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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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吉重
1916.9.11~2001.10.11

대한민국의 전 관료, 법조인, 정치인이다. 호는 청곡(靑谷)이다. 제14대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이현수가 그의 사위이다.

1916년 9월 11일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출생했다. 일본 니혼 대학을 졸업하였다.

1935년 8월 보통문관시험, 1938년 8월 조선변호사시험, 1939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와 사법과에 각각 합격했다. 1941년 3월 전라남도 강진군수, 1943년 10월 전라남도 무안군수로 재직했다. 1945년 2월부터 해방될 때까지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무관으로 종사했다.

8.15 광복국민대학교 교수(1946~1950)로 재직하며,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총무과장 겸 법률기초과장, 국회 법제조사국 국장, 법전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원주군(지금의 강원도 원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6년 조봉암이 주도한 진보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진보당 선거사무장과 간사장 등의 직책을 맡았다. 1958년 1월 이른바 ‘진보당사건’으로 체포되었으나, 1959년 2월 대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1960년 사회대중당 결성을 주도했다. 같은 해 7월 사회대중당 소속으로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원도 원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혁신계 정치인들에 대한 탄압 과정에서 투옥되어 1968년 4월까지 7년간 복역했다. 출소 후 박정희 정권에 맞서 3선 개헌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1970년 신민당에 입당하였고, 1971년 7월 신민당 소속으로 서울 영등포 정 선거구에서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이 된 것을 계기로 여당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1980년 12월 민주정의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81년부터 1992년까지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제11~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동안 국회 부의장(1983.4~1985.4)과 민주정의당 대표위원(1988.5~1989.1), 민주자유당 상임고문(1990.3)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반(反) 김영삼 진영에 섰으며 그 해 가을 민주자유당을 탈당하고 통일국민당정주영 후보를 지지하였다.

2001년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2009년 발간된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