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스포츠)

1 개요

王朝, Dynasty.

특정 팀 혹은 특정 선수로 구성된 집단이 우승을 계속해서 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할 만큼 막강한 실적을 쌓았을 경우 이 팀이나 혹은 이 팀이 활약을 한 기간 전체를 '왕조'라 부른다. 이는 흔히 쓰는 '전통의 강호'라는 표현과는 구분되는데, 이 용어가 꾸준히 상위권에 드는 역사를 가진 팀을 지칭한다면, 왕조는 그 강팀들 중에서도 우승을 독점하는 것과 같이 그 스포츠 역사에 남을 만한 독보적인 수준의 성적을 이루어야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다시 말해 몇번의 준우승에 1번의 우승 정도로는 전통의 강호에는 해당할지언정 왕조 소리는 들을 수 없다. 한 마디로 그냥 전통의 강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팀에게 붙여지는 호칭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우승이라는 확실한 타이틀 외엔 주관적인 개념으로 우승을 여러 번 했다고 쉽게 왕조라는 타이틀이 붙는 것도 아니고 실적이 좋아도 그 내용 가지고 그 팀 팬들과 안티 팬들이 키배를 벌일 가능성이 높은 항목이다. 특히 아래 항목들처럼 폐쇄적 독립 리그 구조인 미국과 개방형 자유 시장 구조인 유럽 프로 리그에서 왕조라는 단어의 사용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전자의 구조는 드래프트를 잘해서 좋은 선수를 쌓으면 리그 내 팀들만 물리쳐서 우승할 수 있기 때문에 왕조의 형성과 경쟁 가능성에서는 유리하지만, 왕조의 유지 기간과 그 지배력에서는 타 팀 전력 빼오기가 매우 쉬운 후자의 구조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e스포츠본좌에 대한 느낌과 비슷하다. 팬들의 주관적 기준에 의해서 정해진다거나 그 정체성 때문에 키배가 많이 일어난다거나...

2 농구

2.1 농구대잔치~한국프로농구

허재, 강동희, 김유택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허동택 라인업으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휩쓸었고, 한국프로농구 출범 이후 프로 원년 우승도 달성했다. 이후 2001년 들어 인수 및 재창단 과정을 거치며 온갖 잡음으로 잠시 암흑기에 빠져들기도 했으나, 2000년대 후반 이후로 팀의 재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강팀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2005/06 시즌부터 2009/10 시즌까지 5시즌 동안 정규 리그 4번 우승, 챔피언 결정전 우승 2번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12/13~13/14 시즌에는 2년 연속으로 챔피언 결정전 우승, 그 다음 14/15 시즌에는 통합 우승에 성공하며 KBL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이룬 왕조가 되었으며 그 뒤 고양 오리온에게 챔피언 자리를 넘겼다.

2.2 WKBL

임달식 감독의 지도 아래 하은주의 강력한 높이를 앞세워[1] 6년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이 시기 부천 신세계 쿨캣의 해체에도 일조했을 정도로 독주했다. 2012-13시즌, 춘천 우리은행 한새에게 무너졌다.
위성우감독 부임 후, 신한은행의 독주를 끝내며 3연속 챔피언에 등극했다. 1~3년차에는 신한은행과 KB 스타즈가 차례로 도전했으나, 4년째인 2015-16시즌에는 우리은행을 제외한 다른 5팀이 하향평준화되면서 리그 내에서 막을 팀이 없어진 상태다. [2]

2.3 NBA

조지 마이칸이 6년 동안 5회 우승을 이끌었던 무적함대. 안타깝게도 레이커스가 LA로 연고이전한 후 이 시기의 스타들은 기념되지 못하고 있다. 영구결번도 해제된 상태. [3]
1957년부터 1969년까지 13년 동안 11회 우승하였다. 명장 레드 아워백과 반지의 제왕 빌 러셀을 필두로 한 밥 쿠지, 존 하블리첵의 시대. 그리고 이 시기 레이커스는 콩의 시대를 찍었다.
1980, 1982, 1985, 1987, 1988년 파이널 우승으로 10년간 5번 우승했다. 카림 압둘 자바, 제임스 워시, 매직 존슨의 '쇼타임' 레이커스 시절이다. 다만 레이커스가 압도적인 최고는 아니었고, 매직 존슨의 라이벌 래리 버드가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가 있었다. 셀틱스도 1981, 1984, 1986년 파이널 우승으로 3차례 우승했으므로 레이커스가 일방적으로 우위를 점했다고 볼 수 없다. 1980년대 NBA는 레이커스와 셀틱스 두 팀이 양분했고, 그 가운데 레이커스가 더 좋은 성적을 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두 팀의 존재로 NBA는 녹화방송에서 생중계로 바뀌고, 리그의 인기자체가 상승하는 등 중요한 기반을 쌓게 되었다.
1991~1993, 1996~1998년 2차례 스리핏으로 총 6회 우승. 마이클 조던 & 스카티 피펜이 군림했던 시대이다. 마이클 조던은 스리핏 이후 야구로 전향했다 다시 돌아와 2번째 스리핏을 달성해버리는 위엄을 보였다. 90년대를 지배했었고, NBA의 세계화를 열어젖힌 왕조.
  • LA 레이커스: 2000년대 초반
2000, 2001, 2002년 스리핏으로 3회 우승. 샤킬 오닐코비 브라이언트가 군림하던 시대이다.[4]
  • 샌안토니오 스퍼스(?) : 1999~?
팀 던컨샌안토니오 스퍼스도 1999, 2003, 2005, 2007, 2014년 5회 우승으로 결코 커리어 면에서는 부족하지 않지만, 의외로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는 과소평가받고 있다. 과소평가받는 이유는 연속 우승이 없고, 임팩트가 부족(?)했던 게 이유로 보인다. 2014년에 3연속 우승을 노리던 마이애미 히트를 4:1로 박살내고 5회 우승을 차지하자 스퍼스의 꾸준함이 재조명되면서 평가가 급상승하고 있다. 그래서 스퍼스를 '가장 조용한 왕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약 2013년 파이널 레이 앨런의 기적의 없었다면 평가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팀 던컨은 이 시기 5번의 우승을 모두 함께했다.

