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모비스 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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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부산 kt 소닉붐
서울 삼성 썬더스
서울 SK 나이츠
안양 KGC인삼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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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모비스 피버스
원주 동부 프로미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전주 KCC 이지스
창원 LG 세이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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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마스코트
피버스
울산 모비스 피버스
Ulsan Mobis Phoebus
창단1986년[1] / 2001년[2]
구단명 변천기아자동차 농구단 (1986년 ~ 1997년)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97년 ~ 2001년)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2001년 ~ 2004년)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4년 ~ 현재)
연고지부산광역시 (1997년 ~ 2001년)
울산광역시 (2001년 ~ 현재)
모기업현대모비스
구단주정명철
단장정호인
감독유재학
영구결번14, 10
홈구장동천체육관 (수용인원 : 5,535명)
클럽하우스모비스 용인체육관
홈페이지 | 페이스북 | 네이버 포스트
현대자동차그룹 스포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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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모터스KIA 타이거즈울산 모비스천안 현대캐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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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현대건설인천 현대제철현대제철 남자양궁단현대모비스 여자양궁단
현대글로비스 럭비단현대 모터스포츠

1 소개

KBL 챔피언 결정전 최다 우승 팀[3], 정규리그 최다 우승 팀[4], 아시아 프로농구 챔피언십 초대 우승 팀[5]
KBL 역사 상 유일의 챔피언 결정전 3년 연속 우승, 아시아 프로농구 챔피언십 우승으로 한국프로농구 최초의 그랜드슬램을 이룬 팀

KBL의 프로농구단. 연고지는 울산광역시. KBL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매년마다 상위권 후보로 꼽히는 강팀. 그리고 현대자동차그룹 스포츠단 산하 팀들 중 타어강의 마수에서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산하 프로 팀이다.[6]

모비스 농구단의 창단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의 설립과 함께 계열사인 기아자동차해태 타이거즈를 인수, 프로야구단 사업에 뛰어들자 그룹의 정책인 1계열사 1스포츠팀 정책으로 기존에 존재하던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7] 농구단의 주체를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자동차 부품 전문회사 현대모비스(舊 현대정공)로 주체를 이관시켜 재창단했다.[8] 주체만을 이관시킨 것이라 인수했다고 보긴 좀 애매하지만, 형식상으로는 인수 대금을 지불했기 때문에 인수 형식으로 맡은 게 맞다.

일단 기록상으로는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지만,[9] 인수 후 코치진과 프런트가 기아 색채 지우기로 보이는 갖가지 병크를 일으켰기 때문에 농구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비판 항목 참조.

참고로 KBL의 10개 팀 중 가장 늦게 항목이 작성되었다.

2 우승 기록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6회)
1997, 2006-07, 2009-10, 2012-13, 2013-14, 2014-15
KBL 정규리그 우승 (6회)
1997, 2005-06, 2006-07, 2008-09, 2009-10, 2014-15
아시아 프로농구 챔피언십 우승 (2회)
2015, 2016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팀
리그 창설19971997-1998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대전 현대 다이넷
2005-20062006-20072007-2008
서울 삼성 썬더스울산 모비스 피버스원주 동부 프로미
2008-20092009-20102010-2011
전주 KCC 이지스울산 모비스 피버스전주 KCC 이지스
2011-20122012-2013, 2013-2014,
2014-2015
2015-2016
안양 KGC인삼공사울산 모비스 피버스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KBL 정규리그 우승 팀
리그 창설19971997-1998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대전 현대 다이넷
2004-20052005-2006, 2006-20072007-2008
원주 TG삼보 엑써스울산 모비스 피버스원주 동부 프로미
2007-20082008-2009, 2009-20102010-2011
원주 동부 프로미울산 모비스 피버스부산 kt 소닉붐
2013-20142014-20152015-2016
창원 LG 세이커스울산 모비스 피버스전주 KCC 이지스

3 역사

3.1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97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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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Pusan Kia Enterprise

3.1.1 1997 시즌

프로 팀으로 창단한 후 원년 시즌이었던 1997 시즌 정규리그 1위로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챔피언 결정전에서 원주 나래 블루버드(현 원주 동부 프로미)를 4승 1패로 꺾고 원년 우승을 달성했다.[10]

3.1.2 1997-98 시즌

1997-1998 시즌에는 정규리그 3위로 마쳤으나 정규리그 2위였던 경남 LG 세이커스(현 창원 LG 세이커스)를 따돌리고 2년 연속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2연패를 노렸지만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대전 현대 다이넷(현 전주 KCC 이지스)에 패배, 준우승에 그쳤다. 부상 투혼을 보여줬던 허재는 비록 팀은 준우승했지만 KBL 챔피언결정전 MVP를 획득하기도 했다.

시즌 후 최인선 감독은 기술고문으로 추대됐고, 박인규 코치가 새롭게 사령탑에 앉았다.

3.1.3 1998-99 시즌

그러나 1998-1999 시즌을 앞두고 허재가 팀과 불화를 일으키며 제이슨 윌리포드와 정인교를 상대로 나래에 트레이드되었고,[11] 모기업 기아자동차현대그룹에 인수되는 등 시즌을 앞두고 뒤숭숭한 소식만 들려오게 되었다.[12] 하지만 그게 다 일단락되고 보니 PG 강동희, SG 정인교, SF 김영만, PF 제이슨 윌리포드,[13] C 클리프 리드라는, 개사기 정도가 아니라 치트 수준(...)의 팀이 완성되었고,[14] 정규리그 2위를 차지. 3년 연속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현대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 시즌을 정리해 보면 젊은 감독이 늙은 팀을 맡은 것이 준우승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김영만을 제외한 강동희, 정인교, 그 외 벤치 멤버들이 나이가 많이 들어 시즌 후반에 체력적인 안배가 필요했는데, 젊은 박인규 감독은 시즌 막판까지 주전들을 활용하여 경기를 했고, 결국 결승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또한 허재의 공백으로 팀의 명확한 중심점이 없다는 것 역시 정신적으로 흔들리게 된 원인. 다만 노장들과 스타들을 잘 활용하여 팀을 결승까지 끌고 간 것은 박인규 감독의 기량이므로 노련미가 부족했지 무능은 아니었다.

3.1.4 1999-2000 시즌

하지만 1999-2000 시즌을 앞두고 박인규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는 대신, 농구계의 검은 손 박수교 감독이 취임하며 용병을 전원 교체했다. 정규리그 6위로 시즌을 마치며 6강 플레이오프에 합류했으나, 1회전 탈락.

3.1.5 2000-01 시즌

이 시즌은 기아자동차의 이름으로 치른 마지막 시즌이었는데, 팀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며 정규 리그 9위라는 처참한 기록을 내고 말았다. 특히 용병 센터였던 듀안 스펜서는 박수교 감독과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시즌 막판 박수교 감독과 벤치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등(...) 깽판을 치다가 그대로 퇴출되고 말았다.

