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1 영국 런던의 지명

런던 남서부 교외에 있는 지역 이름으로 아래의 대회로 유명하다. 원래는 런던 근교의 위성도시였으나 1965년 런던 대확장으로 그레이터 런던에 편입되었다.

2 테니스 대회

테니스그랜드슬램 대회
호주 오픈 · 프랑스 오픈 · 윔블던 · US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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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은 윔블던 챔피언십(The Championships, Wimbledon). 영국 런던 윔블던에서 열리는 세계 4대 그랜드 슬램 테니스 대회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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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열리는 장소는 영국 런던 머튼 구의 윔블던에 위치한 올 잉글랜드 테니스 클럽(The All England Tennis Club).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니스 대회이며, 흔히 테니스 대회 중 최고의 권위를 가진 대회로 꼽힌다. 그랜드 슬램 대회 중 유일하게 잔디 코트를 사용.

첫시작은 1877년이며, 매년 6월 4주 ~ 7월 1주까지 열린다. 대회의 마지막 토요일일요일에 각각 여자 단식과 남자 단식 결승 경기를 치르는 게 특징. 5개의 메인 경기 부문과 4개의 주니어 경기 부문, 4개의 초청 경기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2.1 역사

윔블던이 열리는 '올 잉글랜드 클럽'의 역사는 1868년에 설립된 사설 테니스&크로켓 클럽인 The All England Lawn Tennis and Croquet Club에서 시작되었다.[1] 이후 1870년대 즈음, 월터 클롭턴 윙필드(Walter Clopton Wingfield) 장군에 의해 현대 테니스와 거의 유사한 규칙과 장비등을 적용하여 테니스 대회를 개최한 게 지금의 윔블던으로 이어지고 있다.

1877년의 첫 대회에서는 남자 단식 경기만이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영국 상류층이 다니는 명문 사립기숙학교인 Harrow School 출신의 스펜서 고어(Spencer Gore)가 우승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약 200명의 유료 관람객들이 경기를 관전했다.

전체 경기장에서 메인 코트는 다른 코트들의 중앙에 위치하게 배치되었는데, 이 때문에 메인 코트에는 ‘센터 코트’(Centre Court)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후 1922년 경기장이 현재의 처치로드(Church Road)로 옮겨오면서 메인 코트의 위치는 중앙이 아닌 다른 위치로 배치되었지만 기존의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1980년에 4개의 코트가 경기장 북측에 새로 만들어지면서, 센터 코트의 위치는 다시금 실제로 전체 경기장의 중앙에 위치하게 되었다.

1882년에 이르러서는 클럽의 활동이 거의 론 테니스로 한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클럽 명칭에서 ‘크로케’가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서적인 이유에서 이 단어는 1889년 다시 복원되어, 이 때부터 클럽의 명칭은 올 잉글랜드 테니스 앤드 크로케 클럽이 되었다.

1884년에는 대회에 여자 단식과 남자 복식이 추가되었으며, 1913년에는 여자 복식과 혼합 복식이 추가되었다. 1922년 이전까지 대회의 우승자는 자동으로 이듬해 대회 결승에 진출하고 새로운 결승 진출자가 이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대회가 진행되었다. 다른 그랜드 슬램 대회들과 마찬가지로, 옛 윔블던에는 톱랭킹 아마추어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였으며, 이는 1968년 오픈 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남자 단식에서는 1936년 프레드 페리 이후, 그리고 여자 단식에서는 1977년 버지니아 웨이드 이후로 오랫동안 영국 출신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영국에서 개최하는 세계적 명성의 대회에서 자국 선수가 장기간 우승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금융시장의 과도한 자유개방으로 인하여 자국 금융시장이 외국 자본에 잠식되는 상황과 비슷하여 윔블던 효과라는 경제 용어가 생겼다. 그러다가 36년만인 2013년에 앤디 머레이가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하였고 여자 주니어 단식 에서는 1984년 애너벨 크로프트와 2008년 로라 롭슨이 영국인 출신으로 우승하였다.

1937년에는 대회 개최 이래 최초로 경기가 TV로 중계되었다.

1915년부터 1918년까지는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1940년부터 1945년까지는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대회 개최가 중단되었다. 하지만 1946년부턴 중단 없이 대회 개최가 지속되는 중이다.

2.2 90년대 이후

윔블던은 가장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로서의 위상을 21세기에도 이어 나간다는 목표 아래 관람자와 참가선수, 대회진행요원들 및 지역 주민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대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장기 계획을 1993년에 발표하였다.

