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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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982년 8월 5일
출생지경기도 부천시
신체키 178cm
가족외동아들(무녀독남), 부인과 슬하 1남
학력경기대학교 대학원 사회체육학과
종교개신교

1 소개

대한민국 국적의 前 남자 탁구선수. 삼성생명 탁구단 소속이었다.

어려서부터 재능을 일찍 피워 부천 내동중학교 시절에 이미 국가대표에 뽑혔을 정도의 탁구 신동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실업팀들 간의 스카우트 경쟁의 대상이 되어 삼성생명의 후원을 받았을 정도.[1]

현재 삼성생명 탁구 코치직을 맡고 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IOC선수위원에 당선되었다.# 임기는 8년으로 2024년까지.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가능한 유일한 IOC위원이 되었다.[2]

2 선수 경력

만 18세의 나이에 한국대표로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기존 탁구 최연소였던 유남규(만 20세)의 기록을 경신했으나, 이후 이중등록 문제로 홍역을 앓기도 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선 복식에서 이철승과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단식에선 4강에도 채 오르지 못하고 한국은 오상은이 동메달을 건진 것에 만족해야 했기 때문에 기대만큼 못 컸다는 이야기도 2000년대 초반 당시에는 나왔었다.[3]

그렇게 여전히 중국의 벽을 실감하며 세계랭킹 5위권을 맴돌다 2004년 초 이집트 오픈 등에서 우승하며 세계랭킹 3위까지 차지했다.[4] 2004년 8월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결승에서 당시 세계랭킹 4위었던 중국의 왕하오를 세트 스코어 4-2로 꺾어, 1988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유남규, 양영자, 현정화 이후로 16년 만에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우승으로 세계랭킹도 2위로 올라섰고, 이후로 한국 남자선수 중 유승민 랭킹에 근접한 선수는 없다. 비슷한 세대인 오상은과 주세혁[5]이 최고랭킹 5위 정도의 수준. 이후 중국 탁구가 2008, 2012 올림픽에서 메달을 싹쓸이 하고,[6] 이번 2016 리우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이 확실시 될 정도로 넘사벽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2004년의 이 금메달은 한국 탁구가 보여준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사족으로 유승민과 왕하오의 당시 통산전적은 시니어 기준으로 0승 6패인 절대적인 열세였고, 결국 은퇴 전까지 최종전적은 2승 18패로 절대적인 열세. 그 2승 중 1승이 결정적인 올림픽 결승에서 나왔고, 왕하오는 이후 올림픽단식에서 콩라인 3연속 은메달이라는 안타까운 결과를 받아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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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하였으나 단체전에서는 동메달에 머물렀고, 단식에서는 1회전(32강전)에서 홍콩의 고라이착에게 세트 스코어 2-4로 패배하여 2연속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하였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오상은, 주세혁과 함께 단체전에 나가며 결승에 올랐으나 중국에 0-3으로 패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6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한 뒤, 7월부터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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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레이 스타일

일본식 펜홀더를 사용하는 드라이브 공격전형을 구사했었다. 최전성기의 유승민을 보면, 빠른 풋웍으로 포어 사이드와 백사이드를 빠르게 이동하며, 강력한 포핸드 드라이브를 구사하였다. 하지만, 스피드 글루[7] 사용 금지조치로 인한 한방 드라이브의 파워가 약화되고, 무릎 부상으로 인해 특유의 풋웍을 잃게 되면서 점차 하향세를 걸었다.

펜홀더의 이점인 강렬한 서브와 김택수 선수의 트레이드 마크인 파워 드라이브를 계승, 한방 파워는 더욱 강해진 반면 또하나의 트레이드 마크인 완강한 방어는 마이너 판이라는 말도 있으나 세계 탁구의 백핸드를 비롯한 기술의 빠른 발전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 올림픽 이후로도 꾸준히 일정 이상의 성적을 냈으며 뚜렷한 약점을 공략당하면서도[8] 빠른 풋웍과 돌아서기, 끈질긴 쇼트 방어, 불편한 자세임에도 때로는 백핸드 드라이브로 역습을 하는 등 저력을 보여 주었다. 이런 스타일의 희소성으로 인한 어드밴티지도 없진 않았겠지만 포핸드 파괴력의 이점에 비해 백핸드 약점의 페널티로 인한 한계가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롱런하며 많은 활약을 했다. 하지만 전형의 한계와 신체적 부상 속에서 넘사벽 중국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상 일본식 펜홀더로 성적을 낸 마지막 선수라고 볼 수 있을 듯.[9] 프로급에선 이미 사용자조차 많지 않은 일본식 펜홀더로 2004년 시점에서 올림픽 우승을 하였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고, 어쩌면 그가 마지막 일펜 금메달리스트가 될지도 모른다.

4 근황

현재는 선수 생활을 마치고 삼성생명 코치직을 역임 중이다.