3.2 부산을 떠나 울산으로

그 이후 울산광역시연고지를 옮겼고, 현대자동차그룹이 야구단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게 되어 KIA 타이거즈로 팀 명칭을 바꾸게 됨과 동시에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자동차 부품 전문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로 구단이 이관되어[15][16] 기아자동차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기아 농구단은 농구대잔치 시절 기아 왕조라는 이름과 더불어 원년 우승의 위업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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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로 연고지를 옮겼던 결정적인 이유는 부산광역시의 미비한 지원 탓이었다. 당시 홈 코트로 사용하던 사직실내체육관의 경우 농구 시즌인 한겨울에도 불구하고 난방을 제대로 틀어주지 않는 등 지원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았다. 이로 인해 기아 선수들은 체육관 시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모비스로 바뀌면서 부산 연고 농구 팀이 없다가 2003년 코리아텐더가 여수시에서 부산광역시로 연고지를 옮기고 KTF에 인수된 이후에는 한동안 금정체육관을 홈 코트로 이용하였다.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한참 잘 나가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부산광역시 연고 프로 스포츠의 리즈 시절이었다. 당시 K리그 팀 대우 로얄즈는 물론이고, 롯데 자이언츠도 1999년에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등 부산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팀들은 전부 잘 나갔다. 대신 우승은 못 했지만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로 창단한 첫 시즌인 2001-02 시즌에는 결국 꼴찌를 하고 말았으나[17] 2002-03 시즌에는 6강 플레이오프에 들며 기대를 품게 했다. 허나 2003-04 시즌에 다시 꼴찌. 이후 기아 농구단 출신이자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감독이었던 유재학 감독을 영입하고, 2003-04 시즌에 전주 KCC 이지스와의 용병 임대 트레이드 (R.F. 바셋 - 무스타파 호프) 조건으로 받은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해 양동근을 전체 1순위로 지명하는 등 의욕적으로 시즌을 맞이했다. 이 때 팀명도 오토몬스에서 피버스로 바꿨다.

3.3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4 ~ 현재)

3.3.1 2004-05 시즌

팀명을 바꾸고 맞이한 첫 시즌이자 유재학 감독 부임 첫 해인 2004-05 시즌. 동시에 양동근의 프로 무대 데뷔 시즌이기도 했다. 7위로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은 실패했지만 양동근이 신인상을 수상, 오토몬스 시절의 암흑기를 벗어나 명가 재건의 희망을 확인했던 시즌이기도 했다.

3.3.2 1차 전성기 (2005 ~ 2010)

3.3.2.1 2005-06 시즌

2005-06 시즌 전에는 전 시즌과는 달리 희망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유재학 감독이 팀을 1년동안 맡아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전술이 팀에 녹아들었고 양동근, 김동우, 우지원 등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크리스 윌리엄스라는 용병에이스도 얻어 희망적인 시즌 성적이 예상되었다. 2005-06 시즌에는 삼성, 동부와 엎치락덮치락하다가 양동근과 크리스 윌리엄스의 맹활약으로 막판 6연승을 기록하여 정규리그 우승을 이루었다.[18] 논란이 있지만 양동근은 서장훈과 정규시즌 MVP를 공동으로 수상했다. 시즌 성적은 36승 18패.

더불어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으나 서울 삼성 썬더스챔피언결정전 사상 최초로 0승 4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이때 당한 것은 7년 후 서울 SK와 원주 동부에게 그대로 돌려주었고, 삼성에게는 KBL 역대 특정 팀 상대 최다 연승 기록을 세우면서 되갚아주었다. 가드 및 용병 매치업은 나쁘지 않았으나 서장훈을 막을 수비수가 이창수밖에 없었으며, 경험 부족도 한몫했다.[19] 이 시기 원정 유니폼은 진한 파랑색 바탕에 붉은 불새 이미지가 그려져 있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스윕을 당하기는 했지만 유재학 감독 부임 이후 첫 정규리그 우승으로 유재학 감독으로서도, 팀의 중심선수였던 양동근으로서도 한단계 발전의 계기가 된 시즌이었고 실제로 유재학 감독도 이번 시즌에 대해 지금 부족한 점을 다음에 더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감을 말했다.

3.3.2.2 2006-07 시즌

시즌 전에는 당연 우승 1순위 후보로서 주목을 받았는데 크리스 윌리엄스가 건재하고 양동근이 발전된 모습을 보일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였다. 비록 개막 3연패를 하면서 초반에 삐끗하나 싶었지만 2라운드에서 미친 상승세로 시즌 성적은 전 시즌과 똑같은 36승 18패. 이후 오리온스를 3연승으로 승리,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부산 KTF 매직윙스(現 부산 KT 소닉붐)를 3승 1패로 앞서가다가 5,6차전을 내줬고 간신히 7차전에서 승리,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통합우승을 이루며 다시 한번 우승한다. 양동근은 플레이오프 MVP 수상. 2006-07 시즌 우승으로 작년 통한의 플레이오프 준우승을 이겨내고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양동근은 점점 안정된 리딩이 장착되었고 부족한면은 크리스 윌리엄스가 채워주며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우지원이 주전에서 내려와 식스맨으로서 팀에 공헌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했던 장면.[20][21]

3.3.2.3 2007-08 시즌

2007-08 시즌에는 양동근, 김동우 등 주전 선수들의 군입대와 외국인 선수 선발 실패로 9위에 머물렀다.[22] 이 때 뛰었던 키나 영과 케빈 오웬스는 부진한 플레이로 인해 각각 나영이, 오 웬수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 시즌에 1라운드 10픽으로 뽑은 대졸 신인 함지훈을 발굴하여 팀의 미래로 키워내는데 성공했다.[23]

3.3.2.4 2008-09 시즌

시즌 전에는 전망은 크게 좋지는 않았다. 양동근은 시즌 말미에 복귀하고 아직 퍼즐들이 완성되지않았다라는게 중론이었다. 그나마 브라이언 던스톤조차도 대학 졸업이후 첫 프로라는 점으로 인해 용병에서도 밀릴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정규시즌 시작이후 꾸준히 상위권에 진입했다. 김현중이 제 역할을 잘해줬으며[24] 김효범이 포텐셜이 완전히 폭발하여 페이스업, 장거리포, 돌파 등 팀의 주포로서 완벽하게 능력을 개화하여 전성기 시작을 알린 해가 되었다. 브라이언 던스톤도 블록슛을 앞세워 골밑에서 밀리지않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함지훈도 쿼터제를 이용하여 출전 시간동안 용병급 존재감을 보여줬다. 덕분에 팀은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다만 역대 1등 팀 중에서 역대 최악의 승률이었던 점은 넘어가자.(35승 19패)[25][26] 하지만 플레이오프 4강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에 1승 3패로 패해 정규리그 우승팀이 플레이오프 결승이라 할 수 있는 KBL 챔피언결정전에 못 올라가는[27] 최초의 사례를 만들기도 하였다. 정규시즌 말미에 김현중과 오다티 블랭슨이 시즌아웃 부상을 입은 것이 치명적이었다. 김효범이 시리즈 내내 맹활약을 했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팀을 승리로 이끌기가 힘들었다. 플레이오프 결승전 진출은 실패했지만 김효범이 성장하여 팀의 에이스 카드가 된점은 유재학 감독에게 상당한 도움이 된 시즌이며 함지훈 역시 다음 시즌 풀타임 주축으로서의 도약을 준비하는 시즌이 되었다.

