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향

1 전한의 학자 유향

劉向
(기원전 77년 ~ 기원전 6년)

전한 때의 학자. 자는 자정(子政).

패군 사람으로 본명은 갱생(更生)이고 12살 때 아버지 유덕으로 인해 연왕 유단의 낭이 되었으며, 성인이 되자 품행이 훌륭하다고 해서 간대부가 되었다. 유향은 문장을 짓는 것에 뛰어나 부, 송 수십 편을 선제에게 바쳤고 유덕이 회남에서 가져온 책을 어릴 적에 익고 진기하다고 여겨 황금을 만들 수 있다고 상주해서 상방이 되어 금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실패한데다가 비용이 많이 들어서 관리에게 넘겨졌다가 황금을 위조했다고 탄핵받아 사형 죄로 감옥에 갇혔다.

형인 유안민이 선제에게 글을 올려 봉지의 호수 절반을 조정에 헌납하는 것으로 죄를 대신했으며, 선제도 그의 재능을 훌륭하다고 여겨 형벌을 감형했다. 춘추곡량전에 대한 학관을 설치하자 초청받아 춘추곡량전을 전수하면서 강론했으며, 사황문, 산기간대부급사중 등을 역임하다가 원제 때 소망지, 주감 등의 추천을 받아 산기종정급사중으로 일하다가 소망지, 주감 등과 함께 외척인 허씨, 사씨, 중서성의 환관 홍농, 석현 등이 권력을 휘두르자 그들을 파직시키기 위해 상주하려 했다.

그러나 상주하기 전에 참소당해 감옥에 갇혔고 성제가 즉위하자 기용되어 이름을 향(向)으로 고쳤으며, 중랑에 임명되었고 여러 번 상주문을 올려 광록대부가 되었다. 당시에 성제의 외숙부인 왕봉이 권력을 휘둘렀고 유향은 성제의 명으로 궁중에 소장된 오경의 비서를 맡아 교정하게 되자 홍범오행전론을 저술해 상주했으며, 또한 열녀전, 신서, 설원 등을 저술해 상소했고 성제는 유향의 진언을 다 수용할 수는 없었지만 훌륭하게 여겨 감탄했다.

그는 사람됨이 소탈하고 위엄을 차리지 않았으며, 청렴하고 도를 즐기면서 오로지 경학에만 전념해 낮에는 서적을 읽고 밤에는 별자리를 관찰하느라 아침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유향은 여러 차례 기용받았지만 높은 지위를 차지한 왕씨로 인해 구경이 되지 못했으며, 30여 년 동안 열대부로 있다가 향년 70세에 사망했다.

그의 저서로는 홍범오행전론, 열녀전, 신서, 설원, 전국책 등이 있으며, 열선전의 저자로 추정되면서 갈홍과 함께 서경잡기의 저자로 추정되고 있다.

문헌정보학에서는 분류 목록인 칠략으로 알려져 있는데, 칠략의 별록만 완성하고 그 작업은 아들인 유흠이 이어서 완성했다.

2 프랑킨센스

자세한 내용은 유향나무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