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이름우병우(禹柄宇)
생년월일1967년 1월 28일(50세)
출신지경상북도 봉화군
본관단양 우씨 문희공파[1]
신체174cm
경력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검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1과장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학력영주중학교
영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병역5급 제2국민역[2]
종교불교[3]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검사. 인품에 대한 평판은 안 좋으나[4]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 [#] 2015년 1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가 아래 서술된 것과 같은 논란에 휘말린 끝에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기화로 2016년 10월 말 사임하였다(실질적으로는 경질). 박근혜 정부의 실권자들 중 1인이다. 간략한 인생사와 성향은 [이 기사]를 참조. 국정조사에서 박근혜김기춘을 존경한다고 밝힌바가 있다. 이로 인해 리틀 김기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래 서술된 것과 같이 수많은 논란에 휘말려 있으나, <신동아> 기자의 논평을 빌리면, "우 수석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공직자이자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는 강남 땅 매매와 관련해 몇 마디 한 것 말고는 언론 앞에서 입을 연 적이 거의 없다."[[특종 “우병우 사단? 검사 20년 했는데 없다면…”]] 위 보도는 민정수석 취임 몇 달 후인 2015년 4월 6일 몇몇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폭로(?)한 것인데, 이를 보면 언론에 대해 '나에 대해 좋은 기사를 거의 안 쓴다'라며 매우 부정적인 속내를 서슴없이 토로하고 있다. 그런데 평생의 행적, 특히 민정수석이 된 후의 행적을 보면 아무리 봐도 언론이 좋은 기사를 써 줄 구석 자체가 없어 보인다.

비록 당사자는 아니라지만, 간접적으로 넥슨 게이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에 모두 연루되어 있는 인물이기도 한…줄 알았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점점 더 드러나면서 그 장본인 중 하나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스캔들의 내용 중 가장 심각한 부분이 바로, 민정수석실의 협조가 없이는 일어날 수가 없었던 일이기 때문. 최순실은 대뇌, 박근혜는 소뇌, 우병우는 척수

2016년 10월 20일 돌연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내용이 그 당시 바로 보도되기는커녕 사흘 후에야 “어떤 신문은 ‘(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변론했다는) 기사를 써놨다, 그러니까 이게 억울하면 우리 신문에다가 선임계 제출하라’고 문자를 보냈다. 모욕감을 느꼈다”라는 말을 했다는 세계일보 보도만 덜렁 나왔다.[#]

국정조사가 시작되자, 처자식들과 함께 돌연 행방불명되었다.[#] 검찰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고서 불과 1달도 되지 않은 시점, 아들이 의무경찰 전역을 한 지 불과 열흘도 되지 않은 시점의 일이다. 그리고 이는 법의 헛점을 이용, 국정조사 증인으로 가는걸 회피하기 위해서라는게 밝혀졌다. [출석요구서를 본인이나 가족이 받지 않으면 출석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정조사 증인출석을 강제화하는 우병우 출석법을 만들게 되었다.[5]

박근혜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았으나, 영장이 기각되어 일단은 위기를 모면(?)하였다. 모든 면에서 김기춘하위 호환(?)으로 평가되어 온 인물이지만, 법꾸라지로 평가되어 온 김기춘도 면하지 못한 구속을 면했다는 점에서 청출어람이라 할 만하다(...).

영장심문 때 한 변명의 요지는 "청와대에서 근무해 보면 안다. 거기에선 대통령이 곧 법이다. [나는]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밑으로 내리고 밑에서 보고가 올라오면 위로 올리는 ‘가교 역할’을 했을 뿐이다."였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2 행적

2.1 초년 시절

1967년 1월 28일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교사[6]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7] 영주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창시절부터 장래 희망이 검사였다. 고3 때 담임의 회고에 의하면, “우 수석에게 왜 검사를 하려고 하느냐 물었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와 부정부패가 없는 국가를 만들겠다"(...)권력이 사람을 만든다고 당돌하리만큼 또박또박 말했다. 참 독특한 학생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우병우는 어린 시절의 다짐과 달리, 부정부패한 사회정의가 없는 국가를 만들었다. 이 문장은 알맞게 도치되었습니다!! 게다가 고3 때의 저 발언도 진정성이 없는 것이었다고 의심받게 하는 일화가 존재한다. 영주고등학교 재학 중, 우병우는 동창들 사이에 전설로 남을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교사가 있었는데, "그 교사에게 문제가 있으니 바꿔 달라"고 우등생 친구들 몇명과 함께 이사장에게 직접 가서 요구한 것이다!! 결국 이사장이 이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어, 교사는 교체되었다. 역시 떡잎부터 수준이 남다른 안하무인 싸가지 고등학교에서 명문대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면 학교의 위상이 달라지며, 영주고등학교는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이사장으로서도 잘하면 서울대학교 입학도 노릴 수 있는 최상위권 성적을 가진 학생들의 말을 들어준 것이다. 이를 그것이 알고 싶다에 제보한 고교 동창이 매우 싸늘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당시 나도 그렇고 병우도 그렇고 고등학교 때 싸가지가 없었고, 그게 잘못된 거라고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후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 전국석차 53위의 탁월한 성적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 3학년 재학 중인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 합격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20세(!)[8] 때였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나이가 거의 10살 가깝게 많은 이종걸이 사시 기수로 따지면 우병우보다 1기수 후배다. 당시 29회 사법시험 최고령합격자는 1949년생이었다.[9] 사시 합격 후 신체검사에서 고도 근시에 의한 ‘질병 또는 심신장애’를 이유로 신체등급 5급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다.[#]

1990년 사법연수원 제19기를 차석으로(!) 수료하고[10], 검찰에 들어가서[11] 주로 특수부 계통의 검사로 활동했다. 그때쯤 결혼을 했는데, 장인은 이상달 정강중기·건설 회장이었다.[12] 그리고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최태민이 우병우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어린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재벌집 사위로 장가가서 그랬는지, 그의 거만함을 빗대어 목에 깁스를 두른 것 같다고 해서 젊은 시절 별명이 깁스였다고 한다. 사실 그도 그런 것이, 대한민국 검사라면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중대한 권한을 전부 가지고 있는 인사다. 또한 1980년대 후반 90년대 초 이 당시에는 검사란 직책은 그야말로 권력의 최정점으로 인식되던 분위기였다[13].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우병우는 사시 최연소 합격한 당시 수재 중의 수재에 앞날이 보장된 20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친구들이 대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이미 기업인들에게 대우받고, 정부 인사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는 인물이었다.

검찰 내에서 수사능력만큼은 정평이 났던 우 전 수석이 부천지청장(차장검사급) 시절 평검사 등 후배검사들의 수사력 약화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그의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준다는 증언이 나왔다.[#]

2.2 검사 시절

1990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평검사 시절 서방파 행동대장 이양재[14], 대전진술파 두목,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수련의 임용과정에서 돈을 받은 피부과장 등을 구속했다. 비슷한 시기 서울 시내 폐수·소음·진동을 배출한 환경오염업체 55곳에 이어 세균폐수를 방출한 을지병원·백병원·차병원·중앙대학교부속병원을 적발했다.

1992년 8월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검사로 부임, 1993년 경주대학교, 서라벌대학교 이사장 김일윤 전 의원을 학교공금 53억 원 횡령혐의로 기소하고, 아파트 감리와 관련해 청탁한 경주시 건축과장 등을 구속하는 등 신나게 칼을 휘두르던 중, 정권 핵심에 친분이 있는 지역 유지를 수사하다가 졸지에 창원지방검찰청 밀양지청으로 내쳐졌다고 한다.[15]

이 무렵 장인 이상달이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장인 이상달은 기흥컨트리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원래 기흥컨트리클럽은 전두환 정부 시절 퇴직 경찰관의 모임인 재향경우회[16]가 사업권을 받아 만든 골프장 사업체였다. 그런데 이 사업 지분의 과반수 이상이 이상달과 그 지인에게 넘어간 것이 드러나자, 1993년 5월 경찰은 이상달이 전직 치안본부장 등 경우회 간부에 뇌물을 공여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3년 6월에는 전 치안감이자 경우회 이사인 옥기진이 이상달에게서 다방운영권을 넘겨받아 이익을 챙긴 게 드러났다. 이로 인해 전직 치안감인 옥기진은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되었고, 이때 우병우의 장인 이상달도 함께 구속되었다.[17] 1993년 7월에는 이인섭 전 경찰청장 역시 이상달에게 1천만 원을 받았다며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후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21부는 이상달에게 배임 및 뇌물공여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했는데, 사건 자체가 전직 치안총수가 구속되는 등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주범인 이상달이 달랑 징역 3년형에 그친 것은 검사 사위 우병우가 무마해준 덕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후 1994년 2월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97년 2월 제주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1999년 2월부터는 법무부 국제법무과에서 근무하고, 2001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형사6부에 부임했다. 이때 영화배급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직배영화사 전 대표와 영화사 대표를 구속했다. 2001년 12월부터 2002년 3월까지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 특별 수사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당시 송해운·윤대진 검사[18]와 함께 ‘이용호 게이트 특검’(차정일 특검) 특별수사관 3인방으로 불렸다.[19]