3.3.2.5 2009-10 시즌

2009-10 시즌을 앞두고 양동근이 제대를 하며 팀에 합류, 양동근-김효범-백업 선수-함지훈-던스톤 이라는 후덜덜한 라인업이 완성됐다. 특히 공격력, 수비력, 3점, 돌파, 리딩 등 모든 면에서 약점을 찾기 힘든 양동근, 김효범의 백코트는 말 그대로 상대 백코트를 밀어버렸다.[28] 또한 함지훈과 던스톤의 프론트코트 역시도 상대팀에게 엄청난 압박을 선보였으며 그 중에 함지훈은 팀의 1옵션으로 맹활약하며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대체용병으로 데려온 애런 헤인즈도 경기가 안 풀릴 때마다 교체 선수로 들어와 뛰어난 득점력으로 빈틈을 메꿔주었다. 전년도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엔 실패 했지만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던 팀에 이렇게 날개가 달리면서 2007년에 이어 다시 한번 정규리그 2연패에 성공했다. 참고로 KT와 승률이 동률(40승 14패)이었고 상대전적도 동률이었지만 득실차 우위로 순위가 갈렸다. 결국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여 전주 KCC 이지스와 맞붙어 4승 2패로 통합우승을 차지하였다. 함지훈은 정규시즌에 이어 플레이오프 MVP까지 수상했다. 이 시기 원정 유니폼은 빨간 바탕에 금색 테두리. 그런데 2009-10 시즌을 끝내고 함지훈이 입대했다. 덕분에 유재학 감독은 다음 시즌 함지훈과 던스톤없이 시즌 준비를 해야하는 상황에 놓여버렸다.

3.3.2.6 평가

1차 전성기는 1차우승과 2차우승으로 나눌 수 있다. 양동근, 크리스 윌리엄스가 주축이 된 2005-2007 시즌, 양동근, 함지훈, 김효범, 브라이언 던스톤이 중심이 된 2008-2010 시즌이 있다. 특히 5년동안 무려 4번의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만큼 장기전에선 안정적인 경기력을 꾸준히 보여줬었는데 1차땐 크리스 윌리엄스가 골밑에서 공격하며 비어있는 선수들에게 볼을 배급해주었고 이때 양동근은 역시도 슈팅가드로서의 롤을 많이 맡았다. 2차땐 양동근은 완벽한 포인트가드였으며 함지훈, 던스톤이 1~2 옵션으로 골밑이 비중이 커졌고 경기가 안풀릴때 김효범을 해결사로 두어 해결시켰다. 다만 4번의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지만 KBL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가지 못한 시즌도 있었고 2006년엔 삼성에게 스윕당하는 등 큰 경기에서의 경기력은 좋았다라고 하기는 힘들다. 2007년 우승도 7차전의 대접전이었고 정규시즌 우승팀임에도 결승전에 못간 2009년은 말할것도 없다.

3.3.3 정비기 (2010 ~ 2012)

3.3.3.1 2010-11 시즌

2010-11 시즌 시작과 동시에 유재학 감독 및 양동근이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 차출되며 임근배 코치가 팀을 맡아 지휘했지만, 용병 쪽박 및 전년도 대비 떨어진 팀 전력으로 인해 한동안 신나게 꼴찌를 달리다가, 같이 막장을 달리던 대구 오리온스인삼공사가 계속 나가 떨어지며 2011년에는 SK와 승률이 동률이지만 상대전적에 밀려 8위를 마크했다. 이 시즌 원정 유니폼이 또 바뀌었는데, 연한 하늘색으로 타 팀과는 차별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3.3.3.2 2011-12 시즌

2011-12 시즌 초에는 알렉산더 존슨 원맨팀인 SK, 6강 단골 LG 등과 치열한 6강 경쟁을 했으나,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용병 테렌스 레더가 합류하고, 시즌 막판에는 함지훈이 제대하면서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모했다. 초반에는 연패도 잘 안했지만 연승도 잘 못했던 팀이[29] 7연승을 구가하며 2월 16일자로 6강을 확정한 뒤, KT와 만나려는[30]전자랜드마저도 제치고 5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4위 KCC와 5판 3선승제 6강을 치뤘다. 시즌 전체적으로 KCC의 높이에 고전했던 모비스였는데 이 6강 시리즈에서는 오히려 모비스의 레더-함지훈 조합이 KCC의 왓킨스-하승진 센터라인을 역으로 농락해버렸다. 다만 시리즈의 스윕 자체는 KCC 가드 전태풍이 부상으로 이탈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4강의 상대는 정규리그 1위 동부였는데, 매치업 상 열세로 지적된 김동우(vs윤호영)의 구멍을 막지 못하고 첫 경기는 땄지만 내리 3연패로 탈락, 그 결과 1승 3패로 시리즈를 내줬다. 다만 함지훈이 김주성을 상대로 포스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경기에서 동부가 크게 고전했는데, 노출된 이 김주성의 구멍을 극대화하여 결승에서 KGC인삼공사가 동부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게 된다.

모비스는 이 시즌에 시즌 초 고전을 했으나 결국 1위와 플레이오프에서 맞붙는 드라마틱한 시즌을 보냈고, 결국 이 때의 경험은 울산 모비스 왕조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3.3.4 2차 전성기, 최초의 챔피언 3연패 달성 (2012 ~ 2015)

3.3.4.1 2012-13 시즌

2012-13 시즌 준비과정에서 전력이 더욱 상승했다. 혼혈드래프트에서 문태영을 지명했고, 가드진에선 특급신인 김시래가 합류하며 모비스 역대 최강의 전력을 구축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만 설자리를 잃은 팀의 프랜차이즈(?) 김동우가 SK로 이적하였다.

비록 고질적인 외곽 3점슛 부재에 시달리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공격과 수비 모두 준수한 성적을 내며 2위 자리를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위가 워낙 막강해서 3월 7일에 SK를 이기고 4강 PO 직행을 확정하는 등 끈질기게 추격했으나 결국 3월 9일에 모비스는 최후의 발악 동부전을 승리했지만 SK도 KCC에 이기면서 모비스는 2위를 확정했다. 모비스는 2위 못박고 SK는 홈에서 우승 못하고[31] SK가 정규시즌에 워낙 독주해서 그렇지 모비스도 평범한 시즌이었다면 1위을 했을 성적이었다.

그러나 12일 삼성과의 맞대결에서는 4쿼터 동안 98점을 득점하였고 14일 KT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여 팀 창단 이후 최다 연승인 11연승을 기록하는 등 신기록 행진을 이어나가며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전자랜드와의 맞대결에서도 초반에 끌려가다가 90-71로 대역전승을 거두며 연승으로 시즌을 마쳤다. 최종 성적은 41승 13패. 이 팀만 아니었으면... 4강에서의 상대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상대전적은 3승 3패로 팽팽하고, 리카르도 라틀리프-로드 벤슨의 용병조합이 포웰-카스토보다는 조금 앞서지만 모비스가 시즌 내내 슈터 부재에 시달린 걸 감안하면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는 페이크고 3전 전승을 거두며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1위였던 SK를 상대로 내리 네 경기를 이기며 2009-10 시즌 이후 3년만에 우승을 달성했다. 최종순위가 모비스 1위, SK 2위가 아닌건 함정 모비스는 PO에서 역대 두 번째로 7전 전승 우승을 거두면서 확실한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1월에 LG와 있었던 로드 벤슨 트레이드의 모비스 측 조건이 3년간 1라운드 신인픽 or 김시래였는데 LG가 김시래를 선택한것에 따라서 4월 18일(우승 다음날)자로 김시래가 LG로 트레이드 되었다.

