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붉은 여우)

1 개요

붉은 여우의 등장인물.

아사가와 그의 후궁인 누국의 서출 황녀 오유의 아들. 하지만 붉은 눈이 아닌 탓에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게다가 그 당시의 아사가는 오유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오유의 아들인 유진은 그저 거슬릴 뿐이었기 때문에[1] 아들에게 이름도 주지 않았으며[2], 본성에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게 했다.

눈동자가 붉지 않다 뿐이지 왕족 내력인 색기는 확실히 유전된 것 같다. 왕자 시절엔 머리를 길렀지만 군주가 되었을 땐 잘랐으며, 우온을 군후로 맞은 후부터는 다시 머리를 길렀다. 다섯 번째 이야기에서 머리를 푼 모습이 나왔는데 색기가 철철 넘친다는 평이 많다.

2 작중 행적

첫등장은 1부 두번째 이야기. 나름 왕자였지만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던 시절, 유일하게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이복누나 사나를 잘 따르곤 했다. 오유가 사나를 독살하려다 여우에 의해 실패하자 어머니, 한야와 함께 이바나를 떠났으며, 아사가가 살해되고 사나가 행방불명 된 이후 다음 그 뒤를 이어 신 왕조를 세우고 29대 군주가 되었다. 신 왕조를 세우면서 이런저런 보수적인 법들을 어느 정도 개정했다.

군주가 되고 20년이나 지난 이후에도 사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듯. 그러다 양녀인 바리가 감찰 중 사나를 찾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덕분에 대략 20년 만에 사나와 재회한다. 사나로부터 지난 20년 간 살아온 이야기를, 신리로부터 사나에게 그가 지시했던 이야기를 듣고는 분노한다. 동시에 사나의 삶에 대한 동정심, 죄책감과 함께 사나를 이성으로 보고 있는 듯한 눈치도 보인다[3]. 덧붙여 여우를 증오한다.[4]

사나가 궁에서 지내게 해달라고 하자 이판에게 부탁해 '우이'라는 신원을 만들어 후궁으로 입궁시킨다. 자신이 사나를 여자로 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에 후궁 즉위식 직후에도 사나를 누님으로 대하려고 노력하지만, 사나는 이미 유진의 아내로 살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결국 둘은 남매임에도 불구하고 첫날밤을아주 격렬하게, 독자들이 숨 쉬는 걸 잊을 정도로 치룬다. 이후로도 군후인 우온이나 다른 비빈들을 제쳐두며 종국에는 바리의 지위도 박탈하고[5] 사나만 찾는 모습을 보인다. 독자들은 유진이 아사가와 같은 전철을 밟아간다고 걱정했으며, 유진 본인도 그러한 점이 아버지인 아사가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이(사나)를 정식 군후로 교체했고, 우온은 아기를 낳자마자 차비가 되었다[6]. 이후 회담을 위해 우이를 성에 남겨두고 떠나는데, 그동안 여우는 사나의 방에 침입해 그녀와 육체관계를 맺는다. 유진은 이 사실을 몰랐고 그저 우이가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을 임신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것이라고만 여겼다. 우이의 불안을 달래주려 노력하면서 우이가 임신한 아이의 탄생만을 고대하며 지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성에 들어온 바리에게 살해당한다. 미우부에 의하면 바리의 손에 죽을 운명이었다고.

백일몽 편에서 뜻밖의 반전으로 지금까지의 일은 바리가 여우의 협력으로 사나에게 보여준 환상이었다고 밝혀진다. 바리가 운명을 바꿈에 따라 그녀에 의해 상처만 입은 채 살아남았다. 그리고 우이를 찾다가 미우부로부터 바리가 운명을 바꿨다는 것, 여러 사람의 희생이 있었으니 앞으로 오래 살아야하며 궁 사람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더 이상 그녀를 찾지 말란 이야기를 듣는다. 몇 년 후 이야기를 보면 이 말에 따라 우이를 찾는 걸 포기하고 우온을 다시 군후에 올린 듯하다. 하지만 표정은 매우 우울한 걸 보면 여전히 우이를 잊지 못한 듯.