2002년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고, 2003년 8월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으로 올라왔다. 그 시절 이정일 민주당 의원, 이상국 KBO 사무총장을 긴급체포하거나 구속했다.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도 소환조사했고, 배기선 열린우리당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김광식 전 강원랜드 대표와 권오정 전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이사장, 심기섭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 등도 그의 칼날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관련해서는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했을 때는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이때 삼성그룹은 특수2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모든 인맥을 동원해 사람을 붙였으나, 유독 부부장이던 우병우만 삼성그룹 사람들을 절대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결국 신상규(서울중앙지검 3차장)-채동욱(특수2부장)-우병우·박용주로 이어지는 수사진은 2003년 12월 업무상 배임공소시효(7년)를 하루 앞두고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다.

당시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직접 관여한 일부 인사들을 '표본'으로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낸 이가 바로 우병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우병우 검사가 수사의 구슬을 뀄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려 이건희 회장 부부를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중대한 오점'을 남겼다. 어쨌든 이러한 분리기소는 2007년 '1심보다 더 무거운' 항소심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2004년 6월에는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을 달았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이때 대구 유니버시아드 휘장 비리 사건을 수사하며 강신성일 의원, 박주천 전 의원, 김명규 가스공사 사장, 박명환 전 의원 등을 구속시켰다. 그리고 2005년 4월에는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 과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2006년 1월 법무부 홍보과장 재직시 한 언론과의 전화인터뷰다. [당시기사] (대략 1분후부터)

2007년 2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서 예금보험공사 부실채무기업특별조사단장으로 파견되었다. 2008년 3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로 활약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이던 2008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의 공천 청탁 금품 수수 사건을 수사했다. 이명박 정권이 공식 출범한 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친인척 사건이었다. 결국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 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같은 해 8월 김씨를 구속했다. 그리고 김평수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구속했는데, 그 과정은 집요하다 못해 지독할 정도였다. 구속영장이 2번이나 기각된 김평수에 대해 반 년 이상 추가 수사를 벌여 결국 배임수재 혐의로 3번째 영장에서 구속시켰다.

2.3 데릴사위 콤플렉스와 야망의 행보

아내가 그렇게 못나지 않았다.
----
[‘돈을 보고 결혼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2008년 6월 장인 이상달이 사망하고 2개월 뒤 아내 김장자와 딸 넷 등 5명은 SD&J홀딩스[20]를 설립해 자신들의 지분을 회사소유로 돌렸고 현재 지분을 각각 20%씩 나눠 가졌다. 우병우 검사의 아내와 세 처제들은 강남역 인근의 부동산 1,020평을 상속 받았고, 우병우 검사 부부도 부동산 임대 업체 3곳의 주식을 상속받았다.

2008년 골프장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 수사했다. 골프장들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명성대로 샅샅이 뒤지면서도, 정작 처가의 기흥컨트리클럽에 대해서는 모로쇠로 넘어갔다. 기흥컨트리 클럽 안에는 건축물대장에 직원기숙사로 등록해놓고 가족이 사적으로 사용하는 불법 별장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CpYDSqpUAAERuXW.jpg

2009년 1월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앙수사1과장이 되었다. 대검 중수부 중앙수사1과장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박연차 로비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이 당시 이인규 중앙수사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취조하였다. 우병우는 이 사건의 주임검사였으며, 윗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2009년 5월 23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고 그 여파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퇴진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2009년 8월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2010년 7월 수사기획관 등 검찰 요직을 두루 거쳤다. 당시 신임 검찰총장인 김준규와 한때 법무부에서 함께 일하는 등 인연이 있었던 덕분이라는 말이 있었다.

처가가 상속세를 납부하지 못하자 부동산들에 근저당이 설정되었고 결국 강남역 부동산을 매물로 내놨다.

2011년 3월 넥슨에 처가의 강남 부동산을 매각했다.(후술)[21]

2011년 8월에는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이 되었다. 2012년 7월에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있다가 2013년 4월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다. 아무래도 2009년 박연차 게이트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너무 무리하게 수사했던 것이 약점이 되어 2013년 검사장 인사에서 탈락했다는 소문이 당시 파다했다. 검찰 안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너무 심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는 얘기다. 한편 그의 검사장 승진 탈락에 대해 ‘너무 많은 재산’이 더 큰 악재였을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리고 그때 우병우 검사장 승진 문제로 우병우를 감찰,검증했던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바로 조응천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조응천 의원은 이후 김어준의 파파 이스등에서 우병우에 대해 "내가 우병우 잘랐다. (선천적 네가지 결핍증은 둘째치고)노대통령 강압수사의 직접적 책임이 있는 자이고 야당의 비토가 센데 뭐하러 정치적인 부담을 떠안으면서 우병우를 승진시키냐. 절대 안됨."하고 밝혔다.

어쨌든 그렇게 검사장 승진인사에서 탈락하자 검찰을 박차고 나왔다. 나가면서 [승진은 다른 놈 다 시켜주고라고 하는등 매우 억울해 했었다.][22] 하지만 검사장서 떨어진 이유가 본인의 싸가지가… 읍읍


2.4 변호사 시절

2013년 5월 우연히 '홍만표 법률사무소'가 10층에 위치한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 빌딩 1111호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l_2016071901002566100196551.jpg
그리고 3년 뒤 조선일보 기자가 바로 이 건물 옥상에 기어올라가 우병우 본인의 황제소환 사진을 찍는 초대박을 터트린다.[23]

이후 홍만표와의 ‘도나도나 다단계 사기사건[24]과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 등 몰래변론 의혹이 생긴 시점도 이 때다. 검찰은 홍 변호사와 우 수석이 공동 변론한 사건이 2013년 한 해 8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변호사가 된 후 모교가 있는 영주시의 재경 향우회에 얼굴을 내미는 등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둔 듯한 행보도 보였다. 그에 대한 검찰 내부의 평가도 썩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특히 변호사로 개업한 후, 후배 변호사들에게도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이런 사유로 후일 인사권에 문제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리고 변호사 활동 때, 수임료 내역을 숨겨 탈세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변호사로 활동했던 2013년 ~ 2014년의 1년간 62억 순소득을 벌었다.[#]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과 그의 형 조현준 사장의 ‘형제의 난’ 관련 민사사건을 수임하고도 해당 내역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2014년 뇌물 공여 혐의 사건 등 검찰의 내사 단계에 있던 최소 3건을 수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적으로 내사는 수사기관이 최대한 은밀하게 범죄 혐의 추적을 시작하는 단계여서 피내사자가 본인이 내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 전 수석이 어떤 경위로 이 내사 사건을 수임하게 됐는지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또, 변호사로 개업하자마자 2년 전 자신이 수사했던 사건의 핵심 피의자가 관련된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2.5 청와대 근무 시절

청와대 7시간 의혹이 불거지고 민정수석실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이 해임된 후인 2014년 5월 대통령비서실에 민정비서관으로 들어왔다[25]. 그 과정에서 인사검증 결과 '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안봉근 제2부속실 비서관의 압박으로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평가 점수를 높여 준 것으로 드러났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을 공개했는데, 총재산액이 423억 3,230만 원이나 되어 화제가 되었다.[26] 재산 대부분은 골프장을 운영하던 장인 이상달 회장[27]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으로부터 높은 신임을 얻었다. 청와대 문건유출사건 등 까다로운 일들을 무난히 마무리한 덕덕분이었다.이때 상관인 김영한 민정수석을 제치고 김기춘 실장에게 직보하는 일이 잦았다. 호랑이를 키웠네 이 때문에 김영한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 증인 출석을 거부한 뒤 사퇴하는 등 '항명사태'를 일으킬 정도였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조직을 다잡고 일을 밀어붙이는 기질 면에서 김기춘과 우병우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여러 사람들에게서 '리틀 김기춘'으로 불리었다.

