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프로야구 30주년 Legend All-Star BEST 10
in 2011. KBO-NAVER
장효조
OF / 삼성
이순철
OF / 해태
양준혁
OF / 삼성
김재박
SS / MBC
박정태
2B / 롯데
한대화
3B / 해태
선동열
P / 해태
장종훈
1B / 빙그레
김기태
DH / 쌍방울
이만수
C / 삼성

2015100218520247200.jpeg
2016031900936_0.jpg

SK 와이번스 역대 감독
김성근[1]
(2007~2011)
이만수
(2012~2014)
김용희
(2015~2016)
라오 J 브라더스 구단주
이만수 (李萬洙 / Lee Mansoo )
생년월일1958년 9월 19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강원도 철원군
학력대구중앙초-대구중-대구상고-한양대
포지션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 멤버
소속팀삼성 라이온즈 (1982~1997)
지도자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 (2000~2006)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07~2010)
SK 와이번스 2군 감독 (2010, 2011)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10~2011)
SK 와이번스 감독대행 (2011)
SK 와이번스 감독 (2012~2014)
종교개신교[2]
수상 기록

1983, 1984, 1985, 1986, 1987년 한국프로야구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1977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MVP
1983년 한국프로야구 MVP
1983, 1984, 1985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1984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1983, 1984, 1985, 1987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1987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1984년, 1987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장타율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150px-KBO_Retired_Samsung_22.svg.png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게 기적이고, '미라클'이다. 선수들에게 고맙다. 뒤는 생각하지 않겠다. SK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됐으면 좋겠다. 내가 없더라도, 다른 감독이 오시더라도 그 트렌드는 정착됐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미련은 없다.

ㅡ 2014시즌 넥센 히어로즈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1 개요

파일:Attachment/이만수/manso.jpg

헐크

삼성 라이온즈의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장종훈-이승엽-박병호로 이어지는 홈런왕 계보의 시작
KBO 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이자, 수많은 최초 기록을 보유한 최초의 사나이
20000 수 Man-soo "The Baseball" Lee

삼성 라이온즈포수, 前 SK 와이번스감독이자 현재는 MBC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이자 KBO 야구발전위원회의 부위원장. 그리고 라오스 최초의 야구팀인 라오 J 브라더스만든 창립자중 한명. 별명은 '최초의 사나이'로, 한국프로야구 최초 안타, 최초 타점, 최초 홈런, 최초 100홈런, 최초 200홈런, 최초 트리플 크라운 기록 등 많은 최초 기록을 가지고 있기에 붙은 별명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포수이다. 수비력이 박경완에게 밀린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지만, 포수 리드는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경기의 향방을 가를 정도의 중요성을 가진 부문은 아니고, 세이버메트릭스에서는 거의 사장된 개념이다. 또한 일반적인 수비지표에서 이만수는 박경완에게 전혀 꿀리지 않으며 이만수의 통산 타격 성적은 박경완과는 비교가 안되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우타자 반열에 들 수 있을 정도다. 지금까지도 이만수 선수시절 수준의 타격 커리어를 가졌다거나 앞으로 쉽게 만들어갈 거라고 볼만한 포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만수의 타격 커리어가 어느정도인지 감이 안잡힌다면, 포수를 보는 이대호정도로 보면 대강 맞아떨어진다.

2 선수 경력

이만수/선수 경력 문서로.

3 지도자 경력

이만수/지도자 경력 문서로.

4 해설자로서의 경력

2014년 12월 18일 MBC SPORTS+ 객원해설자로 데뷔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라오스 야구단 후원은 어떻게되는거냐는 말이 나왔는데 이미 감독 시절부터 해왔던 일인만큼 감독보다 훨씬 여유로운 해설자라면 병행하는게 어렵지 않다. 라오스 야구 후원 관련한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도 완전 이주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오가면서 야구를 보급하겠다고 밝혔었다.

2015년 4월 17일 kt wiz vs 삼성 라이온즈 경기를 통해 첫 해설데뷔전을 치뤘다. 이 날 중계파트너는 한명재 캐스터와 박동희 기자였는데 전체적으로 호평이었다.


2015년 7월에 시카고 화이트삭스2005 월드 시리즈 우승 1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다.(영상 35초부터)

2015년 10월 2일에는 대구시민 야구장에서 치뤄지는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의 시포를 맡았다.

5 감독 복귀?

