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무부

尹茂夫
법무부 내무부 무부무부 레츠 무부 윤무부 장관

1 소개

새박사
마리텔 섭외 1순위

1941년 4월 15일생. 고향은 거제시[1] 장승포동. 대한민국의 조류학자. 경희대학교 명예교수로, 새들의 먹이활동과 번식 등의 생태를 일반인도 알기 쉽게 전달해 탤런트 교수로 통했다.

2 상세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탄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가 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고, 초등학교 시절에도 산이나 바닷가를 다니면서 새 보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넉넉치 못한 가정 형편 탓에 7남매 중 윤무부 혼자만 공부할 기회를 얻었는데[2], 15살 때부터 부산 미군 부대에서 일하고 있던 둘째 형이 부대 이전으로 서울로 가게 되면서 당시 중학생이던 윤무부도 형을 따라 서울로 가 유학 생활을 했다. 서울 한영중한영고를 졸업한 후 경희대 생물학과로 진학했다. 대학 시절 동기들과 함께 탐조활동을 하며 이 때부터 새를 관찰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탐조활동을 하는 와중에 위기도 몇 차례 있었다. 대학원생이던 1967년에는 광릉에서 폭우가 내리는 와중에 철새의 이동을 관찰하다 개울가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6시간 가량을 떠내려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당시 이 집중폭우로 광릉 부근에서만 주민 90여명이 익사한 대형사고였는데, 윤무부는 다리 밑에서 시신 12구와 함께 발견됐다.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라서 이를 두고 호외도 났다. 의정부시, 포천시 같이 군부대가 많이 있는 곳이나 강화도[3] 같은 접경지역에서 탐조활동하기 위해 검문소를 지나다가 간첩으로 오인받아 여러 번 철창 신세진 적도 있다고 한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쌍안경과 값비싼 카메라를 소지하고 그외 다른 장비들을 넣기 위해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닌데다 탐조활동을 마친 후 며칠간 씻지도 못한 꾀죄죄한 상태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니 간첩으로 오인받기 딱 좋았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출타해 며칠씩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는 탓에 이를 기이하게 본 동네 주민이 신고하는 바람에 어느날 새벽 기무사에서 자택을 조사한답시고 들이닥친 적도 있었다고.

1979년부터 경희대학교 생물학 교수로 재직해 2006년 8월 말 정년 퇴임했다.

2006년 12월 탐조활동을 하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한때는 몸의 오른쪽이 마비돼 곧 죽을 거라는 진단까지 받았지만 재활에 성공했다. 후유증으로 오른손과 오른발은 예전처럼 잘 쓰지 못하게 됐는데, 재활하면서 왼손을 쓰게 돼 걷는 것만 다소 불편할 뿐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어 다시 탐조활동에 나서고 있다.

3 기타

윤무부박사는 치킨을 먹을까[4]
새 관련 필름 스크랩과 녹화 테이프가 수천 개에 사진이 60만 여장, 수많은 새소리 녹음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다. 이런 소장품을 두고 2006년 거제시에서 윤무부 조류박물관을 건립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집 주변에도 항상 새장을 직접 만들고 손를 볼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고 이른 아침마다도 정성스레 새들을 돌보는 모습을 인근 주민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슬하에 딸과 아들을 두고 있으며, 아들 윤종민도 아버지를 따라 조류학자의 길을 걸으며 경희대 생물학과[5]와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공부한 후 한국교원대학교 황새생태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과거 아내와 데이트할 때도 야외에 새를 보러 다녔고, 가정을 꾸린 후에도 휴가 때마다 가족들을 데리고 새를 보러 다녔고, 가족들이 반대를 해도 꿋꿋하게 새 보러 가자고 할 정도로 못 말리는 중증 새 덕후. 하지만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조류학자가 되겠다고 하자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조류학자 쪽이 다른 분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먹고 살기가 힘든 쪽인지라...[6]

1971년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된 황새 한 쌍 중 밀렵된 수컷[7]박제 작업에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멸종된 걸로 판단된 크낙새의 마지막 사진도 찍었다.

키가 작다. 학창 시절 키 순서로 번호를 매겼는데, 늘 1번을 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 별명은 이름 때문에 붙은 내무부, 총무부.

외도를 많이 한 편인데 2000년대 초중반 예능이나 개그 프로에 자주 얼굴을 비추었고 특유의 말투와 인상으로 깨알같이 웃음을 주곤 했다. 몇번 광고도 찍었고 대표적으로 엠파스 지식인이 있던 시절 고인으로 분한 윤교수 운구 앞에 양배추 조세호낙지 윤석주가 왜 갈매기살을 돼지고기집에서 파냐고 묻자 벌떡 일어나 천연덕스럽게 대답해주는 광고가 유명하다.광고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황새춤 동영상을 만들었다. 2014년 말에는 아이온 : 영원의 탑 업데이트 기념 광고에 출연했다 마족이셨다. 2015년에는 KT 올레 기가 홈캠 광고에 출연했다.
  1. 당시는 통영군이었다.
  2. 정작 학창 시절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3.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강화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문소를 6개 가량 지나쳐야 했다.
  4. 그런데 어느 언론 인터뷰에서 "새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새를 먹어도 봐야 한다."라고 했다고 한다(...).
  5. 부자가 사제지간으로 있었다. 아들을 전속조교로 삼아 주말마다 탐조활동을 다녔다고.
  6. 윤무부 본인도 대학 진학을 앞두고 생물학과에 합격했다고 하자 학비를 대주던 둘째 형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둘째 형은 어렸을 때부터 미군 부대에서 질시받으며 일해 왔기에 동생만큼은 영문과 같이 유망한 학과를 나와 떳떳하게 살기를 바랐다고 한다.
  7. 황새 항목에도 있지만, 암컷은 보호받다가 1994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