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근(북한)

  • 개그맨 이수근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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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에 의해 판문점을 통하여 위장 귀순하였으나 간첩으로 몰려 1969년 7월 3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다음 당시 공안 당국이 설명한 이수근의 간첩 혐의.

이수근은 당시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조선노동당 대남사업총책 이효순으로부터 위장 월남 귀순하라는 지령을 받고,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를 취재하다가 오후 5시경 회의가 끝나자 재빨리 UN군측 대표인 준장 밴 클러프트의 승용차에 뛰어올라 극적인 탈출에 성공함으로써 월남 귀순하였다.

그는 전국 순회 강연 및 TV·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북한 실정을 폭로하는 척하면서 한국의 각종 기밀을 수집하여 북한으로 보내려고 꾀하였다. 그의 여러 가지 행동이 점차 수상해지자 한국 정부의 정보 및 수사 당국에서는 그를 주시하고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수 없음을 눈치채고 조카 배경옥과 함께 위조 여권을 만들어 비행기로 탈출, 홍콩·방콕을 거쳐 호찌민에서 북한으로 귀환하려다 한국 정부의 정보 요원에 의하여 체포, 군용기 편으로 압송되었다.

이수근의 귀순은 당시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데, 그도 그럴것이 북한의 국영통신사 부사장이라는 거물급 직책에 있던 인물이었으니 사실상 황장엽의 귀순 이전에 가장 높은 거물급 인사의 귀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그래서 이수근은 상당히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심지어는 당시 북한에서 귀순하는 인사들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과정인 보안검사[2]도 면제했을 정도. 세간에선 이런 파격적인 조치의 배경에는 이수근과 동향이었던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 김형욱의 배려덕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이수근은 점점 남한에도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고 그래서인지 위장간첩이라는 의심을 받기 시작했던걸로 보인다.

이수근이 간첩으로 몰린 이 사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2008년 12월 29일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검찰이 상소를 포기함으로써 판결이 확정되었다. 또한 이수근의 탈출을 도운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이수근의 처조카 배경옥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참고로 이수근의 간첩 혐의에 대해 최초로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다름아닌 조갑제(당시 조선일보 기자)다.

조갑제는 이수근의 간첩 혐의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사형 판결에 대한 사법살인 의혹을 제기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실 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제기한 월간조선의 일련의 기사[3]에서 이수근이 극적 탈출해서 귀순한 것도 맞고 기밀을 보낸 적도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다만 논란이 되는 건 탈출죄의 이야기인데... 국가보안법상 탈출죄는 사형까지는 가지 않고 이수근 자신도 적당히 감옥살고 나오리라고 생각했다는 것.

다시 말해 작은 간첩 행위를 했는데 사법살인으로 사형이 되었는가아예 간첩이 아닌데 간첩으로 몰아서 처형했는가의 문제이다. 조갑제는 전적으로 후자의 논리이다.

사실 조갑제의 일련의 기사 연재로 이수근이 간첩이 아닌 것이 확실시 되었고 2008년의 고등법원판결은 거의 요식행위라고 볼 수 있지만 조갑제가 그 기사를 내었을 때만 해도 상당한 파란을 몰고 왔을 정도였다. 조갑제가 이 사건의 유력한 증인으로 내세웠던 이대용 공사[4]도 이런 증언을 한 죄로 온갖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이수근을 수사한 중앙정보부 고위 관리 방모씨의 수기 이수근은 간첩이 맞다[5]류의 비화면서 성인물가 연재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수근이 위장간첩으로 조작되어서 처형당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들 사이의 권력다툼에 이수근이 희생된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형욱이 이수근에게 파격적인 대접을 하면서 김형욱의 반대파들이 이를 빌미삼아서 김형욱의 실각을 노렸고[6] 결국 김형욱은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이수근을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이수근이 처형되고 세달쯤 후에 김형욱이 중정부장에서 해임된것을 보면 나름대로 일리있는 주장.

북측도 이 사건을 흥미있게 본 모양이며 나중에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남북 정보기관간에 통로가 트이자 북의 공작기관 책임자가 남측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수근이를 남반부 정부가 처형한 건 우리 공화국의 배신자를 처단해준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는 카더라도 있다. 어찌보면 냉전의 희생자.
  1. 참고로 개그맨 이수근의 부친은 실제로 본 항목의 이름에서 따서 아들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항목 참조.
  2. 귀순을 위장해서 간첩을 파견할수도 있다고 해서 중앙정보부에서 귀순한 사람들에게 시행한 절차. 그 절차는 기밀이라고 적힌 서류를 놓아두고 그 서류를 어찌하는지 반응을 살펴보았다고 한다.
  3. 조갑제 닷컴에서 이 기사 모음집을 단행본으로 내었다
  4. 떤선녓 국제공항 비행기를 대통령 특명으로 세우고... 현장에서 이수근의 멱살을 잡았던 중앙정보부 무관, 사이공 함락시 탈출하지 못해서 몇년간 억류 생활을 했다
  5. 이수근의 수기나 관련 기사를 보면 정말로 천하의 개쌍놈이 따로 없을 정도로 그를 괴롭혔다고 한다. 심심하면 이수근을 코렁탕 연행해서 때리고 총을 겨누고... 참고로 이 사람은 나중에 중앙정보부에서도 밀려나서 미국에서 세탁소를 한다.
  6. 물론 측근들 외에도 김형욱의 스타일이 물불 안가리는 스타일이라서인지 국민적으로 여론이 좋지가 않았던게 사실이다.