2016년 10월 12일 kt 위즈조범현 감독과의 재계약 포기를 선언하면서 후임 자리 후보 4인 중 한명으로 거론되었으나, 어디까지나 후보군이였고 결국 전 두산 베어스 감독인 김진욱이 내정됐다.

6 별명

별명은 헐크, 떠벌이[3], 대한민국베이브 루스[4], 만수 The Baseball Lee. 지지하는 팬층(주로 야갤)에서는 만수르라고 부른다. 하지만 2013년 시즌에 SK가 부진하면서 그냥 지지하든 까든 대충 만수르로 칭하기도.

2013년에는 정근우라늄, 진해수소폭탄, 전유수소폭탄, 문승원자폭탄을 실험하는 이만슈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와 비슷하게 팔도의 폭탄을 수집한다고 팔도폭탄 수집가라는 별명도 나와서 큰 웃음을 주었다. 만수노트라는 제목으로 웹툰에서도 폭탄수집한다고 까였다. 그러나 사상 최강의 폭탄인 송은bomb은 너무 위험해서 실험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아인슈타인도 사상 최강의 폭탄인 핵무기 개발은 반대했었다

선동열의 각동님과 더불어서 갓동님으로 별명이 굳어졌다. 아예 야갤에서는 이만수를 이만수라 부르면 갓동님이 니 친구냐 씨발새끼야가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상황(...)

일부 SK팬들이 유다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안 쓰는 것이 좋다. 유래 자체가 인천예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던 전임 감독을 배신했다는 의미로 쓰임으로서 은연중 김성근을 신격화하는 표현이며[5]. 특히 독실한 개신교인인 이만수 전 감독에게 있어 유다라고 부르는 것은 개신교인이 들을 수 있는 최악의 표현이다. 실제로 이만수 전 감독도 본인이 들은 모욕적인 표현 중 가장 아찔했던 표현으로 이 유다 비유를 들었다. 유다라는 별명은 엠엘비파크 한국야구게시판 등지에서 김성근 전 감독 개인팬을 위시한 SK팬에 의해 한동안 무비판적으로 사용되었다가, 2015년 9월부터 김성근이 한화 감독으로서 보여주는 졸전과 혹사 논란과 더불어[6][7] 한게 내부에서도 자성의 분위기가 생기면서 사용이 자제되는 실정이다.

물론 이만수 전 감독이 감독 재임 기간 동안 교회에서 간증을 하며 팀 상황도 안 좋은데 괜히 야구 얘기를 꺼냈다가 구설수에 오르는 등의 일이 있긴 했었지만[8][9], 어쨌거나 좋은 표현은 아니니 이러한 면에 대해서는 유다라는 원색적인 비난보다는 좀 더 바른 표현으로 비판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는 이만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비판에도 마찬가지이다. 안 좋은 드립을 써서 좋을 건 없으니까.

7 기타

  • 선수 경력 항목에도 적혀있지만, 역사적인 한국프로야구 1호 안타, 1호 타점, 1호 홈런의 주인공.
  • 가족이 모두 운동선수인 체육인 집안 출신으로, 누나인 이미옥 씨는 전직 프로골퍼이며, 한 살 터울인 동생 이용수 씨는 현역시절 국가대표까지 지낸 테니스 선수 출신이다. 여담으로 학생 시절, 동생 이용수 씨와 새벽 훈련을 같이 했는데, 동생이 서브를 치면 이만수가 그걸 배트로 치는 식으로 훈련을 했다고 한다. 프로야구 투수의 구속을 뛰어넘는 속도의 테니스 서브,[10] 를 받아치는 훈련을 한 것이 이만수가 강타자가 된 비결이었는지도...
  • 2011년 6월 27일, 프로야구 30년 역사상 최고의 별로 뽑혔다.#
  • 2011년 7월 23일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시구를 했다. 당시 시포는 선동열이 맡아서 관중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 종교는 매우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그래서 안티들은 유다, 유다만수라고 부른다. 물론 위에서도 썼지만, 굉장히 모욕적인 쌍욕이므로 쓰지 말자. 이스라엘 사람에게 히틀러라고 부르는 꼴이나 다름없는 무례한 짓이다.