3.3.4.2 2013-14 시즌

비록 김시래가 LG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2012-13 시즌 KBL 챔피언결정전의 승리를 이끈 용병인 로드 벤슨과 준수한 센터인 리카르도 라틀리프, 아직도 건재한 양동근, 한참 전성기인 함지훈과 모비스의 팀컬러에 녹아든 문태영이 존재했고, 백업 빅맨을 제외하면 수준급의 뎁스를 갖추었기 때문에 2013-14 시즌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전문가와 팬들 모두에게 꼽혔다.

이후 개막 2연전을 서울 삼성 썬더스부산 KT 소닉붐을 맞아 내리 2연승을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10월 15일 KCC와의 전주 원정경기에서는 58:101로 승리하며 역대 최다 점수차 승리와 시즌 16연승[32]으로 최다연승 타이 기록을 만들어냈다. 10월 19일 오리온스전에서 마침내 17연승을 이루어냈으나... 10월 23일 안양 KGC인삼공사의 13-14 시즌 첫 승의 제물이 되면서 거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고춧가루를 얻어맞았다.

그 경기를 시작으로 전자랜드와 SK에 패배하면서 3연패를 했으나, 다시 4연승을 달리면서 2위로 상승했다. 그렇지만 주전 포인트가드 양동근의 부상은 팀에 있어서 우려될 부분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대성의 등장으로 그 공백을 최소화했으며 양동근이 돌아온 이후에도 선두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받쳐줄 식스 맨들의 부족과 SK전 열세[33]는 약점으로 꼽히지만 삼성과 동부, KT를 2시즌 동안 호구로 잡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선두권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1월 30일 SK를 상대로 연장승부 끝에 97:85로 이기며[34] 단독선두가 되었으며 2월 1일 LG에게도 승리하면서 단독 선두를 유지했다. 다만 앞에서도 말했듯 SK와 상대전적이 1승 4패이기 때문에 만약 공동 1위로 동률이 되면 2위로 시즌을 마치기 때문에 승수 쌓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월 22일 SK와 다시 연장 접전 끝에 이기면서 단독 선두가 되었다. 그 이후 SK가 나가떨어지고 팀이 10연승을 하면서 3위로 떨어질 우려는 하지 않게 되었으나 LG 역시 갑자기 11연승을 하게 되자 정규시즌 우승의 분수령이었던 3월 7일 LG와의 홈경기에서 4점차 이내로 져야 할 것을 13점차로 패하면서 상대전적이 3승 3패가 되었고 득실차로 인해 LG가 최종전을 지기를 바래야하는 상황이 되었고, 3월 9일에 벌어진 최종전에서 KCC에게 대승을 거두었지만 LG도 kt를 이기면서 13연승에 성공하여 2년 연속 정규시즌 준우승을 기록했다.

2위로 직행한 플레이오프에선 3위 SK를 맞아 울산 2차전서 큰 리드를 날려먹고 역전패하긴 했으나 기본적인 전력의 우위를 앞세워 3승 1패로 비교적 무난하게 챔프전에 진출하였다. 다만 상대인 LG는 경험부족 따위 개나 주라는 듯 KT 상대로 3연승으로 진출한지라[35] 휴식을 더 많이 취했고, 정규리그에서도 3승 3패로 팽팽했던지라 승부는 오리무중이 될 전망. 발목을 다쳐 플레이오프에서 아직까지 못나오고 있는 이대성의 출장도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1차전을 3점차로 이기고 2, 3차전을 내주었지만 문태종데이본 제퍼슨에 대한 파해법을 찾아내 4차전을 대승으로 가져갔고, 로드 벤슨이 5차전, 이대성이 6차전 막판 결정적인 자유투를 성공시키며 2연패에 성공했다. 이 2연패는 전주 KCC 이지스가 대전 현대 다이냇이었던 1997-98 ~ 1998-99 시즌 연속 통합우승 이후 2번째이며, 감독인 유재학 또한 신선우의 뒤를 이어 2연패를 이룬 두 번째 감독이 되었다. 2012-13 시즌의 데자뷰

3.3.4.3 2014-15 시즌

시즌을 앞두고 함지훈, 박구영과 재계약을 큰 잡음없이 끝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로드 벤슨이 몸 관리 부실, 코치진과의 마찰로 퇴출되고 대체용병으로 아이라 클라크를 데려왔다. 이후 신인 드래프트에서 10순위로 한때 로터리픽 지명감으로도 뽑힐수 있다던 경희대의 포워드 배수용과 11순위로 명지대 김수찬을 지명했다. 팬들은 모비스와 유재학 감독이 함지훈을 A급 빅맨으로 키워낸 전력이 있기에 배수용과 김수찬에게도 나름 기대를 거는중. 하지만 로드 벤슨이 갑자기 퇴출된지라 조직력과 높이에 대한 우려가 있다. 개막전에서 창원 LG 세이커스에게 패배했지만 이후로 KGC와 KCC, SK를 꺾으며 3연승을 달렸다. 이대성의 부상 장기화와 함지훈의 부상에도 일단 나쁘지 않은 모습. 그리고 초반 8연승을 달리던 오리온스가 주춤하자 1위로 올라섰고, 12월 5일 기준 18승 4패를 찍으며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번시즌 모비스 경기에서 특기할만한 사항이 하나있는데, 바로 이기든 지든 계속 골을 넣으려고 하는거다. 이기고있으면 점수차를 더 크게 벌리려고 가비지타임에도 후보들이 계속 슛을 시도하고, 지고있을때면 정반대로 실점차를 줄이려고 슛을 시도한다. 이유가 지난시즌에서 골득실차로 크게 피본기억이 있기때문에 올시즌에는 골득실차에서 손해를 안보려고 달려드는 셈. 이런 방식을 라이트팬들은 좋아했지만 농구계나 일부 골수팬들에게서 경기 과열로인한 부상우려, 이미 승부가 갈렸는데도 확인사살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 연패에 빠지며 잠시 2위로 내려앉았지만 SK를 잡으면서 다시 선두로 복귀, 그러다가 LG에게 패하면서 2위로 내려앉았다. 1월 말 기준으로 SK에게 1경기 차로 뒤져있지만 상대전적에서 4승을 따내 우위에 있기 때문에 선두 경쟁은 여전히 안갯속에 싸여 있다. 과연 정규시즌 우승과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동시에 하는 통합 우승을 5시즌만에 재현할 것인지가 팬들에게 관심사가 되고 있다. 모비스는 2월 8일에 삼성전 19연승을 달성하면서 1위를 탈환했다. 그리고 2월 28일에는 삼성에게 85-52 대승을 거두면서 매직넘버를 1까지 줄였고 막판 원주 동부 프로미의 추격을 뿌리쳤다. 결국 3월 1일에 동부가 SK에게 패하며 5년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지난시즌 챔결 상대인 LG와 다시 매치업이 이루어졌으나 제퍼슨 없는 LG가 끈질기게 5차전까지 끌고가는 접전 끝에 양동근의 활약으로 역사상 4번째로 3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전신 시절을 합치면 18년 만에 원주 동부 프로미를 상대하게 되었다. 상대 동부는 3위 SK를 3대0으로 박살낸 전자랜드와의 5차전 끝에 간신히 3승 2패로 올라와 그래도 휴식에는 이득을 보았다. 일단 홈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1, 2차전을 모두 쓸어담으며 3연패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는데, 2차전에서 전반에 8점차 뒤지던 걸 단 2분만에 뒤집은 퍼포먼스는 동부 선수들에게 멘탈붕괴를 가져다주었다. 원주에서 열린 3차전도 3쿼터에 1점차까지 쫓겼지만 4쿼터에 더 달아나며 3연승을 거두었다. 삼성 라이온즈, 기다려!!