이 계획의 1단계는 1997년 아오란지 파크(Aorangi Park)에 새로운 1번 코트와 방송 센터, 두 면의 추가 잔디 코트 및 언덕 지역 아래에 처치로드와 서머싯로드(Somerset Road)를 잇는 터널을 완공하면서 완성되었다.

2단계 계획은 옛 1번 코트 경기장을 철거하여 여기에 선수 및 기자, 진행요원, 회원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춘 새로운 밀레니엄 빌딩을 건축하는 것과, 센터 코트의 서쪽 스탠드에 728석의 좌석을 추가 설치하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3단계 계획은 입구 빌딩과 직원 숙소, 박물관, 은행 그리고 티켓 오피스를 설치파는 것으로 완료되었다.

2009년에는 센터 코트에 개폐식 지붕을 설치하여 우천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경기 진행이 가능한 환경을 갖추었다. 올 잉글랜드 클럽은 2009년 5월 17일에 개폐식 지붕 설치를 기념하는 축하행사인 A Centre Court Celebration을 개최하였으며, 이 행사에서는 안드레 애거시와 슈테피 그라프, 킴 클리스터스. 팀 헨만의 초청 경기가 함께 열렸다. 정식 대회에서 새로운 지붕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이 해 윔블던 여자 단식 4회전 디나라 사피나와 아멜리 모레스모의 경기 도중에 시작된 비로 인해 지붕을 닫고 경기를 속행한 것이었다. 전체 경기가 지붕을 닫고 진행된 최초의 경기는 2009년 6월 29일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 앤디 머레이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의 경기였다. 한편 윔블던에서 하루 중 가장 늦게 종료된 경기는 2010년 대회 남자 단식 1회전 노박 조코비치와 올리비에 로쿠스의 경기로, 이 경기는 오후 10시 58분에 조코비치의 승리로 끝났다.

2009년에는 2번 코트를 위한 4000석의 새로운 좌석이 옛 13번 코트 자리에 설치되었다. 2010년 9월 현재 3번 코트를 위한 2000석의 새로운 좌석의 설치가 옛 2번 코트와 3번 코트 자리에서 진행 중이다.

2.3 윔블던 남자 단식 주요 기록

2.4 트로피 및 상금 규모

남자 단식 우승자는 높이 18.5인치(약 47cm)에 지름 7.5인치(약 19cm)의 은도금 된 우승컵을 수여 받는다. 이 우승컵은 1887년부터 사용되었으며 표면에는 “All England Lawn Tennis Club Single Handed Championship of the World”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여자 단식 우승자는 비너스 로즈워터 디시 혹은 로즈워터 디시라 불리는 순은쟁반을 수여 받는다. 이 쟁반의 지름은 18.75인치(약 48cm)이며 신화와 관련된 무늬들로 장식되어 있다. 남자 복식 및 여자 복식, 혼합 복식 우승자들은 은제 우승컵을 수여 받으며, 각 경기의 준우승자들은 모두 무늬가 새겨진 은쟁반을 수여 받는다. 모든 트로피들은 대부분 올 잉글랜드 클럽의 회장에 의해 수여된다.

대회 참가선수들에게 상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것은 프로 선수들에게 문호가 개방되었던 1968년부터이다.

2007년 이전까지 윔블던을 포함한 다른 대부분의 대회들은 남자 선수들에게 여자 선수들보다 더 많은 상금을 지급해 왔다. 2007년 윔블던은 상금 정책을 변경하여 남녀 선수들간의 상금 차등을 없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남자 선수들이 여자 선수들보다 더 많은 세트를 소화하므로, 시간당 지급되는 보수를 균등하게 책정한다는 의미에서 남자가 상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테니스 선수는 플레이한 경기 시간을 기준으로 보수를 받는 직업이 아니므로, 상금 책정에 있어서 경기나 세트의 수 등을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2009년 대회의 총상금액은 12,500,000 파운드로 증가하였으며, 단식 우승자는 850,000 파운드의 우승 상금을 받았다. 이는 2008년 대회 우승 상금보다 13.3 퍼센트 증가한 액수였다.

2010년 대회의 총상금액은 13,725,000 파운드로 증액되었으며, 단식 우승 상금도 1,000,000 파운드로 증가하였다.