그래서 아들 이름도 "하나님의 종", "예수님의 종"에서 따서 지었을 정도다. # 이만수 SK 와이번스 수석코치“신앙도 훈련 필요” 그것뿐이라면 괜찮겠지만 2군감독 재직시 선수를 "종교를 봐서 차별한다"거나 "선수에게 강제로 전도를 하고 다닌다" 하는 일로 SK팬들에게 대차게 까였다.
삼성 현역 시절에는 (종교가 없는) 후배들을 모두 일요일에 교회로 강제로 출석시키게 했다가 구단측에서 경고를 받았다고 본인입으로 밝히기도 했다. 아무래도 토요일 야간경기후 일요일 아침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라서 강제로 끌려가는 신참들이 구단측에 밀고한 듯 하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인용되었다.# 이만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현재는 인천 남구 학익동에 있는 은혜의 교회에 다닌다. 교회에 유니폼을 입고 온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은혜의 교회에서 정체불명의 '이만수 팬클럽' 단관행사를 열어 문학 구장에 출동하는 바람에, 팬들 사이에서는 "구장에서 예배를 볼 지도 모르니 우리는 목탁을 들고 가자"라는 주장이 나돌기도 했다.

안치용이 이에 대해 본격 디스하는 말을 했는데 2011년 준플레이오프 1, 2차전 모두 벤치에서 대기했는데 이때 안치용의 타격감은 절정에 이르렀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되지도 않는 이호준 내리고 안치용 올려라!"라는 말도 나왔다. 그리고 3차전에서 선발 라인업에 올라간 안치용에게 기자가 이유를 묻자교회도 안나가는데 감독님이 왜 올리셨을까???라는 말로 디스했다. 기사링크 참고로 안치용은 불교신자이다.

앞에서도 잠깐 나오는 사실이지만 사실 이만수는 원래는 개신교 신자가 아니었다. 개신교 신자인 부인때문에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는 듯. 물론 결혼 뒤에 신앙생활이 이어지긴 했지만 결혼한지가 30년이 넘었기 때문에 신앙생활 역시 30여년으로 상당히 길다. 차라리 오랜 종교생활로 타인에게 자신의 종교를 전도하고 요구하는 걸 쉽게 생각한다는 비판은 가능하나 역으로 그가 모태신앙이 아니라 해도 잠깐 종교에 빠져서 오버한다는 식으로 무시한다거나 할 기간은 절대 아니다.

