼국사기에는 거의 엑스트라 수준으로 등장한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절반이 엑스트라 수준인 것이 함정.

2 예군의 묘지명 발견

2011년 중국측에서 그의 묘지명이 발견,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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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于時日本餘噍,據扶桑以逋誅;風谷遺甿,負盤桃而阻固。

그런데 이 묘지명에서 '일본'이라는 표현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는 문헌상으로 처음 등장하는 '일본' 국호(삼국사기 문무왕본기, 670년) 등장에서 얼마 되지 않는 기록으로서, 후대의 문헌 기록인 삼국사기를 제외한 '일본'의 실제 사용 사례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주목된다. 구체적으로는 '관군(당나라)이 우리 번국(백제)을 멸하자 일본의 잔당들이 부상(扶桑)에 들어가 죽임을 면했다'는 문구이다.

여기서 '부상'은 중국에서 이상적인 섬나라로 보던 곳으로 일본 열도를 빗댄 것이다. 이 문구는 현재 통설상 백제를 도우러 온 일본군이 참패한 후 돌아간 것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나라대학의 도노 하루유키(東野治之) 교수는 문구 내용 중 '부상'이 '일본'을 가리키므로, '일본이라는 단어'는 '백제'를 가리킨다.[1]라고 주장하였다. '일본'이 '부상', '풍곡(風谷)', '반도(盤桃)' 등으로 시적으로 표현된 것과는 달리 '일본이라는 단어'는 '해좌(海左)', '영동(瀛東)' 등의 단어를 통해 별도로 나타냈다는 것이 근거인데, 두 학설 모두 한 쪽이 맞다고 명확히 결론 내릴 근거는 없다.

묘지명 전문과 탁본을 보고싶다면, 링크 참조. 다만 해석은 없다...
  1. 즉, 문구 내용 중 백제는 일본으로, 일본은 부상으로 표기했다는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