그 뒤 4월 4일, 원주 동부에게 81-73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5년만의 통합 우승과 한국 프로농구 사상 최초 KBL 챔피언결정전 3연패를 달성했다. 양동근은 평균 20득점 4.8어시 4.8리바라는 자신의 챔프전 커리어하이 기록을 35세에 남기며, 생애 2번째 통합 MVP를 받게 된다. 아울러 결승전에서 4전 전승 우승을 2번째 기록했다.

3.3.5 2015-16 시즌

2014-15 시즌 종료 후 문태영서울 삼성 썬더스로 이적하였고, 이대성상무로 입대, 박종천은 은퇴 후 부산 KT 소닉붐의 코치로 합류하는 등 선수 유출이 발생하였다. LG로부터 백인선을 영입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할 전력보강이 없는, 그야말로 리빌딩을 위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10순위 리오 라이온스, 11순위 커스버트 빅터를 선발하였다.

시즌 전 개최된 2015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서는 부산 KT, 동국대, 연세대에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에 올랐으나 대학최강 고려대에 석패하면서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 KBL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한 2015 아시아 프로농구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다시 한번 원주 동부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MVP는 함지훈.

  • 9월 12일 홈 개막전에서는 원주 동부 프로미에 66 : 77로 패했다.
  • 9월 13일 서울 SK 나이츠와의 경기에서는 1쿼터와 3쿼터에 큰 점수차를 만들면서[36] 87 : 58로 대승을 거두었다.
  • 9월 18일 2승 무패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홈경기에서 68 : 80으로 패했다. 양동근의 빈자리가 여실히 느껴지는 경기였다.
  • 9월 20일 안양 KGC인삼공사전에서는 2차 연장 끝에 99 : 97로 승리. 함지훈은 리바운드 1개 차이로 트리플더블을 놓쳤다.
  • 9월 25일 전주 KCC 이지스에게 673일만에 졌다. 스코어는 73 : 86으로 모비스는 2013년 11월 23일 이후로 KCC전 10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이제 삼성만 남았다 참고로 21연승에 도전하는 삼성전은 10월 3일에 열릴 예정이다.
  • 9월 27일 부산 kt 소닉붐과의 원정 경기에서 커스버트 빅터와 김종근, 송창용의 활약으로 83 : 73으로 승리. 지난 KCC전에서 부상을 당한 리오 라이온스는 결국 시즌아웃이라고 한다. 그리고 팬들은 '이번에도 시계성님 데려와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9월 29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전에서는 함지훈과 리오 라이온스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74 : 83으로 역전패. 아이라 클라크는 다음 경기부터 투입될 예정이라 한다.
  • 10월 3일 서울 삼성 썬더스전에서 경기내내 끌려가다 4쿼터 26.4초를 남기고 빅터의 역전 3점슛이 들어가며 83 : 82로 승리. 이날 승리로 삼성전 21연승에 성공했다.
  • 10월 4일 창원 LG 세이커스전에서는 16점-8리바운드-8어시스트를 기록한 함지훈의 활약으로 79 : 61로 승리, 이번 시즌 첫 연승에 성공했다. 1라운드 결과는 5승 4패(패-승-패-승-패-승-패-승-승)로 양동근이 빠졌다는 걸 감안하면 괜찮은 성적. 그리고 1라운드에서 연패를 당하지 않았던 팀은 8승 1패로 1위를 차지한 오리온스와 모비스 둘 뿐이다. 양동근이 대표팀에 나가있는 동안 생긴 공백은 함지훈이 메워주었는데, 1라운드 종료 시점 기준으로 함지훈은 팀의 국내선수들 중 경기당 평균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등 다섯 가지 기록에서 전부 1위를 차지했다.
  • 10월 10일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양동근이 복귀하였다. 복귀 첫 슈팅이 3점슛으로 메이드되었다. 클라크가 1쿼터 3파울을 먹었지만 상대용병의 엔트리 패스를 잘 막아주었고, 빅터가 단신용병임에도 적극적인 골밑플레이를 보여주어 연승에 성공했다. 특히 클라크는 호쾌한 덩크슛과 앨리웁 레이업을 선보이며 중계진의 감탄을 자아냈으며, 함지훈과 전준범은 한결같은 모습. 김종근은 양동근 복귀 후에도 볼운반에 많이 기여하며 플레잉타임 대비 체력세이브에 도움을 주는 등 긍정적인 장면이 많이 보였던 경기였다. 김수찬이 종료 5초 전에도 악랄하게 스틸을 해서 레이업을 꽂는 등(...) 99점을 넣으며 대승했다.
  • 10월 14일 동부와의 원정경기에서 76-80으로 승리했다. ‘함지훈 15P 12A 8R’ 모비스, 동부 꺾고 4연승
  • 10월 18일 삼성과의 원정경기에서 61-74로 승리했다. 모비스는 2012년 1월 14일부터 삼성만 만나면 이기고 있다. 함지훈에 당한 삼성…모비스전 22연패 수렁
  • 10월 24일 LG와의 원정경기에서 75-87로 승리했다. 함지훈은 18득점 10어시스트 5리바운드로 트리플더블 급 활약을 매경기 반복하고 있고, 송창용과 천대현이 26점을 합작하며 큰 보탬이 되었다. 이날 아이라 클라크 “KBL 팀들 왜 날 안 뽑는지 의문”이라는 빵터지는 기사가 나왔다. 유재학 감독도 경기 전 인터뷰에서 클라크가 매년 오다보니 적응이 순조롭고 작년보다 개선된 점도 보인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 10월 25일 KGC와의 홈경기에서 102-82, 20점차 대승, 7연승에 성공했다. 시계성님이 29득점으로 맹활약했고 팀 100점을 찍었다.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펼치며 1위 오리온스와의 승차를 2.0게임으로 줄였다. “나 안 뽑은 팀들 보고 있나?” 클라크 29점 작렬
  • 10월 31일 KT와의 홈경기 역시 86-68로 대승을 거두었다.
  • 11월 1일 KCC와의 원정경기는 79-82로 패하면서 9연승이 좌절되었다.
  • 애런 헤인즈가 부상당하며 페이스가 떨어진 오리온스를 뒤에서 쫓아와서 결국 12월에 따라잡았다. 12월 11일 오리온스와의 맞대결에서 78-59로 대승을 거두며 시즌 개막 이후 처음으로 단독선두로 뛰어올랐다.
  • 12월 13일 동부와의 맞대결에서 83-76으로 승리하며 시즌 상대전적을 2승 2패로 맞췄고, 오리온스가 LG에 74-75로 패하면서 경기차를 2게임으로 벌렸다.
  • 12월 17일 경기에서 1437일만에(2012년 1월 10일 이후 처음) 서울 삼성 썬더스에 패했다. 게다가 한 관중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바나나우유를 코트에 던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 그 이후 연승모드였지만 2016년 1월 2일 서울 SK 나이츠와의 원정경기에서 90:70으로 탈탈 털리며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 날 모비스는 단조로운 공격 패턴만을 고집하다가 SK의 클러치 3점슛에 여러 번 당했고 중요한 3쿼터에는 형편없는 야투율로 점수차이를 따라잡기 힘들게 만들고 말았다. 이로서 SK전 8연승 행진은 마감되었다.