  • 야구선수 출신이 모 건강식품 업체 인사와 엮여 사기를 당했다는 이니셜 기사의 주인공이었다. 여기에는 이승엽도 관여되어 있었다.
  • GQ 2011년 12월호에서 김성근 전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이만수 감독과 SK 프런트의 언행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여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김성근 문서를 참조. 다만 이만수 입장에서도 김성근과의 감정이 좋을 수가 없는 것이, 80년대에는 팔뚝 힘줄 드립으로 포수 수비 막장설이 떠돌게 되는 원흉이었으며, 90년대 삼성 감독으로 와서는 자기 제자인 조범현을 쓴다고 프랜차이즈였던 이만수를 말도 안 되게 홀대했으며,[11] 2000년대에는 자신이 2~3년뒤 감독으로 될 것으로 내정되어있던 SK 감독 자리에 4년이상 있게되면서 이만수 개인으로 봤을 때는 김성근을 싫어할 만한 요소가 충분하다.
  • 2011년의 한 설문조사에 의해 프로야구 감독들 중에서 유일하게 故 노무현 전대통령을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이다.
  • 현역시절엔 한국프로야구 사상 몸에 맞는 공을 가장 많이 당한 선수였다. 총 112개의 데드볼을 맞았는데, 이만수가 홈런을 칠때마다 과도한 리액션을 취하는 바람에 빡친 타팀 투수들이 합심해서 고의로 빈볼을 던지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 이후 박경완에 의해 깨졌지만 이만수는 대부분 빈볼이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현역시절 알아주는 트래쉬 토커였는데 빈볼성 사구를 많이 맞은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KBS 이병훈 해설위원은 이만수에 대해서 유독 비판을 자주하는걸로 유명했는데 팬들은 그 이유를 현역 시절 이만수의 트래쉬 토크에 당했던 일화와 엮어서 추측하기도 한다. 그 일화를 두고서 노리타들은 이만수는 기본적인 인격도 안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 이만수를 지지했던 팬들은 이만수가 본의 아니게 유다라는 별명으로 억울하게 비난받는다고 강변했었다. 김성근 감독의 해임과 문학구장 소요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재계약 불발된 김성근의 정치질과 언플이고[12] 이만수는 프런트와 잘못 엮이는 바람에 까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김성근 팬들도 SK 프런트가 이만수를 데려올 때 김성근에게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던 것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만악의 근원이 SK 프런트라는 점에는 친 이만수와 반 이만수 양쪽 모두 동의하는 것이 현실이다. 가 될 줄 알았으나 2016년 한화이글스에서 한화 감독으로 활동하는 분의 민낯이 드러나며 차라리 SK 프런트가 그 사람을 잘 내쫓았지 저때 욕 먹으면서라도 안쫓았으면 SK도 한화처럼 2군팜이고 뭐고 박살이 날뻔 했다는 여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2016년 현재 이 만악의 근원 타이틀 지분은 그분이 독식하는 중. 이 꼴을 보고 있자니 인생사 정말 새옹지마다.
  • 감독대행 시절이나 정식으로 SK 와이번스 감독직을 수행하면서부터 깔끔하지 못한 언행과 인터뷰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가장대표적으로 감독을 위해 이겨달라고한것이 있으며, 감독 취임 초기에는 인터뷰 내용과 실제 선수기용이 다른경우가 많고 말과 행동의 앞뒤가 안맞는식의 언행불일치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었다. 그 외에 현역시절부터 유명했던 과도한 리액션으로 어그로를 심하게 끌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식의 언행은 자제하겠다.## 그러나 2013년 시범경기 인터뷰를 보면 도로아미타불. 몇몇 솩갤러들은 혀갤러에게 염경엽을 인터뷰 인스트럭터로 보내달라는 식으로 이만수를 조롱하기도 했었다.
  • 2013년 10월 4일 노컷뉴스의 팟캐스트 스토커가 이만수의 경질에 대한 단독보도를 한다고 밝혀 경질설이 떠올랐으나.. 관련기사 구단 측에서는 마지막 계약년도인 내년까지 감독임기를 보장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관련기사
  • 2014년 3월경 기사에 따르면 라오스에 야구단을 만들고 구단주가 되어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되었단 기사가 보도되었다. 리오스와 같은 야구 불모지에 야구를 알리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도 많은 비용을 투자했고, 버선발로 뛰며 대구 내 사회인 야구단에서 안쓰이는 야구 용품들을 모아서 보내기도 했다. 몇몇 팬들은 SK감독만 안했으면 욕을 먹을일도 없고 업적도 많아서 존경받았을 텐데 하며 측은스런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선수시절엔 트리플 크라운, 5년연속 골든글러브, 코치로는 월드시리즈와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했을 만큼 남들이 한번 쌓기도 힘든 업적을 다수 쌓았는데 시작부터 꼬였던 SK 감독 생활로 명예를 상당히 잃었다.
  • 그러다 결국 라오스 지원이 결실을 맺어 대한민국 외교부와 라오스 외교부의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 대한야구협회에서 라오스 교육체육부로 야구용품 1600만원치를 지원했고 내년부터는 정식적으로 라오스 야구단에 코치를 파견한다고 한다. 만수 더 베이스볼 리... 야구에 대한 열정이 맺은 결실로서, 이만수 본인은 이 성과를 박현우 코치에게 돌렸다. 낮에는 코칭을 밤에는 라오스 체육교육부 직원들과의 회의에 힘썼다고 한다. 그 외로도 함께 도운 것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6.jpg
현역 선수시절 사진
2015100201000128100006571.jpg
이 중에서 유일하게 본인만 현역 시절때 이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적이 있다.