2.4 WNBA

  • 휴스턴 코메츠 : 1997~2000
WNBA가 출범된 첫 해부터 내리 4연패를 거두며 WNBA 최초의 왕조를 이룬 팀. 전성기가 겹쳤던 뉴욕 리버티는 코메츠에게 3번이나 준우승을 먹으면서 시대의 희생양이 되었으며 그 뒤 경영난으로 2008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해체된 지 8년이 지난 현재도 리그 최다 우승팀이며 코메츠의 해체 이후 4연패를 한 WNBA팀은 전무하다.[5]

3 배구

3.1 V-리그

3.1.1 남자부

다소 뒤늦게 창단되어 실업 리그에 참가, 2004년에 대회가 없어질 때까지 8연패를 질주했다. [6] 실업 배구가 막을 내린 뒤 V-리그 원년(2005년) 우승을 거머쥐며 총 9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2년간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게 우승을 내주었고, 2007-08 시즌부터 다시 7연속 우승을 거두었다. 7연속 우승은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장 연속 우승 기록이다,[7] 이 연속우승기록은 2014-15시즌, 2015년 4월 1일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 깔끔하게 스윕패당하며 종료되었다. 이 후, 리그는 몰빵일변도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8] 이 시기의 삼성화재는 가장 논란이 많은 스포츠 왕조이기도 하다. 자세한 사항은 몰빵배구 참조. 한국배구 전체를 일그러뜨려버린 왕조이기도 하다.

3.1.2 여자부

여자배구 최장기 집권 팀이자 9연속 슈퍼리그 우승팀. 장윤희, 정선혜, 이도희, 박수정, 홍지연이라는 '전원 국가 대표 주전' 라인업과 수비 배구의 달인 김철용 감독을 앞세운 무시무시한 철벽 수비로 슈퍼리그 9연패를 달성하고, 저 멤버에 한일합섬의 라이트 김남순만 끼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우승도 달성했다. 1997년부터는 LG정유라는 이름으로 팀명을 바꾸어 리그에 참여했다. LG라는 이름을 달았던 모든 구단들 중 유일하게 왕조를 이룩한 구단이기도 하다.
동시기 현대 유니콘스와 더불어 현대 그룹의 또다른 왕조이자 실력으로 살아남은 구단. 연쇄 해단 상황 당시 모기업도 위험했던 상황에서, 당시 경영진이 경기를 보고 해단설에 대해 적극적으로 '안 한다'라는 의지를 피력해 해단 위기를 넘겼다. 당시 합류한 슈퍼 루키 정대영, 이숙자, 한유미에 기존 주전인 구민정과 이명희, 호남정유의 연승을 92에서 저지했던 선경의 멤버인 장소연, 강혜미, 류화석 감독을 조합으로 프로화 전까지 여자배구를 호령하던 명문. 다만, IMF 금융위기 당시 무려 5개 배구단(선경, 후지필름, 효성, 한일합섬, 대농)이 사라지며 얻은 진화타겁이라고 폄하되고 각인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

4 야구

가장 왕조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는 종목. 특히 한국 프로야구의 경우 짧은 역사 동안 특정 팀이 우승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 용어가 자주 쓰인다. 심지어 연속 우승도 아니고 한국시리즈에만 올라가도 왕조가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설레발성 기사가 나올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최근 두산팬들이 왕조라고 설레발을 치고 있다. 80,90,00,10년대 우승을 경험한 유일한 팀이라고 하나 연도별로 1번 우승했을 뿐 왕조는 개뿔이니 헛소리 하지말자.

4.1 KBO 리그

4.1.1 2년 연속 우승 및 인근 상위권 시기 기준 분류법

SK가 리그를 호령하던 시절에만 해도 당연히 주류였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유일한 왕조 분류법이었으나 최근에는 팬들과 기자들이 보다 장기간인 해태, 삼성으로 양분하는 경우가 많아져 갈수록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는 왕조 분류법이다.

4.1.1.1 1기 왕조: 해태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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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우승시기
해태 타이거즈김응용91983년~1997년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다 우승 신화를 이뤄냈다.

속칭 V9으로 대표되는 김응용 감독이 이끌었던 시기. 프로야구 초창기인 1982년~1985년에는 전무후무한 3할-20홈런과 10승을 동시에 달성하는 등 투타 모두에서 활약한 오리궁둥이 김성한과 콧수염 홈런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김봉연이 팀을 이끌었으며, 해태의 최고 전성기라 불리는 1986년~1989년까지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던 기간에는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야전 사령관 이순철, 해결사 한대화가 새로이 등장하면서 팀을 이끌었다.

