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우편배달부에서 넘어옴)


우정사업본부의 근간이자 상징. 이들은 우편자루에 편지를 들고 배달하는 업무를 하는 우정직(구 기능직) 공무원이다.

1 역사

시작은 조선시대 후반 개화기 우정국이 생겼을 때 처음 생겼으며 '벙거지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당시엔 자세한 주소 없이 어디어디에 가서 어느 집에 사는 사람이라는 말만 듣고 찾아가 배달하는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조선시대의 집배활동은 알려진 게 많지 않다.

근세 이후를 말하자면, 60~90년대 집배원들은 각각 우체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배가방을 든 채 해당 번지를 다 기억하고 가면서 근성으로배달했다. 당시 시민들에게 집배원들은 낯선 사람이 아니였고, 이 때까지도 전화가 많이 보급된 게 아니었기에 당시로선 집배원들의 역할은 많이 중요했다. 또한 이런 이유로 인해 '성실함'을 상징하는 직종이기도 했다.[1]

과거 집배원들은 '우체부'라고 많이 불렸는데 우체부라는 호칭이 '잡부'를 연상시키는 폄칭이라는 의견이 많아 1980년대부터 집배원으로 이들을 부르기를 유도했고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집배원이라는 호칭이 완전히 정착했다.

이 시기부터 집배원들은 소포를 배달했는데, 요즘 같이 택배 시스템이 없었기에 누가 누구에게 소포를 보낸다고 하면 그걸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게다가 우체국 외에 소포를 배달해주는 그런 업체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등기우편 제도는 있었는데, 지금과 다르게 배달 때 힘든 점이 좀 있었다. 수취인 본인이 받는 건 당연하고, 도장도 있어야 했다. 도장이 없으면 등기우편이 눈앞에 있어도 받을 수가 없었다.

90년대 이후부터 집배원들에게 오토바이가 지급되기 시작하면서 좀 더 많은 편지소포를 배달할 수 있게 되었다.

한때 우편이나 전보 등이 전화인터넷 등의 발달로 수요가 줄었기 때문에 이를 처리하는 집배원의 수가 줄어들어 사양직종이 되는게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지만 거꾸로 인터넷의 발달을 통해 우편 대신 택배 배송 업무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2014년 들어 9년만에 집배원을 증원하겠다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2 기타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가제는 '집배원은 벨을 두 번 울린다'였는데, 집배원들의 반대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김영하의 산문집에 실려있다.
  1. 80년대만 해도 해당동네를 담당하는 구역의 집배원의 얼굴을 동네사람들이 전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