2015년 1월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승진했다.[28] 청와대 입성 8개월 만이었다.
146943752023_20160726.JPG

이로써 노무현 정부 시절 전해철 민정수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40대 민정수석'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민정수석과 실질적으로 동급인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사람이 황교안이고 검찰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사람이 김진태인데, 이들보다 10살 넘게 어린 나이로 민정수석이 된 셈이다. 당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소년등과(少年登科)를 해서인지 검사 때부터 추진력은 있으나 너무나 당돌해 반대세력이 많았다"라며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잘한다'는 평가가 많고, 실제로 청와대 실세로 평가받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 당시 대구 출신인 김수남이 대검 차장에 임명되고, 경북 청도 출신인 박성재가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청와대 민정수석-대검 차장-서울중앙지검장'이 모두 TK(대구경북) 출신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말이 나왔다.[29]

2015년 2월 검사 관련 인사들은 '우병우 라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편법으로 우병우의 측근들을 청와대에 근무시킨후 검찰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5년 3월부터 김기춘 실장이 기획한 박근혜 정부의 이명박 정권에 대한 사정을 주도했다. 다만 두 사람이 직접 앞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판단 하에 이완구 총리에게 총대를 메게한다. 이완구는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2015년 3월 12일 포스코 사정을 시작으로 1주일 뒤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서 경남기업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인다. 그러자 경남기업 회장 성완종은 백방으로 탄원하다가 끝내 자살하고 만다. 결국 성완종 회장이 자살하면서 [뇌물 리스트]를 남겨 김 전 실장과 이 총리의 경우 도리어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지게 되었다..[관련기사] 자원외교비리 관련 수사가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친박계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몇몇 친이계 인사들에 수사만 집중적으로 벌리고 흐지부지 마무리 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기춘 실장의 후임으로 이병기 실장이 임명되었으나, 온건파인 이병기 실장을 제치고 강경파인 우병우 민정수석이 득세한다는 소문이 나돌더니, 결국 이병기 실장은 20대 총선 후 2016년 5월부로 사임한다.

2015년 봄 메르스(MERS. 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태 당시 감염을 피하려 가족들을 미국으로 도피시켰다. 당시는 정부가 괴담 유포자를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던 때였다. 비서실장 이원종은 2016년 10월 21일 이에 대해 도의적인 문제이지 법률적인 문제는 아니며, 메르스를 피해 가족을 외국으로 보낸 것은 개인의 '행복 추구권'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은 재미있는 결과로 끝났는데, 야권의 분열로 새누리당이 최소 180석[30]을 차지할 거라는 꿈을 깨고 여소야대의 형국을 받아들게 되었다. 이런 뜻밖의 상황에 가장 당황한 사람들 중에 하나가 바로 청와대였는데, 그 전에 미리 짜두었던 계획, 즉 180석 이상 차지해서 무소불위로 밀고 나가려던 계획이 완전히 꼬여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후 아직도 현실 적응이 되지 못한 반응들을 계속 보이기 시작했다.

2016년 7월경부터 각 언론에 의해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가 연쇄적으로 폭로되면서 사방팔방으로부터 사퇴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박근혜는 몇 달에 걸치는 기간 동안 우병우를 옹호하였고, 심지어는 '국기문란'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우병우를 보호하였다. 그리고 우병우 자신 역시 2016년 10월 20일 자신과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하지 않을 일에 대해서 의혹이 제기됐기에 책임지는 게 맞지 않다”며 사퇴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16년 10월 26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청와대 내부에서 비서진 총사퇴 카드가 나왔다. 그러나 안종범과 우병우 두 사람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10% 초반대까지 떨어지자, 2016년 10월 30일 안종범 정책수석 등과 함께 경질되었다. 그 다음날 텔레그램에 가입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카카오톡 사찰 논란 당시 텔레그램을 싫어했던 높으신 분들이 정작 자기들도 텔레그램을 쓴다는 것에 조롱과 비웃음이 난무했다.[#]

그리고 재산공개 되자마자 자신의 BMW 530i 차량을 처분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우병우의 가족은 제네시스 G80(우병우의 아내가 주로 사용),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우병우가 주로 사용. 마세라티의 플래그십 기함), 포르쉐 911포르쉐 파나메라('코너링'논란으로 유명해진 우병우의 아들이 주로 사용) 등 고가의 고급 차량들과 미니밴기아 카니발을 소유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으며 모두 우병우가 거주하는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우병우의 동호수로 등록 되어있는 차량이다.

같은 아파트 주민의 말에 의하면 포르쉐는 주로 우병우의 아들이 타고 다녔다고 하며, 제네시스는 주로 부인인 이민정이 타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청문회에서 포르쉐와 레인지로버는 본인 집의 소유가 아닌 처제 집의 차량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비밀 감찰조직인 삼청동을 운영했다.[#]


3 비리 의혹 보도부터 검찰 출석까지 행적


조선일보가 제대로 빡쳐서, 근 수십 년간 볼 수 없었던 언론의 공격 화력을 집중하는 대상이 되었다. 김기춘JTBC가 공격한다면, 우병우는 조선일보가 집중공격하는 모양새다. 알다시피, 조선일보의 공격력은 대한민국에선 정말로 천하무적이다.[31]

3.1 피의자 신분

2016년 7월 18일 조선일보에서, 2011년 경 넥슨에 부탁하여 처가 부동산을 매입시켰는지 모른다는 의혹 기사가 게재되었다. 청와대 측은 이에 대해 즉각 반박 성명을 내고 조선일보를 상대로 고소를 시전했다. 그리고 <TV조선>은 윤상현 의원의 공천개입의혹 녹취록을 폭로한다.[#]

[사건 개요 : ‘말죽거리 잔혹사’ 선도부장 우병우, 반장 이석수]

22일 대통령 직속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조사에 착수하겠다는 뜻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특별감찰관제 도입 이후 감찰 첫 번째 대상자가 됐다. 이에 우병우 수석은 "주말만 지나면 여론이 잠잠해질 텐데 왜 특별감찰로 사건을 키우느냐"며 강력히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특별감찰은 재임 시절 벌어진 일들로만 국한되기 때문에 논란의 핵심인 처가 부동산 문제 등이 감찰 대상에서 벗어나자 검찰 조사 전 시간 끌기 아니냐는 논란이 빚어졌다.

2016년 8월 17일 MBC에서 이석수 감찰관이 감찰 내용을 특정 언론사조선일보에 누설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바로 다음 날 하라는 경질은 안 하고 정작 우 수석의 구설수에 관해서는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않은 채 "특별감찰관이 감찰결과를 유출했으며 이는 국기문란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청와대의 반응에 대해 주요 언론사들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는(…) 사설들을 내었다. "검찰, ‘우병우 비리’ 수사 더 미적댈 이유 없다"(한겨레), "범죄 혐의 포착된 우병우 수석 즉각 경질해야"(한국일보), "피의자 된 우병우, 자기 수사 지휘하는 저질 코미디 할 건가"(경향신문), "검찰, 수사 의뢰된 '우병우 의혹' 철저하게 밝혀야"(중앙일보), "이석수 특감이 검찰 수사 의뢰한 우병우 수석 사퇴가 도리"(세계일보), "우병우 민정수석, 즉각 사퇴하고 검찰 수사 받아야"(동아일보), "대통령 최측근 우병우 수사 의뢰, '政權 도덕성'에 치명적 상처"(조선일보), "우병우 수석, 검찰 가기 전 거취 밝히는 게 옳다"(서울신문), "靑 ‘李특감 공격’은 本末 뒤집는 ‘우병우 감싸기’다"(문화일보).[32]

청와대의 반응에 압박을 느낀 이석수 특별감찰관 측은 아래 논란 중 민정수석 시절의 일인 아들의 '꿀보직' 전보 논란, 가족회사 논란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민정수석의 비재임시 의혹에 관해서는 투기자본감시센터에 의해 고발되었다. [#][자세한 고발 내용은 여기] 또한 MBC가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제3자 유출이나 해킹 등 불법이 저질러졌을 가능성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라는 가짜 천주교 신자 모임[33] [34]보수단체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특정 언론사 관계자에게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주어는 없다[35] 이에 대해 여당인 새누리측에서 마저 수사를 지휘해야하는 민정수석이 수사를 받을 수는 없지 않는가 하는 지적을 하면서 우병우 수석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야권에서는 검찰 곳곳에 '우병우 라인'이 깔려 있어서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지적하였다.