이후 1990년대 초 들어서도 바람의 아들 이종범, 핵 잠수함 이강철, 싸움닭 조계현 등 슈퍼 스타들이 줄줄이 배출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도 이대진, 임창용, 홍현우 등 걸출한 신인들이 주전 선수들의 뒤를 받쳐주며 리빌딩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1997 시즌 종료 후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쳐오면서 해태의 경영난이 심각해지자, 이종범은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진출하고, 그 외에도 임창용, 이순철, 조계현삼성 라이온즈에 팔아 넘기는 등[9] 주전 선수들의 유출로 인해 1998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이후 하위권을 전전하면서 왕조도 몰락. 이후 타이거즈는 2009년이 될때까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4.1.1.2 2기 왕조: 현대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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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우승시기
현대 유니콘스김재박41998년~2004년

굵고 짧게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다.

김재박 감독이 이끌었던 찰나의 영광. 현대는 당시 故 정주영 회장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자 분위기 쇄신책을 위해 스포츠에 눈을 돌렸는데 이때 탄생한 야구 팀이 바로 현대 유니콘스였다.[10]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짧은 기간 동안 현대를 강팀으로 만들기 위해 프론트 측에서 삼성 라이온즈와의 머니 게임을 벌여가며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던 해태와 쌍방울의 선수들과 유망주들 그리고 2000년부터 도입된 FA 제도를 통해 각 팀의 에이스급 선수들을 싹쓸이한 덕에 박재홍, 박경완, 임선동, 정명원, 정민태, 박진만, 박종호, 송지만과 같은 걸출한 실력을 갖춘 선수를 확보하였으며, 이 외에도 다른 팀 내에서 입지가 흔들리거나 갈등을 겪었던 전준호, 심정수, 심재학 등을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며 KBO 팀들을 통틀어 역대 최고급 선발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2000년에는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이 나란히 18승을 올리는 등, 2014년 현재까지도 한국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승 기록으로 남아 있는 91승을 거두었다[11]. 오죽하면 "야구장에서 김밥 파는 할머니가 감독 해도 우승한다."라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

하지만 2001년 故 정주영 회장의 사망과 하이닉스의 자금난 등이 겹치며 2004년을 끝으로 외환위기 직후의 해태와 마찬가지로 주축 선수들이 모두 다른 팀으로 팔려나가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8년 초에 팀이 해체되고 서울 히어로즈를 거쳐 2010년 넥센 히어로즈라는 구단으로 재창단되었다. 그래도 이런 사정에도 2006 시즌에 페넌트레이스 2위를 하면서 무너지지 않은 뒷심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해태와 비슷한 최후를 맞았다.

여담으로 삼성이 2011년에 V5를 달성하기 전까지 현대가 통산 우승 횟수 공동 2위였다(V4. 현대는 04년, 삼성은 06년에 달성). 현재는 삼성이 2014년까지 V8(8회 우승)을 달성한 덕에 현재 통산 우승 횟수 3위로 내려앉은 상태. 현대는 이미 2008년 초에 해단했기 때문에 더 이상 늘어날 일이 없는 우승 횟수[12]KBO 리그 역사가 점점 흐를수록 통산 우승 횟수 순위는 계속 아래로 쳐질 수밖에 없다.

4.1.1.3 3기 왕조: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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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우승준우승시기
SK 와이번스김성근312007년~2010년

한국프로야구의 또다른 전성기와 함께 찾아온 뜨거운 야구.

아직까지 신생 팀 이미지와 인천 야구의 서자 이미지를 벗지 못했던 와이번스는 하위권에서 전전하기는 하지만 나름 리빌딩도 어느 정도 완료했고 준우승의 공로가 있는 조범현 감독과의 계약을 포기하고, 이후 스포테인먼트 차원에서 태평양 돌핀스 등으로 인천 야구 팬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13] 김성근 감독을 선임하는 모험을 걸게 된다. 아직도 현대의 배신 때문에 야구장을 찾지 않던 팬들에게 SK는 철저히 인천에 남을 것이라는 어필과 함께, 리빌딩을 하던 감독을 중간에 포기하면서까지 우승을 하겠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김성근 감독은 이른바 '김성근 사단'를 동원해 팀의 체질을 뜯어고치는 동시에 선수들에게는 본인이 직접 펑고를 쳐가면서까지 혹독한 훈련을 시키고, 경기에서는 1점을 짜내기 위한 세밀한 작전과 필요하다면 도발을 걸어 상대 팀의 멘탈을 흔드는 등 이기기 위한 야구를 펼쳤다. 이는 4년간 4번 한국시리즈에 나가 3번 우승을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져 결국 2010년 이후 왕조로 불리게 되었다. 물론 이 시기 SK는 '약점이 없는 팀'이라는 찬사와 '비매너 야구', '번트 야구'라는 야유 속에서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었지만 왕조라는 사실 자체는 팬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2009 시즌에는 에이스 김광현박경완, 전병두 등이 부상으로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막판 19연승을 달리고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7차전까지 압박하는 투혼은 여러 팬들로 하여금 SK 야구를 재평가하게 만들었으며, '이기는 야구'가 아닌 '지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야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1년 시즌 중에 SK는 프런트에 과도하게 전권을 요구하는 김성근을 중도 경질하고[14] 이만수 감독 대행 체제로 넘어가게 되면서 급격히 몰락, 결국 왕조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만수 체제 이후 첫 2년간은 비록 준우승에 그쳤을지라도 2시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따돌리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2012 시즌까지 왕조의 명맥은 그럭저럭 이어갔다.