2011년 대회의 총상금액은 14,600,000 파운드로 인상되었으며, 단식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금도 1,100,000 파운드로 2010년보다 10%가 상승하였다. 단식 1회전 탈락자에게도 11,500 파운드의 상금이 주어졌다.

2012년 대회의 총상금액은 16,100,000 파운드로 2011년보다 10% 증가하였으며 단식 우승 상금도 1,150,000 파운드로 증액되었다. 단식 본선 1회전 탈락자 상금도 14,500 파운드로 2011년보다 26%나 증가하였다.

2013년 대회의 총상금액은 22,560,000 파운드로 2012년보다 무려 40%가량 대폭 인상되었다. 단식 우승 상금은 1,600,000 파운드로 폭등하였으며 출전자가 단식 본선 1회전에서 탈락시 받는 상금액수도 23,500 파운드로 대폭 증액되었다.

2014년 대회의 총상금액은 25,000,000 파운드로 상승하였고 단식 우승자에게는 2013년보다 10% 인상된 1,760,000 파운드의 상금이 주어졌다.

2015년 대회의 총상금액은 26,750,000 파운드로 작년보다 7퍼센트 증가하였고 단식 우승자에게 지급되는 상금도 1,880,000 파운드로 상승하였으며 단식 본선 1회전 탈락자에게도 29,000 파운드가 상금으로 지급된다.

2016년 대회의 총상금액은 28,100,000 파운드로 전년보다 5% 정도 상승하였고 단식 우승 상금은 2,000,000 파운드로 6.4% 늘어났다. 단식 본선 1회전 탈락자가 받는 상금도 30,000 파운드로 늘어났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7년 사이에 윔블던 대회의 총상금액이나 우승상금 모두 두 배 이상 폭등한 것을 알수 있다.

2.5 특징

윔블던 역사상 유일한 와일드카드 우승자인 고란 이바니셰비치 vs 패트릭 라프터 戰 (2001년)

잔디 코트라는 특성이 작용하여 강서브 또는 서브&발리가 강한 선수가 이 대회에서 매우 강하다. 위의 고란 이바니셰비치가 대표적인데, 다른 기술은 대부분 ATP 평균 이하 수준이지만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체구와 왼손잡이의 파워를 앞세운 강서브와 발리만으로도 4번이나 윔블던 결승에 진출해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을 정도이다.

잔디 코트가 왜 강서버에게 유리한지는 다음과 같은 잔디코트의 특성이 영향을 미친다.

1. 천연잔디는 미끄러운데다 하드코트와 달리 바닥이 단단하지 않아서 공이 잔디에 스치듯이 낮게 튄다. 거기다 윔블던은 초여름 야외코트에서 열리는지라 더위 때문에 코트에 물까지 뿌려서 미끄러운 성질이 더욱 강해지는데, 이때문에 서브가 빠르면 빠를 수록 바운드도 빨라서 제대로 들어오면 리턴하기가 어려워진다.

2. 천연잔디 코트는 인조잔디 코트나 클레이에 비해 손상에 매우 취약하다. 이때문에 선수들이 수백~수천번 스탭을 밟거나 공에 맞은 잔디가 뭉개지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생기는데, 대회 후반쯤되면 위 영상의 장면처럼 아무리 관리 및 보수를 부지런히 잘한다고 하더라도 잔디상태가 개판이 되는건 물론이고 맨땅이 드러난다. 이러한 코트 바닥에 공이 튕기면 누구도 예측이 불가능한 불규칙 바운드가 자주 발생하여 리턴은 물론 경기 운영이 매우 어려워진다.

이러한 천연잔디 코트의 특성탓에 강한 서브와 발리를 구사할줄만 안다면 상대방의 리턴을 어렵게 만들 수 있으며, 시작부터 먹고들어가서 그대로 게임을 끝낼 수 있다. 이 덕에 잔디 코트는 서브게임을 브레이크 하기가 극히 어렵고, 자신의 서브게임을 한번 브레이크 당했을떄의 압박감은 실로 엄청나다. 이런 이유로 빅 서브를 갖춘 슬러거들에게 매우 유리한 대회.