결국 우병우와 이석수 양측을 수사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검찰은 사건 배당도 하지 못한채 특검요청까지 고려하다가 8월 23일에야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기로 결정한다. 더불어 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이에 대해 "예를 들어 검찰이 어떤 사건 수사를 하다가, 피의자 편에 있는 시민단체가 검사를 직권남용 등으로 고발한 사건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피의자와 검사를 같은 수사팀이 수사하나? 이건 말이 안 된다. 전형적 물타기다." 라는 지적을 했다.[#]

8월 24일 윤갑근 대구고검장을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했다. 윤갑근 검사에 대해서는 '국정원 증거조작사건'과 '정윤회 문건수사' 등의 사건에서 정권에 면죄부를 던져줬다는 평을 받은 바가 있어, 이 사건의 적임자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와 별도로 24일 오후 참여연대가 우 수석을 공무집행방해죄와 뇌물죄, 업무상 횡령, 조세포탈 혐의로, 부인과 처가 식구들을 업무상 횡령 및 조세포탈,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위반 등 혐의로 대검에 고발했다.

그리고 28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했으며, 이틀 후인 30일에 결국 사표가 수리되었다.

현재 계좌추적 중이며, 11월 4일 소환통보를 할 예정이다.[#]

앞서 우병우의 부인 이민정에 대하여 땅 차명 보유·횡령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검찰 출석 요구가 2차례 있었으나 깔끔하게 불응하고 있다가 우병우가 사퇴하고 검찰이 체포영장 청구를 검토하자, 30일에 비공개로 출석하여 조사를 받았다.[#]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임에도 비밀스럽게 조사를 받았고 하루가 지난 다음에서야 조사사실이 알려졌다.

현재 최순실 외 기타인들의 국정농단을 방조한 직무유기 피의자로 입건됐다. [#]


3.2 황제 소환

검찰의 Alpha male[36]

우병우는 드디어 2016년 11월 6일 횡령 및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출석했다.

원래 공개 소환을 거부하였고 검찰이 이를 수용하였으나, 비난 여론이 커지자 결국 공개 소환이 되었다.[37] 청사로 들어가기 전 기자들이 몰려 질문을 했는데, 앵무새 같이 "검찰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라는 말만 반복했다.[38]

PYH2016110607370001300_P4.jpg
그러나 문제는… 화면 좌측에 있던 여기자[39]가 가족회사 관련 의혹 질문을 꺼내자 눈을 감고 한숨을 쉬며 도리어 노려보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탔고(위 영상 20초부터 보면 된다), “들어갑시다”라고 하는 등 뻔뻔한 태도를 보여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위 장면에 대한 그의 지인들의 평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황당하거나 생경할 수 있지만, 우 전 수석의 평소 모습이 그렇다', '우 전 수석의 평소 모습에 비하면, 출두할 때의 모습은 엄청 자제하고 참은 것' [#]

11월 6일 오후 9시 25분경, 검찰 조사 장면이 포착되었는데, 과연 황제소환이라 할 만한 모습 그대로, 조사가 아니라 제 집 안방에서 아랫것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관련 기사][40] 조사 중 휴식 시간의 모습이라 추정되지만, 일반인이 조사받을 때는 있을 수 없는 광경이다. 영감님이 서 계시니 아랫것들도 공손히 일어서 있는 모습에서, 검찰 내 그의 위세를 알 수 있다. 더욱이 취재기자에 의하면, 오른쪽의 검사와 수사관은 "처음엔 앉아 있다가 우병우가 다가오자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고 한다. [TV조선 단독 동영상으로 재구성한 우병우 팔짱]

2016110701657_3.jpg

2016110700194_0.jpg
비정규직에다가 베테랑도 아니고 27살 어린 나이의 2년차인 고운호가 조선일보의 객원기자 저격수 신분으로 보기 드문 특종 사진을 찍었는데, 과연 "백만 꼭지 글보다도 사진 1장이 갖는 힘이 크다"라는 덕담을 들을 만 하였다.[41] 취재기 취재 기자 인터뷰(무려 미디어오늘(!!) 기사다) 우병우 찍은 위치, 카메라 가격 등[42] [취재기자 TV조선 출연]

문제의 장면에 관해 검찰의 해명은 "조사 중 잠깐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 촬영되어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이라는 것이었고, 우병우 본인도 "휴식 시간 때 그랬던 것"이라고 청문회에서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 관계자들의 평은 ["정부 고위직 출신이나 유명인사들이 검찰에 소환될 경우, 조사하기 전 부장검사실에서 차를 마시는 경우는 가끔 있다. 그렇지만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경우처럼, 조사를 받던 중 휴식을 취하면서 팔짱을 끼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한다.

결국, 김수남 검찰총장은 '황제 수사' 비난여론을 자초한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을 강도 높게 질책하고, 특별수사팀이 아닌 특별수사본부가 직접 우 전 수석을 추가로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특별수사본부가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요청하였고, 신분도 조사대상에서 수사대상으로 전환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

우병우 특별수사팀 공보관인 이헌상 차장과 최순실 특별수사본부의 공보관인 노승권 1차장의 오늘 오후 법조기자 브리핑에 의하면, "양쪽 수사팀은 검찰총장으로부터 황제소환에 대해 질책을 받은 적도 없고, 총장으로부터 직무유기혐의를 수사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도 없는 것 같다"는 전언이 다시 나왔다.[#] 11월 8일 현재 우병우의 위세는 건재하다는 이야기다.

사진 공개 후의 검찰 대응도 코미디인데, 조선일보 사진 때문에 홍역 치른 검찰은 대응책이랍시고 [검찰청 창문을 창호지로 가리는] 유치한 짓을 해서 네티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후 국회청문회에서 위의 행동은 추워서 팔짱을 낀 거라고 한다.


그런데 또 이번에 서울중앙지법에서 또 [기자를 노려봤다.]

검찰 출석 때 여기자를 노려본 것에 대해 국회 청문회에서 "그 여기자분이 갑자기 가슴쪽으로 다가와서 뭔가 크게 질문해 놀랐다. 갑자기 저도 상당히 당황했다."라며 노려본 것이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으나,[#] 영장실질심사 때 기자를 '야리는' 모습도 표정이 그 때와 똑같다. 원래 잘 놀라는 사람인가 보다. 그래서 저랬나 보다.Uman (토론) 2017년 3월 28일 (화) 10:14 (UTC)패왕색이라도 쓰고 싶었던걸까

3.3 어떻게 그렇게 오래 버텼는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 무려 3달 반 동안 사퇴압력을 버텨냈다.

의혹만으로도 10번은 더 잘려나갔어야 정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의혹이 제기된 2016년 7월 18일부터 10월 30일까지 거의 15주 정도를 잘리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위의 의혹들이 모두 무죄라 하더라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패배와 연이은 부실인사만 하더라도 충분히 자진사퇴했어야 정상인 상황이었다.

초반에는 전원책 등의 정치평론가들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43],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사퇴를 요구했고, 처음에는 관망 혹은 두둔하던 여당인 새누리당마저도 온갖 의혹이 밑도 끝도 없이 나와서 이리저리 연계되자 우병우의 용퇴를 조용히 타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병우는 멀쩡했다. 보통 사실관계 여부과 관계없이 우병우 의혹의 반만 되어도 사퇴하고, 한두 건 정도에도 우선은 사의를 표하든 사과를 하든 반성하는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보통이다.

각 사안별 수준도 위장전입이나 단순 부패 수준이 아니라, 당대에 불거진 정재계 연계에 다 한 다리씩 걸쳐 있고 매우 규모가 크다. 2016년 8~9월 현재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가장 큰 떡밥인 정운호 게이트넥슨 게이트에 동시에 연관되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정도면 정권 실세고 국회의원이고 못 버티는 게 정상이다.[44] 하지만 우병우는 사과 없이 침묵하였고 기사 [#]를 보면 알겠지만 청와대는 국기문란이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우병우를 보호하였다. 청와대가 얼마나 강경했던지 새누리당도 우병우 보호로 돌아섰다.

그렇다면 우병우 수석을 보호해서 얻는 정치적 이익이 있었는가? 없었다. 애초에 의혹이 벌어진 초반에 진작 사퇴했으면, 이렇게 양파처럼 까이진 않았을 것이고, 그냥 해프닝 정도로나 끝났을 일이었다. 잠깐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겠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곧 회복했을 것이며, 연이은 북풍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지지율이 올랐을 수도 있었다.[45]

우병우 수석이 유례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건재했던 이유는 몇 가지가 꼽힌다.