다른 왕조와는 달리 준우승 한 번이 포함돼 있는데, 이 준우승의 과정조차 시즌 막판에 1무가 낀 19연승을 기록했을 정도로 정규시즌에서도 임팩트가 있었다. 특히 이 기간의 4년 연속 6할 승률은 다른 왕조는 해본 적이 없는 대기록이다. 통합 4연패를 달성한 삼성 왕조조차 2013년 승률은 0.595에 그쳤기 때문에, 6할에 근소한 차이로 미치지 못한다.

총평하자면, 비록 앞선 왕조들에 비하면 왕조의 흥망성쇠는 4년으로 매우 짧은 편이지만[15] 한국 프로야구의 제2 전성기의 도래와 함께 김성근 감독 시절의 SK 야구는 인천의 야구 팬들과 전국의 야구 팬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이 시기 SK를 두고 만화가 최훈정말 뜨거웠던 야구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최훈은 09 시즌에도 후반기 19연승, 코시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보고 그야말로 투혼이라며 극찬한 바가 있다.

4.1.1.4 4기 왕조: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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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우승준우승시기
삼성 라이온즈류중일412011~2015년

삼성의 프랜차이즈가 이끈 사상 첫 4년 연속 통합 우승[16]

전통의 강호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게서야 왕조 소리를 듣게 된 팀.[17] 프로야구 원년부터 꾸준히 최소 중상위권의 성적을 올리며 전통의 강호라는 평가는 늘 받아왔지만, 항상 큰 경기에만 가면 미끄러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왕조는커녕 콩라인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우승 청부사 김응용감독을 영입한 뒤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드디어 준우승 징크스를 깼고,[18][19] 선동열 감독 재임 기간 과도기를 거쳐 2011년 류중일 감독 시대로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도약하기에 이른다.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의 무기력한 스윕패를 이유로[20] 삼성은 용퇴라는 형식을 빌려 선동열 감독을 해임하고 류중일 감독을 선임했다. 류중일 감독은 전임 선동열 감독과는 달리 선발 야구, 믿음의 야구, 형님 리더십 야구를 표방했고, 이른바 조까 라인에 더해 신인왕 배영섭, 타격 3관왕 최형우의 활약과 김상수의 각성, 윤성환의 부활 등이 더해지며 감독 부임 첫 해에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아시아 시리즈에서 한국 팀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페넌트레이스, 한국시리즈, 아시아 시리즈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라는 인상깊은 데뷔 시즌으로 삼성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이후 2012년에는 돌아온 국민 타자 이승엽이지영, 심창민, 정형식 등 유망주들의 맹활약으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삼성 왕조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고 2013년에 조동찬, 권오준의 부상과 이승엽의 부진 등 여러 악재가 겹쳤음에도 결국 우승을 차지하며 언론과 팬들에게 비로서 왕조로 불리게 되었다. 2014년업셋을 예상한 기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당당히 4연패를 달성하며 마침내 해태 타이거즈의 4연패 기록을 따라잡았다.

하지만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승 후 4패로 부진하여 준우승을 기록했다. 사실 그동안 확실한 주전으로 인해 왕조의 자리를 유지하긴 했지만, 팀 뎁스가 점차 얇아져 가고 있는 시점[21]이었으므로 리빌딩하기에 적절한 시기에 내려왔다는 평도 많다. 이해의 우승팀은 두산 베어스.

그 뒤 2015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이 터지면서 팀케미가 완전히 붕괴되었고, 여기에 더해 모그룹이 갑작스럽게 스포츠단에 자립을 할 것을 요청하면서 팀이 큰 혼돈에 빠지게 된다. 이 일련의 사태가 벌어진 후 스토브 리그에서 야마이코 나바로박석민을 자금부족으로 타구단으로 보내야 했으며, 프론트 측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데려온 용병들이 하나 같이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용병 교체비는 교체비대로 쓰고 성적까지 못내는 상황이 나오면서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그러면서 결국 2016시즌 중반에는 한때 10위까지 떨어지는 치욕까지 겪었고 현재도 포스트시즌 진출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여기에 프런트 측이 자신들의 삽질을 포함한 모든 문제를 류중일 감독의 책임으로 뒤집어 씌우려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면서 류중일 감독의 재계약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결국 2016년 10월 3일 7년 만에 가을야구도 못 해 보고 끝났다. 불과 1년 전 개천절에 사상 첫 정규시즌 5연패를 확정지었는데... 정확히 1년만에 팀이 몰라보게 달라진 것이다.

4.1.2 3년 연속 우승 기준 왕조 분류법

사실상 원조 왕조 구별법이다. 미국에서 나온 개념으로 3년 연속 우승, 즉 스리핏.

이 3팀을 흔히 다이너스티라고 부르며, KBO에 대입하면 해당되는 팀은 20세기 해태 타이거즈 21세기 삼성 라이온즈 두 팀뿐이다.