때문에 주최측도 이바니셰비치 같은 대포알 서버한테 너무 유리한 점을 인지하여 2001년 이후부턴 잔디 종류를 바꾸고 물과 모래를 뿌리는 등 바운스 속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베이스라인 플레이어들의 우승이 늘어나고 있는 편. 그래도 강서브 구사하는 플레이어가 유리한 건 변함이 없다. 위 영상 장면인 2000년대 전후에는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켓 재질 강화까지 겹쳤던 시기라 리하르트 크라이첵, 마크 필리포시스등 오픈 시대중 가장 서브&발리어가 강세였던 시기다. 그야말로 닥치고 파워로 서브 꽂으면 버틸 수가 없을 정도. 때문에 ATP에서 라켓 규정을 바꾸는 등 여러 방식으로 경기 속도를 늦추도록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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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윔블던 대회를 참관중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예를 표하는 앤디 머레이)

다른 그랜드 슬램 대회와는 조금 다른 규정이 몇개 있는데, 관중석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포함한 왕족이 있을 때는 경기 시작 전/종료 후에 선수들이 예를 표해야 한다. 2003년 이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찰스 황태자에게만 예를 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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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위의 사진처럼 경기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주니어 부분 포함)은 반드시 착용하는 모든 복장을 흰색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엄격한 규칙으로 유명하다. 상하의 경기복은 기본이고 양말이나 운동화, 해어밴드 등 자잘한 것들도 흰색인 것을 착용하도록 규제하는 수준. 이덕에 지적먹는 선수들이 간혹 있는데, 2013년 대회때 로저 페더러는 밑창이 주황색인 운동화를 신었다는 이유로 주최측에게 지적을 당하여 테니스화를 바꾸어 신은적이 있다.

여성 선수의 경우 속바지(숏팬츠)는 흰색 이외의 색이 들어간것을 입어도 되지만, 경기복에 가려서 안보일 정도의 길이를 맟추어야 한다는 완화된 규정을 적용하다 2014년도부턴 숏팬츠를 포함 브래지어도 무조건 흰색인걸 착용해야 한다며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이 규정을 전해듣지 못하고 다른색의 스포츠 브래지어를 입은 일부 여성선수들이 출전하자 갈아입어 줄것을 요청했는데, 여분의 흰색 스포츠 브래지어가 있는 여성선수는 그나마 나았지만 없는 선수는 별도로 구입해오기 어려워 노브라로 경기를 뛰었다.

윔블던측에서 이렇게 과도한 복장규정을 정해놓은 이유는 오랜전통을 중시하는 것 이외에 선수들이 입는 의류를 통해 상업적 광고를 노리는 스포츠 용품 업체들의 경쟁이 대회의 품격을 떨어뜨리는걸 막으려는 의도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복장엔 스포츠 용품 업체의 이름이 새겨진 패치나 로고가 작고 간략하게 박혀있는데, 이것도 상업적 광고를 최소화 하려는 규제의 일부다. 이러한 상황인 탓에 복장규정이 너무 지나치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여성들에겐 민감한 부분인 브래지어 같은 속옷까지 걸고 넘어진 것은 확실히 심하다는 게 중론.

단,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예외적으로 이 복장규정이 적용되지 않았다. 경기 자체는 윔블던이 열리는 곳에서 진행되지만 윔블던 대회가 아니라 올림픽이기 때문에 IOC 측에서 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권고한 것. 정확한 규정은 이곳을 참고

일종의 VIP석인 로얄박스에 들어가는 관람객들의 복장에도 규정을 적용하고 있는데, 남성은 정장 / 여성들도 정장내지 단정한 복장을 해야 입장이 허용된다. 보통 로얄박스서 구경하는 이들은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들인데다 언론에 노출되는터라 복장규정은 잘지키는편인데, 간혹 쫒겨나는 경우도 있다. 반바지 차림으로 왔다가 망신당한 F1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이 대표적.

테니스 경기에 반드시 필요한 스태프인 볼키즈(Ball Kiz)[2]들을 뽑는 방식도 상당히 특이하다. 본래 투어급 대회 이상에 참여하는 볼키즈 참가자격은 국적을 불문하고 전세계 모든 청소년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게 일반적인데, 윔블던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누구든지 볼키즈 참가신청을 하도록 해놓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인근 중&고등학교에서 테니스를 하는 청소년들에게 볼키즈 자격을 부여한다. 물론 이것도 해당 학교 교장들의 추천서가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윔블던 대회중에 관중들은 딸기와 크림을 간식으로 즐기는 것이 전통이자 특이점. 주변 노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2.6 경기 이모저모

오픈 시대 최다 우승자인 피트 샘프라스, 로저 페더러 역시 강서브와 발리 스킬이 완벽한 선수기 때문에 둘다 4년 연속 우승을 포함해 7회 우승을 달성했다. 페더러는 서브&발리어가 아니라 완전체긴하지만. 여자부에서는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가 82~87년 6년 연속 포함 9회 우승으로 최다이다.