첫 번째로 가장 크게 꼽히는 것은 청와대의 사정라인 장악 유지가 꼽힌다. 검경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이곳 인사에 중요 역할을 한 우병우 수석이 없었으면 청와대가 사정라인, 즉 검경계에 미치는 힘이 약해졌을 거라는 것. 실제로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불법, 비리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할 것"이라며 "문제는 (우병우에게) 인사권이 있냐 없냐가 핵심"이고 "우병우 수석은 검찰 및 사정기관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해 왔기에, 우 수석이 민정수석 자리를 지키면 검찰 수사는 해보나마나일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이후 지지율을 생각하면 일찌감치 잘라낸 게 더 이득이었을 것이다. 국정장악 역시 레임덕 방지에 중요하지만, 지지율은 더 중요하다. 대통령이 국정을 아무리 잘 장악해봐야 임기 끝나면 자연인이다. 따라서 재집권할 확률이 높아야 공무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게 되고 레임덕도 방지할 수 있을 터이다. 박 대통령은 '우병우 지키기로 잃는 장악력'과 '우병우 버리기로 잃는 장악력' 사이에서 치킨게임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2번째는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행사 의지, 특히 인사권에 대한 의지다.

논지를 펼치기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처음 수석 대변인으로 뉴데일리문재인 당시 후보에 대해서 온갖 모욕적인 논설을 쓴 윤창중을 임명해서 지지자들마저 경악하게 했다. 결국은 미국에 가서 사고치고 짤렸다.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윤진숙 전 장관을 임명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윤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보호를 해야하는 새누리당이 빡쳐서 털어버릴 정도로 수준미달이었던 인물이다. 야당의 반대에 대해서 새누리당도 차마 동의해달라고는 못하고 청와대에 불가하다고 알렸고, 인사청문회 보고서는 미채택 되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윤진숙을 적극적으로 감싸면서 임명을 강행했다. 그리고 이 사람마저 짤렸다 우병우 사태 이후에는 조윤선, 김재수 장관 인사 청문회도 부적격이 되었지만 전자결재로 임명을 강행했다.

사례에서 보듯이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권에 있어서 주변의 의견, 국회의 동의나 청문회 절차라는 것을 몹시 불쾌해 하고 불필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외부의 시선이나 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인사권을 실행하는, 좋게 말하면 의지가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독단적인 인사스타일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어서 인사권에 대한 침해는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고, 그게 특히나 청와대에 속한 사람이라면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인사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을 수도 있다.

특히나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의 공세로 청와대 비서관이 짤리는 모양새가 되면 레임덕이 가속화될 것이 뻔하기에 권력을 틀어쥐고 끝까지 가려는 성격상 우병우에 대한 공격을 박근혜 대통령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고 버텼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청와대는 '국기문란' 운운하면서 우병우를 보호했다. 아무리 권력자라고 한들 일개 비서의 비리 의혹 제기를 '국기문란'이라고까지 여기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권위적인 박근혜 정부의 관점에선 청와대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3번째로, 이건 소수의견이지만, 우병우 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다. 유시민 전 장관의 경우, 박 대통령이 '자르고 싶어도 못 자르는 것 같다'고까지 추측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밝혀졌습니다.
해당 의혹 이후 추가적인 폭로들과 함께 지나치리만큼 온갖 권력을 몰아준 점이 밝혀지고 보호하는 모습이 보이면서, 아예 박근혜 대통령의 일가친척보다 더한 비호와 총애를 받는 점을 들어 '특별한 관계애인'가 아니냐는 비이냥이나 의혹까지 조심스레 나오고 있는 지경.(...)

4번째로 최순실과의 연관성이 있다. 이 의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점화되면서 생긴 의혹으로,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 배후에서 모든 것을 조정했다는 강한 의혹을 받고 있으며, 인사권 또한 깊숙히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우병우 수석의 거취는 박근혜의 의지가 아닌 최순실의 의지로, 최순실이 우병우의 사퇴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리가 유지되었을 가능성이다.

또한 우병우 수석의 비리논란은 박근혜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미르 재단 건을 덮기 위한 방패막이로 의심되기도 한다. 시사팟캐스트인 '시사통 김종배입니다'의 ["[이슈통 최순실과 2개의 시점"]] 에피소드는 [한겨레 보도]의 검찰 관계자의 진단을 인용하면서 우병우 수석의 문제가 불거질 때 “청와대로서는 우병우 수석의 비리 보도가 고마웠을 수 있다."며 미르 재단에 대한 관심을 우병우 수석 사건으로 덮을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한마디로 우병우 비리는 미르 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유도탄이었다는 것이다. 근데 둘 다 터져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최순실 문서와 기사 참조. 하지만 우병우 처가와 최태민 일가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드러났기에, 별개의 사건이 우연히 같이 터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니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일부분이 우병우미르 재단이라는 다른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현재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위세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우병우에 대한 수사는 잘 될 것이라는 전망이 다음과 같이 언론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46]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11월 2일)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하여 우병우 수사에 대해서, [“그건 잘 될 겁니다. 끈이 떨어졌으니까”]라고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조응천 의원은 그의 페이스북에 "禹의 황제소환에 대해 너무 질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년 전 청와대문건 유출사건으로 제가 중앙지검 수사를 받을 때는, 20년 정도 후배 검사가 제게 "어이 조응천 씨"라고 부를 정도로 기개가 있었습니다. 禹가 확실히 끈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검사도 "우병우 씨"라고 할 겁니다. 너무 걱정 마시고 좀만 기다려 봐주시죠"[#]라고 하였다.

또한 특히 채동욱의 '수사 잘 될 거다. 끈 떨어졌으니까'라는 간단명료한 이 발언이 파파이스-한겨레 중심으로 인터넷상에 화제가 되면서 2016년 11월 극초반만 해도 '우병우 바로 털리나?'라는 언론들의 보도와 대중의 기대가 많았으나, 며칠이 지난 뒤 상황은 조선일보가 역대급 명장면의 특종을 냈고 난리가 난 것처럼 모두가 알다시피... 자리에서 나와서도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우 황제라는 별명까지 얻던 청와대의 핵심실세는 채동욱 전 검찰청장의 생각과는 달리, 아직까지도 끈이 탄탄한 살아있는 권력 그 자체인 것이었다.

채동욱의 말을 빌린 2일의 기사 이후 벌어진 기막힌 상황과, 그 이후 김정필 기자와의 인터뷰 형식의 이후의 한겨례 기사(11월 8일) 또한

-조사실에서 팔짱 낀 사진 화제.
“수사만 20년 넘게 했으니 조사실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을 거예요. 까마득한 후배 검사들도 자기 손길 거친 사람들이고. 아쉬운 건 상황인식이죠. 우병우도, 맞은편 검사도 그러고 있을 때 아니잖아요. 공분 사기 충분하죠.”
-구속돼 수의 입어도 뻣뻣할까요?
“모르죠. 근데 검찰이 제대로 조사할지 의문입니다.”[기사]

모든 의혹에 대해서 우병우는 모두 전면 부인했다.[기사]


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

  • 최순실박근혜와의 친분 관계를 이용해서 나라를 지 맘대로 주무른 국정 농단 사태가 있었을 때, 우병우는 대통령과 측근의 비리를 감시해야 할 민정수석비서관이었다. 그런데도 "최순실을 몰랐다"라는 무능한 바보를 연기하며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고 시도했다.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소환되었지만, 소환서를 받지 않고 피해다니다가 논란이 되었다. 논란 항목 참조.

결국, 국민 여론을 못 이기고 제5차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석했지만, 모든 혐의를 부정하는 뻔뻔스러운 태도와 불리한 것은 기억이 안 나는 모르쇠, 유리한 대목만 기억이 나는 '선택적 기억상실'로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법적으로는 민정수석으로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직무유기죄에 해당하고, 세월호 7시간에 개입한 의혹이 있는데 사실이라면 직권남용죄가 적용되고, 청문회에서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증언을 한 위증죄, 덤으로 증거인멸죄 혐의가 있다.

4.1 특검 수사

4.1.1 잠적

국정조사에 불응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언제부턴가 아예 행방불명이 되어버려 논란이 예상된다. [우병우 잠적설…“우병우, 가족과 행방불명” (중앙일보)] 12월 5일부터 행방이 묘연하다고 채널A가 보도했다. 가족과 함께 살던 압구정동 소재의 현대아파트를 아예 비우고, 다른 곳에 잠적해 있는 것이다.

우병우는 청문회 출석요구서가 처음 송달 시도된, 11월 27일 이후 집을 비웠다.

12월 7일, 국회 직원들이 청문회 동행명령장을 전달하지 못했다.