원래 있던 20세기 왕조 해태는 그대로 두고 21세기에 왕조를 두 번 쓴 삼성의 왕조 시기를 하나로 묶어서 보다 장기간으로 21세기 왕조로 정리하여 왕조를 단 두 개로 나누는 방식이다. 이 분류가 생긴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 먼저 2011년부터 시작된 류중일 체제의 삼성 라이온즈가 4년 연속 통합 우승으로 장기간 독주를 통해 연속 우승의 기준점을 늘렸고, 두 번째로는 00년대 삼성도 팬들은 강점기니 뭐니 해도 성적 자체는 왕조로 분류하고 남을 만큼 좋아서, 다른 왕조인 현대나 SK보다도 삼성의 00년대 성적이 더 좋기 때문에 성적으로는 왕조로 묶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는 고작 2연속 우승으로 왕조라고 할 것 같으면 앞으로 왕조가 몇 개 생길지 감도 안 잡히므로 최근에는 그냥 해태와 삼성으로 나누는 팬들과 기자들도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분류할 경우 현대 유니콘스는 그나마 2개 왕조 사이에 98, 00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고 삼성의 02 우승 이후에 03, 04가 더 들어가서 두 팀 사이에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SK 와이번스의 경우 삼성 왕조 사이에 그냥 한때 반짝한 팀 취급을 받게 되어 이름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SK팬들의 반발이 생긴다. 삼성의 독주와[22] KBO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이 방식으로 왕조가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또는 위의 2년 연속 우승 및 그 인근 시기를 왕조로 분류하는 방식에서 기존의 2년 연속 우승 대신 4년 연속 우승으로 기준을 올려도 해태와 삼성만 남으며 본문의 분류 방식과 거의 같은 결과가 나온다.

4.1.2.1 20세기 해태 타이거즈 왕조

20세기 해태 왕조의 기간은 86~89년으로 4연패 15년간 한국시리즈 우승 9회를 거두었다.[23] 준우승은 없다.한국시리즈 무패 캬

4.1.2.2 21세기 삼성 라이온즈 왕조

21세기 삼성 왕조는 11년~14년으로 14년간 2015년 정규 시즌 종료 기준으로 한국시리즈 우승 7회,[24] 준우승 4회[25]를 거두고 있다.

4.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전자는 통칭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린다. 타격의 왕 베이브 루스 영입을 시작으로 루 게릭, 조 디마지오, 요기 베라, 미키 맨틀 등의 올타임 레전드들이 팀을 이끌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초거대 야구단으로 거듭난다. 이 기간 동안 월드시리즈 20회, 아메리칸리그 우승 29회를 차지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1927년 양키스는 야구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평가되며,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밥 뮤젤로 구성된 클린업 트리오 역시 역대 최강으로 꼽힌다. 야구에서 흔히 쓰이는 '살인 타선(Murderers' row)'이라는 말이 이 시기 양키스의 타선 때문에 만들어졌다. 세대 교체를 서너 번씩 하면서도 성적이 떨어지질 않는 양키스 때문에 뉴욕을 박차고 나간 팀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LA 다저스니 말 다 한 셈이다. 후자는 '뉴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렸는데,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 버니 윌리엄스 등 팜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며 월드시리즈 우승 4회, 아메리칸리그 우승 5회, 동부 지구 우승 5회를 차지했으며, 플레이오프를 개근했다. 특히 1998년에는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도 기록한 적 없는 정규 시즌 114승을 찍었고, 포스트시즌 11승(DS 3승, CS 4승, WS 4승)을 더해 역대 1시즌 최다 승(125승) 기록을 세웠다. 이후로도 양키스는 '악의 제국'으로 불리는 등 세계구급 강팀으로 군림하나, 플레이오프 불운이 이어지며 90년대 말만큼의 우승을 하진 못하게 된다.
90년대 내셔널리그에는 바비 콕스의 브레이브스가 있었다. 왕조라는 이름으로는 어쩌면 동시대 양키스보다 더 많이 언급되었을 팀. 파업으로 플레이오프가 열리지 않은 1994년을 제외하면 해당 기간 내내 브레이브스가 지구 우승을 독식했다. 14회 연속 지구 우승은 북미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장 기간 우승 기록. 메이저리그 2위가 양키스의 9회 연속 지구 우승인 것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레그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의 투수 3인방과 치퍼 존스를 중심으로 한 타선이 브레이브스의 시대를 이끌었으며, 매덕스, 글래빈이 나간 뒤로도 스몰츠와 젊은 투수들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는 식으로 이끌어 나갔다. 다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다소 부진해서 내셔널리그 우승은 5회였고, 월드시리즈 우승은 1995년 단 1회에 그쳤다. 하지만 매덕스-글레빈-스몰츠라는 1~3선발은 지금도 회자되는 화려한 트리오이다. MLB에서는 간혹 1~3선발을 리그 에이스급으로 도배하는 팀이 나타나고, 아주 가끔씩 5선발까지 도배하는 팀도 나타난다. 하지만 1~3선발을 모조리 명전에 보내버린 팀은 1950년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26]와 이 팀뿐이다.