2010년 6월 23~25일에 열린 윔블던에선 판타스틱한 경기가 하나 있었는데 이 경기를 지켜 본 관중들도 평생 보기 힘든 광경을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 경기는 1라운드 때 열린 존 이즈너(미국)과 니콜라스 마후(프랑스)의 시합이었는데, 다른 시합들은 2라운드로 넘어갔는데도 이 경기는 3일간 계속 이어지다가 결과는 미국의 존 이즈너의 승리로 끝났다. (참고1) (참고2) ...흠좀무.
3일에 걸쳐 총 11시간 5분 동안 경기를 치루었으며 스코어는 6-4 3-6 6-7(7) 7-6(3) 70-68. 주요 기록이란 기록은 다 갈아치웠는데, 앞에서 언급한 총경기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긴 세트(5세트만 8시간 11분)

가장 많은 게임을 한 세트(5세트 70-68로 총 138게임)
가장 많은 게임을 한 경기(총 183게임)
가장 많은 에이스를 기록한 경기(이즈너의 113개는 당연히 역대 1위이며, 마후의 에이스도 103개로 역대 2위. 총합은 말할 것도 없이 1위다.)
각자 연속으로 서비스게임을 지킨 경기(서로 84번씩 본인 서브게임을 지키며 총 168게임 연속으로 지켰다.)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은 게임을 승리(183게임중 승리한 이즈너가 총 92게임을, 패한 마후가 91게임을 승리했다.)
단일경기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획득 (의외로 패한 마후가 총 502포인트를 따냈으며 이즈너는 478포인트)
단일 경기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기록(총합 980)

여담으로 이 대회 여자부 우승자인 세레나 윌리엄스는(여자부가 3세트경기인 것은 감안해야 되지만) 1회전부터 결승전까지 총 경기 시간이 10시간도 되지 않았으며, 3일간의 대접전에서 승리한 이즈너는 체력 소모를 많이 한 탓인지 2회전에서 74분만에 0-3으로 광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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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대회때 주니어 부분에서 '한국 테니스의 기대주'로 불리는 삼일공고 소속의 정현(당시 만 17세) 선수가 대한민국 테니스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단식 결승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주니어 세계랭킹 1위등의 엄청난 강자들을 꺾는등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3]

윔블던 남자 단식 본선에서 한국 남자 테니스 선수로는 이형택 선수가 2007년에 최고 성적인 32강전(3회전)까지 진출했다.[4]

2.7 역대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전 결과

윔블던 대회가 프로 테니스 선수 출전을 허용한 것은 1968년이지만 4대 그랜드슬램 대회 모두가 프로 테니스 선수 출전을 허용한 1969년 남자 단식 결승전부터 표시한다.