  • 공식 홈페이지가 있다. # 생긴지는 오래됐으나 어째 아는 사람은 적다.
  • 잊고 싶은 기억으로 대구우유 CF가 있다.#
  • 흔히 영혼의 배터리의 대명사로 김원형-박경완 콤비를 꼽는데 그 원조는 바로 김시진-이만수다. 실제로 둘은 절친이고[13], 대구상고 동문, 한양대 동문, 삼성 라이온즈 동문이자 고교 배터리, 대학 배터리, 프로팀 배터리의 관계이다. 이따금씩 방송에서 김시진이 이만수에 대한 일화를 말하는데 이게 꽤 웃기다. 선생님 빠따 사건이라던지[14], 손바닥 성냥사건이라던지, 1980년 일본에서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김시진이 차출됐다가 어깨부상으로 출국 전날 엔트리에서 빼고 이만수가 대타로 갔다가 병역특례를 받았고 김시진은 그 해 현역으로 입대했다는 에피소드 등이 많다.[15]
  • 2016년 3월 25일 손자를 얻어 할아버지가 되었다.
  • 2016년 3월 28일 tvN의 리틀빅 히어로에 나와서 그동안의 근황을 전했다.
  • 2016년 현재 이만수 갓동님께서는 참조은병원 홍보대사이다.
  • 디시위키에도 이만수 문서가 작성되어 있다. 미화되어 있는 부분도 있지만 감독 이후의 행적이나 나무위키에도 없는 내용들이 작성되어 있는 걸로 보아 이만수에 대한 디시인들의 사랑(...)이 느껴지는 문서이기도 하다.
  1. 시즌 도중 경질
  2. 본래 자신의 아내와 그 가족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 가족이었다고 한다. 아내와 결혼하는 조건이 교회를 다니고 기독교를 믿는 것이었다고.
  3. 언론에는 헐크, 선수들 사이에선 떠벌이란 별명이 유행했다고 한다.
  4. 미국에서 이만수를 소개하는 기사를 쓸 때 쓰는 별명이다.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 미국 선수들에게 스스로를 한국의 베이브 루스라 소개한 적이 있다고 스스로 밝힌 적이 있기도 하다.
  5. 물론 김성근을 싫어하면서도 이 표현을 쓰는 사람들도 많다. 이만수는 재임 기간 중 종교에 관련된 구설수도 꽤나 있었기 때문.
  6. 이만수 별명에 김성근 얘기가 왜 나오는가 싶겠지만, 아무래도 유다라는 별명 자체가 김성근과 무관한 별명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7. 2015년 후반 김성근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까지의 엠팍은 노리타들의 패악질 때문에 이만수와 김응용을 대놓고 유다, 킬끼리라고 부르며 조롱하던 것이 일상이었다. 이는 김성근의 실체가 드러나고 노리타들이 대거 숙청된 2016년에도 계속되어 유다, 킬끼리는 그저 유저들의 지탄을 받는 수준이지만 가네바야시 세이콘, 노리타 등의 김성근 비하 별명은 금지가 된 상황.
  8. 이만수 어록으로 돌아다니는 것 중에서도 상당 분량이 이만수의 교회 간증이 출처일 정도이다.
  9. 현재는 그 교회 간증이 노리타들의 악날함을 엿보는 좋은 증거로 재활용 되고 있다
  10. 테니스 서브는 프로 선수의 경우 200km/s를 넘기는 경우도 흔하다. 세계기록은 263km/s.
  11. 결국 김성근 감독은 선수단과 마찰을 빚다가 짤렸고, 다음 우용득 감독은 김성근 감독이 엘리트 의식에 싸여있다고 깠던 그 선수들로 준우승했다.
  12. SK구단은 2011년 6월 이미 이만수에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만수는 다른 팀 갈 곳을 알아보다 김성근의 돌발 행동으로 뜻밖의 1군 감독 대행을 하게 된 것. 자세한 것은 이만수/2011년의 주석을 보면 알 수 있다. 감독 계약이 만료되어 재계약하는 것은 프런트의 고유 권한이고 프런트가 시즌 도중 경질을 시킨다고 한 것도 아닌데 재계약 문제를 패넌트레이스 한창일때 언론에 터트리는 건 대놓고 프런트 엿먹이고 여론전을 벌이겠다는 포석이었다. 휴... 2016년 이전에 이런 소리 했으면 김성근 감독팬들에게 집단린치를 당했겠지만 김성근 재평가가 이루어진 지금 시점이라 속시원히 말할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13. 다만 이만수가 유급을 한 탓에 김시진보다는 1년후배이다. 김시진은 77학번, 이만수는 78학번이다.
  14. 대구상고 정동진 감독 취임날에 선수들이 하라는 훈련은 안하고 놀러다녔고, 이 소식을 들은 정동진 감독이 내 불찰이니 나를 때려라 라고 했다. 그래서 김시진이라던가 여러 사람이 대부분 말렸는데, 뜬금없이 이만수가 감독이 자신을 때리라고 하니까 진짜로 감독을 배트로 때리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뭐.. 다들 울먹이면서 잘못했다고 감독에게 사과하는 훈훈한 일로 끝났지만, 하필 이 소식이 쫙 퍼지는 바람에 전국의 대구상고 동문들이 들고 일어나서 정 감독이라던가 여러 사람이 일을 수습하느라 애먹었다고 한다.
  15. 여기에 더해서 김시진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육군 경리단 신분으로 참가하고 대회 우승을 하나 군인 신분이기에 다른 멤버들과 달리 병역특례를 받지 못한다.(…) 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