4.3 일본프로야구

과장 아니고 매해 연말만 되면 '자이언츠 야구단 일본 제패'라는 소식이 들려왔던 시절이다. 당시 퍼시픽 리그 강호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약해지며 자이언츠의 라이벌은 퍼시픽 리그에선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이다. 도에이 플라이어스나 한큐 브레이브스가 신흥 강호로 올라갔지만 자이언츠를 막긴 힘들었다. 가히 '일본의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콤비'라 할 만한 '홈런왕' 왕정치,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 콤비가 타선을 책임졌던 팀. 일본 시리즈 9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에 흔히 V9 시기라고 부른다. 이때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의 국민 구단으로 자리잡았고, 일본 야구 팬들은 '친요미우리 VS 반요미우리'로 거의 완벽하게 쪼개졌다.
리그 우승 9회에 일본 제일 클럽 자리를 8번이나 차지한 상승(매번 이긴다는 뜻) 군단의 돌풍이었다. 세이부는 강해야 관중이 많이 온다 하며[27] 어떻게든 팀 전력을 강화시켰다. 타선은 막강한 AKD[28] 클린업 트리오가 타점을 팍팍 대주었고, 중심 타선 이외에도 이시게 히로미치, 쓰지 하츠히코, 히라노 켄, 타나베 노리오, 이토 츠토무 등 선수들이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다. 투수진에선 히가시오 오사무, 쿠도 기미야스, 마츠누마 형제가 왕조 초반의 투수진을 주도했고, 중후반으로 가면서 와타나베 히사노부, 시오자키 테츠야, 가쿠 타이겐(곽태원) 등 신진 세력이 투수진의 중심에 떠오르며 리그를 썰어먹었다. 전력만 따지면 V9로 대표되는 요미우리의 최전성기보다도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기간 동안 세이부가 리그 우승을 놓친 적은 단 두 번(1984, 1989)이며, 해당 기간 9회 일본시리즈에 출장해 단 한 번을 제외하곤 모두 우승했는데, 우승에 실패한 한 번은 상대가 역대 최고의 사기 타선을 보유했던 1985년 한신 타이거스였다.[29]
이대호 영입을 비롯한 과감한 투자를 시작으로 2014년 시즌 전부터 우승 후보로 낙점되었고, 실제로도 2014 시즌부터 센트럴, 퍼시픽 종류 안 가리고 잘 이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로 2014년엔 한신 타이거스, 2015년엔 도쿄 야쿠르트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세이부 라이온즈의 3연속 우승 이후 23년 만에 연속 우승팀이 나왔다.

5 축구

5.1 한국

K리그에서 유일하게 왕조를 구축했던 팀. 동대문 연고 시절인 1993~1995 시즌에 3연패, 성남으로 연고 이전한 이후인 2001~2003 시즌에 3연패로 총 2번에 걸친 3연패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첫 번째 3연패의 마지막 시즌인 1995 시즌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까지 제패하며 K리그 팀 중 최초로 시즌 더블을 달성하였다. 두 번째 3연패 기간 중 2003년에는 승점 91점을 기록하며 당시 최다 승점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모기업이던 일화가 슬슬 발을 빼던 2010 시즌에도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으나 결국 문선명 교주가 사망하면서 일화에서 성남시에 팀을 매각, 중위권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5.2 유럽

5.2.1 스페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과 미겔 무뇨스를 중심으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 프란시스코 헨토, 레이몽 코파, 호세 산타마리아로 이루어진 호화 군단. 그 중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페렌츠 푸스카스는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역사상 최고의 투톱이라는 평가를 얻게 되었다.
1955-56 시즌부터 1959-1960 시즌까지 UEFA 챔피언스 리그 5연패를 일구어 낸 것으로 유명하며, 라 리가에서도 우승 8회를 기록했다. 챔피언스 리그 연속 우승이 20년 넘게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챔피언스 리그 5연패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적기 때문에, 거의 불멸의 연속 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이때 '8년 18일 동안 121경기 연속 홈 무패'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여전히 세계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30]
2008-2009 시즌 펩 과르디올라 감독 취임 이후 리오넬 메시의 전설적인 활약 아래 2015-2016 시즌까지 8시즌 동안 프리메라 리가 3연패를 포함한 리그 6회 우승과 2회 준우승, 코파 델 레이 4회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을 이룩했으며, 무관에 그친 시즌은 2013-2014 단 한 시즌뿐이다. 2009년 한 해 동안 6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헥사블[31]을 달성한 바 있다. 현재까지 유일무이하게 두 번(2008-2009, 2014-2015) 트레블을 달성했다. 또한 유러피언 클럽 역사상 가장 높은 ELO 레이팅을 찍어 보기도 했다.[32]

5.2.2 잉글랜드

1972년부터 1985년까지 리그 우승 8회, 준우승 3회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 4회, 준우승 1회를 거뒀다. 특히 당시는 리그 우승팀과 전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팀에게만 유러피언 컵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졌는데, 76-77 시즌부터 84-85 시즌까지 아홉 시즌간 유러피언 컵에 개근하는 위엄을 보이기도 했다. 즉, 저 기간 동안 반드시 리그 우승이든 유러피언 컵 우승이든 거뒀다는 것이다.
퍼거슨 왕조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1986년 알렉스 퍼거슨이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1990-1991 시즌 컵 위너스 컵 우승을 필두로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프리미어 리그 우승 8회, 준우승 3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및 98-99 시즌 트레블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아스널, 첼시 등의 역습으로 잠시 침체기를 맞았으나 2006년부터 다시 전력을 재정비, 2013년까지 우승 5회, 준우승 3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이룩했다.

