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의 역사
Die Geschichte Österrei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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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헝가리
게피드
왕국
동헝가리트란실바니아 공국
오스트리아 제국
Kaisertum Österreich
독일 연방의 맹주(1815~1866)
국기국장
1804년 ~ 1867년
위치오스트리아, 체코
크로아티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수도
정치체제군주제
국가원수카이저
언어독일어
민족오스트리아인, 보헤미아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
헝가리인, 이탈리아인
종교가톨릭, 개신교
주요사건1804년 설립
1867년 대타협
통화XX
성립 이전오스트리아 대공국
대타협 이후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 개요

1804년 신성로마황제이자 오스트리아 대공이었던 프란츠 2세가 합스부르크 가문이 통치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대공국,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 부코비나 공국 등을 합쳐서 세운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를 한데 합친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여러 영지/나라들의 군주를 겸하고 있었을 뿐이다(동군연합). 비공식적으로 합스부르크의 세력권을 오스트리아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정확한 호칭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 제국 성립 이전에는 오스트리아가 공식적으로 오스트리아 대공국(현 오스트리아 연방공화국의 북부)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역대 지배자들은 18세기부터 통치가 힘든 신성 로마 제국 영내보다는 헝가리 등 관리가 더 쉬운 동방 영토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따라서 프란츠가 이들 동방 영토를 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오스트리아 제국이라는 틀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합스부르크 가의 영지는 신성 로마 제국의 안팎에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제국이 세워진 뒤 신성로마제국에도 속하고 오스트리아 제국에도 속하는 지역들이 필연적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본거지격인 오스트리아 대공국도 오스트리아 제국과 신성 로마 제국 모두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어차피 두 제국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양쪽에 속해도 문제는 없었다.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제국'은 독일어로 다르게 표기했다. 전자는 Reich(라이히)라고 하는 데 반해 후자는 Kaiserthum(카이저툼, 현재의 철자법으로는 Kaisertum)이라고 했다. 오스트리아(Oesterreich, 현대 철자 Österreich. 외스터라이히)라는 단어에 이미 'Reich'가 들어 있기 때문에 동어 반복을 피하면서 신성로마제국과도 구분하려고 Kaisert(h)um이라는 다른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명목상으로는 선제후에 의해 선출되는(elected) 황제지만, 오스트리아 황제는 세습되는(hereditary) 황제였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둘 다 세습이었지만...

2 역사

2.1 성립 배경

17세기30년 전쟁을 거쳐 이루어진 베스트팔렌 조약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등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무력화는 드러났고 캄포포르미오 조약(1797)과 뤼네빌 평화조약(1801)의 대가로 기존 신성로마제국은 껍데기만 남게 되는데 라인강 좌안의 기존 신성로마제국 영토는 모두 프랑스에 합병되고 기존의 제후들은 라인강 우안에서 영토적 보상을 할것 이란 합의를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란츠 2세가 승인한것.

즉 자신이 황제로 있는 제국의 서쪽 제후들 땅을 프랑스에 몽땅 조공으로 바치고, 니네끼리 알아서 보상을 해주든 말든 하라 이거였다... 황제 체면은 물론 땅에 떨어졌고 사실상 교회령 제국기사령등 황제가 이제껏 영향력을 행사한 제국내 영토들은 싹 사라지고 보상을 받은 제후들 마저 몽땅 프랑스 편으로 붙어 버렸다. 거기다가 황제선거권이 있는 선제후중에 신성로마제국의 라인강변 대가의 성직제후 마인츠,트리어,쾰른선제후가 없어진것... 거기다가 나폴레옹이 사실상 독일의 주인행세를 하며 오스트리아 코앞 제국도시 레겐스부르크에서 '독일제국대표자 회의'를 열어서 기존 없어진 선제후[1] 4개 자리를 대신하여 자신의 꼬붕들(?)이자 위성국가들을 멋대로 선제후로 삼아버렸다.

구체적으로 오스트리아 몫은 합스부르크가문 방계로 토스카나 대공국이 나폴레옹에 합병당하며 대토보상으로 꼴랑 잘츠부르크 대주교령을 대공국으로 보상받는데 그치고 나머지 5개 선제후들은
바덴[2]은 대공국으로 승격. 뷔르템베르크, 레겐스부르크, 헤센-카셀은 프랑스의 위성국... 바이에른과 작센[3]은 역시 프랑스에 줄을 섰기 때문에 선제후 자리중 과반수가 프랑스의 위성국이고 현직 황제는 꼴랑 보헤미아 국왕과 잘츠부르크 제후 달랑 2장밖에 없었기 때문에 유사시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제직 승계는 이미 물건너 갔다.

그래서 프란츠 2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대표 작위인 오스트리아가 기존 신성로마제국내의 대공국으로 격하되어 유사시 듣보잡으로 여기던 독일 소국보다 낮아지고 나폴레옹 또는 그의 하수인의 신하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사실상 해체가 예정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합스부르크를 대표할만한 직위가 필요했고 오스트리아 황제에 등극한것이다.

여담이지만 황제로 즉위할 당시 프란츠 2세는 나폴레옹의 황제 칭호의 상대적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유럽의 다른 나라 왕들한테도 황제로 즉위하라고 권유했으나 권유를 받은 왕들은 그게 예산만 들어가고 별 실효성이 없는 유치한 대응법이라 무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바람. 참고로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기 전인 18세기 말 영국에서 조지 3세에게 황제 칭호를 쓰라는 권유를 했는데 조지 3세 본인은 거절한 바 있다. 해당 항목을 참고할 것.

그런데 프란츠는 이런 이중황제라는 호사를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다. 1806년에 나폴레옹에 대패하면서 결국 신성 로마 제국의 문을 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프란츠는 이중황제에서 '그냥 황제'로 전락(…)했다.

2.2 민족주의 열풍과 대타협

1840년대 유럽 각국에서 자유주의, 민족주의 열풍이 불어 1848년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 루이 필리프 왕정이 전복되자 그 영향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대규모 소요 사태가 일어났고 황제 페르디난트 1세도 퇴위하였다.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즉위하여 나라를 수습해 갔지만 1861년 이탈리아 통일 전쟁에서의 패배와 1866년 보오전쟁에서의 연패는 제정과 황실의 권위에도 큰 실추를 불러와 이 틈을 타 헝가리의 독립 열기가 굉장히 강해젔다. 각종 테러가 빈발하여 당시 황제도 습격 당할 뻔하고 더 이상 헝가리를 억누를 수 없게 되자 오스트리아 황실과 헝가리 귀족들간에 대타협을 통해 헝가리에 막대한 자치를 주는 대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수립하기로 결정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은 새롭게 변모하였다.

3 역대 황제

대수이름재위기간
1프란츠 1세[4]1804~1835
2페르디난트 1세1835~1848
3프란츠 요제프 1세1848~1867

4 기타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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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로이센은 1795년 바젤 평화조약으로 일찍 굴복 해줬기 때문에 영국과 동군연합 하노버를 점유를 허가 받았고 하노버선제후령도 사실상 없어진다.
  2. 라인강변 서안영토를 조공으로 바치고 종이 호랑이 신세가 된 옛주인 오스트리아령 역외 영토들을 포함하여 라인강 우안 8배의 대토보상을 받아서 가장 출세했다.
  3. 뷔르템베르크 작센 바이에른은 역시 나폴레옹에 줄선 대가로 나폴레옹의 강요를 받아 프란츠 2세가 왕국으로 승격하는데 동의한다. 프로이센처럼 제국에 왕국령을 여럿 승인한 것은 사실상 제국은 끝났다는 이야기
  4.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서는 프란츠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