  • 1월 3일 서울 삼성 썬더스와의 백투백 경기에서 경기종료 2.8초전 빅터의 동점 스텝백 3점슛과 연장전 상대방의 연속 실책에 힘입어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돌상민 소리를 듣는 상대팀 감독 덕분에 연패를 끊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기력이었다. 선수들의 극심한 피로도를 어떻게 풀 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 1월 올스타전을 전후로 팀에 과부하가 났다. 양동근이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풀타임을 뛰어야 하는 앞선의 고질병부터 시작해서, 클라크-빅터 듀오의 득점 생산 방식 노출에 따른 타 팀의 철저한 대비, 함지훈의 지나치게 이타적인 플레이, 송창용 박구영 등 백업의 자잘한 부상이 겹치면서 1월 마지막 주에는 오리온에게 공동선두를 허용하였다. 하지만 1월 30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와의 1위 맞대결에서 신승하면서 다시 단독선두가 되었다. 오리온은 지난 경기와 이번 경기 모두 모비스를 상대로 1명의 외국인선수, 조 잭슨만 기용했다. 부상 대체 임시용병 기간 연장에 따른 규칙적용 때문이다. 표면적 용병교체이라는 묘수를 꺼내들었으나 KT에서 존슨을 정식 대체외국인선수로 가승인을 신청하면서 오리온에게 빅엿을 먹이고 말았다. 물론 KT의 잘못은 아니다. 헤인즈를 버리지 못하는 오리온의 현실일 뿐. 아무튼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 단독 1위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 2월 2일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정말 핵노답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반 1,2쿼터에 19점밖에 넣지 못하였고 결국 66대 49로 대패하였다.
  • 2월 7일 경기 전까지 2위 그룹과 0.5경기 차이로 좁혀졌으나, 7일 LG전에서 상대 용병 트로이 길렌워터가 경미한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또 용병이 한 명 밖에 없는 팀을 상대하였고, 신승하면서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올 시즌 모비스는 상대용병이 1명뿐인 상태로 5번이나 만났고, 모두 이겼다. 약간은 운이 작용하는 부분. 하지만 2월 8일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빠진 삼성 썬더스를 상대로 고양 오리온스가 완패하며 선두싸움에서 조금 밀려난 것을 보면 운도 최선의 노력이 따라줘야 함을 알 수 있다.
  • 2월 9일 KT와의 명절 낮경기에서 완패, 같은 날 연승을 달린 KCC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 2월 13일 오리온과 2위 쟁탈전을 벌였다. 이날 경기는 KBS 1TV 중계로 인해 15:05에 시작했다. 2쿼터 종료 직전에 14:00부 경기였던 전주 KCC의 9연승이 전해지면서 이 경기는 2,3위 싸움으로 고정되었다. 경기는 1쿼터 박빙이었으나 용병 2인 동시 출전하는 2쿼터 이후 모비스에게 급격하게 기울었다. 오리온 가드 조 잭슨은 이날 0득점 0리바운드0어시스트 7턴오버 3파울이라는 어마무시한 성적을 기록. 헤인즈는 39득점으로 모비스의 골망을 맹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비에서 완벽한 구멍이었다. 이날 헤인즈는 같은 장신사이즈인 아이라 클라크를 막을 엄두조차 못 냈고, 단신용병인 커스버트 빅터에게도 골밑에서 휘둘리는가 하면 함지훈의 하이포스트 1:1에 그대로 뚫리는 대참사를 연출했다. 한편 이날 모비스는 앞선에서 풀코트 프레스를 꾸준히 시도했는데, 오리온의 국내 가드가 워낙 막장인 탓에 주효한 전략이 되었다. 양동근 28득점은 덤.
  • 모비스는 최종전까지 승리하며 5연승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선두 KCC가 동시간에 12연승을 달성하면서 모비스는 12-13 시즌과 마찬가지로 1위와 승차 없이 상대전적 열세로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게 됐다. 이튿날 열린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양동근이 생애 4번째 MVP를 수상하였으며, 리그 베스트 5, 어시스트 상을 수상하였다. 함지훈은 시즌 내내 어시스트 1위를 차지하다가 마지막 경기에서 양동근에게 뒤집혔지만 역시 리그 베스트 5에 들어갔고 MVP 투표에서도 2표(...)를 얻었다. 이번 시즌 모비스는 직전 3년 간 득점리바운드 팀내 1, 2위를 책임져 준 에이스 둘을 잃은 채 시작해야 했다. 가드진에서도 전폭적인 투자를 받던 이대성이 군입대로 빠졌고, 포워드진에서도 박종천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네 자리 모두 대체재가 없는 상태로 시즌을 치렀다. 모두들 톱 클래스의 팀은 아니라고 했고, 감독 본인은 여기에 엄살도 곁들여 6강만 가도 좋겠다고 한 시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L 최초로 4시즌 연속 4강 직행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양동근이 놀라운 활약을 보인 것도 있고, 상대 용병이 빠진 상태에서 운 좋은 승리를 여러 차례 따냈으며, 유재학 본인의 역량이 뛰어난 것도 선전의 한 이유겠지만, 시선을 바꿔 본다면 타팀 사령탑의 전략적 부재와 총체적 무능도 한몫 한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 2위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했기 때문에 약 10일간의 휴식 후 3위 오리온-6위 동부의 승자와 4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상대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동부를 3:0으로 꺾고 올라온 고양 오리온. 고양 오리온은 김승현과 피트 마이클이 있던 2006-07 시즌 이후 9년만에 4강 플레이오프에 올라왔는데, 그때도 4강 플레이오프 상대가 모비스였다. 당시 모비스가 오리온을 꺾고 결승에 진출하여 우승에 성공했는데, 고양 오리온 입장에선 9년 전 패배를 설욕할 기회가 오게 된 것. 고양 오리온과의 4강 플레이오프에선 수비는 어느정도 성공했지만 공격력 부재로 인해 결국 3:0으로 스윕을 당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4강 한 경기 평균점수가 65.0점을 기록했을 정도로 공격력에서 심각할 정도의 부진을 보여준 것이 컸다.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에 들어서 재평가를 받고있다. 다름아닌 수비력이 그 재평가인데.. 동부와 kcc가 매경기 90점대에 육박하는 실점을 하게 만든 공포의 포워드 농구 + 용병 원투펀치의 오리온을 상대로 60점대의 실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모비스를 재평가하는 요소가 되어버렸다.[37]

3.3.6 2016-17 시즌

6월 23일부터 연습경기를 시작하였다. 연습경기 일정

10월 3일 신인드래프트 구단 순위 추첨식에서 1순위로 모비스가 걸렸다! 이날의 백미는 1순위가 걸리자 환하게 웃으면서 두손 꽉 쥐고 크게 환호하는 유재학 감독의 모습이었다. 모비스 팬들은 추첨을 한 리지를 여신으로 추앙하며 칭송하고 있다. 유재학 뒤를 이을 김재훈, 양동근, 함지훈 모두 다 싱글벙글

그리고 이날 아시아 프로농구 챔피언십에 한국 대표로 모비스와 같이 출전한 KCC가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모비스와 KCC, 웰링턴 세인츠 세 팀이 모두 2승 1패로 동률이 되었지만 결국 골 득실에서 가장 앞선 모비스가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될놈될