김성태 의원이 TV조선 프로그램인 박종진 라이브에 출연했을 때, 우병우를 찾는 사람에게 사비로 100만원을 주겠다고 밝혔다. [27분 19초부터]

[정봉주 전 의원]도 제보하는 사람에게 200만원을 걸었다가 500만원으로 올렸다. 안민석 의원도 500만원을 걸었다. [정청래 전 의원]도 현상금을 100만원을 걸었다 100+500+500+100 = 1,200만원의 현상금이다. 근데 정봉주, 정청래 의원이 돈이 있나 일반 시민들이 현상금에 써달라고 모금한 금액까지 합하면 2,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자 주식갤러리에서는 1건 더 올리고자 [추적에 들어갔고] 보배드림에서 [추적을 독려하기 시작하였다]. 코너링 실력을 보면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의 빡친 네티즌들이 정의구현을 위해, 직접 찾으려고 나섰지만, 우병우의 생활반응을 아직까지는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들어오는 제보 중에 의외의 것들이 있다고 한다. 후에 청문회에서 밝힐 예정. [김성회 보좌관 인터뷰]

2016년 12월 13일, 2주 이상의 잠적 또는 행방불명 상태를 깨고, 연합뉴스전화 통화를 했다. [우병우는 오는 19일 청문회 출석을 돌연 밝혔다]..그로인해 2천만원의 현상금은 증발했다 우병우 본인은 "청와대 민정수석은 공개 석상에서 업무와 관련한 발언을 하지 않은 관행과 원칙을 지키느라 지난 7일 2차 청문회에 나가지 못했다"고 했으며, 지인에 의하면 "민정수석을 그만둔 그 날부터 기자들이 집앞에 거의 상주하다시피하면서, 가족들을 상대로 취재 공세를 펴는 것을 도저히 버틸수가 없어 집을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우병우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회사 정강과 부인, 아들[47]도 이번 게이트에 연관 의혹이 있기 때문에 아예 가족 모두가 통째로 기자들을 피해 거주지를 임시로 옮긴 것이다. 우병우가 청문회에 출석하겠다고 하면서 [청문회가 22일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론에 출석 의사를 밝힌 것과는 달리 아직까지 국회 측에 공식적으로 출석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언론 플레이의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가족들을 데리고 피신하다 보니 대학생인 딸은 기말시험을 치르지 못했고, 그 딸이 추가 시험을 보는 날을 알아낸 누리꾼들이 찾아갈 것이라고 압박을 한 결과, 가족들이 언론에 까발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우병우가 마침내 손을 들었다고 한다.

이때문에 빡친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은 속칭 우병우 방지법을 발의했다. 이것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인데, 국회는 증인 출석요구서를 송달하기 위해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통신사, 기타 기관에 증인·감정인·참고인의 주소와 출입국 사실, 전화번호 등을 제공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또한 국회사무처가 동행명령 집행에 협조 요청을 보낼 경우 관할 경찰서는 이에 응해야 하며, 국회사무처 직원에게는 특별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우병우 방지법의 내용이다.[48][49]

잠적 22일만인 12월 19일 밤에,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가족회사 '정강' 사무실에서 일행과 함께 있는 모습이 더 팩트 취재진의 카메라에 촬영되었다.
20161220002634_0.jpg
'정강' 사무실에서 청문회 준비를 마치고, 본래 집인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아니라, 장모김장자 삼남개발 회장의 논현동 자택으로 갔다고 한다.


4.1.2 특검 수사 본격화

2017년 1월 27일부터 한 동안 매스컴에서 사라진 우병우에 대한 특검 수사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설 연휴가 지난 후 우병우의 특검 소환이 예정 되었다.하지만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지만 2월 22일날 법원에서 기각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특검에 소환 될 때 오전에 소환되어 자정 쯤에 조사가 끝났다. 그 후 우병우는 집에 가지 않고 5시간 동안 조서를 통채로 외웠다고 한다.[#]

구속은 면하였지만 그는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성격이 오만방자하고 법꾸라지라는 주홍글씨가 붙었지 국회의원을 나가봤자 과거의 치부와 행적때문에 공천을 받아봤자 탈락이고 어느 공직도 비토받을께 뻔하다.

5 논란과 의혹

분량이 많아 따로 분리하였다. 우병우/논란 참조.


6 기타

  • 성격이 무척 오만방자하다. 오죽하면 검찰 출두 시 기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포토라인에서조차 거만한 성격을 숨기지 못할 정도. 동료 검사들로부터 "실력은 의심의 여지 없이 좋은데 싸가지가 없다", "너무 뻣뻣하다" 등의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대학시절부터 워낙에 자존심 강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서 별명이 '기브스'였다고 한다. [#] 마찬가지로 국정농단의 주축이자 악질이지만, 개인적인 성격은 상당히 점잖고 예의바르다고 하는 김기춘과는 대비되는 점. 검사장 승진에서 밀린 이유도 '성정이 포악하고 예의가 없다(=안하무인)'는 점이 컸다. [50] 검사장이 아닌 상황에서도 그렇게 사람들과 척을 지는데 검사장이 되면 더 많은 적을 만들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조직에 부담이 된다.
  • 서울대 법대 선배라도 자기보다 사법시험에 늦게 합격한 사람에게는 반말을 했다고 한다. 문제는 우병우가 소년등과(최연소 합격)에다가 군대도 안 갔기 때문에, 남들이 사법시험 한창 보고 있을 나이인 25세부터 검사를 했고, 대부분의 신참 검사가 우병우보다 연장자[51][52] 였기 때문에 우병우는 대놓고 선배들에게 반말을 한 것이다. 이러니 적이 없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검찰후배지만 나이도 더 많고 학교 선배인데, 자기가 검찰선배라고 반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드러낸 사람이 많았다.[53] [#]
  • 2002년 8월 춘천지검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을 때는,[54] 영월지청에 대학 동기가 그의 밑에서 평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대학 동기인 평검사를 아주 험악하게 조졌다"고 한다.
  • 2004년 대구지검 특수부장 시절에는 동향 출신 고위 공무원 모임에 나가 술에 취해 군수에게 막말을 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요새 민선 지자체장들은 선거로 뽑혀서 그런지, 목이 너무 뻣뻣해. 그래서 인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그래도 되는 거야?"라는 말까지 하며 자기보다 나이 많은 군수에게 호통을 쳤다고… 그런데 이에 대해 머리가 하얗게 센 경북 고령 군수[55]는 "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고 한다.[56] 선거의미를 생각하면 상당히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역시 클라스가 다른 싸가지
  • 2016년 11월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나고 검찰수사에 응하여 출석했을 때, 횡령 및 직권남용죄 피의자가 아니라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이에 대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11월 6일 “피의자가 아니라 피고발인, 소명을 듣는다… 이대로 해준다면 수사하는 검사가 아니라 변명을 들어주는 속기사에 불과하다”면서 “기존 의혹 말고도 최순실과 관련하여 조사할 게 많을텐데, 이러려고 우병우 자택 압수수색도 안 하고, 최순실 게이트도 형사8부 막내검사에게 맡겨 한가하게 조서만 꾸미고 있었던 건지”라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 그리고 “이런 식으로 검찰 소환조사가 이뤄진다면 앞으론 우병우가 아니라 우갑우(又甲又), 그리고 검찰이 아니라 겁찰(怯察)로 불러드려야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제는 팔짱끼고 조사받는다.[#]
  • 2016년 10월 21일 청와대 국정감사 중 운영위원장 정진석 의원이 우병우의 국감 출석 여부를 묻고 확인전화를 하라며 국감을 중지시켰다. 이원종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이 우병우에게 전화 후 "못 온다고 합니다"라고 답하자 김대중 정부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이 "비서실장이 오라는데 오라고 해도 안 온다는 말이에요?"라며 격앙된 듯한 말투로 묻자, 이원종은 “의원님[57]이 비서실장 하실 때와 요 사이는 다릅니다”라며 우병우가 권력 실세로서 여전히 변함 없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역시 박근혜의 총애를 받는 실세 중의 실세. 유시민은 이를 승지와 도승지가 바뀐 꼴이라고 비유했다.[58] 국정감사 당시 박지원은 이원종에게 '우병우 수석을 보호한다고 잘 될 것 같으냐?'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
  • 자기 주인 대할 때 빼면 정부체계의 명목상 윗 계급이거나 연장자 혹은 총리라도 아랫사람 대하는 듯 보이는[59] 그의 뻣뻣한 태도와, 인사권으로 정부조직을 장악해 온 절대권력을 합쳐 별명을 우왕 '황제',역시 황제…검사 앞에서 팔짱 낀 채 웃는 우병우우병우 귀가...검찰 조사때도 '황제급 대우' '우 황제(우황제)' 등으로 빗대기도 한다. 예전에 그에게 아부하려는 사람들은 별명을 '우 황제(우황제)'라고 지어도 존칭의 의미로 카메라 뒤에서 몰래 썼겠지만, 엄청 히트 친 각종 '우황제(우 황제) 패러디' 등과 대중적인 이 별명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권신에 대한 비판의 의미 또한 강하게 담긴 것이 맞다.[60] 그런데 여러 유머모음 사이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나 최순실 이명박 패러디들도 살아남는 판에 가장 인기도 높았던 '우 황제 시리즈'들만, 원본들이 하루만에 몇 개씩은 갑자기 안 보이기도 한다. [우황제의 즐거운 하루] 우 황제의 황제수사 그림 패러디 시리즈 사본이라도 찾은 분은 링크 바람.
  • 과거 검찰 내부 인터뷰에서 우병우가 "나는 (평검사 시절인) 23살 때도 45살인 계장(수사관)을 수족(手足) 부리듯이 부려먹었다."라고 말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 되어 대중의 공분을 샀다. 또한 "(지방)경찰청장도 내 가방을 들어주고 그랬다."며 경찰에 비한 검찰의 우월감과 특유의 권위주의 의식을 드러내면서 안하무인, 비호감이란 질타를 받았다.[#]
  •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정치인과 시민들이 약 2,000만원 상당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리고 우병우의 현상수배 포스터를 우에하라 아이의 AV포스터를 패러디해 만들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의혹을 받았을 때 검찰조사를 직접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역시 오만방자하게 "노무현씨 당신은 더 이상 대통령도, 사법고시 선배도 아닌, 그저 뇌물수수 혐의자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오."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우병우 본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 경찰 최경락 경위의 자살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
  • 프강 프록쉐 (Wolfgang proksch) 안경을 사용한다. (독일산) 유승민 의원과 같은 브랜드. 렌즈는 고가의 칼짜이즈의 플래그십라인 렌즈주기적으로 교체하는 안경알 가격만 3자리수(백만원 단위)대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 당연하게도 이 안경테는 일반적인 안경테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
  • 위의 자업자득 스러운 '우황제(우 황제)'나 '우갑우'란 별명과 더불어 이름이 앞뒤를 거꾸로 해도 똑같은 대칭형 이름에다 비유가 쉬운 탓에 본인이나 아들이 이름 장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댓글이나 디시에서 많이 장난치는 별명 중 하나는 "좌캔좌(...)" "병든소(...)" "우회전(...)"[61]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 배우 김의성이 우병우를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그래서 "최순실 게이트가 실사판으로 만들어진다면 김의성이 우병우 배역을 맡아야한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실제로 김의성 본인이 스스로 우병우와 닮은 꼴을 인정하면서 "이런 배역은 귤만 까먹어도 아카데미상 받을 수 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7 말말말