차기 IOC선수위원이 되기를 희망하여 2015년 하반기부터 장미란, 진종오 선수와 한국 대표가 되기 위한 국내 경합을 벌였다. 일반적인 예상으로는 다른 두 후보가 인지도나 성적 면에서 압도적인 면모가 있어 유승민이 한국 대표가 되기엔 조금 어렵지 않나 싶었는데, 영어 시험에서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며 두 후보를 물리치고 결국 한국 대표가 되었다. 참고로 IOC선수위원은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투표로 이루어지며, 총 23명의 후보 중 상위 4명만이 당선된다. 이후 폐막식 날 열리는 IOC 총회에서 과반 찬성을 얻어야만이 IOC선수위원으로 발탁된다고 한다.# 타 국의 경합 상대로는 러시아의 미녀새로 유명했던 옐레나 이신바예바 등이 있다고...
올림픽 시작 10일 전부터 브라질에 넘어가 세계 선수들에게 열심히 선거 유세 중이다. 차기 동/하계 올림픽이 3번 연속으로 쭉 동북아시아지역에서 열리기 때문에 동일 문화권 출신으로써 올림픽 내부에서 참가 선수, 개최지 등을 조율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2016년 8월 19일(리우 현지 시각 18일), 선수위원에 당선되었다. 선수 투표 순위는 2위였다고 한다.대단!!#. 기사

여담으로 용감한 기자들178회에 따르면 유승민위원은 출마 당시 인지도가 너무 없어서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평가를 받았다. IOC 선수위원은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투표를 하게 된다. 따라서 선거운동이 매우 중요한데 그 규정이 매우 까다로워서 유승민위원이 발품을 팔기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수촌 내를 걸어다니면서 만나는 모든 선수에게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며 홍보책자를 보여주고 자신과 정책을 소개했다고 한다. 선거유세 첫날 선수촌 내에서 약25km를 걷고 선거 유세 기간에 매일 5시 반에 일어나서 15시간 동안 발품팔기를 했다고 한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해가며 25일간열심히 활동한 결과 미국 체조대표팀이 먼저 와서 인사를 하고 일본의 탁구선수 후쿠아라아이는 자신이 챙겨온 주먹밥과 간식을 챙겨주며 고생했다고 응원을 하고 한 아프리카 선수는 "하루도 쉬지 않고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 네 모습에 감동받아 너를 투표했다"라고 전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진짜 눈물날 정도로 독하다

유승민은 2000년부터 스포츠외교에 관심을 가져왔다. IOC 선수위원은 16년 준비결과라는 얘기. #

대한체육회 이사로 선임됐다. #

5 둘러보기

IOC 선수위원
2010 ~ 2018애덤 펭길리
(영국, 스켈레톤)
안젤라 루기에로 현재 선수위원장
(미국, 아이스하키)
2012 ~ 2020단카 바르테코바
(체코, 사격)
제임스 톰킨스
(호주, 조정)
커스티 코벤트리
(짐바브웨, 수영)
토니 에스탕게
(프랑스, 카누)
2014 ~ 2022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
(노르웨이, 바이애슬론)
하일리 위켄하이저
(캐나다, 아이스하키)
2016 ~ 2024브리타 하이데만
(독일, 펜싱)
유승민
(대한민국, 탁구)
다니엘 규르타
(헝가리, 수영)
옐레나 이신바예바
(러시아, 육상)
  1. 이후 몇년이 흘러 유승민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될 때 상황이 바뀌어버려 신생팀 참가 규정에 의해 제주 삼다수가 유승민의 지명권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유승민은 이를 거부하고 삼성생명 팀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중등록 파문으로 법정 공방까지 벌인 바 있다.
  2. 이건희 삼성 회장은 현재 활동 중지상태이고, 이전 IOC선수위원이었던 문대성은 불명예퇴직과 다름없는 처지로 위원생활을 마감했다....
  3. 그도 그럴 것이, 워낙 어린 나이부터 동나이는 적수가 없는 수준에 중학생일 때 이미 국가대표에 뽑혔을 정도였으니.. 물론 탁구는 예나 지금이나 중국이 절대 강세를 보이는 종목이지만, 이미 유남규(서울올림픽 단식 금메달), 김택수(방콕아시안게임 단식 금메달)가 중국을 넘어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에서 금메달을 따온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유승민에 대한 기대는 그 수준을 넘어 세계선수권 등을 쓸어버리는 당대 톱급이었다는게 문제.
  4. 이 세계랭킹 3위는 김택수가 1991년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고 오른 걸 제외하면 한국선수중 찍어본 적이 없는 랭킹이다.
  5. 비슷한 세대하곤 하지만 둘 다 유승민 보다 나이가 많다.
  6.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남여 개인 단식에서 금은동을 중국이 모두 석권하고, 남녀 모두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남여 개인단식에서 금메달, 은메달을 석권한데다 단체전까지 남여 모두 금메달을 땄다.
  7. 벤젠, 솔벤트 등의 함유된 러버 접착제. 러버 내부의 장력을 주어, 스피드와 스핀이 비약적으로 상승하지만 유해성으로 인해 ITTF에서 금지
  8. 백핸드를 드라이브로 선제공격을 당하면 쇼트로 방어하든지 기회를 봐서 백핸드 쪽으로 돌아서서 포핸드 대결을 해야 하는데, 프로 급에서 여유있게 돌아설 수 있게 만만한 공을 주는 것도 아니고 어렵사리 돌아서더라도 이번엔 포핸드 쪽이 뻥 뚫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렇기 때문에 백핸드 드라이브를 연속으로 당하면서도 쇼트로 계속 밀어주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었고, 그 안습한 모습에 '펜홀더 쇼트 전형' 이니 ' 펜홀더 레슨 전형(...)' 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9. 현재 일본식 펜홀더는 백핸드 수비등의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사장되고 있으며, 사실상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었던 한국마저 셰이크핸드로 전환되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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