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1 북한의 정치인

%EC%9D%B4%EA%B0%95%EA%B5%AD.JPG

李康國, 1906년~1956년.

일제강점기의 지식인이며 독립운동가.

경기도 양주의 지주 이기택의 2남으로 태어났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재학 중 공산주의 사상에 입문하여 독일 베를린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독일 공산당에 가입한다[1]. 귀국한 후에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전력이 있으며, 일제말에는 여운형과 함께 건국동맹 활동을 했다. 해방건준을 거쳐 민전조선공산당 휘하의 단체에서 활동한다.

1946년 미군정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여 박헌영과 함께 체포령이 내려지자 숨어있던 중 월북한다. 월북하기 전에는 연인이었다고 알려진 김수임의 집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월북 과정도 드라마틱한데, 김수임이 당시 동거하던 베어드 대령의 차 트렁크에 타고 38선 접경까지 가서 북한으로 도주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휴전 무렵 남로당계 숙청 과정에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1955년 12월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망은 1956년 초로 추정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해방전후 어느 공산주의자의 드라마틱한 일생.....이지만,

2001년 9월 미국에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이강국은 실제로 미 방첩대의 정보 제공자였다고 한다. # 진짜 미국 첩자 맞았다는 얘기라고 볼수 있는데. 이러한 정보 제공자가 말 그대로 간첩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당시 남로당은 합법적인 정당인 적이 있었고, 지하로 들어가기 전만 해도 미군정 관리들과 남로당 간부들이 정식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런 공개된 회담이나 연설을 통해서 정보를 추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인셈.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80년대 후반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신문이나 야당에서 출간한 자료들을 가지고 정치 사찰을 한다고 그것이 안기부 간첩이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 남로당쪽에서 주요한 정보 소스를 이강국의 연설이나 면담을 통해서 얻었다는 것으로 해석할수도 있는 일이다.

만일 이강국이 진짜 '미제 간첩'이었다면, 그의 정보원인 김수임을 남한에서 처형할 이유가 없었을것이다[2]. 다른 사례로 들어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공산당 의장 노사카 산조등이 미 정보부를 도와 활동한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자국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연합국과 내통한 것은 사회주의운동의 입장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미국과 적대적이 된 상황에서 계속해서 미국의 첩자 노릇을 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강국과 김수임이 진짜 북한 간첩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이며, 적어도 간첩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해방 직후에는 미국과 남한 간에 정보 공유가 안 되어서 미국 쪽 지령을 받고 활동하는 스파이임을 모르고 체포하는 일도 있었다는 것.

뭐 어느 공산주의자의 드라마틱한 일생은 아니겠지만 어느 지식인의 드라마틱한 일생 정도는 되겠다.

여담으로 이강국은 일제시대의 '주식왕'으로 유명했던 동아증권[3] 사장 조준호(趙俊鎬)[4]처남으로, 조 사장이 이강국의 독일 유학 시절에 학비를 대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독일 유학후 조준호 사장의 회사에서 이사로도 근무 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배경. 학비도 대주고 직장까지 마련해 줬는데 딴 여자랑 놀아났다

서울 1945의 최운혁(류수영 분)이 바로 이사람을 모델로 하고 있고 한다. 서울 1945/등장인물 참조.

2헌법재판소

李康國, 1945~
전북 임실 출신. 서울대 법학과 졸업. 사시8회.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대법관, 2007년 부터 2013년까지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하였다.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퇴임 후에는 대한법률구조공단 같은 곳에서 법률상담 봉사를 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는데, 퇴임 후 정말로 그 약속대로 2년여간 법률상담 봉사를 하여,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1. 이전 문서에는 모스크바공산대학에서 유학한 것으로 작성되어 있었는데, 이강국은 소련 유학을 한 적이 없다.
  2. 처형할 이유는 사실 있다. 김수임은 베어드의 현지처로, 베어드를 포함한 미군정의 군기문란과 군비밀 유출문제가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김수임을 포함한 낙랑클럽을 미군 방첩대가 수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단적으로 현대의 정보조직의 고위 인사에게 여자 호스티스가 붙어서 그 조직의 정보를 위부로 유출했다면, 그 유출된 대상이 이중간첩이냐 아니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유출되는 것을 어느정도 방치했다고 해도 기밀 누설죄는 제외되지 않는다.
  3. 뒷날 최원석이 이끌던 동아그룹 산하의 동아증권과는 이름만 같을 뿐, 서로 무관하다.
  4. 현재 그의 재산은 지금도 명동에 있는 '사보이호텔'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그의 손자가 경영하고 있다. 1975년 조양은신상사습격사건이 이 호텔에서 벌어진 탓에 폭력배와 연계된 걸로 오해를 사서 고생 좀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