국정 농단을 사전에 방지할 책임도, 사후에 처벌할 책임도 그에게 있었다.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 본연의 자세를 조금이나마 지켰다면 그 자신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겠지만 박근혜 정부가 지금 같은 처지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최순실 사건의 최대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 조선일보 2017년 2월 23일자 사설[#]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우병우~ 우병우~ 앞뒤가 똑같은~ 민정수석~ 우병우를 구속~하! 라!"
- [우병우 구속가]
무능하고 오만한 박근혜 정부의 상징.
- 전원책

8 둘러보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주요 관련 인물박근혜 김기춘 · 우병우 · 정호성 · 안종범 · 이재만 · 안봉근 · 조윤선
최순실 정윤회 · 정유라 · 장시호 · 고영태 · 차은택
관련 사건전개 과정사건의 배경 · 타임라인 · 대통령 해명
주요 내용문제점 · 국정 개입 · 인사 개입 · 재단 활동 · 의료 논란
수사 · 재판검찰수사 · 특별검사 · 국정조사 · 재판 · 탄핵
기타 관련기타 관련 인물 및 단체
기타 관련 사건 · 관련 집회
기타 관련 문화 및 여담 · 박근혜 퇴진 운동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틀:일부 사건 나열
  1. 31세손 '柄' 자 항렬.
  2. 사유는 고도 근시에 의한 ‘질병 또는 심신장애’ [증거 기사].
  3. [증거 기사].
  4. '트리비아' 문단 참조
  5. 법률 제14757호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 2017년 3월 21일 공포되어 같은 날부터 시행된다.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때 출석하지 않으려고 도망다닌 사람이 우병우뿐만은 아니었지만, 우병우가 이 개정법률 제정의 가장 큰 공신(?)인 것은 분명하다.
  6. 아버지 우용구가 초등학교 교사였다고 한다.
  7.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실제로는 1965년생 뱀띠라는 설이 있다. 84학번인데 1967년 1월생이라는 건 호적에 출생신고를 늦게했다는 것이다.
  8. 실제로는 호적이 최소 1년이 상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월반 기록 같은 특별 기록이 없고, 호적이 1967년 1월생인데 85학번이 아닌 84학번이라는 것부터... 최소 21세이자 당시 대학교 4학년 재학중이었다.
  9. 게다가 보통 이런 식으로 이른 나이에 사시 합격한 경우는 대부분 변호사로 바로 빠지기 마련인데, 우병우는 그 경쟁률도 뚫고 검사직에 올라섰다.
  10. 전직 제주지검장 김수창이 그와 동기였다.
  11. 병역이 면제여서 수료 후 바로 임관했다. 남자 법조인치고는 매우 빨리 임관한 사례다.
  12. 이상달은 딸만 넷을 두었는데, 우병우는 차녀인 이민정과 결혼하였다. 이상달은 원래 사채업으로 재산을 쌓아 중기건설업을 시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씨에 대해서는 " 「장래성」있는 인사들에게 수시로 접근, 친분관계를 쌓은 뒤 요직에 앉으면 인사에 개입하거나 자신의 사업에 비호세력으로 이용해 왔다"는 평이 있다.
  13. 당시의 드라마에서도 주인공급 남자는 대부분 법대를 다녔으며, 사시 합격 후 검사가 되는 것이 최종 테크로 그려질 정도였다.
  14. 그의 공직생활의 시작과 몰락(?)이 서방파와 관련이 있다니 참으로 절묘한 인연이다. 참고로 이양재는 정운호가 자회사 자금 35억 원을 빌려준 뒤 호텔 2개층의 전세권을 개인 명의로 받았다가 정운호 게이트 이후 기소 혐의 중 하나인 배임죄가 적용된 계기가 된 호텔 라미르의 소유주이다. 법조 브로커 이민희도 호텔 라미르의 부회장 직함을 가졌던 적도 있다.
  15. [관련기사] 참조.
  16. 어버이연합에 2014년 4월부터 11월까지 총 39차례 2,500만원의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있는 바로 그 단체다.
  17. 당시 이상달 회장을 구속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은 정홍원 국무총리였다.
  18. 윤대진 검사는 2014년 세월호 사건과 관련 검찰이 해경 상황실 서버를 압색할 때 우병우(당시 민정비서관)와 통화를 한 당시 수사팀 간부였던 광주지검 형사2부장이다.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박영선 의원이 실제로 이 사건을 우병우에게 추궁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병우는 당연히(...)부인했으나 전화를 했다는 사실은 시인했다. 2016년 현재 부산에서 엘시티 게이트 수사를 진두 지휘 중이다. [기사]
  19.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송금 특검'과 함께 가장 성공한 특검으로 평가받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당시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인 신승환을 구속함으로써 신승남 총장의 조기퇴진을 가져왔다. 신승남 총장이 물러난 뒤 새 검찰총장에 발탁된 인사는 우병우와 경북 영주 동향인 이명재 총장이었다. 그 후 이명재 총장은 박근혜 정권 하에서 청와대 민정특보가 되었고, 우병우는 같은 시기 청와대 민정수석이 되었다.
  20. 기흥컨트리클럽의 운영사인 삼남개발의 대주주
  21. 이 근저당의 해소로 처가의 건설업체인 미래비젼이 보유한 부산의 일명 장영자 빌딩도 매각할 수 있었다.[#]
  22. “2013년 4월 검찰에 사표를 냈어요. 저도 이인규 선배만큼 억울했죠. 아니, 더 억울했지. 그래도 이 선배는 중수부장까지 했지만 저는 검사장도 못했으니. (검찰이) 일만 있으면 저를 불러서 부려먹고는 승진은 다른 놈 다 시켜주고. 검찰총장처럼 한 자리뿐이면 이해하지만, 한 기수에 10명을 시켜주면서 저만 안 시켜주고. 1차에 안 시켜준 것만 해도 열 받는데 2차까지 안 시켜주니까,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했어요. 일만 시켜먹고 승진 때는 빼고. 그게 더 억울하지. 검사장도 안 된 저를 청와대에서 쓰겠다고 한 것은 (검찰의 시각에선) 상식적으로 안 맞는 거죠. 이렇게 비서관, 수석비서관이 될 줄 알았으면 그때 그렇게 안 억울해했겠죠.”
  23. 이 사진이 미친 여파는 매우 컸는데, 검찰에서 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날림으로 하고 있던 것이 폭로되었다.
  24. 이 사건 관련 선임되었던 변호사로는 홍만표, 김영한, 노환균, 우병우 등이 있었다.
  25. 뒤이어 6월에 임명된 민정수석은 김영한으로 변호사시절 ‘도나도나 다단계 사기사건’을 수임한 인연이 있다.
  26. 여기에는 본인과 부인 명의 예금 183억 2,077만 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 현대아파트(59평형) 등 부동산 66억 8,651만 원, 사인간 채권 165억 8,051만 원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100만 주에 가까운 해외국채(99만 5,000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27. 기흥컨트리클럽, 정강중기, 정강건설
  28. 민정수석은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공직자 사정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다. 휘하에 민정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법무비서관, 민원비서관 등 4명의 비서관을 거느린다. 이들 비서관 밑에는 검찰·경찰은 물론이고, 감사원·금감원·공정위·기무사·행자부 등 사정 관련기관의 최정예 인력이 파견된다.
