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츠카 치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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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 라디오 100회 특집에 출연 당시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1]

大塚周夫

1929년 7월 5일 ~ 2015년 1월 15일

1 개요

외래어 표기법/일본어에 따르면 오쓰카 지카오다. 일본성우 겸 배우로 키는 170cm, 소속사는 아오니 프로덕션이며 도쿄도 출신. 장남으로는 같은 성우이자 배우인 오오츠카 아키오가 있다. 한국에서의 이와 비슷한 사례는 한상덕(KBS 12기)과 한복현(KBS 35기) 부자인데 한상덕과 오오츠카 치카오 둘 다 골드 로저 연기로 유명하다.

일본의 로댕이라 불리는 아사쿠라 후미오(朝倉文夫 1883.03.01~1964.04.18)[2]가 백부이며 자신의 이름인 치카오와 아들 이름인 아키오를 아사쿠라 선생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80세가 넘는 고령이었음에도 생애 마지막 날까지 현역에서 활발하게 성우 활동을 했던 노익장. 날카로운 고음부터(★) 걸걸한 사나이(☆), 매우 인자한 할아버지나(♡) 최종 보스(◇)까지 폭넓은 연기폭을 자랑했다. 데뷔 시기는 무려 1948년으로[3] 성우라는 단어가, 직업이 존재하기 전부터 성우 일을 시작한 전설적인 인물. 한국에서 비슷한 포지션의 성우는 KBS 특기인 대원로인 구민 선생(1924년생)[4]오승룡, 최흘, 이완호, 정기항, 황일청, 유강진, 김종성, 온영삼도 역시 이사람과 비슷한 포지션 특히 이완호는 치카오처럼 히틀러를 역할을 전담했다. 배우쪽에선 이순재, 송해, 커크 더글라스, 스탠 리가있다.

경력도 연륜도 남다른 만큼 일본 성우계에서 군기반장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노장&원로급인 성우들(카유미 이에마사카미야 아키라 등) 중에서도 이 분한테 혼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 2차 판권에서 성우에게 수익료가 나뉘도록 할 만큼 성우들 권익 신장에 앞장서며 업계의 라스트 보스로 소문난 우츠미 켄지가 유일하게 무서워했던 선배가 바로 이 오오츠카 치카오.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인 오오츠카 아키오도 지금은 성우계의 군기반장이다.[5] 여기서 말하는 군기반장이란 후배에게 폭행, 폭언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솔선수범하고 리더십 있는 모습으로 현장 분위기를 이끌어갈 뿐 아니라 후배들에게 칭찬과 격려만큼이나 필요한 조언과 쓴소리도 해줄 수 있다는 의미. 성우계의 잘못된 관습과 부조리에 대한 과감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성우가 오오츠카 아키오이다.

생전에 치카오 부자가 함께한 인터뷰를 보면 연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강한 만큼 업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후배들을 향한 진지한 조언이 눈에 띈다. 둘이 각자 인터뷰를 해도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 함께하면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성우를 열악하게 대우하는 현실을 합심해서 비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대로 후배 성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들 대선배 부자에게 감사하는 내용이 많다. No.1 성우인 야마데라 코이치는 자신이 집필한 책의 첫 번째 챕터를 오오츠카 부자에 할애했고, 고참 성우이지만 치카오에게는 아득한 후배인 이노우에 카즈히코맛의 달인 애니메이션에서 함께 출연하면서 오오츠카 치카오가 정말 아버지처럼 느껴졌고, 덕분에 오오츠카 아키오는 친형제 같은 후배가 됐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둘이 함께 출연하면 오오츠카 아키오가 연상, 이노우에 카즈히코가 연하의 후배를 맡아 존칭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1.1 성우 부자

이제 괜찮다, 아들아.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돼. (もういいんだ息子よ. 戦うことはない.)

-METAL GEAR SOLID 4 에필로그 영상에서

아들인 오오츠카 아키오가 일반적인 직장을 가질 것이라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배우의 길을 걷게 되고, 충분히 그의 연기와 목소리가 단련했다고 생각되었을 때 "성우 한 번 안 해볼 테냐?" 라며 아키오를 에자키 프로덕션[6]의 에자키 사장에게 데려가서 오디션을 보게 한 것이 오오츠카 아키오가 성우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였다.

오오츠카 부자가 함께 출연하는 작품은 많으며 특히 극중에서도 아버지와 아들로 출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감독들이 오오츠카 부자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캐스팅하는 거라고 한다. 특히 메탈기어 솔리드 4에서의 출연은 많은 팬들로 하여금 "오오츠카 부자가 이 작품에 아버지와 아들로 함께 출연하기 위해 성우의 길을 택한 것" 이라는 극찬까지 받을 정도로 부자가 혼신의 협연을 펼쳐낸다.
심지어 두 사람의 열연 장면에서 흐르는 BGM 제목조차도 Father & Son.
극중에서도, 현실에서도, 오직 부자(父子)인 두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연기였다. MGS4 에필로그 영상

손자 뻘인 후배 성우들은 최고참 치카오에게 말을 거는 것을 어려워 했지만, 치카오 본인이 댄서로 일을 시작했던 만큼 녹음실에서 멋진 춤 실력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오오하라 사야카는 녹음할 때 양옆에 오오츠카 치카오, 아키오 부자가 함께 서서 연기한 적이 있었는데 극중에서도 세 사람이 팀을 이룬 캐릭터인 만큼 그야말로 무서울 게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스턴트맨으로 오랜 활동을 했고 탤런트로서 사극이나 현대극에도 출연, 본업인 연극 배우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던 만큼 치카오가 가장으로서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매우 적었다. 게다가 취미는 맨 와칭이라 연기를 하지 않을 때에도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연구하는 것에만 몰두했다. 덕분에 실력파 연기자로 거듭난 것이지만, 아들인 아키오는 집에 혼자 남은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라는 존재와 배우라는 직업을 매우 싫어했었다. 그렇지만 자신 역시 배우가 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다만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아키오의 남동생은 어른이 되어서도 아버지를 어려워했다고 한다. 정말로 빅 보스와 솔리드 스네이크의 삶과 닮은 오오츠카 부자의 연기 인생이다.