연도우승준우승스코어
1969로드 레이버존 뉴컴6-4, 5-7, 6-4, 6-4
1970존 뉴컴켄 로즈월5-7, 6-3, 6-2, 3-6, 6-1
1971존 뉴컴스탠 스미스6-3, 5-7, 2-6, 6-4, 6-4
1972스탠 스미스일리에 너스타세4-6, 6-3, 6-3, 4-6, 7-5
1973얀 코데시알렉스 메트레벨리6-1, 9-8, 6-3
1974지미 코너스켄 로즈월6-1, 6-1, 6-4
1975아서 애시지미 코너스6-1, 6-1, 5-7, 6-4
1976비외른 보리일리에 너스타세6-4, 6-2, 9-7
1977비외른 보리지미 코너스3-6, 6-2, 6-1, 5-7, 6-4
1978비외른 보리지미 코너스6-2, 6-2, 6-3
1979비외른 보리로스코 태너6-7, 6-1, 3-6, 6-3, 6-4
1980비외른 보리존 매켄로1-6, 7-5, 6-3, 6-7, 8-6
1981존 매켄로비외른 보리4-6, 7-6, 7-6, 6-4
1982지미 코너스존 매켄로3-6, 6-3, 6-7, 7-6, 6-4
1983존 매켄로크리스 루이스6-2, 6-2, 6-2
1984존 매켄로지미 코너스6-1, 6-1, 6-2
1985보리스 베커케빈 커렌6-3, 6-7, 7-6, 6-4
1986보리스 베커이반 렌들6-4, 6-3, 7-5
1987팻 캐시이반 렌들7-6, 6-2, 7-5
1988스테판 에드베리보리스 베커4-6, 7-6, 6-4, 6-2
1989보리스 베커스테판 에드베리6-0, 7-6, 6-4
1990스테판 에드베리보리스 베커6-2, 6-2, 3-6, 3-6, 6-4
1991미하엘 슈티히보리스 베커6-4, 7-6(7-4), 6-4
1992안드레 애거시고란 이바니세비치6-7(8-10), 6-4, 6-4, 1-6, 6-4
1993피트 샘프라스짐 쿠리어7-6(7-3), 7-6(8-6), 3-6, 6-3
1994피트 샘프라스고란 이바니세비치7-6(7-2), 7-6(7-5), 6-0
1995피트 샘프라스보리스 베커6-7(5-7), 6-2, 6-4, 6-2
1996리하르트 크라이첵말리바이 워싱턴6-3, 6-4, 6-3
1997피트 샘프라스세드릭 피올린6-4 6-2 6-4
1998피트 샘프라스고란 이바니세비치6-7(2-7), 7-6(11-9), 6-4, 3-6, 6-2
1999피트 샘프라스안드레 애거시6-3, 6-4, 7-5
2000피트 샘프라스패트릭 라프터6-7(10-12), 7-6(7-5), 6-4, 6-2
2001고란 이바니세비치패트릭 라프터6-3, 3-6, 6-3, 2-6, 9-7
2002레이튼 휴이트다비드 날반디안6-1, 6-3, 6-2
2003로저 페더러마크 필리포시스7-6(7-5), 6-2, 7-6(7-3)
2004로저 페더러앤디 로딕4-6, 7-5, 7-6(7-3), 6-4
2005로저 페더러앤디 로딕6-2, 7-6(7-2), 6-4
2006로저 페더러라파엘 나달6-0, 7-6(7-5), 6-7(2-7), 6-3
2007로저 페더러라파엘 나달7-6(9-7), 4-6, 7-6(7-3), 2-6, 6-2
2008라파엘 나달로저 페더러6-4, 6-4, 6-7(5-7), 6-7(8-10), 9-7
2009로저 페더러앤디 로딕5-7, 7-6(8-6), 7-6(7-5), 3-6, 16-14
2010라파엘 나달토마스 베르디흐6-3, 7-5, 6-4
2011노박 조코비치라파엘 나달6-4, 6-1, 1-6, 6-3
2012로저 페더러앤디 머레이4-6, 7-5, 6-3, 6-4
2013앤디 머레이노박 조코비치6-4, 7-5, 6-4
2014노박 조코비치로저 페더러6-7(7-9), 6-4, 7-6(7-4), 5-7, 6-4
2015노박 조코비치로저 페더러7-6(7-1), 6-7(10-12), 6-4, 6-3
2016앤디 머레이밀로스 라오니치6-4, 7-6(7-3), 7-6(7-2)

2.8 참고 링크

3 1을 연고로 했던 동명의 옛 잉글랜드 축구팀

윔블던 FC 항목 참조.
  1. 이 클럽에서 사용한 최초의 경기장은 윔블던 워플로드(Worple Road)에 위치.
  2. 본래는 볼보이&볼걸로 불렀다가 2014년도부터 남녀로 구분하는 게 좋지 않다는 여론을 수용하여 볼키즈로 부르길 권장하고 있다.
  3. 참고로 한국선수가 윔블던 주니어 부분 결승에 진출한적은 이전에 1번 있었다. 바로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단식에서 준우승을 기록한 전미라인데, 당시 결승상대는 마르티나 힝기스였고 이후 1995년 US오픈에서는 힝기스와 복식조로 나서기도 했다. 가수 윤종신의 배우자로도 유명하며 현재 테니스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하면서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다고 한다.
  4. 윔블던 남자 단식 본선에 출전해본 한국 남자 테니스 선수 자체가 윤용일과 이형택, 정현 뿐으로 윤용일은 2001년에만 출전하여 통산 1회 출전에 그쳤고 이형택은 2001~2003년까지 3회 연속 출전하였고 다시 2005~2008년까지 4회 연속 출전하여 윔블던 남자 단식 본선에 통산 7회 출전했다. 정현이 윔블던 남자 단식 본선에 출전한 것은 2015년으로 아직까진 통산 1회 출전에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