외전 1화에서 재위 24년, 우이가 행방불명된지 4년 지난 후에 신하들을 모아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 물러날 것을 선포하며 차남이자 군후 소생 유온이 5살로 아직 어리기에 장남인 후궁 소생 14-15살 유라를 학식과 기량이 뛰어나다며 자신의 후계자로 선포한다. 유라의 출신을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는 자에게 많은 이들이 따르는 사람일 수록 군주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혈통'이라 말하며 왕실모욕죄로 처벌한다. 그리고 아리산을 봉보부인으로 임명하여 그의 교육을 부탁한다. 이 선언은 이후 유라-유온 사이의 피비린내나는 군주 쟁탈전의 도화선이 되지만 유진은 이조차도 이전 이바나의 군주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하나의 흐름이라 생각한다.

이후 은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36세로 삶을 마감한다. 당대 역사서에서는 구 왕조만큼의 강력한 왕권을 세우지 못하고 간신에게 휘둘린 무능한 군주로 평가된다. 아리산이 기록한 요호록은 유례없는 학문애호가이자 호기롭고 그릇되지 않은 인물로 평가하지만 밀서라는 특성상 그가 세간에서 재평가되는 일은 없었다고 언급된다.

외전 내명부 이야기에서는 학식이 뛰어난 아리산이 내명부에 두기 아까운 인재라며 그녀를 측실에서 제명하여 문관으로 성에 들인다. 그리고 호조좌랑 오로를 소개시켜 중매하였으며, 그 노력과는 별개로 아리산과 오로는 금슬이 좋은 부부가 되었다.

외명부 이야기 3화에서 그의 시부인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고 나오는데, 당시에 천애고아 출신이라 이름도 없는 시부인을 '사나'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3 가족

군후 1명, 외교 관계와 군신 세력 균형 유지를 목적으로 맞은 후궁 5명, 누국 출신 후궁 무라가 낳은 12세 된 아들, 우온이 낳은 아들, 바리 외에 오리아가 낳은 2-3세 된 딸이 있다. 그러나 군후인 우온의 아버지가 이판인지라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물론 후궁들 중에서도 어느 누구를 딱히 총애하진 않았다. 사나가 나타나기 전까진 오유의 말대로 모든 빈들에게 평등한 애정을 주었지만,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그저 의무감이나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에 가깝기에 유진의 부인들(본래부터 유진을 사랑하지 않았던 아리산을 제외하면)은 늘 유진의 진심이 자신 한 사람에게만 쏠리기를 갈구하며 살았다. 그나마 우온에게는 자신을 이용해 권세를 얻으려던 그녀의 할아버지 영상 부마사+어머니가 시켜서 억지로 한 혼인이라는 점 때문에 도저히 마음이 가지 않았는지, 우온의 아버지 우마사가 신 왕조 유지 및 확립에 필요한 사람임은 인정하면서도 그런 의무감 섞인 애정마저 주지 않아 정실인데도 우온은 상당히 푸대접을 받고 살았고, 아이도 7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버지의 이름을 받지 못했던 것 때문인지 자신의 모든 아이들에게 자기 이름[7]을 주기는 했다.

작가 블로그에 따르면 12세가 지나 성인이 되어 정식으로 군주가 되었지만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17세까지 누국에서 공부를 했고, 그동안 오유가 수렴청정을 했다고 한다. 이때 자신에게 외사촌이 되는 무라, 미오 자매를 만나 둘을 후궁으로 맞아 이바나로 귀환했고 이후 우온과 혼인했다고.

  1. 오유가 이바나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하자 유진만 내보내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2. 부모의 이름을 따 자식의 이름을 짓는 것이 이바나의 전통이다. 하지만 아사가는 이름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인 오유와 외할아버지(누국 황제)의 이름을 합쳐 지었다.
  3. 사나가 고맙다고 하자 얼굴에 홍조를 띄우거나, 하늘이 정한 배필이었다는 말을 떠올리는 등.
  4. 군주로서 증오하는 것만은 아닌 걸로 보인다.
  5. 바리가 신리와 함께 궁을 떠나려 했을땐 바리에게 "너 역시 내 딸이며, 생각나면 다시 성에 돌아와서 살아도 좋다." 라고 말했다.
  6. 이판이 말하는 것을 보면 군후 다음가는 지위인 듯.
  7. 무라 소생 유라, 오리아 소생 유리아, 우온 소생 유온, 우이가 낳을 아이에게 주려 했던 이름인 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