10월 18일 신인드래프트에서는 예상대로 고려대학교 센터 이종현을 1순위로 지명했다. 그리고 2라운드에서는 후지대 오종균을, 3라운드에서는 동국대 김광철을, 마지막 4라운드에서는 명지대 주긴완을 지명했다. 이날 신인드래프트에서 마지막 4라운드까지 모두 선수를 지명한 모비스 유재학 감독과 오리온의 추일승 감독에게 많은 농구팬들이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10월 22일 울산에서 열린 전자랜드와의 개막전에서 팀의 주축인 양동근이 손목부상을 당해 비상이 걸렸다.[38] 거기에다 3쿼터까지 2점차로 박빙이었지만 4쿼터에만 팀이 7득점 22실점을 기록하는 기행을 선보이며 경기도 63:80 17점차로 완패하였다. 23일 서울 삼성 원정에서도 패배하면서 2연패. 단순히 2연패가 문제가 아니라 점수차가 2경기 모두 10점이상일 정도로 거의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다. 호평일색이던 네이트 밀러의 경우 낮은 득점 성공률로 해결사 역할을 전혀 못해주고, 찰스 로드는 2경기 내내 해설위원이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비판을 할 정도로 움직임도 적었고 볼을 그나마 가져도 미들레인지 점퍼만 남발하는 상황이다. 첫 2경기에 불과하지만 리그 최하위권을 걱정해야할 경기력을 보여주며 한마디로 망했어요.

10월 26일 전주 KCC와의 홈경기에서 4쿼터 막판 맹추격을 펼치며 동점까지 만들었지만 게임종료 17.4초를 남기고 리오 라이온스에게 결승 득점을 허용하며 아쉽게 패했다. 개막 3연패. 10월 29일 창원 LG전에서도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며 대패했다. 전신 기아 시절 포함 팀 역사상 최초 개막 4연패. 게다가 팀 4연패는 2011년 2월 이후로 무려 5년 8개월만이었다. 용병 교체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네이트 밀러마저 부상으로 4주간 아웃되었고 전년도 kt에서 뛰었던 마커스 블레이클리를 대체선수로 영입했다.

4 역대 성적

챔피언 결정전 우승챔피언 결정전 준우승4강 플레이오프 진출6강 플레이오프 진출플레이오프 진출
통산 팀 성적
연도팀명순위전적승률플레이오프감독
1997기아1위16승 5패0.762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원주 나래(4승 1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대구 동양(4승 2패)
최인선
1997-98기아3위26승 19패0.578챔피언 결정전 패
vs. 대전 현대(3승 4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창원 LG(3승 1패)
6강 플레이오프 승
vs. 인천 대우(3승 2패)
최인선
1998-99기아2위31승 14패0.689챔피언 결정전 패
vs. 대전 현대(1승 4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수원 삼성(3승 1패)
박인규
1999-00기아6위21승 24패0.4676강 플레이오프 패
vs. 수원 삼성(1승 3패)
박수교
2000-01기아9위17승 28패0.378-박수교
2001-02모비스10위18승 36패0.333-박수교
2002-03모비스6위25승 29패0.4636강 플레이오프 패
vs. 원주 TG(2패)
최희암
2003-04모비스10위15승 39패0.278-최희암
2004-05모비스7위24승 30패0.444-유재학
2005-06모비스1위36승 18패0.667챔피언 결정전 패
vs. 서울 삼성(4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전주 KCC(3승 1패)
유재학
2006-07모비스1위36승 18패0.667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부산 KTF(4승 3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대구 오리온스(3승)
유재학
2007-08모비스9위14승 40패0.259-유재학
2008-09모비스1위35승 19패0.6484강 플레이오프 패
vs. 서울 삼성(1승 3패)
유재학
2009-10모비스1위40승 14패0.741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전주 KCC(4승 2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원주 동부(3승 1패)
유재학
2010-11모비스8위20승 34패0.370-유재학
2011-12모비스5위29승 25패0.5374강 플레이오프 패
vs. 원주 동부(1승 3패)
6강 플레이오프 승
vs. 전주 KCC(3승)
유재학
2012-13모비스2위41승 13패0.759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서울 SK(4승)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인천 전자랜드(3승)
유재학
2013-14모비스2위40승 14패0.741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창원 LG(4승 2패)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서울 SK(3승 1패)
유재학
2014-15모비스1위39승 15패0.722챔피언 결정전 우승
vs. 원주 동부(4승)
4강 플레이오프 승
vs. 창원 LG(3승 2패)
유재학
2015-16모비스2위36승 18패0.6674강 플레이오프 패
vs. 고양 오리온(3패)
유재학
KBL 통산 20시즌559승 452패0.553챔피언 결정전 6회 우승
정규리그 6회 우승

5 선수단

2016-17 시즌 울산 모비스 피버스 선수단
감독 유재학
코치 김재훈, 최명도, 성준모
가드 3.김주성 6.양동근 7.김수찬 11.박구영 23.이지원 25.김광철 26.오종균
포워드 2.최지훈 4.류영환 5.송창용 12.함지훈 17.전준범 20.정성호 22.네이트 밀러[39] 24.박봉진 28.주긴완
센터 1.찰스 로드 9.유성호 13.김동량 32.이종현
  • 군입대 : 배수용, 김영현, 이대성

6 응원단

2016-17 시즌 울산 모비스 피버스 응원단
응원단장 오종학[40]
치어리더 팀장 박기량[41]
치어리더 염지원, 조윤경, 금보아, 송윤화, 이단비, 김다빈, 이유진, 이다영, 강재은, 김승은

7 영구결번

울산 모비스 피버스 영구결번
No. 14 김유택
울산 모비스 피버스 영구결번
No. 10 우지원

김유택의 14번, 우지원의 10번이 영구결번이 되었다.

8 유니폼

항목 참조.

9 사건 사고

9.1 허재 음주운전 사건

  • 1996년 농구대잔치 시절, 허재가 면허취소 상태에서 음주운전으로 구속되면서 국가대표에서 영구제명을 당하였고, 아마 농구에서도 자격정지를 먹었다. 그 다음 해 KBL이 출범되면서 기아가 원년 챔피언을 이뤘고 허재도 나름 제 기량을 발휘했지만, 강동희김영만의 입지 때문에 밀려나면서 빛을 바라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 다음 해 부상투혼을 발휘하면서 팀의 준우승을 이끌고 플레이오프 MVP를 받았다.

9.2 울산광역시로의 연고이전

10 비판

항목 참조.

