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로메로

이름Óscar Arnulfo Romero y Galdámez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이 가르다메스)
출생지엘살바도르 시우다드바리오스
사망지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
생몰년도1917년 8월 15일 ~ 1980년 3월 24일 (62세)
시복2015년 5월 23일, 교황 프란치스코를 대리한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1]
축일3월 24일

1 생애

가톨릭 성직자이자 복자엘살바도르대주교.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대변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병약했고 학교도 12살 때까지만 다녔다고 한다. 이후에는 목수 일을 배우는 등 노동자로 일하다가 신학교에 입학, 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유럽에 유학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고향에서 오랫동안 사목했고, 알콜 중독자의 재활을 지원하는 등 일반적인 사제로서의 길을 걸었다.

원래는 상당히 보수적인 인물로, 그가 1977년 대주교가 되었을 때는 군사정권 측에서 환영했을 정도로 사회정의운동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같은 사제이며 친구로 농민운동을 하던 그란데 신부가 암살당한 사건을 계기로, 반 독재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이후 1979년 쿠데타로 들어선 엘살바도르의 독재 정권에 항거하여 빈곤층을 돕고 인권침해를 고발하다 미사 성찬기도 중 암살(사살)당했다.피격 직후 사진(노약자 클릭 주의) 당시 독재정부가 그의 죽음에 개입하였고, 사후 30년이 지난 2009년에야 이 사실이 정부에 의해 인정되었다.

로메로 주교가 처음부터 진보 성향인 건 아니었다. 그는 본래 전통주의자였다.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인권 탄압에 그리스도인으로 인권을 옹호했을 뿐, 해방신학과는 거리가 있던 보수적인 주교였다. 일례로, 로메로 주교는 정통 신학 사제회로서 해방신학의 오류를 교리적으로 반박하는 임무를 맡은 오푸스 데이의 성 십자가 사제회에 참석하고 영적 도움을 받았다. 그가 순교한 날 아침에도 오푸스 데이 협력 사제 모임에 참가한 후 미사 집전 중에 피격을 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순교 후에 해방신학 추종자들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덮어씌운 것이다. 그 결과 이젠 그가 해방신학의 아이콘처럼 된 것은 아이러니.

이런 이유로 진작에 시복시성이 되어야 했지만, 교황청에서 해방신학 추종자들이 이를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하는데 악용할 것을 우려하여 이를 늦춘 것이다. 인권 탄압에 저항하는 것은 가톨릭에서는 보수건 진보건 당연한 일이다. 그의 죽음에 운집한 25만명의 신자들이 장례식 폭탄 테러와 이후의 총격전에 휘말려 25명이 죽은 것 역시 비극이었다.

2 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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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이 집전한 오스카 로메로의 시복 미사, 2015년 5월 23일

20세기순교자 중의 한 사람으로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성공회)에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요한 바오로 2세 때 '하느님의 종'[2]으로 인정되었으나 그가 종교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죽었다는 점을 이유를 내세운 교황청 내의 반대 의견 때문에 절차가 지지부진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지 6주만에 시성 절차가 재개되었다. 기사 그리고 2015년 2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을 순교로 선포함에 따라 시복시성에 가속도가 붙었다.[3] 마침내 동년 5월 23일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의 살바도르 델 문도 광장에서 거행된 이번 시복 미사는 교황을 대리한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이 집전했으며, 30만 명이 넘는 군중이 운집해 복자품에 오른 로메로 대주교를 기념했다. 축일은 3월 24일이며, 복자이기 때문에 산살바도르 대교구에서만 축일을 기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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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 이전에 그려진 이콘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설치된 20세기의 순교자 10인 조각상

정식 시성이 안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대륙 일부에서는 그를 아메리카 대륙과 엘살바도르의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움직임이 있으며 그에게 헌정된 교회와 교구, 이콘도 있다. 가톨릭 사제였지만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포함한 기독교의 타 계열 분파에서도 존경받으며 그가 암살당했을 때는 전세계에서 추도객들이 찾아왔다.

3 미디어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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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만들어진 영화 <로메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로메로 역은 영화배우 '라울 훌리아'가 맡았다. 실제 인물과 닮은 모습과 함께 배우의 열연까지 더해진 덕분에 '대부분이 알지 못했던 참상'을 호소력 깊게 알리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

관련 서적으로는 <희망의 예언자 오스카 로메로>가 2015년 발행되었다. #
  1. 교황청 시성성 장관이다.
  2. 성인에 이르는 단계 중 하나. 그 위로는 가경자(시복 후보자), 복자, 성인 순으로 이어진다.
  3. 순교자가 아닌 사람이 시복되려면 기적의 사례가 인정되어야 하지만 순교자가 시복될 때는 기적 심사가 면제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