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

[1]

1 개요

일본 해군이 운용했던 수상기모함. 비행기가 개발되고 나서부터 이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고, 이중에는 당연히 비행기를 배에서 운용하려는 시도가 존재했다.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 전함이나 순양함의 상갑판이나 심지어 포탑 위에서 항공기를 발함시키는 시도를 했었다.[1] 이러한 실험이 성공한 다음 수순은 기존의 선박을 항공기 운용함으로 개조하는 것이었는데, 영국은 화물선 아크 로열을 개조하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일본에서도 이와 같은 실험이 이루어져 수송선 와카미야마루(若宮丸)를 비행기모함으로 사용하였다.

2 역사

와카미야마루는 본래 영국에서 건조, 진수된 배였다. 1905년 러일전쟁 기간에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던 도중 일본 어뢰정에 나포되어 임시로 타카사키마루로 불리다가 와카미야마루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수송선으로 쓰이게 된다. 나포시 총 톤수는 4400톤이었으며 해군 소속이 된 후 갑판과 선창에 개조가 이루어진다. 여기에 당시 일본 해군이 운용하던 수상기 파르만(Farman) 2기와 커티스(Curtiss) 1기[2]를 탑재하였다. 이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에는 파르만 MF.11 4기를 탑재하는 수상기모함으로 취역하여 칭다오로 향했다. 칭다오 포위기간 동안 열심히 수상기를 날려 세계 최초로 해군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중 강습의 주역이 되었다. 도중에 독일의 기뢰에 걸려 수리를 하는 동안에는 수상기들은 지상 기지에서 발진하여 임무를 수행했다. 칭다오 포위기간동안 와카미야마루의 수상기들은 49회 출격하여 190여개의 폭탄을 떨궜다.

3 성능

와카미야의 의의는 세계 최초로 수상기모함을 실전에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와카미야 이후로도 일본은 타카사키마루 등의 수상기모함을 운용하기 시작하고 영국도 연락선을 개조한 모함을 사용하게 되면서 해군에서 항공기가 널리 쓰이게 되고, 이는 각국의 항공모함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1. 이는 당시의 비행기는 복엽기로, 이륙에 필요한 거리가 단엽기보다 짧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2. 파르만과 커티스는 항공기 제조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