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전국시대)

吳慶

나라의 인물로 자세한 신분이나 전력은 알 수 없다.

기원전 257년에 나라가 나라의 한단을 포위했다가 나라를 공격하여 영읍을 점령하자 안희왕이 강화할 것을 우려해서 충고한다.

진나라가 위나라를 치는 것은 제압하기 쉽기 때문에 강화를 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은 적에게 연약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적의 공격을 불러온다고 하여 진나라와 강화하는 것을 막는다.

하라 야스히사만화 킹덤에서의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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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능력치
시기무력지휘력지력정치
7권899297?
가이드북899297?

지용을 겸비한 굇수같은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다.

애니판의 성우는 아카기 스스무.

위의 인물에서 이름만 따온 인물로 여기서는 나라의 무장이자 전국사군자 중 한 명인 신릉군식객이다.

왕의의 설명에 따르면 신릉군의 지혜주머니라 불리며 군사전략으로는 위나라 최고이며 나라와의 사감평원 전투 직전에 진나라의 환성을 함락시키는 등 무용도 갖춘 열국을 위협할 명장이라한다.

원래는 위나라의 동쪽에 위치한 이라는 소국의 왕족으로, 작중 사감평원에서의 전투가 일어나기 29년 전에 나라의 공격으로 조국이 멸망할 때 간신히 가신 한 명과 도망치게 된다.그러나 이 때의 충격으로 백발이 되었고 이후 가신과 전국을 유랑하다 신릉군의 식객이 되어 위나라를 제 2의 조국으로 삼게되었다.

사감평원 전투에서는 박호신의 닥돌 등으로 부장인 궁원이 죽거나 하는 등으로 조금 열세이기는 했지만 진나라의 군사수는 대략 5천여명 정도이고 위나라는 5만여명의 군사를 가지고 있었기에 잠시 물러나 압도적인 병력으로 싸우면 표공과 진군을 개발살낼 수가 있었으나, 표공의 닥돌에 과거 조국이 멸망한 것이 떠올라 침략자에게 굴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생겨 표공과 일기토를 벌인다.초반에는 막상막하로 겨루나 곧 표공에게 밀리다가 위에 서술한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데, 이에 표공은 난세에서 소국이 도태하는 것은 흔한 일인데 그것에 집착하여 사적인 일로 장군의 책무를 잊고서 자신과 일기토를 겨룬다며 비웃고 마지막으로 일합을 받다가 결국 사망한다.[1]

그래도 표공은 오경을 죽인 뒤 지략과 무력으로 자신을 고전시키며 마지막까지 불타올랐다며 감탄했다.

참고로 오경이 갑자기 일기토를 하고 죽는 부분이 더 까이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오경의 지력 수치때문이기도 한데 오경의 지력은 무려 97이다. 수치로만 보면 왕의양단화보다도 높은 수치이며 염파보다도 높다. 그런데도 마지막에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운 일기토를 받아들인 것은 총사령관으로서는 절대 하면 안되는 행위였다. 병력이 열세에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지력으로는 공개된 육대장군과 삼대천보다도 높은 사람이 갑자기 돌발행위를 해서 다 이긴 전투를 진 꼴이니 독자들 입장에서는 깔만도 하다.

산양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윤호가 천인장들을 암살할 때 언급되어 몽염이 나원에게 명백히 실력자들만 노린 것을 보고 누군가가 이 앞의 대전을 위해 포석을 깔아두고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나원이 오경이 세상을 떠난 뒤로 이렇게 지금부터 포석을 깔아둘 정도의 전략을 가진 장군은 위나라에 없다고 말했다.하지만 우주굇수가 있었지

위안리왕 때 위나라를 대표하는 장수인 화룡칠사 중의 한 명이었다고 한다. 다만 지네들끼리의 싸움에 유일하게 관여하지 않아서 이쪽은 무사했고, 그러던 중에 살아남은 3인방을 살려주었다. 다만 그것 때문에 여섯 명은 순식간에 잊혀지고 자신만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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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고 이는 작가가 전투의 마지막은 일기토로 끝내려고 한다며 까이는 요소의 시발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