  29. 2013년 대검 중수부가 폐지되면서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의 넘버2'로 불린다. 중요한 수사들을 맡고 있어서 실질적인 힘에서는 검찰총장을 능가한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박근혜 정부는 그러한 막강한 자리에 계속 TK출신들을 발탁해왔다. 박성재 지검장의 전임인 조영곤·김수남 전 지검장도 각각 경북 영천과 대구출신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은 TK출신이 독식해온 것이다. 참고로 우병우가 민정수석이 되었을 때 청와대 민정특보는 경북 영주 출신의 이명재였다.
  30. 180석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 최저 의석수
  31.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개혁에도 꿋꿋하게 버텨온 게 조선일보다. 물론 최순실 계열 사람들을 조선일보가 밀어줬다는 비아냥도 있지만, 2017년 현재 최순실 계열의 몰락을 불러일으킨 게 조선일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심지어 어버이연합이 좌빨이라고 공격하는 대상이 조선일보다.) 아직 삼성그룹과 조선일보 간의 정면대결은 없었지만 최소한 최순실 계열보다 조선일보가 완벽한 KO승을 거둔 것까지는 사실이다.
  32. 노선에 따라 논조가 심하게 갈리는 우리나라 주요 언론사들이 일치된 내용의 사설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여론이 엄중하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특히 문화일보는 특별감찰관이 감찰결과를 유출한 것을 비난하는 사설도 내었지만, 그런 문화일보조차 청와대를 성토하는 데에는 예외가 아닌 실정이다.
  33. 천주교에서는 신자들의 단체결성에 대해서 매우 엄격하고 보수적이다. 당연히 주교회의의 인가도 받지 않았고 주교회의의 결정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단체는, 정식 천주교 단체가 아니다.
  34. 이 단체는 서석구가 대표로 있는 단체다!
  35. 2013년 10월 결성되었는데, 친박인사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단체여서, 그 실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알고보니 ‘친박’ 인사들 모임?]
  36. 한번 찍히면 3대가 피본다는 소리마저 공공연하게 돌던 예전만큼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검찰은 비대한 권한을 가진 집단이며 또한 권력과 부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막강한 조직이다. 그런 검찰에서도 갑인 사람이 우병우다. 괜히 별명이 우황제, 우갑우가 아닌 셈.
  37. 비공개 소환 요청이 없었다는 짤막한 기사가 나오기는 했으나 그걸 믿을 사람은 이제 없다.
  38. 사실 이 때의 기자들의 질문도 대부분이 답정너식이라 문제가 있다.
  39. KBS 홍진아 기자
  40. 여담으로 해당 기사는 네이버에 올라온 기사인데 첫번째 댓글의 좋아요 수가 역대급이다. 네이버 서비스 시작 후 손에 꼽을 만큼의 좋아요 수(무려 6자리)를 현재 기록 중이다.
  41. 여담으로 이 사진을 찍은 고운호 기자는, 11월 21일부로 객원을 떼고 정기자가 되었다고 한다.
  42. 카메라 업체를 제외하면, 조선일보의 사진 카메라 관련 노하우는 국내 최고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전문성이 뛰어난 곳이다. 실제로 예전에는 사진강좌도 조선일보의 이름으로 진행한 적도 있을 정도다. 자금력 뛰어난 조선일보라서 가능했을 최첨단 저격이다.
  43. 예외적으로 우병우의 인간성을 잘 알고 검찰 사정에도 밝은 최강욱 변호사는, 8월초 정봉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인 전국구에 나와 "박근혜 대통령의 속성상 우병우를 절대로 내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그의 예상이 맞았다.
  44. 당장 성완종 게이트 당시를 생각해보자. 대통령의 측근이자 직전 여당 원내대표(의원직도 유지 중)이며 여야에 두루 인맥을 두고 있어 거의 무적의 방어력을 지녔던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도 잘려나갔다. 아니, 잘려나간 수준이 아니라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이 때는 이완구 전 총리의 어그로(…)도 영향이 컸지만, 우 수석의 경우 훨씬 큰 레벨의 사건에, 그것도 2개나 걸쳐 있다.
  45. 썰전유시민은 "우병우 수석의 자리유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과 이해관계의 일치를 보는 사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우병우 수석이 자리를 오래 유지할 수록 정치적 측면에서 야당 측이 반사이익을 보는 현실을 비꼰 평이다.
  46. 이전 서술은 아래의 발언을 근거로 두며 수사가 잘될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식으로 기대를 갖는 방향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었'이 강조된 이유.
  47. 의무경찰 복무시 보직 특혜 의혹이 있다.
  48. 이후 국조특위 위원들이 단체로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이 법안을 29일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4개 교섭단체 원내대표 합의 없이 직권상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밝혔다.
  49.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가칭)개혁보수신당
  50. 우병우의 승진을 강력하게 제동을 건 사람이 당시 청와대 민적수석실에서 근무하던 조응천이었다고 한다. 조응천은 우병우와 비슷한 TK이고, 서울 법대 출신이지만, 검찰 내부에서 우병우가 오만방자하다는 평판이 지배적이라서, 검찰 정기인사때 우병우의 승진에 제동을 걸었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응천이 청와대에서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으로 잘리자마자 검사장에서 탈락해서 변호사를 하던 우병우가 청와대로 들어온다.
  51. 대학 졸업 전에 사시를 합격하고 군면제 까지 받아서 대학 동기나 선배보다 훨씬 먼저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52. 예를 들어 우병우의 부하(..) 였던 윤석열 검사는 서울법대 79학번이었지만, 낙방을 거듭한 끝에 1990년 사법시험에 늦깎이로 합격했다. 84학번인 우병우보다 7살이나 많지만, 우병우가 87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90년에 검사 임용이 되었으니, 검찰 임관으로서는 윤석렬에 비해 2년 선배가 된다. 우병우는 이런 연장자에게도 반말을 한 것.
  53. 직장에서 보통 후배일지라도 나이가 많으면 나이대접을 해 주는데 우병우한테는 그러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
  54. 서울대 법대 4학년 재학시 '소년급제'를 한 만큼, 다른 동기들에 비해 지청장이 일찍 됐다.
  55. 당시 고령군수였던 이태근은 1947년생으로, 우병우보다 20살 연상이다.
  56. 이순혁, '검사님의 속사정', 2011. 참조.
  57. 박지원은 김대중의 비서실장이자 계파의 확실한 넘버2였다.
  58. 승지 도승지가 와닿지 않는다면, 대략 군대로 치면 국방부장관이 소장(투스타)(...)에게 전화해서 '저기 지금 나오실수 있나요?'하며 물어보고 허가받고 나서 오는지 마는지 듣고 대답(보고)했다고 생각해보자. 행정부의 온갖 업무와 사정과 인사를 담당해 온 우병우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막강했다는 증거.
  59. 그리고 실제 파워도 윗 비서실장이 쩔쩔매던 일화처럼 막강한 권신
  60. 민주사회에서 김영삼 김대중 삼김 시절의 제왕적 대통령 이야기나, 킹무성 킹순실 같은 별명이 절대로 칭찬이 아닌 것 처럼.
  61. 수십년 전문 운전경력의 경찰간부가 아들 운전병 채용에서 '코너링이 남다르다'는 점을 언론 앞에서도 강조하며 놀라워하는 표정으로(...) 대놓고 극찬하며 이유를 댄 것에 대한 패러디. 우병우아들 + 코너링 = 우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