5.2.3 이탈리아

일명 '위대한 토리노(Grande Torino)'. 세리에 A 역사상 최초로 리그 5연패를 달성했으며, 인테르와 함께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탈리아 클럽이다. 수페르가의 비극 문서 참조.
전자는 카테나치오의 창시자인 엘레니오 에레라의 조련하에 유러피언 컵 2연속 우승 및 준우승 1회, 세리에 A 우승 3회를 기록하며 40년대의 '위대한 토리노'와 더불어 '위대한 인테르(Grande Inter)'로 불렸다. 후자는 로베르토 만치니, 주제 무리뉴 휘하에서 세리에 A 5연패,[33]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2회를 기록하였다. 특히 09-10 시즌은 숨막히는 수비 라인과 미들진의 조직력이 극대화된 시절로 결국 트레블까지 달성했다.[34]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명장 조반니 트라파토니 시절 세리에 A 6회 우승, 코파 이탈리아 2회, 유러피언 컵 1회, 컵 위너스 컵 1회, UEFA 컵 1회, 도요타 컵 1회 등 14개 트로피를 쓸어담았다. 이 당시 UEFA 주관 대회를 최초로 전부 제패한 기념으로[35] UEFA에서 UEFA Plaque라는 명예 트로피를 최초이자 최후로 지급받았다.
압박 축구를 완성한 아리고 사키와 후임 파비오 카펠로 휘하의 87~94년 동안 리그 우승 3연속 우승을 포함한 4회를 기록했으며, 91-92 시즌에는 무패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시즌까지 무패를 이어가며 58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 유러피언 컵(현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최후의 2연패를 포함한 3회 우승. 이때 당시의 밀란은 클럽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로 꼽힌다.

5.2.4 독일

비록 분데스리가에서는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 발목을 잡히고 74-75 시즌 리그 10위로 추락하기도 했으나, 리그 우승 3회와 유러피언 컵 우승 3회를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이 독일의 첫 전성기를 이끌며, 1966년 월드컵 준우승, 1970년 월드컵 4강, 1972년 유로컵 우승, 1974년 월드컵 우승을 거두는 데에 큰 일조를 했다.[36]

5.2.5 네덜란드

축구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었던 팀. 리누스 미헬스가 그의 분신 요한 크라이프를 앞세워 이룬 토털 혁명을 토대로 리그 우승 6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3회를 거뒀다. 71-72 시즌에는[37] 48전 42승 5무 1패, 135득점 27실점, 승률 87.5%라는 엽기적인 팀 기록을 찍으며 트레블을 달성했다. 87.5%라는 승률은 유럽 대회 참가 클럽 중 단일 시즌 최고 승률이다.

5.2.6 프랑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7시즌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거두며 유럽 상위 리그 클럽 중 최다 신기록을 기록하면서 주목을 받았으며, 이 기세를 몰아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레알 마드리드의 킬러로 등극하는 등 꾸준히 활약했다.