  1.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를 포함하면.
  2. 모비스라는 이름만 따졌을 때.
  3. 6회
  4. 6회
  5. 아시아 프로농구 챔피언십은 2015년에 출범한 프로농구 아시아 국제대회다. 축구로 치면 AFC 챔피언스 리그, 야구로 치면 아시아 시리즈에 해당되는 수준의 아시아 프로농구 국제대회다. 아시아 농구 교류 활성화와 농구 저변 확대를 위해 대한민국(울산 모비스, 원주 동부), 중국(랴오닝), 필리핀(토크 앤 텍스트) 등 총 3개국 4개의 프로팀들이 참여했다. 2015년 9월 2일부터 9월 6일까지 대회가 진행되었으며 울산 모비스는 결승에서 같은 한국 팀인 원주 동부를 71:68로 이기고 초대 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프로농구 역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이룬 구단이 되었다. 초대 대회라서 3개국 4개 프로팀 밖에 참가팀이 없어서 아직은 대회 규모가 작지만 언젠가 축구의 AFC 챔피언스 리그, 야구의 아시아 시리즈처럼 좀 더 규모가 큰 아시아 국제대회로 성장할 수 있기를 언젠가 기대한다.
  6. 여자축구도 마찬가지지만 여긴 워낙 인지도가 얕아서 제외하고웃프다, 남녀 양궁은 리그가 없으니까...
  7. 이 당시 연고지를 이미 울산광역시로 옮긴 상태였다. 부산광역시의 미비한 지원 및 사직체육관 시설 탓.
  8. 이 정책으로 인하여 프로축구 팀과 배구 팀을 둘 다 갖고있던 현대자동차는 축구팀 전북 현대 모터스만 운영하기로 하고 배구단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의 신용카드 회사인 현대캐피탈로 이관했다.
  9. 역시 농구대잔치 시절 기아왕조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강팀이었다. 1997년 프로 원년 우승 기록도 기아 시절의 것.
  10. 마지막 농구대잔치 시즌이었던 1996-1997 시즌 허재가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구속되어 하위권으로 떨어졌던 흑역사가 존재한다.
  11. 지난 시즌 결승의 맹활약은 팀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고 떠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진심일 수도 있고, 농구판에 남아있는 한 계속 볼 사람들끼리 서로 얼굴 안 붉히려고 좋게좋게 넘어가기 위해 만들어낸 말일 수도 있지만, 그 활약만큼은 진짜였다.
  12. 최인선 감독도 이 때 서울 SK 나이츠로 옮겨 갔다.
  13. 윌리포드는 골밑을 주로 맡았지만, 3점슛도 잘 던졌고 강동희를 대신해 PG를 본 적도 있을 정도로 외곽 플레이에 능했다.
  14. 다만 이 때의 정인교는 이적의 영향과 제2외곽슈터로 변한 역할 적응실패 등의 이유로 부진한 성적을 보였다.
  15. 구단 홈페이지의 연혁에는 인수라고 되어 있으나, 실은 1사 1팀 정책에 따라 구단의 관할 모기업이 조정된 것일 뿐이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전북 현대 모터스 프로축구단을 전담하게 되었으며, 현대자동차 배구단은 현대캐피탈이 전담하게 되었다. 똑같은 이유로 SK 빅스는 전자랜드에 매각하여 현재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가 되었다.
  16. 여담으로, 이때 기아 농구단이 그대로 기아자동차 산하에 있고, 해태 타이거즈가 현대 모비스 타이거즈(...)가 되었다면 프로야구에 다시없을 개족보가 되었을 것이다.
  17. TG삼보와 상대전적에 밀렸다.
  18. 만약 이 6연승이 아니었다면 최다연승이 겨우 4연승(3연패)만 하고도 원년 제외 정규시즌 우승 팀 역대 최소연승(6)을 갈아치울 수도 있었다.
  19. 안준호 감독에게 유재학 감독이 판짜기에서 완전히 밀렸다. 유재학 감독은 오예데지와 서장훈의 포스트 수비를 준비했지만 안준호 감독은 강혁을 중심으로한 픽앤롤을 구상했고 유재학 감독의 이 판짜기 미스는 시리즈 스윕에 결정적인 전술차이를 가져와버렸다.
  20. 농구 대잔치 시절의 스타였던 우지원이 '우승을 하기 위해선 자신이 주전이어선 힘들다'라는 점을 느꼈다는 것은 세대교체의 시기가 오고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였다.
  21. 사실 당연히 세대교체는 해야하는 것이지만 당시 농구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고 그와중에 아직도 개인적인 팬덤이 있던 농구대잔치시절의 스타들인 이상민, 우지원, 문경은, 신기성 등이 후보로 내려가는 것은 팬들이 쉽게 용납하질 않았었다.
  22. 11연패를 두번이나 하고도 꼴찌를 하지 않았다!!! 사실은 오리온스도 11연패를 두번이나 했다. 비슷한 경우는 2009-2010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가 있다. 하지만 14승 40패는 모비스 역사상 최악의 성적이다.
  23. 다들 알다시피 함지훈의 팀의 위치는 양동근 다음가는 프랜차이즈 스타다.
  24. 제 역할 정도가 아니라 플루크 시즌이었다. 유재학 감독 부임 이후 모비스에서만 특출난 활약을 보이고 타팀에서는 죽쑤는 케이스가 많이 관찰되는데 이 김현중이 대표적이고, 삼성 우승연, SK-KCC 김효범, SK 이병석 등도 마찬가지의 평가를 받고 있다.
  25. 그래도 승률이 6할대 중반이다. 까지 말자.
  26. 저 당시의 정규리그 우승은 원주 동부 프로미와 함께 양강 독주체제를 달리다가 동부의 주포 웬델 화이트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페이스가 떨어지자, 모비스가 따라잡고 결국 정규리그 우승을 탈환한 것이었다.
  27. 반대편에서도 2위 동부는 KCC에 2승 3패로 챔프전 진출에 실패했다.
  28. 상대가 되는건 전태풍, 강병현을 보유한 KCC 정도 뿐이었다.
  29. 여담으로 44경기동안 2연승이 최고였다. 반면에 연패는 고작 3연패...
  30. kt는 KCC를 제외한 나머지 6강 경쟁 팀들에 열세였다.
  31. SK가 첫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곳은 전주실내체육관이다.
  32. 12/13시즌 13연승 포함, 챔프전까지 포함하면 23연승!!!
  33. 1월 17일 울산 홈경기 패배로 열세 확정인 상황이었다.
  34. 2013-14 시즌 울산 모비스의 SK전 첫 승이다. 그때부터 플레이오프 포함 5승 1패.
  35. 물론 KT가 전자랜드와의 5차전 혈투 끝에 올라온 것도 있었고 더군다나 모비스보다 LG가 4강을 먼저 시작한 상황이었다!!
  36. 특히 1쿼터에서는 모비스가 27점을 낸 반면, SK는 단 9점만 냈다.
  37. 다만 이는 kcc가 오리온을 상대할때 강점과 약점이 너무 뚜렷하다는 것에도 원인이 있다. 하승진과 에밋이라는 확실한 빅맨과 스코어러가 있지만 하승진은 오리온에 없는 높이가 있는 대신 스피드가 너무 느리다. 장재석과 이승현, 최진수 등 장신 포워드들이 하승진이 높은 곳에서 리바운드를 실패할때마다 귀신같이 리바운드를 따내고, 에밋은 본인의 해결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공격시 볼을 너무 끌어버리니 이미 수비가 갖춰진 오리온은 포워드진의 신장차이로 더블팀수비를 걸어 에밋을 틀어막고있다.
  38. 병원진찰 결과 손목이 골절당했고 수술에 들어가기로 했다. 최소 3~4개월 결장 확정.
  39. 원래 32번이었지만 새로 입단할 이종현에게 양보했다.
  40. 프로야구 두산의 前 응원단장잠실 원빈 출신의 오종학이 맞다.
  41. 프로야구 롯데의 인기 치어리더인 그 박기량이 맞다.
  42. 물론 이는 당시 사직실내체육관의 시설이 굉장히 안습했던 것도 있고 부산광역시의 지원조차 미미했다보니 연고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