TV 애니메이션 <블랙잭 21> 제1화에서 오오츠카 치카오가 의사협회 회장으로 게스트 출연하여 아키오가 연기한 주인공 블랙잭과 대립하기도 했는데, 이때 협회장의 아들이 총을 맞아 부상당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들이 총에 맞는 순간, 시나리오의 대사는 원작 그대로 "아들아!"였는데 치카오는 이 대사를 부자연스럽게 생각했고, 자신이 맨 와칭 경험을 이야기하며 자녀가 다칠 경우 부모는 자식 이름을 부르짖는다고 의견을 밝혔다. 제작진도 이를 인정하여 실제 애프터 레코딩은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변경됐는데 극중 아들의 이름은 시나리오에도 원작에도 없었고, 아버지 연기를 하던 치카오가 외친 이름은 바로 "아키오!!!"였다.

성우팬들이 부르는 애칭은 '치카오 파파'. 재미있는 건 성우 후배들도 라디오나 대담에서 이렇게 지칭하는 경우가 있다. 후쿠야마 쥰은 로도스도전기 영웅기사전에 대사 한마디뿐인 단역으로 출연하게 첫 성우 데뷔였는데, 이때 레귤러 캐릭터로 연기 중이었던 오오츠카 치카오가 짧은 만남에도 가르침을 많이 주었다고 한다. 후일 누라리횬의 손자에서 할아버지와 손자 역으로 출연하게 되어 진심으로 기뻐하며 이때의 일화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해당 작품의 방영 당시 성우 잡지에 정말 친손자와 할아버지처럼 활짝 웃는 두 사람의 사진이 브로마이드 형식으로 수록되었다.

외화에선 주로 찰스 브론슨을 전담했었다. 서부영화 시대의 남성미 넘치는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로 오오츠카 치카오는 레전드가 되었는데 이들 고참 성우들의 몸값이 너무 오르자, 저예산인 비행기 내 영화 상영 녹음에 젊은 시절의 오오츠카 아키오가 자진해서 찰스 브론슨 역을 맡은 적이 있다. 아들이니까 아버지 연기를 가장 가까이서 이해할 수 있다며 자신 있게 녹음실에 들어갔지만 연기 내내 아버지 치카오가 못 마땅해하는 환청이 들려왔다고.

2015년 1월 15일, 아오니 프로덕션 신년회가 끝나고 귀가하던 중 지하철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도쿄 신주쿠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허혈성 심부전으로 타계했다. 향년 85세.[7] 1월 23일자 아들 오오츠카 아키오 트위터에 따르면 1월 15일 당일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나레이션을 녹음하며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전설이 된 성우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TV 도쿄의 '1위가 아니어도 좋잖아'로 1월 25일 저녁에 방영되었다.

여담으로 2014년 말 아들 아키오의 트위터에 '앞으로 몇 시간 지나면 2014년도 끝이다. 이별이 너무 많아 .[8] 한동안 상복은 입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라는 내용을 올린 적이 있어서 팬들은 더욱 슬픈 심정으로 오오츠카 치카오의 사망을 애도하였다.

2 출연작

  1. 해당 라디오 음원이 배포될 때 태그된 이미지이기에 사진의 크기가 작다.
  2. 참고로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홀에 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사이토 마코토의 동상을 만든 사람이었다.
  3. 같은 해에 사망한 크리스토퍼 리옹과 데뷔 년도가 같다.
  4. 심지어 데뷔 년도도 똑같다.
  5. 183cm의 큰 키 덕분에 아키오가 쓰는 마이크가 여성 성우들의 머리보다 높은 곳에 있을 때가 많기 때문에 젊은 성우들은 스튜디오에 들어오자마자 정신 바짝 차리게 된다고. 목소리가 워낙 중후한 탓에 이노우에 카즈히코는 라디오에서 "내가 아키오의 후배처럼 보인다"고 농담처럼 말한 바 있다. 참고로 이노우에 카즈히코는 오오츠카 아키오보다 경력도 길고, 나이도 다섯 살이나 위. 정작 아키오는 항상 '카즈히코 선배'라고 예의바르게 부르는데도 자신이 후배 같다고. 선배마저 긴장하게 만드는 모태 군기반장
  6. 현재 마우스 프로덕션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까지도 오오츠카 아키오는 이곳에 소속되어 있다.
  7. 공교롭게도 같은 날 대한민국 성우인 김관진이 향년 49세로 사망하여 양국의 성우계에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8. 2014년 항목과 앞의 링크들을 보면 알지만, 2014년은 일본 성우계에서 부고가 많았던 해로 하나같이 오오츠카 치카오의 입장에서 동생이나 조카 뻘인 사람들이다.(가토 세이조 제외. 이쪽은 치카오보다 2살 더 많다)
  9. 이 배역은 아들인 오오츠카 아키오가 이어받는다.
  10. 구 TV판에서의 캐스팅이고 OVA에서는 오오츠카 아키오가 요미를 맡아 이 경우에는 부자가 동일한 캐릭터를 연기한 경우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