5.2.7 스코틀랜드

유일한 맞수인 레인저스 FC가 재정난 후 강제로 4부 리그로 강등당해 더 이상 말은 필요없긴 한데... 리그야 셀틱의 독무대이긴 하지만 컵 대회에서는 아니다. 2014년 리그 컵에서는 3부 리그 팀에게 연장전까지 가서 패했으니 왕조라고 보기에는 부끄러운 모습. 물론 어디까지나 리그에 한해서 왕조는 확실하다.[38]
  1. 국내선수들로는 막을 수 없었던 하은주의 존재때문에 현재까지도 저평가를 받고 있는 왕조이기도 하다.
  2. 2015-16시즌 정규리그는 압도적 1위 우리은행과 연패로 6위가 된 KDB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4팀이 2,3위를 놓고 플레이오프 경쟁을 벌이는 구도가 되었다.
  3. 이를 비판하는 농구팬들은 미네아폴리스 시기의 선수들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면 5회 우승을 반납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4. LA 레이커스는 샤크의 이적 후 잠시 주춤했지만 파우 가솔을 영입해 2009, 2010년에 2번 우승을 더하게 된다. 하지만 00년대 후반의 레이커스까지 왕조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5. LA 스팍스가 유일하게 2연패를 기록했다.
  6. 이 시기는 좌진식 우세진의 '쌍포화재'로 대표된다.
  7. 참고로 야구 최장은 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의 4연속, 축구는 성남 일화 천마의 3연속, 농구는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3연속.
  8. 현대캐피탈의 최태웅 감독, OK저축은행의 김세진 감독 등 새로운 감독들이 등장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배구를 팀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9. 그리고 2001년에는 김응용 감독마저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게 된다. 본인이 후술하길 해태 프런트로부터 경영난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삼성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막상 김응용의 부인 분은 삼성으로 간다니 좋아했다고.
  10. 사실 실업 팀 현대 피닉스를 통해 미국의 양대 리그처럼 한국 프로야구에 새로운 리그를 만들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렇게 되진 못했고, 그 대신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한국 프로야구에 입성했다. 자세한 건 현대 피닉스 참고.
  11. 2016년 두산의 의해 93승으로 경신
  12. 히어로즈는 현대 유니콘스와는 역사가 단절되어, 현대 해체 후에 재창단되었기 때문에 히어로즈가 이후에 우승을 한다고 해서 현대 유니콘스의 우승 횟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13.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김성근이 89~90년 2년간 태평양 돌핀스를 맡으며 최초로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면서 도원아재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지만 막판에 임호균 각서파동까지 일으켜 가며 태평양을 버리고 삼성으로 가버리자 많은 도원아재들이 이에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김성근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4. 이 자체만 놓고 보면 김성근 감독도 잘못한 게, 김성근 감독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내가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할 테니 너님들은 돈이나 대줘라"는 식 이었다.
  15. 물론 2011, 2012년에 준우승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콩라인의 마스터피스였던 80년대 삼성과 빙그레, 그리고 90년대 중후반 LG 역시 왕조 항목에 실려야 한다.
  16. 페넌트레이스, 한국시리즈 동시 우승. 그 중 첫 해인 2011 시즌은 여기에 아시아 시리즈 우승이 추가된다.
  17. 삼성 라이온즈의 평균 성적을 보면 기본이 포스트시즌 진출이며 프로야구 구단 중 유일하게 꼴찌를 기록한 적이 없는 팀으로 같은 원년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비밀번호랑 많이 비교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두 팀 간의 관계는 오랫동안 안 좋았고, 9개 구단 팬 중 롯데 팬들만 꼴찌+삼성의 합성어인 꼴성 드립을 치곤 한다. 자세한 건 꼴리건 문서 참고. 물론 롯데 팬들만 잘못한건 아니고 삼성 팬들도 병크가 여러 번 있었다. 대구아재 문서 참고.
  18. 이른바 '달구벌의 저주'로 삼성은 02년 우승하기 전까지 무려 7번이나 한국시리즈에 나가서 전부 패했다.
  19. V1은 1985년 한국시리즈에서 달성했지만, 당시 리그 제도상 전후기 통합 우승이라 한국시리즈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
  20. 사실 이거 하나 때문에 잘린 건 아니다. 지역주의로 회귀하려는 구단 수뇌부의 판단과 함께 선동열이 그동안 수십억에 달하는 돈을 썼음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등 복잡한 사유가 겹쳤던 것. 자세한 건 선동열/삼성 라이온즈 감독 문서를 참고하자.
  21. 예전에는 두산만큼이나 2군 팜이 두터웠다고 평가받았던게 삼성이었으나, 4연패 하는 동안 지명순위가 계속 뒤로 밀려서 타팀에 비해 우수한 유망주를 픽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2015년도에 있었던 2차 드래프트에서 두산 2군은 타팀에 많이 뜯겨나갔는데, 삼성 2군은 타팀에 별로 안뜯겨나갔다. 타팀에서도 이제 삼성 2군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증거.
  22. 이 방식의 분류에서는 만약 삼성이 2~3년 정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그 뒤에 다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우승을 이어가면 왕조가 계속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23. 83, 86~89, 91, 93, 96, 97.
  24. 02, 05, 06, 11~14.
  25. 01, 04, 10, 15.
  26. 밥 펠러, 밥 레몬, 얼리 윈의 명전 1~3선발을 1949년부터 1956년까지 유지했다. 사이사이에 4선발은 올스타 투수인 마이크 가르시아와 비운의 투수 허브 스코어였던 말 그대로 핵선발 팀. 다만 이들은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에 밀려 줄창 아메리칸 리그 2위에 그치다가 딱 한 해 1953년 아메리칸 리그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윌리 메이스뉴욕 자이언츠에 밀려 준우승에 머무르고 말았다. 지금처럼 리그가 지구제였다면 이 팀도 충분히 왕조 목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당시 팀 감독이었던 루 부드로와 알 로페스 또한 명전 헌액 감독.
  27. 세이부 홈 구장은 도쿄에서도 열차로 1시간 정도 가야 하고, 사이타마 인구 밀집 지역에서도 거리가 있었다. 한 마디로 성적이 안 나오면 관중 수익이 폭망한다는 것.
  28. 키야마 코지, 요하라 카즈히로, 오라토리스 스트라데.
  29. 얼마나 사기냐면 1번 타자부터가 .322, 34홈런이었다. 중심 타선은 그 유명한 바스, 카케후, 오카다. 셋이서 홈런만 130개를 넘게 쳤다.
  30. 세르비아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96경기 연속 무패로 2위.
  31. 프리메라 리가, 코파 델 레이,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32. 2012년 4월 15일 2103점. 원래 1960년대 미겔 무뇨스가 이끌던 레알 마드리드가 가장 높은 레이팅을 기록했으나, 최근 재조정되어 바르셀로나가 더 높은 레이팅을 기록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미겔 무뇨스의 레알은 팀 최고 레이팅에서도 카를로 안첼로티의 레알에 밀리게 되었다. 다만 시즌 종료 시점의 레이팅에서는 무리뉴의 11-12 레알이 가장 높다.
  33. 05-06 시즌 칼초폴리로 인해 얻은 스쿠데토 포함.
  34. 사실 위대한 인테르 시절 64-65 시즌에 3개 대회 결승에 오르며 이탈리아 클럽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 기회를 잡았으나, 코파 이탈리아에서 준우승하며 실패.
  35. 주요 대회가 아닌, 인터토토 컵 같은 정말 마이너한 대회까지 우승해본 팀은 유벤투스가 유일하다. 애초에 챔피언스 리그나 UEFA 컵 같은 대회에서 우승할 만한 강팀이라면 '리그 성적이 너무 좋아서' 다른 대회에는 참가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
  36. 사실 1970년대부터는 바이에른이 독일 원탑 클럽이라 바이에른 왕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간헐적으로 다른 클럽들의 도전이 번갈아가며 이어지는 형국이라, 바이에른의 시대를 저 시기로만 국한하는 것이 적절한가 싶기도 하나, 유럽을 제패한 시기가 이 시기라는 점이 중요하다.
  37. 미헬스가 팀을 떠나고 코바치가 맡은 시즌이었다.
  38. 사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유럽 역사상 첫 트레블을 달성하기도 했던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셀틱이 더 왕조에 가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