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치 요시나가


大内義長

(1532? ~ 1557. 5. 1)

전국시대의 다이묘.

스오 오우치의 제 17대 당주이자 마지막 당주이며, 분고의 다이묘인 오토모 요시아키의 차남이자 오토모 소린의 동생이다. 본명은 오토모 하루후사(大友晴英)로 어머니가 오우치 가문이었기 때문에 1544년에 아들이 없던 외숙부인 오우치 요시타카의 양자가 되면서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하루에게서 편휘를 받아 하루히데(晴英)라고 이름을 고쳤다.

그러나 1545년에 숙부인 오우치 요시타카가 아들인 요시타카[1]를 얻었기 때문에 양자 관계가 끊어졌으며, 1551년 8월에 스에 하루카타[2]스기 시게토모, 나이토 오키모리 등을 끌어들여 다이네이지의 변을 일으키면서 요시타카와 그 아들을 몰아내자 타카후사에게 옹립되면서 오우치 가문의 당주가 되었지만 실권은 없었다.

1555년 10월에 이츠쿠시마 전투로 하루카타가 패사하면서 크게 몰락하여 1557년에 모리 모토나리가 야마구치를 침공하자 방어를 하다가 코노미네 성을 포기하여 카츠야마 성으로 패주했다. 그러나 모리 군의 후쿠바라 사다요시가 포위하자 죠호쿠인에서 자결한다.

노부나가의 야망에서는 폐급이다.
  1. 아버지인 요시타카와 한자는 다르다.
  2. 이 때 당시의 이름은 스에 '다카'후사 - 오우치 요시'타카'에서 따온 것 - 로 반란을 일으킨 이후에 요시나가('하루'히데)의 신하라는 의미로 '하루'카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